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과 남미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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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은 벌써부터 알고 있었지만, 친정에서 하는 가게 일을 돕느라 바쁜 데다 일주일에 사흘은 친정에서 자고, 아이도 없고, 모두가 바쁜 덕분에 풍랑이 일지 않는 생활이 가능했다. 도시에서나 있을 수 있는 어처구니없는 설정이었다. 겉으로는 어른이지만 실은 모두 어린애인, 흔히 있는 얘기였다.-23쪽

중요한 것은 식욕이 아니라, 신경을 써주는 마음이다. 생활에서 그런 것이 사라지면 사람은 점점 탐욕스러워진다.-101쪽

... 공기는 베일 듯 맑았다.-1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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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반양장) 반올림 1
이경혜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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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제목이 너무 강력하다. 그리고 몇 가지 추천의 말들을 보고 이 책을 사서 올해 우리 반 학급문고로 기증했다. 기증 전에 내가 먼저 읽어 보았는데.. 그다지 내공이 깊은 소설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야기 자체는 잘 읽히기도 하고, 나름대로 청소년들의 감성이나 생활을 잘 잡아내기는 하였다. - 작가 후기에서도 작가가 많은 청소년들과 인터뷰를 해서 소설을 썼다는 내용도 본 것 같다. 작가가 많이 노력한 흔적도 보인다. 그런데 음, 뭔가가 부족하다. 제목 때문에 기대가 너무 컸었기 때문일까.

그래도, '시체놀이'는 아이들에게 가치가 있는 경험이 될 것 같다. 만일 내가 지금 당장이라도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면 - 우리 모두 지금처럼 이렇게 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죽음은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충분히 생각해 볼 만한 일이고.

어른인데다 약간 시니컬하기까지 한 나는 그냥 그랬지만, 우리 반 아이들(중2^^;)은 이 책을 재밌게 읽고 있는 것 같다. 몇 달이 지난 지금 이 책이 아이들 손을 타서 꽤 너덜너덜해진 것을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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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세상일을 잊고 산다. 내가 사는 조그만 세계에 갇혀 이 세상에 얼마나 비참한 사람들이 많은지 또 억울한 사람이 많은지, 절망 속에 숨막혀 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해 정말로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으로 내 앞가림만 하고 나 편한 대로만 살고 있다.

아주 오래전 대학 시절,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읽고 왠지 싫어하게 되어 버린 공지영이라는 작가가 있었다. 나도 풋내 나던 시절이었지만, 그 때 그 작품에서도 어떤 '풋내'가 나서 그 이후로 공지영에게 어떤 나쁜 선입견 같은 게 생겨 버렸었다. 나는 그 때 이후로 변한 것이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아직도 미성숙하고 아직도 멍청하고 내가 뭘 어떻게 잘못 살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냥저냥 살고 있는데. 어느새 이 작가는 이렇게 성숙해져서 이런 멋진 소설을 들고 내게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 소설은 재미를 주기 위해 주인공인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곁들이고 있지만 - 사실 그보다는 사형 제도의 문제점을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그런 소설이다.  어떤 사람들이 읽어도 금방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게 써서 아주 효과적으로 그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 당장 나도 이 소설을 읽고 사형 제도는 폐지되어야 해! 하고 굳게 생각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작가가 후기에서도 썼던가 - 그런 것이 바로 소설, '이야기'의 힘이라고. 그 어떤 웅변가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강하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가 있으니..

이 책이 그렇게 설득력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살인 제도의 쟁점이 되는 문제들을 빠짐 없이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살인자'가 된다는 것이 과연 그 '살인자' 개인 만의 문제인가. (사실 이 부분에서 나는 개인적인 반성을 꽤 하였다.) 재판 과정에서 과연 공명정대한 판결이 내려진 것임을 확신할 수 있는가. 그리고 피해자 가족이 가해자를 '용서'하고 가해자는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회개했을 때, 그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무엇보다 사람이 - 물론 '국가'라는 공권력이라고 표현하긴 하지만 - 다른 사람의 목숨을 임의로 빼앗는다는 것이 옳은가.. 등

만일 '삼양동 할머니'처럼 나의 사랑하는 사람이 살인 범죄에 희생당했다면 나도 지금처럼 무작정 사형 제도를 반대하지는 못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적어도 이 소설을 읽고서는 사형 제도가 또 하나의 '살인'임을 부정하지는 못하겠다. 마지막에 진정으로 회개하고 사랑의 기쁨을 알게 되면서 평생 이렇게 좁은 곳에 갇혀 살아도 좋으니 살 수만 있으면 좋겠다고 하던 윤수의 모습에서, 살인 제도의 문제점을 더욱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남들은 이 소설을 읽으며 많이 운다고 하는데 나는 그다지 울지는 않았다. 평소 책이나 영화를 보면서 아주 몰입 정도가 심해서 눈물이 참 많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데 삼양동 할머니가 - 누구보다도 못 배우고 가난한 이 할머니가 주님의 가르침대로 원수를 용서하려고 애쓰는 장면에서만은 정말 많은 눈물이 흘렀다. 절대 용서해서는 안 될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처음으로 알 수 있었다.

사형과 관련해서 여러 가지 인용되었던 글귀들 중에서 가장 공감이 갔던 아래의 카뮈의 말. 이 소설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것을 가장 잘 뒷받침해 주는 또다른 말이 아닐까. -  "다른 품위라고는 아무것도 없으니, 오직 진실이라는 품위라도 회복할 수 있도록 이 형벌을 제 이름으로 불러서 그것이 본질적으로 어떤지 인정하자. 사형의 본질은 복수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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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네이버 백과 사전에서.

이 사진은 어쩐지 박제 같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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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2월 12일 전두환·노태우 등이 이끌던 군부 내 사조직인 '하나회' 중심의 신군부세력이 일으킨 군사반란 사건.

 10·26사건으로 대통령 박정희가 살해된 뒤 합동수사본부장을 맡고 있던 보안사령관 전두환과 육군참모총장이자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간에는 사건수사와 군인사문제를 놓고 갈등이 있었다.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세력은 군부 내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하여 정승화가 김재규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10·26사건 수사에 소극적이고 비협조적임을 내세워 정승화를 강제 연행하기로 계획하였다.

이를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11월 중순 국방부 군수차관보 유학성, 1군단장 황영시, 수도군단장 차규헌, 9사단장 노태우 등과 함께 모의한 후 12월 12일을 거사일로 결정하고 20사단장 박준병, 1공수여단장 박희도, 3공수여단장 최세창, 5공수여단장 장기오 등과 사전 접촉하였다. 그리고 12월 초순 전두환은 보안사 대공처장 이학봉과 보안사 인사처장 허삼수, 육군본부 범죄수사단장 우경윤에게 정승화연행계획을 수립하도록 지시하였다.

이 계획에 따라 12일 저녁 허삼수·우경윤 등 보안사 수사관과 수도경비사령부 33헌병대 병력 50명은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에 난입하여 경비원들에게 총격을 가하여 제압한 후 정승화를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강제 연행하였다.

한편, 총장의 연행에 저항할지도 모르는 특전사령관 정병주, 수경사령관 장태완, 육군본부 헌병감 김진기는 보안사 비서실장 허화평에게 유인되어 연희동 요정의 연회에 초대되었다. 연회 도중 총장의 연행사실이 전해지자 정병주·장태완 등의 육군장성들이 대응태세를 갖추려 하였으나, 이미 전두환이 박희도와 장기오에게 지시하여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점령하게 함으로써 육군지휘부를 무력화시킨 후였다.

이와 같은 일련의 사태진전은 당시 대통령 최규하의 재가 없이 이루어졌다. 사후 승인을 받기 위하여 신군부세력은 최규하에게 압력을 가하여 총장연행 재가를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이에 신군부세력은 국방장관 노재현을 체포하여 그를 통하여 대통령이 총장연행을 재가하게 설득하였다. 결국 최규하는 13일 새벽 정승화의 연행을 재가하였고, 이후 신군부세력은 제5공화국의 중심세력으로 등장하였다.

이 사건의 주도세력인 전두환과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재임한 1993년 초까지 12·12사태는 집권세력에 의하여 정당화되었으나, 그후 김영삼정부는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 사건이라고 규정하였다.

-- 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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