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도니제티 : 사랑의 묘약 (한글자막)
도니제티 (Gaetano Donizetti) 외 / 워너뮤직 (wea) / 2014년 7월
평점 :
<사랑의 묘약>은 상투적인 동화다.시골 청년 네모리노는 동네 킹카 아디나를 짝사랑한다.그는 순박하면 건실한 젊은이이다.고전적으로 이런 청년들은 대개 내세울게 별로 없다.반면 아디나는 청순하며 예쁘고 또 적당히 약았다.가련한 네모리노...애정의 권력 관계가 이런 식으로 형성되면 영화<음란서생>에서 후궁을 빼앗긴 왕의 말처럼 '더 사랑하는게 늘 약자'이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시골 청년 네모리노는 아기 손에 들려서 질질질 끌려다니는 아빠가 사준 곰돌이 마냥 아디나에게 끌려 다닌다.아디나..요 영악한 것은 치마를 팔랑 거리며 한번씩 웃어준다.가증스런것.^^
1막에서 아디나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신화를 동네 여편네들에게 읽어준다.그 둘을 불멸의 사랑에 빠지게 만든 '사랑의 묘약'에 대한 이야기이다.아디나의 곁을 졸졸 따라다니는 네모리노의 귀는 당나귀 귀가 되었다.'복선'이라고 하기에 '사랑의 묘약'은 너무 직접적이다.귀가 쫑긋해있는 그에게 극을 갈등으로 이끌 제3의 사나이가 등장한다.군대 인사계처럼 생긴 벨코레 상사.그가 아디나에게 꼽힌 것이다.
네모리노의 사랑을 아디나도 안다.그러나 그 가증스런것은 네모리노에게 '넌 좋은 사람이지만 아니야'라고 말한다.짝사랑 한 두번 해본 사람들은 대한민국 헌법 1조같은 이야기를 여러번 들어봤을 것이다.대사를 좀 바꾸고 싶을 만큼 진부하다.하지만 오늘도 대학가 어느 술집에선 당신을 닮은 어떤 순진한 청년이 저 소릴 듣고 소주 1병을 더 시키고 있을 것이다.친구들에게 전화질 해대면서 울다가 웃다가 자학하다가 잊어버리겠다고 악을 쓰다가..오만 쌩쇼를 다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제4의 인물이 또 등장한다.떠돌이 약장사 둘카마라.마음급한 네모리노는 그에게 누구나 한 잔 마시면 사랑하게 되는 '묘약'을 구한다고 말한다.당연히 있지...뱀 한번 고아먹으면 요강이 터지는 약장사에게 그건 완전히 약방의 빨간약 수준이다.둘카마라는 순진한 네모리노에게 사기를 친다.포도주를 한병 주면서 구하기 어려운 약이라고 한다.
네모리노 와인 한 병에 적당히 풀린다.어차피 약발 받으면 아디나는 자기를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그러면서 아디나에게 좀 튕긴다.아디나는 저게 쥐약 먹었나 하면서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지만 '어 거참 자꾸 돌아보게된다' 이거다.아디나는 약간 자존심이 상해서 느끼한 벨코레상사에게 결혼하겠다고 선언해버린다.네모리노는 약발 받으려면 하루 더 있어야 되는데 발등에 불떨어졌다.결국 한 병 더 사려하지만 돈은 없고...현역입대 해야 별로 받을게 없으니 모병입대 싸인한다.벨코레가 음흉하게 웃으며 모병지원서를 받아든다.라이벌 하나 군대 보내는 거다.
그런데...거참 나에게는 이런 행운도 없지만 네모리노에게는 있다.돌아가신 삼촌이 엄청난 유산을 남겼다는 것이다.네모리노는 아직 그 사실을 모른다.하지만 민심의 행방에 민감한 것인지 돈의 흐름에 민감한 것인지 동네 처자들이 먼저 사실을 안다.네모리노가 나타나자..언니들 동방신기 따라다니는 팬클럽처럼 그의 뒤를 따라다닌다.콧대 높은 아디나도 이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사실 그녀도 네모리노에게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대충 줄거리 여기까지 해도 충분할 듯 하다.큰 갈등도 없이 네모리노의 <남 몰래 흘리는 눈물> 한 방 후에 서로의 마음 확인하고 해피엔딩 된다.
쓰다보니 줄거리가 길어졌다.
미스터 빈 처럼 생긴 롤란도 빌라존과 요리보고 조리봐도 예쁜 안나 네크렙코는 오페라계에서 현재 최고의 주가를 올리는 커플이다.로베르토 알라냐와 안젤라 게오르규 이후 최고의 커플이다.실제 결혼할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칼라스-스테파노,서덜랜드-파바로티 등의 맥을 잇는 커플이라 기대가 크다.
2004년 빈에서 공연된 <사랑의 묘약>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극 중 인물들이 그대로 재연된 듯 보이는 완벽한 캐스팅과 연기력이다.특히 남자 주인공은 롤란도 빌라존은 인상적이다. 그의 가창이 '최고의 네모리노'로 꼽히던 루치아노 파바로티만큼 청자에 대한 파괴력이 있거나 카리스마가 있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그의 연기력과 극 중 인물에 대한 몰입,그리고 그의 컴플렉스가 되기도 할 희극적인 외모가 <사랑의 묘약>의 네모리노 그 자체이다.사랑의 묘약을 한 병 마시고 즐거워 추는 춤이나 박수를 이끌어내는 저글링들은 팬서비스이다.질질 끌려다니는 젊은 청년의 마음을 빌라존은 완벽하게 그려낸다.
안나넵트렙코는 일단 비디오가 되니까 다 용서해주고 싶어진다.40 넘은 배우가 총기넘치는 아디나로 분하기도 힘들뿐만 아니라 별로 똘똘해보이지 않는 뚱뚱한 언니가 이 역할을 해도 감정이입하기 어려울 것이다.넵트렙코는 영상 시대에 활용도가 아주 높은 오페라 가수가 될 듯 보인다.개인적으로 그녀의 가창이 딱 내 스타일은 아니다.수많은 디바들과 아직 비할 바는 아닌 듯 보인다.하지만 아직 젋고 가능성은 무한하다.그리고 일단 예쁘니까 .^^
조연들 역시 훌륭하다.벨코레역을 맡은 가수는 현역 최고의 리골레토라는 레오 누치이다.젊은 가수들 사이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기둥처럼 듬직하다.누치가 나오는 순간 왠지 무대가 안정된 느낌이 드는 것은 그의 연륜이 가져다 주는 후광효과일 듯 보인다.적당히 느끼한 일데바르도 디칸젤로는 요즘 맹활약하는 바리톤이다.작년에 음악계의 최대 이슈였던 '모차르트 22' 오페라 전곡 상영에서 가장 관심을 많이 받았던 '피가로의 결혼'에서 피가로 역을 맡았다.또한 '돈조반니'에서 조반니의 하인인 레포렐로 역을 맡기도 했다.전도 유망이라는 말이 그에게 가장 어울릴 듯 하다.생긴 것도 쭉쭉빵빵하고 적당히 이탈리아 기름도 흐르고...
훌륭한 캐스팅이 맛을 살린 <사랑의 묘약>이다.젊은게 좋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