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집트 왕조 때 태양신앙의 상징으로 세워진 기념비.

방첨탑()이라고도 한다. 하나의 거대한 석재로 만들며 단면은 사각형이고 위로 올라갈수록 가늘어져 끝은 피라미드꼴이다. 태양신 신앙과 관계가 있고, 고왕국()시대에 아브시르에 있는 제5왕조의 네우세르라 왕묘의 태양피라미드 신전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분묘의 기념비로 건립되었다. 중()왕국시대 이후로는, 국왕의 통치 기념제 때에 신전탑문 앞에 한쌍이 건립되었다. 현존하는 최고()의 것은 헬리오폴리스(태양의 도시라는 뜻)에 있는, 제12왕조의 세누세르 1세가 건립한 것으로 높이 20.7 m이다.

제18왕조의 투트모세 1세 이후로 제왕()이 명문()을 4면에 새긴, 애스원의 화강석제의 오벨리스크를 카르나크의 아몬 신전 앞에 세웠는데 대부분 유럽에 반출되어, 현재는 투트모세 1세(23.2 m, 143 t)와 하트솁수트 여왕(29.6 m, 325 t)의 것이 하나씩 남아 있을 뿐이다. ‘클레오파트라의 바늘’이라 불리는 투트모세 3세의 것은 19세기에 워싱턴 D.C.과 런던으로 각각 가져갔다. 아스완의 채석장에는 길이 41.7 m의 미완성 오벨리스크가 하나 있다.

     

콩코르드광장의 오벨리스크            카르나크 신전 오벨리스크

-- 모두 네이버 백과 사전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카르다몸은 열대 산악지대에 널리 자생하고 있는 관엽수로 열매를 향신료로 이용한다. 열매는 타원형으로 녹색을 띄고 있다. 카르다몸은 여러 종이 있는데 모두 생강과로 맛은 조금씩 다르다. 가장 품질이 좋고 대중적으로 쓰이는 것은 말라바르 지방에서 재배된 종류이다.

카르다몸은 가장 오래되고 귀한 향신료 중의 하나로 사프란, 바닐라 다음으로 고가이다. 11세기에 노르망디인에 의해 영국에 전해져, 중세와 튜더왕조시대에 많이 쓰였다. '향기의 왕'이라고 불리며 카레요리 외에 고기나 생선요리, 소스, 드레싱, 피클, 파이, 빵, 케이크 등의 제과, 제빵류 및 리큐어의 향을 더하는데 쓰인다. 고가의 향신료이기 때문에 중동에서는 손님을 접대할 때 극진히 대접한다는 의미로 커피에 넣기도 한다. 북유럽 특히 스칸디나비아에서는 주로 빵이나 케이크, 피클에,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에서는 필라프나 카레요리에 쓰인다.

카르다몸은 몸을 따뜻하게 하기 때문에 호흡기 질환에 좋고, 유제품 알레르기 증상을 중화하며 신장에도 좋다. 카르다몸은 향이 쉽게 날아가 버리기 때문에 분말상태보다는 통째로 소량씩 구입하는 것이 좋다. 특히 분말에서 장뇌 향기가 나는 것이 신선하고 좋은 것이다. 원산지는 인도이고, 주산지는 인도, 스리랑카, 과테말라, 코스타리카, 탄자니아 등이다.

-- 네이버 백과사전. 그런데 실제로 어떤 향일지 전혀 감이 안 오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불륜과 남미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5년 8월
장바구니담기


부인은 벌써부터 알고 있었지만, 친정에서 하는 가게 일을 돕느라 바쁜 데다 일주일에 사흘은 친정에서 자고, 아이도 없고, 모두가 바쁜 덕분에 풍랑이 일지 않는 생활이 가능했다. 도시에서나 있을 수 있는 어처구니없는 설정이었다. 겉으로는 어른이지만 실은 모두 어린애인, 흔히 있는 얘기였다.-23쪽

중요한 것은 식욕이 아니라, 신경을 써주는 마음이다. 생활에서 그런 것이 사라지면 사람은 점점 탐욕스러워진다.-101쪽

... 공기는 베일 듯 맑았다.-105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반양장) 반올림 1
이경혜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이 너무 강력하다. 그리고 몇 가지 추천의 말들을 보고 이 책을 사서 올해 우리 반 학급문고로 기증했다. 기증 전에 내가 먼저 읽어 보았는데.. 그다지 내공이 깊은 소설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야기 자체는 잘 읽히기도 하고, 나름대로 청소년들의 감성이나 생활을 잘 잡아내기는 하였다. - 작가 후기에서도 작가가 많은 청소년들과 인터뷰를 해서 소설을 썼다는 내용도 본 것 같다. 작가가 많이 노력한 흔적도 보인다. 그런데 음, 뭔가가 부족하다. 제목 때문에 기대가 너무 컸었기 때문일까.

그래도, '시체놀이'는 아이들에게 가치가 있는 경험이 될 것 같다. 만일 내가 지금 당장이라도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면 - 우리 모두 지금처럼 이렇게 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죽음은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충분히 생각해 볼 만한 일이고.

어른인데다 약간 시니컬하기까지 한 나는 그냥 그랬지만, 우리 반 아이들(중2^^;)은 이 책을 재밌게 읽고 있는 것 같다. 몇 달이 지난 지금 이 책이 아이들 손을 타서 꽤 너덜너덜해진 것을 보면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세상일을 잊고 산다. 내가 사는 조그만 세계에 갇혀 이 세상에 얼마나 비참한 사람들이 많은지 또 억울한 사람이 많은지, 절망 속에 숨막혀 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해 정말로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으로 내 앞가림만 하고 나 편한 대로만 살고 있다.

아주 오래전 대학 시절,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읽고 왠지 싫어하게 되어 버린 공지영이라는 작가가 있었다. 나도 풋내 나던 시절이었지만, 그 때 그 작품에서도 어떤 '풋내'가 나서 그 이후로 공지영에게 어떤 나쁜 선입견 같은 게 생겨 버렸었다. 나는 그 때 이후로 변한 것이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아직도 미성숙하고 아직도 멍청하고 내가 뭘 어떻게 잘못 살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냥저냥 살고 있는데. 어느새 이 작가는 이렇게 성숙해져서 이런 멋진 소설을 들고 내게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 소설은 재미를 주기 위해 주인공인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곁들이고 있지만 - 사실 그보다는 사형 제도의 문제점을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그런 소설이다.  어떤 사람들이 읽어도 금방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게 써서 아주 효과적으로 그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 당장 나도 이 소설을 읽고 사형 제도는 폐지되어야 해! 하고 굳게 생각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작가가 후기에서도 썼던가 - 그런 것이 바로 소설, '이야기'의 힘이라고. 그 어떤 웅변가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강하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가 있으니..

이 책이 그렇게 설득력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살인 제도의 쟁점이 되는 문제들을 빠짐 없이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살인자'가 된다는 것이 과연 그 '살인자' 개인 만의 문제인가. (사실 이 부분에서 나는 개인적인 반성을 꽤 하였다.) 재판 과정에서 과연 공명정대한 판결이 내려진 것임을 확신할 수 있는가. 그리고 피해자 가족이 가해자를 '용서'하고 가해자는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회개했을 때, 그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무엇보다 사람이 - 물론 '국가'라는 공권력이라고 표현하긴 하지만 - 다른 사람의 목숨을 임의로 빼앗는다는 것이 옳은가.. 등

만일 '삼양동 할머니'처럼 나의 사랑하는 사람이 살인 범죄에 희생당했다면 나도 지금처럼 무작정 사형 제도를 반대하지는 못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적어도 이 소설을 읽고서는 사형 제도가 또 하나의 '살인'임을 부정하지는 못하겠다. 마지막에 진정으로 회개하고 사랑의 기쁨을 알게 되면서 평생 이렇게 좁은 곳에 갇혀 살아도 좋으니 살 수만 있으면 좋겠다고 하던 윤수의 모습에서, 살인 제도의 문제점을 더욱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남들은 이 소설을 읽으며 많이 운다고 하는데 나는 그다지 울지는 않았다. 평소 책이나 영화를 보면서 아주 몰입 정도가 심해서 눈물이 참 많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데 삼양동 할머니가 - 누구보다도 못 배우고 가난한 이 할머니가 주님의 가르침대로 원수를 용서하려고 애쓰는 장면에서만은 정말 많은 눈물이 흘렀다. 절대 용서해서는 안 될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처음으로 알 수 있었다.

사형과 관련해서 여러 가지 인용되었던 글귀들 중에서 가장 공감이 갔던 아래의 카뮈의 말. 이 소설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것을 가장 잘 뒷받침해 주는 또다른 말이 아닐까. -  "다른 품위라고는 아무것도 없으니, 오직 진실이라는 품위라도 회복할 수 있도록 이 형벌을 제 이름으로 불러서 그것이 본질적으로 어떤지 인정하자. 사형의 본질은 복수라는 것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