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시니 : 세빌리아의 이발사 - 한글자막 포함
유니버설뮤직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유니버셜에서 최근 나오는 한글 번역판 DVD는 여러모로 평가가 좋다.영어를 따라가느라 음악과 영상에 집중하기 힘든 점을 조금 덜어주기 때문이다.물론 영어가 우리말처럼 편안한 사람들이야 한글 읽는 거나 영어 읽는 거나 오십보 백보일것이다.그러나 대개는 모국어로 된 번역이 빨리 읽힌다.그런면에서 오페라 DVD가 라이센스로 보급되는 것은 오페라의 층을 넗히는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우선 유니버셜의 DVD들은 특정 극장과 특정 시기에 상영된 작품들에 많이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대개가 메트로폴리탄 극장의 공연이 많다.그렇다보니 남자 주인공은 열에 아홉이 '플라시도 도밍고'이다. 공연물들이 주로 80년대 또는 90년대 초반에 녹화된 것이라는 점도 문제다.화질과 연출이 이 시대의 기대 수준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그런면에서 볼 때 가장 최근에 나온 레알 마드리드 극장의 <세빌리아의 이발사>는 그 동안의 유니버셜 DVD의 약점을 어느 정도는 해소해주고 있다.

(정확한지는 모르겠으나) 이 공연물은 2005년 레알 마드리드 프로덕션의 새로운 작품이다.무대 연출가는 에밀리오 사기이다.공연이 시작되고 서곡이 연주되는 동안 무대 위에서 세트가 만들어진다.검은 그림자들이 여기저기 오고 가면서 세비야의 하얀 거리를 만든다.무대의상은 검은색과 흰색으로 구성되어 있다.이 무채색의 세련된 조화는 2막 마지막 부분까지 이어진다.모든 갈등이 해소되는 극의 마지막 부분이 되면 무대 위는 검은 색과 흰색의 단단한 조화를 벗어던지고 총천연색으로 변한다.갑자기 조르지오 알마니에서 베네통으로 옷을 갈아입는 느낌이다.사랑하는 두연인의 결합을 축하해주기 위해 무대는 동화처럼 바뀌는 것이다.무대 연출가는 이렇게 무채색에서 유채색으로 무대의상의 전환을 생명력의 분출로 설명하고 있다.동화 같은 마지막 부분도 인상적이지만 무대 전체를 이끌고 가는 심플함 역시  매력적이다.흰색과 검은 색으로 구성된 옷을 입어도 스트라이프 패턴,물방울 패턴등을 활용하여 지루함을 없앤다.오히려 무대의 배경과 어울리는 깔끔함으로 기억된다.장면의 전환은 서곡과 마찬가지로 무대 위에서 관객들에게 그대로 보여진다.무대를 만드는 과정등은 보너스 DVD에 실려 있다.오페라 무대가 대략 저렇게 만들어지는 구나를 훔쳐보는 즐거움이 있다.

<세빌리아의 이발사>에 출연하는 가수들은 현역 최고의 로시나 가수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사랑에 목메달고 있는 알마비마 백작은 페루의 후안 디에고 플로레즈가 맡았다.몇 년전 부터 오페라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잘생긴 청년이다.전형적인 레제로 테너로 가볍고 탄력있는 목소리가 그를 동시대의 최고의 로시니 테너로 만들어가고 있다.1막 전반부부터 시작되는 카바티나부터 플로레즈는 사랑의 열정에 상기된 젊고 자신만만한 알마비마 백작의 모습을 훌륭하게 그려내고 있다.나름대로 훤칠하게 생긴 외모 역시 비디오가 중요시되는 최근의 오페라 무대의 경향에 비추어 볼 때 큰 메리트가 되고 있다.

로시니의 현명한 여자 주인공 로지나 역은 스페인의 마리아 바요가 맡고 있다.그녀는 모차르트나 헨델음반등으로 국내에도 꽤 알려진 가수이다.플로레즈의 젊음에 비해 외모는 조금 나이 들어 보인다.그러나 그녀의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개성적인 목소리는 현대적인 여성상으로서의 로지나를 잘 표현해내고 있다. 마리아 바요의 음색은 크리스탈처럼 맑다.그녀의 목소리에서는 유리관을 막 빠져 나온  산소같은 생기가 느껴진다.사각거리는 홑이불을 펼치듯이 마리아 바요는 탄력 있는 가창을 들려준다.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운 부분이 이발사 피가로 역할을 맡은 피에트로 스파논리이다.그는 정말 호남이다.키도 크고 다리도 길다.생긴 것 역시 귀족적이다.플로레즈와 서있는 장면을 보면 어디가 귀족인지 잘 모르겠다.오지랖 넓은 중매쟁이 피가로로 보기엔 너무 멋있다.그는 마치 미국 남북전쟁 당시 남부의 대농장 소유주처럼 생겼다.그의 가창 역시 희극적이 부분을 살리기에는 너무 점잖은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든다.

돈 바질리오에 나오는 루제로 라이몬디는 일단 무척 반갑다.아무래도 자신감있는 목소리는 아니다.그래도  한 시대를 대표했던 베이스가수들 젊은 가수들 틈에서 만나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다.바르톨로를 맡은 브루너 파라티코는 생긴 외모만큼 인상적인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외모는 나이든 늙은 의사와 너무 어울리지만 말이다.

새로운 프로덕션의 작품이지만  실험적이지는 않다.배경은 대략 계몽주의 시대쯤으로 설정해 놓고 있다.실험성 보다는 -바그너나 베르디가 아닌 로시니니 만큼- 로맨틱하며 코믹한 오페라 부파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리는 쪽을 택하고 있다.최근 <세빌리아의 이발사>녹음이나 DVD가 그다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이 정도 공연물이면 뛰어나다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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