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에 지자요수 인자요산(智者樂水 仁者樂山)이라는 말이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는 말이다. 지혜로운 자는 물처럼 동적(動的)이며 즐겁게 갈아감을 의미한다. 성서에도 물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그중 세례로 대표되는 전례는 세례자 요한이 요단강에서 물로 인간의 죄를 씼고 천국을 예비했던 것처럼 인간의 영혼을 치유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이책은 구약의 에스겔서 47장의 말씀을 바탕으로 물이 가지고 있는 성질을 통해 지금 믿는 이들에게 필요한 삶의 원리, 믿음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거기에 에모토 마사루의 <물은 답을 알고 있다>와 연관하여 사랑과 감사 그리고 기도에 물이 반응하는 것을 언급하며 물의 모습을 통해 물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인간의 모습을 투영해 본다. 믿지도 않는 에모토 마사루의 사랑, 감사, 기도에도 반응하는 물(사람)이 믿는 이들의 기도에 반응하는 크기는 얼마나 클까? 예수께서 복음을 전파하며 구약의 구절구절을 따와 근거로 제시하지 않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 속에서 비유와 은유를 통해 구원을 보여주셨던 것처럼 영혼을 살리는 생수의 축복과 은혜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치 속에서 설명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구약과 신약을 오가며 생수되시는 예수를 통해 영혼을 소성시키고 치유하시며 형통케 하는 것은 성령의 은혜와 기도의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물처럼 사랑과 감사와 기도를 통해 지혜롭고 겸손하게, 그리고 고여있지 않고 동적(動的)인 모습처럼 그러한 것들을 우리 이웃에게 실천하는 과정을 통해서 나타나리라고 생각된다. 얼마전 뉴스에서 교회만 돌며 절도행각을 벌린 이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붙들려도 회계한다고만 하면 놓아주기 때문에 계속 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다고 한다. 오늘날의 교회가 믿는 것만을 강조하다 보니 진정 그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이땅에는 수많은 이들이 믿음을 자처하고 있다. 기도를 통해 전도를 통해 자신의 믿음을 강조하고 있지만 물처럼 겸손히 낮은 자리에서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케하는 일은 잊고 있는지도 모른다. 교회가 진정 의미하는 것이 성전이 아니라 그곳에 모인 믿는 이들을 일컬음이라면 믿는 이들에게서 샘 솟 듯 흘러 나와야 할 것은 겸손히 이웃들에게 봉사하고 메마른 땅에 물이 스며들 듯이 그들의 지치고 힘든 삶이 사랑으로 젖어가게 만들 수 있도록 행함도 필요할 것이다. 지구표면에서 70% 가까이 물로 덮여 있고 우리 몸도 많은 부분이 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 사회도 짧은 역사동안 교회가, 믿는 이들이 점점 많은 부분을 구성하고 있다. 그들이 개인적인 영성의 회복의 은사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물같은 행동을 통해 이웃들에게 말로만의 회개를 강요하는 모습이 아니라 생활 모습을 통해 그들의 영혼 속에 젖어들어 진정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주는 생활의 모습을 보여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