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키경성 - 근대 조선을 들썩인 투기 열풍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전봉관 지음 / 살림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IMF시기를 거치면 우리나라 국민들이 경제를 바라보는 깊이가 달라졌다. 그전까지만 해도 "경제를 살리자"는 수준의 당위론적인 자세에서 힘든 위기를 거친 후 재테크에 열성이 돼서 주식이나 부동산에 대한 어느 정도 수준의 용어는 다들 의미를 알고 펀드통장 하나정도는 없는 사람이 없고 대학생들도 주식투자를 통해 대박을 꿈꾸고 신입사원으로 입사하면 청약통장, CMA 통장을 만들며 자신의 재무상태를 관리하는데 열심이다. 조금만 재테크에 열심인 사람들은 책을 한권 써도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상당한 경제적 지식과 안목을 보여주는 이들이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다.

그럼 100년전 이땅에 살았던 이들의 경제에 대한 안목과 재테크 수준은 어떠했을까? 나라를 잃은 울분에 비분강계하고 외세에 수탈당하는 와중에 먹고 살기도 힘겨운 판국에 무슨 경제활동이며 재테크?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전봉관이 정리한 그당시의 대박을 꿈꾸는 이들의 모습과 부동산, 주식, 로또에 자신의 꿈을 거는 요즘 사람들이나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 모습이었다.

우리가 판교 아파트에서 대박을 쫓듯이 나진, 선봉 부동산 투기의 광풍이 있었고, 주식으로 대박을 꿈꾸는 개미들처럼 미두와 주식시장에서 지금도 어지간한 고수가 아니면 쉽게 들어가지 못하는 선물시장에서 일확천금을 얻는 이들도 있었다. 돈놓고 돈먹는, 돈이 돈을 버는 체제가 공인한 도박판은 나라 잃은 설움에 싸인(?) 백성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나 보다. 나라 잃은 백성들이 나라를 찾기 위해 총알이 빗발치는 만주벌판에서 항일운동을 하거나 일본인 지주나 친일 자본가에게 저항을 못할망정 일본의 조선과 대륙침탈을 위한 전진기지를 유치하기 위해 일본인과 손을 맞잡고 정관계에 로비를 벌이고 투기와 매점매석으로 돈을 벌어 한방을 쫓는 불나방 같은 이들도 당시에 이땅에 존재했었고 사람이 사는 게 다 그런거지 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

물론 그러한 와중에서도 매점매석으로 돈을 벌었지만 나라의 독립과 후세를 위해 돈을 쓴 월남선생이나 끊임없는 불운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힘들게 번 돈을 이땅의 농민과 자신이 소유한 기업의 종업원들에게 환원한 이종만, 여성의 몸으로 힘들게 평생을 바쳐 벌어들인 돈을 교육사업에 아낌없이 내놓은 백선행과 최송설당의 이야기에서 심심찮게 신문에서 접할 수 있는 김밥할머니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돈을 벌더라도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다는 만고의 진리지만 쉽게 실천할 수 없는 명제를 떠올린다.

유대인이나 개성상인들이 나라를 잃고 기존의 권력을 상실해서 그 반대급부로 경제에 취중하며 이룰 수 없는 욕구를 포기하며 다른 한가지에 집착했듯이 일제에 나라를 뺐기고 권세를 누리던 양반보다 더 나은 지위를 보장해 줄 수 있는 돈이 어느 정도는 자신의 능력으로 쟁취할 수 있었던 자본주의 초기의 이땅의 모습이 박물관이나 교과서에서는 볼 수 없는 숨어있던 역사의 그림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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