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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임마꿀레
임마꿀레 일리바기자 외 지음, 김태훈 옮김 / 섬돌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아프리카 중동부의 자그마한 나라 르완다에서 1994년 4월부터 3개월여에 걸쳐 후투족 강경파의 투치족과 후투족 온건파에 대한 공격으로 50여만명이 살해당하고 투치족의 반격에 의해 300만명이 넘는 후투족 난민이 발생했다. 혹자는 좁은 국토에 높은 인구밀도와 가난 속에서 자신의 생존을 위한 불특정 다수의 공격이라고하지만 대부분은 1916년 이후 벨기에의 식민통치기간동안 진행된 철저한 종족 차별 정책이 후투족과 투치족간의 갈등과 서로간의 보복으로 인해 깊어진 골이 만들어낸 인류의 커다란 비극이라고 본다.
그러한 살육과 광기의 시간동안 행복한 가정 안에서 후투족 정권의 투치족 차별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키워가기에 열심이고 단란하고 사랑이 충만한 임마꿀레에게 닥쳤던 일들을 담담히 그녀는 설명한다. 좁은 목욕탕안에서 소리도 내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서 움직이지도 못하며 보내고 그와중에 부모님을 비롯한 형제들과 친인척들의 죽음을 전해 듣고 목격해야만 한 아픔을 고스란히 풀어놓았다. 어떻게 인간이 인간에게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 2차대전 당시 독일의 유대인 학살이나 캄보디아의 킬링필드가 떠오르는 끔찍한 시간들이었는데 왜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일까?
평상시에 다정한 이웃이었고 같이 학교를 다니며 어울린 친구들에 의해 단지 종족이 다르거나 그들과 함께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많은 목숨을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끊어버리는 모습에서 50여년전 이땅에서 벌어졌던 아픔이 떠오른다. 한국동란때에도 150만에 이르는 사상자중 군인은 40만명 뿐이고 나머지 다수가 낮에는 태극기, 밤에는 인공기가 뜨는 시간동안 서로에 대한 증오와 보복으로 목숨을 잃어야 했듯이 이러한 광란의 시간이 남긴 건 서로에 대한 미움과 증오 그리고 복수에 대한 다짐이었을 것이다. 그로인해 평범하고 선량한 사람도 피의 바람 속에서 인성이 마비되고 사람을 죽이는 기계나 짐승의 모습으로 변해갔으리라.
하지만 임마꿀레는 자신의 부모와 형제와 친척을 죽인 후투족들을 하느님의 이름으로 용서한다. 투치족 정권이 들어서며 가족을 죽인 주동자와 대면하지만 폭력도 원망도 그에게 욕설도 하지 않고 용서의 말만 남기고 떠났다. 증오와 복수로 얼룩진 상처는 똑같은 방법으로는 절대 치유되지 못하고 사랑과 용서만으로 가능하다는 걸 가르쳐준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임마꿀레와 그녀의 부모세대가 겪은 피해만 언급됨으로 인해 후투족은 인성이 마비된 폭력적인 집단으로만 보여지는게 르완다에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는 이들에게 굴절된 역사의 모습으로 다가가진 않을지 모르겠다는 점이다. 투치족의 통치기간과 벨기에의 분리통치 기간동안 자행되었을 투치족에 의한 후투족의 고난에 대해선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임마꿀레의 용서가 동일한 시간 속에서 이웃에게 같은 위치에서 베푸는 용서가 아니라 문명화되고 높은 곳에 위치한 이가 자신보다 모자라는 이에게 내미는 손으로 느껴진다고 하면 지나친 억측일까?
그녀가 위험 속에서 자신을 보호하고 사태가 정리된 후 미국으로 건너가고 UN직원으로 일할 수 있게된 모든 것을 그녀가 위안으로 삼는 신의 은총과 사랑만으로 치부하기에는 그녀와 같은 역사에 의한 상처를 입은 모든 이들을 보듬기에 부족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