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법인카드는 월급쟁이들의 꿈이었다. 카드로 내가 돈을 쓰고다녀도 회사에서 다 경비처리를 해주니 그만큼 확실히 성공을 보여주는 수단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법인카드의 실상을 알고 보니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진 않았다.
회사의 오너나 임원쯤이면 모를까 나같은 존재에게까지 강요되는 법인카드의 실상을 봤더니 회사에서 돈을 알아서 쓰라고 위임하는 게 아니라 얼마 한도 안에서 네가 회사 경비를 쓸 수 있는데 그걸 회사에서 처리해 줄지 말지는 쓴 다음에 확인해서 회사에서 쓸만한 돈이라면 경비처리를 해주겠지만 아니면 네가 알아서 메우라는게 법인카드의 실상이다.
이번 프로젝트에 투입되면서 처음부터 PM께서 법인카드 소지 여부를 확인하시고 가급적이면 빨리 법인카드를 발급받으라 하셨지만 그실상을 아는데 굳이 받아서 멍에를 뒤집어 쓸 이유가 뭐 있을까 하고 버텼지만 같이 일하는 직원들간의 화합과 사기 진작을 위해 필요한 일이 생겼다. 두주전에 법인카드를 신청한 터라 오늘쯤에 도착하겠지 했는데 왠걸 추석연휴의 영향인지 카드는 아직도 배송되지 않고 있지만 우리 부문의 회식은 오늘로 잡혀있으니 달리 방법이 없었다.
법인카드를 이미 업무 때문에 가지고 있는 후배를 같이 데리고 가서 저녁자리를 가졌다. 아직 감기가 다 났지 않았지만 일단 네게 주어진 일이니 몸을 사릴 수도 없었다. 어디를 갈까 장소를 꼽아보다 사무실 가까운 곳에 내 사수-업무를 가르쳐 주는 고참-이 퇴사하고 개업한 식당이 생각났다. 언젠가 내가 그런 자리를 주제할 날이 온다면 꼭 그집에서 행사를 갖고 싶었다.
같이 간 팀원들도 그집 음식에 만족하고 즐겁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고 식당의 사장님이신 선배는 네가 오늘 날은 장사가 잘 됐는데 요즘 며칠 장사가 시원찮았는데 오늘은 제법 장사가 됐다며 덕담을 해 주셨다. 내돈을 직접 쓴 건 아니지만 다들 기분 좋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