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국경제 새판짜기 - 박정희 우상과 신자유주의 미신을 넘어서
곽정수 엮음 / 미들하우스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큰 화두는 경제였다. 주가지수는 현직 대통령의 말대로 사상 최고치를 연일 갱신할 정도로 좋고 급등하던 부동산 가격도 종부세와 각종 규제를 통해 이제 잡힐만하고 정부가 그렇게 강력하게 추진하고 보수 언론들도 안되면 국가가 망한다고 노래를 부르던 FTA도 정부의 의도대로 진행되는데 정치권이나 언론이나 온 국민이 경제살리기를 차기 대통령에게 바라는 최고의 과제로 주문했다. 많은 후보들이 경제를 살릴 적임자를 주장했지만 샐러리맨 신화의 주인공이자 대기업 CEO 출신의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경제전문가 경제대통령 이미지를 선점하고 줄기차게 밀어붙인 결과 다른 많은 문제들을 다 덮고도 2위 득표자를 여유있게 따돌리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많은 이들이 박정희시절, 전두환시절을 그리워하며 향수에 빠진다. 정치적 사회적 민주화를 주장해도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고 경제를 발전시킨(?) 두대통령을 그리워하고 그시절로 돌아갔으면 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IMF이후 소위 슬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기업환경과 기업들의 투명한 경영이 강조되고 있지만 국민들의 생활은 모 진보정당의 대통령 후보의 말처럼 그리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 경제의 큰 판을 예전의 성장위주 정책의 체제로 회귀해야할지 아니면 세계화의 흐름에 발맞춰-두가지가 다 똑같은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좀더 세계적인 기준(?)에 맞춰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야 할지 진보진영에서 얘기하는 분배를 중신으로 경제정의를 실천하는 방향으로 새롭게 판을 짜던 뭔가 결정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는건 사실이다.
국내 최고의 기업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그수익이 세계의 동종업계에서도 상위권을 달리고 있고 대재벌들이 사상 최고의 실적을 자랑하고 주가지수는 여지껏 디뎌 본 적도 없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고 세계 곳곳에 우리 기업의 해외 생산법인들이 뻗어나가고 있는데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오히려 더 쪼그러들고 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새로운 판을 짜는 건 모든 이들이 동의하지만 어떻게 판을 짤까는 십인십색이다. 진보와 보수의 경계를 넘어서 모든 경제 주체들이 동의하는 결론을 도출하는 건 바라지도 않지만 최소한 서민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가진 자들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만드는 구조로 가는 것은 원치않는다. 이책의 저자들은 장하준교수류의 대안에 대해서도 자신들의 의견과 비교하면서 비판하는데 불행히도 난 장하준교수의 글은 읽어본 적이 없어 둘 간의 차이를 비교하고 평하기는 어렵다. 다만 아직까지 우리 경제가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자 대기업과 서민간에 필요한 공정한 룰이 정착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YS정권이후 많은 운동권들이 이제 이사회에 절차적 민주주의와 형식적 규칙은 완성되었다고 판단했었는데 아직까지 경제적 민주주의와 국가 정책에서 국민들을 우선으로 하는 정책들이 만들어지고 시행되기에는 갈길이 멀다 싶다. 저자들이 얘기하는 중소기업과 중산층을 늘리고 복지와 분배를 통해 저소득층을 구제하는 방안들이 대다수의 국민들에게는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정책 결정권자들에게도 외면 받고만 있는 현실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많은 서민들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 경제대통령이라는 슬로건에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지켜주지 못할 게 뻔한 후보에게 표를 던졌으니...
자의든 타의든 새로운 체제를 필요로 하는 우리 경제의 구조가 결정되는 과정에서 서민들을 위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방법들이 고민되고 정책에 반영되기 위해서는 아직까지는 진보진영의 정책은 뜬구름 잡는 얘기로 들리고 구체성이 결여된 느낌을 주고 있고 학자들은 예전에 내가 벌써 이렇게 된다고 얘기했잖아 하는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 느낌이다. 그것을 강제화하고 물화시켜나가는데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자신이 처한 경제적 상황에 도움을 주는 정책보다는 그렇지 못한 정책에 정치적 선택의 권리를 넘겨버릴 수 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에 구체적 대안은 무엇인지 오랜만에 읽은 사회과학 책이라 그런지 새판짜기의 깔끔하고 개운한 결론보다는 많은 고민거리를 안겨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