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방의 빛 - 시인이 말하는 호퍼
마크 스트랜드 지음, 박상미 옮김 / 한길아트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미지와 언어는 불편한 관계다. 이미지를 언어로 읽어내는 일은 각주를 다는 행위처럼 기능적 역할로 전락하면서 언어는 무력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퍼의 그림을 읽어주는 시인의 언어로 된 책을 읽고 마음 속에 차 있는 감정어를 조금 내놓고 싶다. 

 
호퍼의 그림들이 여운을 남기는 이유는 시선 때문이다. 호퍼의 시선은 항상 무언가 또는 누군가를 찾는 불안한 기호라고 할 수 있다.  어두운 밤이든 화창한 오전이든 그의 시선은 한결같이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때로는 건물 안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건물 밖이 될 수도 있다. 여행을 해도 좁은 호텔 안에서 밖을 보거나 기차 안에 있다. 그의 그림 속 여행은 외부를 향한 나들이가 아니라 내면을 응시한다. 도시에서든 전원에서든 마찬가지다. 외부에 대한 갈증을 품고 있으면서도 두려움 때문에 창과 문 밖으로 나서지 않는 인물들. 안전지대에 머물면서도 석연치 않은 그들의 표정에 주변을 더욱 공들여 살펴보면, 어느새 나도 네모난 창틀이나 벽들로 둘러싸이거나 건물 사이에 들어가 있다.  빈 방에서도 호퍼의 시선은 구석에 위치해 있다. 빈 방에 마치 누군가 숨어있기라도 한 것처럼. 이렇게 뒷걸음질치는 시선의 실체를 알 수 있을 것 같기에 호퍼의 그림들은 즐거운 고통을 가져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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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적인 걸 로망으로 꿈꾸게 만드는 글
    from free-floating ennui 2015-10-02 23:23 
    박상미 저자를 기억하는 건, 마크 스트랜드가 쓴 <빈방의 빛>이란 역자로서 였다. 호퍼 그림을 잔잔하게 읽어주는 책인데 그림도 좋고 글도 호퍼 그림처럼 수다스럽거나 과하지 않아서 좋았다. <빈방의 빛>을 읽은 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마크 스트랜드의 글이 아니라, 특이하게도 역자 후기였다. 이 책을 읽고 <빈방의 빛>을 다시 꺼내서 역자 후기를 읽었는데 역시나 좋다. 그러니까, 박상미 씨의 글을, 글을 낳은 감성을 잊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