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
안토니오 알타리바, 킴 지음, 해바라기 프로젝트 옮김 / 길찾기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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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중반쯤 소위 회고담 소설이라는게 유행인 때가 있었다. 단순히 어린 절이나 청춘을 돌아보는 이야기가 아니라 80년대 이전의 운동권 출신들이 그시절을 회상하고 바뀐(?)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다루는 소설들이 많았다. 당대에는 사회의 분위기와 상황때문에 비판하지도 회의하지도 못했던 주제에 대해 그것의 권위가 사라진 시기에 그문제를 다시 돌이켜보며 시대라는 커다란 흐름 속에서 대의에 상처받고 희생된 이들을 돌이켜 보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책은 커다란 대의와 역사의 수레바퀴에 희생당한 한인간의 90년이라는 삶을 보여준다. 조국의 민주주의와 힘없는 약자의 편에서 청춘을 바친 한사람이 처음의 이상을 잃어버리고 자신을 배신하는 동료들의 모습과 결국은 자기 자신마저도 신념을 배신하고 지향점을 잃어버린, 그러한 죄책감이 결국은 자신을 갉아먹어버리는 삶의 이야기.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은 편치 못했다. 스페인 내전이라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처럼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희생을 통해 부정적인 모든 것을 씻어낼만큼 숭고한 이야기를 담는 것정도로만 상상하게 있었던 내게 정말 그시기를 치열하게 살았던 이의 고백은 그러한 아름다움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고 결국 개인에게 남은 건 무엇인가 하는 회의만 주었다.


사실 우리 주변을 둘러봐도 민주화운동을 한 그런 배경으로 그들이 비판했던 정치적 이념을 가진 이들과 같은 소속의 국회의원도 되고, 뉴라이트운동이란 것도 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권력을 쥐는 사람들부터 나름 차선을 택해서 지위를 얻은 사람들 그리고 힘든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꿋꿋하게 처음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다수의 많은 이들이 이름없이 쓰러져가며 평범한 일상을 사는 사람이 되었거나 자신의 희생에 대한 보상도 받지 못하고 어렵게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물론 그들 중 훗날 커다란 보상을 받고 싶어 그러한 일을 한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아나키스트는 우리 역사에서 돌이켜봐도 일제시대 민족주의자나 사회주의 운동가들보다 알려져 있진 않다. 의열단이나 의열단 선언문을 작성한 신채호선생이 그런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는 정도.

10여년 전 본 <아나키스트>란 영화에서처럼 개별적인 테러를 하는 좌익급진주의자로 비춰지는 정도.

아나키즘의 특징은 개인의 절대적 자유와 직접행동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또한 아나키즘은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 독재도 부인하고, 혁명의 결정적 순간까지 기다리지도 않는다.

 <잊혀진 근대, 다시 읽는 해방전사> P107, 이덕일

좌파라고는 해도 좌파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이념과도 다른 성향으로 인해 불행한 결론을 얻을 수 밖에 없는게 아나키스트들의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아나키스들의 고백이 언제까지 자신의 실패를 고해소에서 털어놓는 역사여야 할까? 어떠한 종류의 억압에도 저항하고 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구하는 행동이 슬픈 모습으로 귀결되는게 아닌 세상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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