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바그너 :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바그너 (Wilhelm Richard Wagner) 외 / DG (도이치 그라모폰)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은 바그너의 초기 오페라 중 하나이다.바그네리안들에게는 바그너 음악의 정점인 <반지><트리스탄과 이졸데><파르지팔>을 듣기 위한 선행학습쯤으로 여겨진다.대개 <방황하는 네델란드인><탄호이저><로엔그린>등이 기존의 오페라와 큰 차이를 갖지 않으면서도 후기 바그너의 전조를 예감할 수 있기 때문에 추천된다.이런 선행학습을 통한 음악듣기가 과연 옳은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음악 듣기가  마치 태권도 승급심사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물론 모차르트의 음악보다 바그너의 음악을 듣는데는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고 더 많은 인내가 요구된다.모차르트가 바그너보다 덜 된 음악가이기 때문이 아니다.바그너의 음악은 -그가 말했듯이-음악,문학,철학,신화학 등의 많은 정보를 한 접시에 담아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그 접시 안에 들어있는 재료들을 음미하려면 어느 정도 예습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편안함을 주는 감상중심의 음악팬에게 이런 공부는 오히려 스트레스가 된다.그리고 공부하면서 들어야하는 음악이 꼭 훌륭한 음악감상 태도라고 생각치는 않는다.어떤 좋은 음악은 무도장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들어야 제 맛이다.또 어떤 좋은 음악은 비오는 날 차 안에서 와이퍼의 박자에 맞추어 들어야 최고다.다양한 음악과 다양한 청취 방식을 존중하는 입장에서 바그너의 음악은 공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위대하며 귀찮은 음악'이다.사실 어떤 음악을 어떤 방식으로, 어떤 태도로 듣느냐는 질문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예술'에 대한 가치관의 설정의 문제이다.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은 바그너의 다른 음악처럼 신화에 바탕을 두고 있는 곡이다.7년마다 한번씩 뭍에 오르는 유령선장 네덜란드인.그는 저주를 받아 바다를 헤매인다.저주의 족쇄를 풀 수 있는 길은 한 여인의 희생적인 사랑을 확인하는 길이다.바그너는 이 신화에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꼇다는 것이 정설이다.바그너는 일종의 '모성컴플렉스'가 있었던 사람이다.그의 여성편력은 유명하다.바그너는 사랑에 굶주려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을 자신과 동일시했다.그리고 바그너의 도피행각에 겪었던 항해의 경험까지 반영되었다.서곡을 필두로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폭풍치는 바다'의 주제는 그래서 더욱 생생하다.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폭풍우 치는 바다의 그르렁 거림이 쟁쟁한 금관과 강력한 현악 앙상블에 의해 묘사된다.

이 DVD는 85년 바이로이트 실황으로 유명한 하리 쿠퍼의 연출이다.과거에 LD로 나왔을 때도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이미 20년전 연출이고 이후 새로운 프로덕션이 새로운 시대의 바그너 무대를 꾸며오고 있지만 쿠퍼의 실험적이며 설득력있는 연출은 여전히 그 빛을 잃지 않는다.85년 하리 쿠퍼 프로덕션의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주인공은 단연코 젠타이다.이 공연에서는 리즈베트 발스래프가 젠타 역을 맡았다.그녀의 가창은 바그너 음악에 필요한 근기가 있으면서도 신화/현실의 경계에 서 있는 불안감을 표현하기에 적절했다.또한 촛점을 잃은 듯 한 눈빛,경계선 인격장애자가 가졌을 법한 광기가 그녀의 연기에 담겨있다.그녀의 훌륭한 가창과 연기는 하리 쿠퍼가 젠타의 분열적 성향에 연출의 촛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더욱 빛이 난다.

젠타는 공연 내내 무대 좌측의 작은 철재 난간위에 서있다.가슴에는 신화 속 주인공인 네덜란드인의 초상화를 앉고 말이다.그녀는 단 한번도 그 초상화를 내려놓지 않는다.그녀는 무대 위에서 현실/신화 속을 오고간다.철재 난간 위에서 그녀는 폭풍우 치는 바다를 건너온 아버지 달란트를 본다.저주받은 네덜란드인과의 거래도 지켜본다.선원들의 춤도 바라본다.또한 철내 난간을 내려와 들이대는 에릭을 거부하기도하고 네덜란드인의 존재를 믿는다고 놀림하는 동료들에게 멋진 발라드를 들려주기도 한다.하리 쿠퍼가 젠타를 무대에 계속 남겨둠으로써 생기는 효과는 훌륭하다.인구에 회자되던 선원신화와 원신화가 현실에서 재현되는 과정이 2중구조로 명확하게 보여지면서 또 무엇이 신화이고 무엇이 현실인지 모호하게 만든다.젠타가 무대 위에서 바라보는 드라마의 내러티브는 다른 말로 하면 젠타의식 속에 있었던 네덜란드인 신화의 반영이기도 하다.이런 생각을 계속 발전 시키다보면 무대의 내러티브가 젠타의 무의식인지 극중 현실인지 헷갈리면선 묘한 정서적 반향을 일으킨다.

네덜란드인과 젠타의 조우 장면은 현실과 신화의 경계에 서 있는 젠타의 분열을 극명하게 보여준다.아버지 달란트가 무대 뒤에서 검은 실루엣의 네덜란드인을 데리고 온다.그리고 자리를 떠난다.무대 뒤편에 다시 네덜란드인의 배(양손을 모은 모양을 한)앞에 달란트와 이야기를 나눈 네덜란드인이 나온다.(사이몬 에스테스가 이 역을 맡았다.흑인 노예같은 인상이다.저주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네덜란드인의 절규가 영화에서 본 흑인 노예의 절규처럼 현실감이 있다.) 결국 무대위에는  두 명의 네덜란드인이 있는 셈이다.어디가 젠타의 무의식속에서 나온 음성인지 어디가 아버지 달란트가 데려온 실루엣 네덜란드인의 목소리인지 구분이되지 않는다.또한 이것을 구분하려 하면 하리 쿠퍼의 연출이 의도한 바를 훼손하게된다.극중에서 젠타와 네덜란드인은 거의 서로를 바로보며 이야기하지 않는다.우리고 보고 있는 네덜란드인이 신화 또는 신화를 내재화한 젠타의 의식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 하다.

바그너의 오페라는 대개 여성의 희생을 통한 영원회귀라는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다.<방황하는 네덜란드인>도 그런 도식을 따른다.이 오페라에는 에릭이라는 젠타를 원하는 남자가 등장하여 일종의 삼각관계를 형성하게 된다.에릭과의 삼각관계는 결국 비극을 향한 전초가 되는 셈이다.하리 쿠퍼의 연출에서는 그런데 이 부분이 아무래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쿠퍼의 연출이 의도한 바는 그런 통상적인 비극으로 진행되는 과정을 그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수들의 가창도 노련하고 카메라의 화면구성 역시 볼 만하다.간혹 막과 막의 연결을 위한 진부한 디졸브 화면이 눈에 거슬리기는 한다만 그정도는 눈감아 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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