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라, 기억이여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오정미 옮김 / 플래닛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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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996년, 황인뢰 연출, 주찬옥 각본의 <창밖에는 태양이 빛났다>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황인뢰 감독과 주찬옥 작가는 그 당시에 전혀 새로운 드라마 문법을 보여주었다. 수채화 같은 영상과 절제된 대사를 통한 섬세한 심리 묘사로 기억 속에 남아있다. 이 드리마의 원작이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어둠 속의 웃음소리>를 애타게 찾았다.

겨우 한 권 찾았던 게 작은 문고판이었다. 애타게 찾은 것치고는 즐거움은 그리 크지 않았다. 드라마 속 인물들의 얼굴이 책갈피를 넘길 때마다 겹치면서 소설만이 갖고 있는 풍부한 묘사를 찾기 힘들었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나보코프의 작품들은 그러려니하고 잊고 있었다. 그러다 <롤리타>를 읽고서 <어둠 속의 웃음소리>를 다시 꺼내 보았다. 아직도 궁금하다. <어둠 속의 웃음소리>의 원작도 실망스러운지.

처음에 도덕적으로 광분하게 만드는 변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변태에 감정이입이 되어 판단력은 바람에 흔들리는 배가 돼버린다. 험버트의 감정대로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표류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동시에 <롤리타>를 다시 읽게 하는 힘이 있다. <롤리타>를 다시 읽고 있을 때, 미국에서는 현재 유아성범죄자에 대해 얼굴과 신상 공개를 하는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뉴스를 접했다. 기분이 묘했다. 현실 속 험버트에게는 화가 나야하지만 소설 속 험버트에게는 무한한 연민이 차오르기 때문이다.

험버트는 마지막에 이렇게 적고 있다. "강간에 대해서는 35년 형을 내리겠지만 그 밖에는 무죄를 내리겠다"고. 전적으로 험버트의 입장이다. 강간을 당한 롤리타는 험버트의 회고록에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롤리타의 정신적 고통을 험버는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 이런 현실적 논쟁을 벌이기에는 나보코프가 생명을 불어넣은 험버트의 입김이 너무 커서 험버트에게 저항하기란 쉽지 않다. 다시 읽어도!

<말하라, 기억이여>는 나보코프가 지나온 여정들을 재구성한 자서전이라고 하지만 자서전이란 말이 썩 어울리지는 않는다. 자서전이 풍기는 회고적 성격보다는 이야기적 성격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나보코프의 관심사를 한 줄에 꿰어 놓았지만 어느 부분이든 떼어서 읽어도 좋을 정도로 독립성이 강한 챕터들로 이루어져 있다. 화려한 문장들에 반해서 잠깐씩 밑줄 긋느라, 속으로 따라 읽어보느라 더디게 읽었다. 기억을, 이렇게도 말할 수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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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pie 2008-06-04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라마와 같은 [창밖에는 태양이 빛났다]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나온 버전이 있습니다. 지금 알라딘에는 없는 옛날 책이지만요. 읽어본 바로는, 드라마 내용의 상당히 많은 부분이 원작에서 그대로 왔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나레이션이 상당히 많았던 드라마로 기억하는데, 작품이 상당히 나보코프색이 뚜렷한 편이라 그 점을 살리려고 많이 신경쓴 것 같기도 합니다.
요즘 90년대 후반-심지어 중반의 드라마도 DVD로 나오는 듯한데 이 [창밖에는 태양이 빛났다]야말로 다시 보고 싶은 작품입니다. MBC에 비디오테잎으로라도 좋으니 자료를 구할 수 없느냐고, 매번 문의한다고 해 놓고선 자꾸 잊어요.

넙치 2008-06-05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다시 보고 싶어요. 대사보다도 내레이션이 두드러진 드라마였어요. 찾아보면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요. ^^
제가 갖고 있는 책도 드라마와 거의 비슷했어요. <롤리타>와 <말하라, 기억이여>와는 문체가 많이 달라서 다른 작가의 작품같아요. <어둠 속의 웃음소리>는 줄거리 중심이여서 롤리타나 말하라, 기억이여가 보여주는 통찰력과 현란한 비유를 거의 찾아볼 수 없어요. 이번에 대충 다시 봤는데도 이 느낌은 여전해요. 그래서 <어둠 속의 웃음소리>원서는 어떨까 궁금해요.
 
빈방의 빛 - 시인이 말하는 호퍼
마크 스트랜드 지음, 박상미 옮김 / 한길아트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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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미지와 언어는 불편한 관계다. 이미지를 언어로 읽어내는 일은 각주를 다는 행위처럼 기능적 역할로 전락하면서 언어는 무력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퍼의 그림을 읽어주는 시인의 언어로 된 책을 읽고 마음 속에 차 있는 감정어를 조금 내놓고 싶다. 

 
호퍼의 그림들이 여운을 남기는 이유는 시선 때문이다. 호퍼의 시선은 항상 무언가 또는 누군가를 찾는 불안한 기호라고 할 수 있다.  어두운 밤이든 화창한 오전이든 그의 시선은 한결같이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때로는 건물 안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건물 밖이 될 수도 있다. 여행을 해도 좁은 호텔 안에서 밖을 보거나 기차 안에 있다. 그의 그림 속 여행은 외부를 향한 나들이가 아니라 내면을 응시한다. 도시에서든 전원에서든 마찬가지다. 외부에 대한 갈증을 품고 있으면서도 두려움 때문에 창과 문 밖으로 나서지 않는 인물들. 안전지대에 머물면서도 석연치 않은 그들의 표정에 주변을 더욱 공들여 살펴보면, 어느새 나도 네모난 창틀이나 벽들로 둘러싸이거나 건물 사이에 들어가 있다.  빈 방에서도 호퍼의 시선은 구석에 위치해 있다. 빈 방에 마치 누군가 숨어있기라도 한 것처럼. 이렇게 뒷걸음질치는 시선의 실체를 알 수 있을 것 같기에 호퍼의 그림들은 즐거운 고통을 가져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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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적인 걸 로망으로 꿈꾸게 만드는 글
    from free-floating ennui 2015-10-02 23:23 
    박상미 저자를 기억하는 건, 마크 스트랜드가 쓴 <빈방의 빛>이란 역자로서 였다. 호퍼 그림을 잔잔하게 읽어주는 책인데 그림도 좋고 글도 호퍼 그림처럼 수다스럽거나 과하지 않아서 좋았다. <빈방의 빛>을 읽은 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마크 스트랜드의 글이 아니라, 특이하게도 역자 후기였다. 이 책을 읽고 <빈방의 빛>을 다시 꺼내서 역자 후기를 읽었는데 역시나 좋다. 그러니까, 박상미 씨의 글을, 글을 낳은 감성을 잊을
 
 
 
푸코에게 역사의 문법을 배우다 - 한 젊은 역사가의 사색 노트
이영남 지음 / 푸른역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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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푸코..하면 떠오른건 사차원에서 떠도는 도형들이다. 그만큼 접근하기 쉽지 않다는 말이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두께도 두꺼운데다 몇 페이지 읽다보면, 전공자도 아닌 내가 읽어야할 당위성을 좀처럼 찾기 어렵고 금방 책을 손에서 내려놓게 된다. 처음 이 책을 주문할 때도 망설였다. 읽고나니 최근에 가장 몰두해서 읽은 책이 되었다.

푸코의 개념을 풀이하려고 애쓴 게 아니라 오히려 고마웠다. 누군가의 사상을 풀이하려는 종류의 책에서 내가 어김없이 발견하고 부러워하는 게 있다. 바로 대상에 대한 열정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저자가 지닌 푸코에 대해 지닌 애정이 행간 곳곳에 배여있다. 이렇게 깊은 애정으로 서술한 책을 좋아하지 않기란 힘들다.

푸코의 일대기부터 이야기하듯 들려주면서 자연스럽게 푸코의 관심사로 화제를 끌고간다. 이런 글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헤매었을까, 가늠해보면 그 어려움이 부제에 고스란이 드러나있다. 한 젊은 역사가의 사색노트. 푸코라는 프리즘을 통해 바라본 역사인식 방법을 알려준다. 전문 역사가로서가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개인이 자신의 역사를 쓰는 방법과 그 필요성. 거시사가 아니라 미시사의 일부를 차지하는 각 개체의 중요성을 말이다. 우리나라에 절대적으로 결핍되었었고, 지금도 없는 걸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의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기분좋다.

푸코가 다루었던 역사적 관점을 설명하는 데 당연히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타자의 역사, 침묵의 역사, 소수의 역사로서 푸코의 저작들을 위치시킨다. 그리고 한국 역사에 응용하려고 한다. 90년대 후반에 일어나기 시작한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이 역사가의 글 속에도 담겨있다. 현재와 맞닿아 있는 끈으로 과거를 바라볼 것을 권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저자가 갖는 푸코의 애정에 반해서 나도 푸코를 읽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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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베개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28
나쓰메 소세키 지음, 오석륜 옮김 / 책세상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산길을 올라가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이지에 치우치면 모가 난다. 감정에 말려들면 낙오하게 된다. 고집을 부리면 외로워진다. 아무튼 인간 세상은 살기 어렵다. 살기 어려운 것이 심해지면, 살기 쉬운 곳으로 옮기고 싶어진다. 어디를 이사해도 살기가 쉽지 않다고 깨달았을 때, 시가 생겨나고 그림이 태어난다." 란 문장들로 이 책은 시작한다.

소설의 형식을 갖추고는 있지만 소세키의 다른 작품들처럼 서사는 중요하지 않다. 책을 여는 문구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술의 필요성에 대한 산문이다. 소세키의 작품은 질리거나 식상하지 않다. 그의 문장 속에 담긴 통찰력 덕분이다. 소세키의 글을 통해 일본어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 보았고 일본의 지리와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낯선 문화권의 영화든 문학이든, 소위 문화산물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을 이해하려면 그곳에 가봐야한다고 생각한다. 중국에 끼는 짙은 안개를 보면 그들의 수묵화의 정체를 알 수 있듯이 일본의 온천문화를 모르면 이 글은 가슴으로 느끼기 쉽지 않은 것 같다. 언젠가 소세키의 문장들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일본의 온천으로 갈 때 풀베개와 함께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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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09-11-30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마쿠라에 가면 소세키 문학관이 있습니다. <마음>의 실제 배경이라고 하더군요. 저는 그곳에 다녀오고나서 안 외워지던 주인공 이름이나 지명이 머리속에 속속 들어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넙치 2009-12-01 12:01   좋아요 0 | URL
일본어 지명은 정말 안 외워져요.-_-;
혹시 일본에 가게되면 저도 지명이나 이름을 기억할 수 있겠죠?^^
 
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오월인걸 오늘 알았다. 평소에는 내 일상에 몰두하고 가끔씩 세상 읽어주는 책을 읽으면서 자족감을 얻기도하면서 한 해의 삼분의 일을 보냈다. 이 책이 사고를 넓힐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 분명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무력감을 강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현상을 인식하는 데서 사고가 출발하지만 행동보다 사고는 하위 단계라고 난 믿고 있기 때문이다.

부자나라들의 행태를 미디어를 통해 보는 것은 영화를 보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비관적 생각이지만 신자유주의에 뇌세포를 점령당한 사람들이 주변에 널리고 나 또한 내 뇌세포를 기꺼이 내주고 있다. 가끔씩 이런 알찬 시각들로 뇌세포를 닦아보려고 하지만 잠시일 뿐 곧 원위치로 돌아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류의 책은 반드시 존재해야하고 여러 사람이 읽어야한다고 생각한다.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고정관념을 깰 수 있는 계기에 자꾸 부딪치면서 서서히 이루어지는 게 변화다.

요즘 신문이나 TV뉴스는 전시를 방불케 할 정도로 끔찍하고 시끄러운 일들로 가득차 있다. 목소리 높여 외치는 사람은 많지만 소신있는 사람을 찾는 건 힘들다. 소신이란 현상에 대한 통찰력을 지닐 때만 드러난다.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는 부유한 나라들이 선전하는 슬로건을 뒤집어볼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 많은 나라는 미래가 밝을 것이다.

이 책의 미덕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부자나라들의 슬로건에 길들여졌다는 걸 발견하도록 해 준데 있다. 정말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고, 특히 집권층이 읽었으면 좋겠다.

*저작권/경제와 문화/경제의 상관관계는 무척 흥미롭다. 이 분의 시선은 기본적으로 비판적이지만 바탕에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관점을 취하고 있어서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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