1.

실제 인물 조단 벨포트의 이야기라는데 감독의 시점 탓이기도 하지만 지극히 미국스러운 영화다. 학력위조 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썩했던 신정아 사건. 학력 위조 뒤에 숨겨진 엘리트 계급의 은밀한 욕망이 폭로되었고 그 방식은 선정적이었고 스펙터클화되었다. 그 어떤 영화보다도 영화스러웠던 사건. 조단 벨포트란 인물의 기나긴 일대기를 보면서 신정아 사건이 떠올랐다. 신정아 씨가 책을 냈고 텔레비전 프로그램 사회자로 나온다는 말이 돌기도 했었다. 사람들의 이중성에 뜨악했는데 결국 무산됐단다. 만약 신정아 사건을 영화로 만든다면 일반화 작업이 필수일 것이다. 한국 사회 구조를 구구절절 설명하기 보다는 인간의 본성 중 탐욕과 이기심을 보편적으로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감독은 조단 벨포트를 일반화 할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감독의 관심은 코웃음과 질펀한 씬들이 모여 보여주는 시각적 효과에 더 관심있어 보인다. 월가의 매커니즘이나 탐욕 뒤에 말로만 등장하는 휴머니즘도 가볍게 처리한다. 쾌락주의자로 인간을 묘사한다. 돈을 좇는 이유나 범법 행위를 추적하는 FBI 요원의 내면 가치 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사무실 씬만으로도 끈적하고 질펀한 느낌을 잘 전달한다. 투자자들한테 마케팅을 하는 단순히 일하는 장면도 특이하게 산만하고 스펙터클하다. 사실 이런 장면을 이렇게 전달하기 쉽지 않을텐데 긴 런닝타임동안 계속 그러니까 오히려 영화도 값싸보인다.

 

2.

월가가 괴상한 숫자들로 사람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현혹시켜 허구의 상품을 팔아왔다는 걸, 우리는 이제 안다. 벨포트는 그런 사기꾼들 중 사기꾼이다. 다만 월가가 은밀하고 합법적인 척한다면 조단 벨포트는 대놓고 저질스럽고 천박한 말로 콕 집어 말한다. 일차원적 언어와 행동에는 약간의 쾌감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지켜야 하는 법을 잘 지킨다고 계급이 상승하거나 모범시민이 되는 게 아니며 잘 사는 건 더더욱 아니니. 사회적 관습을 비웃고 불법적 일, 마약, 매춘, 돈세탁, 주가조작 등 사회질서를 해친다고 규정한 모든 일을 다 하면서 법망을 피해 부를 축적하는 게 뭐가 나쁜가 하는 조단 벨포트다. 하지만 모범시민인 FBI 요원을 만나 결국 기소당해 모든 것을 잃는다. 그러나 그는 출소 후 책을 쓰고 강연을 다니며 다시 사기꾼 기질을 발휘하고 있다. 사회가 사기꾼 기질을 필요로 한다는 말도 되겠다. 끔찍하다. 사기꾼 기질을 필요로 하는 사회라니. 그리고 그 기질을 부추기는 사회라니.

 

3.

감독은 인간 본성에 확대경을 대지도 않고 월가에 날카로운 메스를 대지도 않는다. 세 시간 동안 디카프리오의 원맨쇼를 보고 있어야한다. 디카프리오의 연기는 최고지만 배우한테 너무 의존적인 영화는 좋은 영화가 아니다. 가수가 하는 콘서트가 전적으로 가수의 역량에 달려있지만 영화는 배우의 개인기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많은 요소들로 이루어져야하는 장르기 때문이다. 시끌벅적한 장면이 너무 많은데 음악의 과잉과 디카프리오의 시종일관 센 연기는 정말이지 중간에 나오고 싶은 마음을 불쑥불쑥 들게 한다. 인내를 요구하는 영화다. 세 시간이어야 할 정도로 할 말이 넘치는 영화가 아니라 두 시간이라면 좋았을 영화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맥거핀 2014-01-17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마틴 스콜세지를 조금 믿어보려고 해요. 과잉이죠. 이 3시간을 과잉으로 견뎌내야 한다는게 상당히 가혹하기는 합니다. 그런데 어쩌면 저는 이 과잉이 스콜세지의 전략이 아닐까 생각해요. 근데 문제는 그게 전략이라고 해도, 그 전략이 어쩌면 다른 방식으로 작동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듭니다만...디카프리오는 확실히 최적화된 캐릭터네요.

넙치 2014-01-17 11:58   좋아요 0 | URL
저도 한편으로는 깊이 없고 가시적 블링블링으로 가득 찬 물질주의가 미국 사회 깊숙히 들어가 있는 자본주의의 실체가 아닐까, 싶기도 해요. 그런면에서는 정말 잘 표현된 거 같아요. 영화가 세 시간이라 동어반복이 많아져서 감독의 의도에 심드렁하게 되네요. 두 시간이었다면 이 영화를 좋아했을 거 같아요.
 

 

 

 

 

 

 

 

 

 

 

벤 스틸러가 출연한 영화들로 영어 공부를 했었다. 영어 리스닝 수업에서 강사가 커리큘럼으로 정하는 영화들이 벤 스틸러가 빙구로 나오는 슬랩스틱 코미디 영화였다. 그 후 벤 스틸러 영화는 쳐다보기도 싫었고 싫은 영화를 안 보는 일은, 내 의지대로 실행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며칠 전 차 안에서 배철수 씨가 진행하는 라디오를 듣다가 이 영화 이야기를 하는 걸 들었고 배철수 씨와 김세윤 씨가 너무 재밌게 이야기해서 약간의 기대감이 생겼다. 벤 스틸러가 감독이라니. 영화는 별 기대없이 본다면 괜찮다. 그린란드와 아이슬란드의 풍광만으로도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영화다. 다만 내 상태가 요즘 울증이라 삐딱해서 이 영화를 보고 좋다고 할 수 없을 뿐이다.

 

16년 간 <라이프>잡지에서 네거티브 필름 관리자인 월터. 온라인 커플 매칭 사이트에 올릴 프로필란에 가본 곳, 해본 것을 채울 수 없는 월터. 가끔씩 멍때리며 공상을 통해 현실을 부정하는 소심한 월터. 그런 그가 폐간호 표지 사진 필름을 잃어버려서 그 필름을 찾아 갑작스런 모험을 한다. 어릴 적 아빠한테 받은 여행 일기장을 채우기 시작하고 그의 프로필은 모험심과 창의력으로 채워져 낯선 이성의 윙크를 한꺼번에 받는다. 내성적인 성격에 좋아하는 여자한테 데이트 신청도 못했는데 짧은 모험을 마치고 월터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되고 상상 속에서만 말하는 게 아니라 현실에서도 대화하는 법을 터득한다는 훈훈하고 착한 결말로 영화 본래의 목적을 충실히 이행한다. 벤 스틸러 감독이라는 걸 염두에 두면 영화적 짜임새나 상상으로 넘어가는 장면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영화적 판타지에 감동 할 수 없다. 해를 거듭할수록 여행은 허무만 남긴다. 출발 전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시간, 지루하면서도 설렘 한 스푼이 들어간 비행하는 시간, 그리고 다른 나라의 입국심사대를 빠져나가기 전까지만 일말의 판타지가 존재하는 게 여행이다. 여행지에서 낯선 언어에 맞닥뜨려 어디서 뭘 먹고, 어디서 자는 지와 같은 생존에 관련된 일을 해결하는 일은 잠시 모험가 같은 착각을 주기도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요령이 생긴다. 낯선 언어에 둘러싸인 긴장도 며칠이 지나면 풀리고, 이 역시 요령이 생긴다. 그러면 슬금슬금 권태가 목덜미를 잡는다.

 

집에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는 건 가장 하고 싶지 않은 일인데 인천 공항을 빠져 나오면 고향 냄새인 매케한 매연에 안도를 하는 건 잠시. 곧이어 바닥의 깊이를 알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처참함에 빠진다. 낯선 도시에서 낯선 환경을 척척 개척하는 것 같은 착각에서 깨어나서 원위치로 돌려지면 월터가 여행 떠나기 전 보여준 소심한 캐릭터에 빙의하는 것 같다. 일상적 공간에 내 동안 일상은 다른 질서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희망이 예전에는 존재했다. 요즘은 희망은 커녕 똑같은 익숙한 질서로 이루어진 공간에 돌아올 수 밖에 없는 게 여행이라고 생각하는 중이다. 여행이 주는 약발이 급격히 효력을 잃고 있다. 영화 속에서 월터의 모험보다는 멍때리며 공상하는 월터의 능력이 더 근사하게 보인다. 나도 멍때리며 공상하는 연습이라도 좀 해볼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그인 2014-01-09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낯선 도시에서 낯선 환경을 척척 개척하는 것 같은 착각에서 깨어나서 원위치로 돌려지면 월터가 여행 떠나기 전 보여준 소심한 캐릭터에 빙의하는 것 같다.

이렇게 절묘한 표현을 .. ㅎㅎ
와 ~~ 넙치님. .정말 그래요. ㅠㅠ

한참 보고 멍하니 헛웃음만 나왔어요.. 너무 정곡이 찔려서 퍽 하는 느낌.. ~~



더군다나 마지막 문장.. ^^

요즘은 희망은 커녕 똑같은 익숙한 질서로 이루어진 공간에 돌아올 수 밖에 없는 게 여행이라고 생각하는 중이다. 여행이 주는 약발이 급격히 효력을 잃고 있다. 영화 속에서 월터의 모험보다는 멍때리며 공상하는 월터의 능력이 더 근사하게 보인다. 나도 멍때리며 공상하는 연습이라도 좀 해볼까.


그냥 엎드릴까봐요.. 넙치님.. ~~



넙치 2014-01-10 14:34   좋아요 0 | URL
해를 거듭할수록 여행이 생산적이 아니라 소모적이 돼버리는 거 같아 허무해요.ㅜ.ㅜ 새벽숲길님은 저와는 왠지 다를 거 같아요.^^
 

 

 

 

 

 

 

 

 

 

자비에 돌란의 데뷔작 <하트비트>를 아주 재미나게 봐서 자비에 돌란 영화라기에 봤는데 분노 게이지 급상승했다. 런닝 타임을 확인 안 한 내 잘못이기도 한데 168분이나 된다. 두 시간이 넘어도 영화가 끝날 생각을 안해서 언제 끝나나만 줄기차게 생각했다. 이 말은 영화의 흡입력이 약하다는 말도 되겠다.

 

간략히 요약하자면, 결혼 비슷한 생활을 잘 해 오던 서른 다섯 살의 남자가 갑자기 성정체성에 혼란을 겪으면서 사랑하는 여인과 이별 재회 이별, 재회를 반복하는 이야기다. 이 영화의 가장 커다란 미덕은 성소수자를 다루는 영화가 흔히 범하는 사랑의 삼각형이나 이성애에서 보여주는 주도권을 다루지 않았다는 점이다. 게이커플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들이 주로 두 사람 간의 밀당 주도권을 다루면서 소재가 주는 문제의식과 달리 내용은 관습적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 이 영화는 적어도 그렇지 않다. 이 영화는 평범한 삶을 살았던 남자가 어느 날, 성 전환을 했을 때 부딪치게 되는 주변 상황을 다룬다. 여자가 되기 전에 사랑했던 여자를 여자가 된 후에도 계속 사랑한다. 이 말은 성소수자가 원하는 게 육체적 인것을 초월한 것이고 사랑의 본질이 육체가 아니라 그 사람이 지닌 태도와 존재 그 자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의도나 메시지는 참신하고 좋은 데 지루하다는 게 함정.

 

내가 왜 지루하게 봤나 했더니 여주인공이 너무 비호감이다.-.-; 여주인공이 중요한 축인데 한때 남자였던 여자를 사랑하지만 여주인공은 남자를 필요로하는 여자다. 그래서 다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하지만 여전히 과거에 사랑했던 사람을 사랑한다. 두 사람의 사랑은 중요한 이야기의 축인데 정서적 교감 묘사가 부족하고 주로 성적인 부분에 맞춰져 있어서 이들이 수 년이 흐른 후에도 서로 만나 사랑하는 게 어색하게 와 닿는다. 두 사람이 재회할 때 구체적 에피소드들이 감독의 의도와는 다르게 육체적 관계에 한정되는 단점이 있다.

 

또 지루한 이유는 영화 스타일이다. 사실 두 시간으로 만들면 좋을 영화인데 전반부에 너무 늘어지고 후반부에 뒤늦은 갈등을 늘어놔서 갈등 수습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소모한다. 갈등을 늘어놨으니 수습은 당연한데 그게 타이밍이 안 맞는다.

 

그리고 내 편견 탓도 지루한 데 한 몫한다. 감독은 캐나다 출신이다. 캐나다 영화를 많이 보진 않았지만 볼 때마다 뭔가 정서적으로 이질감이 느껴진다. 어떤 사람이 친근하게 대해서 나도 친해져볼까 마음먹었는데 그 사람이 갑자기 데면데면하게 구는 거 같다고 할까. 뭔가 깊이있는 내용을 다루면서도 사람의 마음 깊은 곳까지는 어루만지는데 2% 부족한 면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새해 첫 영화로 몹시 어두운데 나는 몇 년 째 새해 첫 영화를 우울한 영화로 시작하는 거 같다. 의도한 게 아닌데 해가 바뀌는 것에 가뜩이나 설렘이나 기대가 없는데 더욱 더 기대 없이 만드는데 일조하는 영화기도 하다.

 

원제가 과거인데 마리와 아미드가 이혼하려고 만나면서 마리의 과거사가 퍼즐 조각처럼 툭툭 튀어나온다. 두 아이를 키우고 있고 뱃속에 아이가 있는 마리. 세 아이의 아빠가 모두 다르고 뱃속의 아이 아빠랑 결혼하려고 하고 전남편과 이혼하려는 여자. 십대인 큰 딸이 엄마의 사생활 편력을 혐오하면서 마리의 삶은 두 국면을 맞이한다. 여자로서의 삶과 엄마로서의 삶. 요즘 육아로 힘들어하는 친구를 보면 아이를 낳는다고 엄마로서의 삶을 사는 게 당연한 건 아닌듯 싶기도 한데 엄마로 사는 건 여자로 사는 것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마리는 딸의 보호자로서 책임과 사랑 혹은 남편을 쟁취(?)하는 과정에서 일어났을 부도덕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 거칠게 말하면 과거를 잘 살아야 현재와 미래가 편안하다고 쉽게 내뱉을 수 있다. 그러나 과거를 잘 산다는 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하지 말았어야할 일 투성이고 좀 더 현명했어야할 일 투성이다. 과거가 현재였을 때는 그 선택이 최선이라고 선택했을 가능성이 많다. 현재가 과거가 된 후에야 오류와 문제점을 볼 수 있는 게 인간의 장점이자 약점이 아닐까.

 

전반부는 마리와 아미드의 관계를 통해 마리의 입장에서 퍼즐 조각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후반부는 마리와 결혼을 앞 둔 사미르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전개 된다. 사미르의 가정 생활은 아마도 원만하지 않았다고 짐작된다. 카메라는 사미르와 마리가 만난 달달한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 사미르가 마리를 만난 후 겪게 되는 불행을 탐구한다. 사미르의 아내가 자살시도를 하고 식물인간이 되는 이유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면서 사미르의 진심도 드러난다. 사미르는 아내를 잃은 슬픔보다는 아들의 엄마를 잃었다는 슬픔이 더 크다. 어린 아들은 새엄마가 될 마리한테 때때로 적개심을 나타내고 삐딱하게 행동하는데 아들의 비극을 근원을 본인이 제공했다는 죄책감이 크다.

 

복닥이며 사는 게 뭔지 시각적으로 보여주려고 하는 것처럼 영화 장면들이 주로 좁은 실내에서 일어난다. 지독하게 사실적이고 한 순간의 낭만도 없이 묘사되는 사건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인물들이 짊어진 삶의 무게가 스크린 밖으로 온전히 빠져나와 달려드는 것 같다. 영화 속 인물들의 무게를 지켜보기에 마음의 여유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영화를 왜 보는 걸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e Love Affairs of Nathaniel P. (Hardcover)
Adelle Waldman / Henry Holt & Co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금 전에 <꽃누나>를 봤다. 배려심 돋는 김희애가 하루 종일 일행과 떨어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회였다. 당연히 컨셉이었겠지만 폭풍공감으로 몰입도 200%였다. 나만 혼자 있을 때는 외롭다가도 무리지어 있다보면 지치고 혼자 있는 시간을 그리워하게 되는 게 아니라는 위안 비슷한 걸 얻게 된다. 특별히 모나지 않고 그룹 속에 있을 때 그룹 구성원들과 잘 지내도 한편으로 채울 수 없거나 신경을 건드리는 그 무언가를 참아내고 있게 되는 걸 발견하게 된다. 너무 미묘해서 말하면 하찮고 속 좁아 보이기에 말 안하고 넘어가지만 그런 먼지같은 느낌들이 쌓여서 어느 순간에 사람을 그리워하면서도 사람을 멀리하게 되는 심리. 이런 심리를 다루는 소설이다.

 

한국 소설이라면 읽다 말았을 확률이 높게 짜증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소심하고 때로 찌질한 먹물인 네이트의 내면을 들여다보는데 미덕도 많이 존재한다. 네이트의 연애담을 통해 관계에 대한 성찰이다. 연애담이기지는 하지만 연애담하면 연상되는 통념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다. 네이트는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서 하버드에 들어가서 상류층 친구들을 사귄다. 같은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면 편안하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속하지 못한 계층에 대한 막연한 동경은 부인할 수 없다. 상류층 출신의 친구들이 보여주는 속물근성을 내심 비웃으면서도 그 속물근성이 중산층이 흉내 낼 수 없는 급이 있다는 걸 잘 묘사한다.

 

이 소설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도 남녀 관계를 묘사하지만 남녀 관계를 초월한 어떤 계급적, 혹은 인간이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열등감과 동경이 얽혀 빚어내는 반응을 관찰하고 세심하게 들여다보는 노력이 있기 때문이다. 네이트는 프리랜서 작가로 일정한 직업적 성공이 불투명한 상태고 수입과 지출을 계산하는, 친구들과는 다른 처지로 이성을 볼 때 지적 욕구를 더 중요시 했었던 것처럼 보인다. 네이트 역시 이성한테 어필하는 부분이 그의 지적인 부분이 상당히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이상은 이상일 뿐이다. 네이트가 감정적으로, 지적으로 좋아하는 한나와 한나와는 전혀 다른 부류에 속하는 그리어의 대비는 흥미롭다. 한나와의 관계에서는 네이트가 자신감을 갖지 못했다. 한나는 주체적이고 무언가를 결정할 때 네이트의 도움이 필요없는 독립적이며 명석했다. 한나의 장점이 네이트를 주춤하게 했고 둘 사이에 이상 기류를 형성하게 한다. 가령, 뜨거운 밤을 보낸 후 다음 날 한나가 네이트한테 아침을 차려주고 싶어하는데 네이트는 의아해 한다. 한나처럼 자립적 여성이 아침식사로 베이글이 좋은 지 계란 요리가 좋은 지 묻는 건 네이트한테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고 한나한테 너 먹고 싶은 걸로 하라고, 하는데서 한나가 분노한다. 하지만 지적 생물체라는 게 이런 시시한 일에 화내는 걸 수치스러워하기에 분노를 숨기고 씩씩대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두 사람의 관계에 작은 균열이 점점 커지면서 큰 구멍으로 발전한다.

 

흥미로운 건 네이트한테 안정감을 주는 여성상이다. 그리어인데 그녀는 한나와 달리 육체적으로 육감적인 편이고 지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자신만의 생각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그리어가 우리가 생각하는 여자, 하면 보통 떠오르는 이미지이다. 문학에 대해 이야기 하기 보다는 요리할 때 나는 냄새라든가, 자신의 감정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네이트의 친구들 모임에 갔다오면 그리어는 늘 불쾌하다고 했는데, 몇 분은 그리어의 이야기를 재밌게 들어주다 다시 그 지적인 토론하는 일상적 태도로 돌아가서 그리어가 소외되는 느낌을 받곤했다. 한밤 중에 기분이 안 좋다면 네이트를 필요로 한다는 지 , 네이트를 위해 요리하는 걸 즐거움으로 받아들이는 그리어. 네이트는 편안함을 느끼고 수 명의 여자친구들을 거쳐 네이트의 기질과는 다른 그리어한테 안착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네이트의 입장은 외로운 것보다 고정적으로 만나는 여자친구가 있는 게 더 낫고,  더 일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 맞는 말일 수 있지만 어쩐지 네이트 혹은 네이트로 대표되는 남자의 이성관에 여성 작가가 체념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똑똑한 여자는 분명히 매력적이고 사랑받을 만하지만 곁에 두기에는 부담스럽다, 뭐 이런 작가의 세계관이 투영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작가가 콜럼비아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했고 프리랜서란다. 여자 작가가 남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남자가 바라보는 이성관, 그리고 남자의 심리를 묘사했는데 나는 작가가 혹은 작가 주변에서 느꼈을 남자 친구에 대한 심리가 느껴진다. 궁극적으로 남자가 여자에 대해 갖는 이상이나 환상은 자신을 돋보이게 해 줄 수 있는 짝이 아닌가, 하는 부정적 생각이. 네이트는 마초적 성향이 전혀 아니고 오히려 초식성에 가까운데도 그러는 거 보면 Y염색체의 비밀은 유전의 법칙이 우선하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