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디 : 일 트로바토레
TDK / 2006년 8월
평점 :
품절


<일 트로바토레>는 '음유시인'을 말한다. 요즘 말로 하면 '싱어 송 라이터'쯤 될까?  극 중 주인공 만리코가 자신을 레오노라에게 그렇게 위장한다. 하지만 사실 그는 복수의 대리인이며, 루나 백작의 정적이자 연적이다. 오페라<일 트로바토레>의 스토리는 두 개의 큰 기둥이 있다. 각각의 기둥에는 '복수' 와 '사랑'이라고 씌여있다. 인류가 '겨울을 대비하여 햇빛을 모으고' (내가 좋아하는 동화책 <프레드릭>에 나오는 말이다. 프레드릭은 생쥐 작가다.) 가장 많이 곳간에서 꺼내 먹는 소재이다.  

<일 트로바토레>는 신화나 민담의 요소를 많이 담고 있다. 유럽에 구전되던 신화나 민담 등이 베르디의 음악으로 형상화 된 것으로 보인다. 오페라에는 '유아살해' 라든가 '근친살해' 같은- 백작와 만리코의 관계는 카인과 아벨과도 같다.- 요소들과 '마녀설화' 같은 요소들이 들어 있다. <일 트로바로레>의 도입부 성문 장면에서 백작의 근위수장인 페르란도가 화자가 되어 그 간의 상황을 요약한다.  

 현재 영주인 루나 백작의 아버지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그런데 둘째 아들에게 변괴가 생긴다. 유령같은 집시 여인이 아이를 만져보고 나서 아이가 병이 생긴 것이다. 이에 분개한 백작의 아버지는 여자 집시를 화형에 쳐한다. 그녀는 자신의 딸에게 복수 해줄 것을 부탁하는데, 그 즈음 백작의 둘째 아기가 사라지고 만다.그리고 화형대에서는 집시의 유골과 함께 반쯤 타다 만 아기의 뼈가 발견된다. 

페르난도의 설명은 아직 완전한 것은 아니다. 그 집시 딸인 아주체나가 등장하여 아들 만리코에게 복수를 외치며 나머지 이야기를 들려줄 때까지는 말이다. 집시 딸인 아주체나는 화형식이 있던 그날 자기의 아이를 데리고 울며 어머니를 따라간다. 그리고 몰래 백작의 둘째 아들을 납치했던 것이다. 그녀는 어머니의 고통을 보며 아기를 불길 속에 밀어넣는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백작의 아기가 옆에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닌가.그렇다. 처절한 공포와 분노,슬픔 앞에서 그녀는 정신을 놓친 것이다. 그녀는 백작의 아들 대신 자기의 아기를  불에 밀어넣은 것이다. 

아주체나는 이제 어머니와 자기 아들의 비극적 죽음의 원인이 백작 가문에 있다고 생각하고, 장성한 첫째 아들, 루나백작의 복수를 도모하는 것이다. 불길에 던져지지 않고 살아남은 백작의 동생 만리코를 통해서 말이다. 그녀는 만리코를 자신의 아들로 키웠던 것이다. 그런데 아주체나가 사악함의 전형적 인물로 그려지지 않는데 이 오페라의 매력이 있다. 그녀는 실제로 복수를 꽤하지만 만리코를 정말 자기 아들처럼 생각하고 키운 것이다. 결국 어머니의 복수를 위해 형제 간의 살육을 유도하면서도 자기가 키운 아들에 대한 애정을 동시에 갖고 있는 모순적인 어머니가 아주체나 인 것이다. 그녀의 이런 이중적인 딜레마는 그녀의 캐릭터를 살아있게 만든다. 아주체나는 결국 <일 트로바토레>에서 '복수 라인'의 중심 축이다. 

스토리의 또 다른 한 축은 '사랑 이야기'이다. 루나 백작이 만리코에게 적대감을 갖게 된 원인이다. 루나와 만리코는 한 여인을 두고 사랑의 경합을 벌여야 하는 것이다. 그녀가 레오노라이다. 레오노라는 음유시인으로 위장한 만리코에게 애정을 느끼게 된다. 그럴 수 록 루나 백작의 분노와 질투는 커진다. 자기와 비할바 없는 음유시인 따위와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비천한 자에게 여인을 빼앗긴다는 모욕감과 질투 앞에 칼을 들게 된다.   



 1978년 카랴얀이 빈 슈타츠오퍼와 함께 연주한 <일 트로바토레>는 이 오페라의 공연물 중에서 고전의 반열에 꼽히는 영상이다. 카라얀은 여기서 지휘는 물론이고 무대,조명,의상 등 무대 연출에도 직접 관여하여 '카라얀 프로덕션'으로 이 작품을 완성한다. 당시 잘츠부르크 무대에서 활약하던 카라얀은 베르디의 작품 중에서 <일 트로바토레>에 특히 매력을 많이 느꼈다고 한다. 영상물 내지의 해설을 보면 '일트로바토레에서 원형적 인물들을 보았기'때문이라고 한다. 이 공연물을 원래 TV로 유럽 전역에 방송될 예정이었으나 캐스팅과 관련된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한다. 덕분에 우리는 이 공연물에서 30년전의 싱싱한 목소리의 플라시도 도밍고의 만리코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원래는 프랑코 보니솔리가 이 역을 맡기도 되어 있었으나 그의 공연 리허설에서 그의 상태가 거의 최악이었던 듯 하다. 그래서 대타로 급히 도밍고가 캐스팅되었다.  

<일 트로바토레>는 특히 4명의 남녀 성악가들의 고른 안배가 매력적인 오페라이다. 이 공연을 총체적으로 평가하는 기준 중에 하나는 4명의 각기 다른 성역의 가수들이 얼마나 재기량을 보여주었느냐, 그리고 그들의 조합이 어떤 시너지 효과를 거두었는가이다. 카라얀의 <일 트로바토레>공연물이 고전 반열에 오를 수 있다면 이 음반이 그런 4명의 카리스마 있는 가수들을 전면에 배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만리코의 도밍고는 -지속적으로 지적되는- 고음의 한방은 보져주지는 못하지만 젊고 윤기 있는 소리를 들려준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카라얀의 오페라 연출에서 지적된다는'배우들의 정적인 움직임'에 있다. 도밍고의 장점 중에 하나는 그가 이탈리아 테너들처럼 청량한 고음을 장착하고 있진 못하지만 극 중 배역에 대한 몰입과 연기력에서 동급 최강 대우를 받아왔다. 부드러운 면모와 분노의 화신이 되어야 하는 만리코는 그런 면에서 역동적인 모습이 필요한데 이 오페라에서 도밍고의 움직임은 정적이다.  

루나 백작의 피에로 카푸칠리는 전통적인 이탈리아 바리톤의 안정감을 보여준다. 특히 부리부리한 눈동자와 백작의 근엄함을 느끼게 해주는 목소리는 훌륭하다. 또한 연인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만들어낸 질투의 감정 역시 그의 선 굵은 목소리에 잘 어울어져 있다. 개인적으로 새롭게 발견한 소프라노가 레이아나 카바이반스카 이다. 세계적인 목소리임에도 칼라스나 서덜랜드급의 대우를 받지는 못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흘려 지나갔던 듯 하다. <일 트라바토레>에서 그녀는 고혹적인 미모와 그에 어울리는 기품으로 자기를 희생하는 레오노라를 보여준다. 아름다운 곡인 '사랑의 장미빛이 날개를 타고'라고 노래하는' D'amor sull'ali rosee'같은 곡에서 그녀의 여리면서 기품있는 목소리는 은빛 메차보체를 끌어낸다. 그리고 이들 세명이 함께 부르는 삼중창 Di geloso amor sprezzato 도 좋다. 



그렇지만 내가 <일 트로바토레>를 들을때 가장 민감하게 듣는 사람은 아주체나다. 이 역할은 독성이 대단하다. 그래서 너무 이 역할을 잘하면 다른 역할에서 무디어질 수도 있다는 역설도 존재한다. 카라얀의 사랑을 받은 메조 소프라노가 바로 피오렌차 코소토이다. 그녀의 아주체나는 뱃 사람을 원귀로 만든다는 세이렌 목소리일지도 모른다. 세이렌의 미소 뒤에는 늘상 독이 발린 비수가 숨어 있다. 피오렌차 코소토의 목소리가 그렇게 강력하다. 종종 그녀를 전시대의 최고 메조소프라노 줄리에타 시묘나토에 비교하곤 한다. 시묘나토가 조금 더 귀족적이고 풍요로왔다는 게 내 생각이다. 레퍼토리에소도 시묘나토가 조금 더 넓었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내게 최고의 아주체나는 피오렌차 코소토이다. 그녀는 카라얀의 <일 트로바토레> 말고도 명반으로 알려진 툴리오 세라핀이 지휘한 음반에서도 아주체나를 맡았다. 도밍고보다 조금더 더 좋아하는 카를로스 베르곤지가 그의 아들 만리코 역을 맡았던 음반이다. 카라얀의 이 영상물에서 피오렌차 코소토는 가장 연극적인 분장을 했다. 마치 디오니소스 제전의 광란의 여사제같다. 백박마녀전의 마녀처럼 코소토의 아주체나는 활활 타오르는 분노를 무대 위에서 내뿜는다. 끊어오르는 독성의 용광로처럼 이글 거리는데 이 점이 가장 큰 매력이지만 한가지 아쉬운 점은 아주체나의 이중성-즉 복수의 화신이자 어머니로서의-이 그 강력함에 가려지는 부분이다.   

조각같은 외모의 카랴안답게 사운드는 풍부하고 미려하다. 영상의 화질은 아무래도 78년 작품이다 보니 요즘 것들과 비교하면 곤란할 듯 하며,또한 무대 연출은 전통적인 스타일이지만 무대를 화려하게 만드는 제피렐리식과는 거리가 있다.전체적으로 어두운 톤이 인상적이다. 한 세대 전에 좋은 가수들의 맹활약으로도 기억될만한 영상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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