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운다. 그런데 계획을 실현할 재능이 부족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의 꿈을 함께 일궈갈 인재를 만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성공하는데 있어서 인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빌 게이츠도 “나는 훌륭한 개발자를 찾는 데 늘 목말라 있다”고 했다. 곳곳에서 인재경영에 목소리를 높인다. 기업들 사이에 인재 확보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하지만 사람은 많아도 뛰어난 인재를 얻기란 쉽지 않다.
■안평대군의 인재경영과 준비된 화가
현존하는 조선시대 초기의 산수화 중 최고 걸작으로 꼽는 ‘몽유도원도’는 인재를 어떻게 키우고, 그 인재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는 과정을 성공적으로 보여준다,
‘몽유도원도’는 시와 글씨와 그림이 어우러진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당대 최고의 화가인 안견의 그림에 서예가로 필명을 날린 안평대군(1418∼1453)의 글씨, 20여 명의 대표적인 문인들의 시문과 글씨는 작품으로서도, 사료로서도 가치가 높다.
이 그림은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이 어느날 박팽년과 함께 무릉도원에서 노닐었던 꿈이 소재가 되었다. 잠에서 깬 안평대군은 안견을 불러 자신이 꿈에 본 무릉도원의 풍경을 이야기하고 그림제작을 의뢰한다.
놀랍게도 안견은 3일만에 ‘몽유도원도’를 완성한다. 그림이 섬세하면서도 웅장하다. 어떻게 짧은 기간에 대작을 완성할 수 있었을까. 이는 안견이 준비된 화가임을 알려준다.
안견이 화가로서 대성할 수 있었던 데는 천부적인 재능뿐만이 아니었다. 중국화 컬렉터였던 안평대군의 후원에 힘입은 바 크다. 1445년(세종 27)까지 안평대군이 수집한 소장품은 무려 222점이었다. 동진의 고개지와 원의 조맹부를 비롯하여 당, 남·북송의 명화들이 망라되어 있었다. 그래서 안견은 “옛그림을 많이 보아 그 요체를 모두 얻고 여러 대가들의 좋은 점을 모아 종합하고 절충했다.”(신숙주) ‘몽유도원도’에 나타난 곽희파(郭熙派)의 화풍은 이런 사연에 근거한다.
안평대군은 안견의 ‘멘토(mentor)’였다. 예리한 안목으로, 그림에 대한 이론적·정신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안견은 그런 지원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며 재능과 실력을 다졌다.
■‘몽유도원도’의 빼어난 감동 전략
안평대군이 시나리오 작가라면 안견은 탁월한 감독이었다. 안견은 안평대군의 꿈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블록버스터급 화제작 ‘몽유도원도’를 연출했다. 안평대군은 안견의 독창적인 연출력에 탄복한다.
‘몽유도원도’는 일반적인 두루마리 그림과는 반대로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독특한 화면구성을 보여준다. 오른쪽에는 복숭아꽃이 만발한 무릉도원이 그려져 있고, 중간에는 무릉도원으로 가는 동굴과 길이, 왼쪽에는 현실세계가 있다. 이들 현실세계와 무릉도원은 화면의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로 대각선을 따라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온화한 분위기의 평지와 기암절벽 같은 봉우리를 대조시켜 산세의 웅장함과 무릉도원의 환상적인 느낌을 절묘하게 표현한 것도 그림에 깊이를 더한다. 뿐만 아니라 왼쪽의 현실세계는 정면에서 본 풍경으로, 그리고 오른쪽의 무릉도원은 부감법으로 그렸다. 드넓은 도원(桃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이런 화면 연출에서 주목할 점은 그림을 보는 방식이다. ‘몽유도원도’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두루마리를 펼쳐가며 순차적으로 그림을 봐야 한다. 일반적인 그림이라면 오른쪽에 현실세계가 있고, 왼쪽에 무릉도원이 있어야 맞다. 그래야만 그림을 펼침에 따라 현실세계에서 무릉도원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현실세계→무릉도원). 그런데 이 그림은 이야기 구조의 순차적인 흐름을 뒤집어서 오른쪽에 무릉도원을 배치한다. 파격적이다.
왜 그랬을까. 그림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조형적인 전략이 아니었을까. 무릉도원의 강렬한 이미지를 먼저 보여주고, 서서히 왼쪽으로 이동하여 현실세계를 보여준 뒤, 다 펼쳤을 때 다시 한 번 무릉도원으로 시선을 유도하려는 전략(무릉도원→현실세계→무릉도원) 말이다. 이때 맨처음 만나는 무릉도원과 다시 보는 무릉도원은 동일한 장면이지만 전혀 다른 느낌을 주게 된다. 안견의 천재성은 여기서 빛난다. 이야기의 배치를 바꿔, 감동의 파장을 넓고 깊게 확장시키는 것이다.
■거대한 감동으로 이뤄진 꿈
안견은 당시 문화계의 거물이었던 안평대군의 후원과 격려를 받으며 거장으로 성장했다. 글씨와 그림에 밝은 안평대군의 가르침과 방대한 양의 중국 역대 그림을 보면서, 곽희파 화가들의 작품을 소화하고 다른 화풍을 섭렵하며 자기 스타일을 만들었다. 그리고 은혜에 보답하듯이 한 폭의 거대한 감동을 선사했다. 안평대군에게 안견은 자신의 꿈을 실현해준 특출한 인재였고, 안견에게 안평대군은 자신의 길을 열어준 든든한 후원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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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포인트
아무리 뛰어난 후원자를 만나더라도 자세가 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자기변화에 필요한’ 후원자를 최대한 활용하여 발전의 밑거름으로 삼는 것도, 스쳐지나가는 사소한 인연으로 만드는 것도 순전히 마음가짐에 달렸다. 동기부여는 철저하게 스스로 해야 한다. 변화하고 싶다면 먼저 변화를 주도하라.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 hyun@fnnews.com 박현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