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 책 빌리러 갔다가 멀티미디어 룸에 가서 DVD를 봤다.
내가 보고 싶을 만한 영화가 좀체 없었는데.. 목록을 거의 끝까지 뒤지다가 겨우 이 영화를 찾아냈다. 별 기대를 안했는데, 기대보다 훨씬 유쾌하고, 그러면서도 생각할 여지를 주는 영화였다.
요즘 기업에서는 나이나 연공서열과는 상관없이 어린 사람들도 능력을 인정받으면 리더가 되어 자신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는 이런 상황을 좀 극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52세의 아버지. 갑자기 26세의 어리디 어린 사내를 상사로 맞게 된다. 경력이 있냐? 했더니, 없댄다, 그렇지만 빨리 배우니깐 괜찮댄다. 더럽다고 사표 내고 회사를 나가지도 못한다. 예기치 못했던 아내의 늦둥이 임신, 큰 딸의 대학 학비. 등 가족을 부양하는데 점점 돈이 더 많이 들어가게 되기 때문이다.
반면 잘 나가는 26세 이사님은 회장의 지시대로 구조조정 - 즉, 수많은 팀원들을 자르는 악역을 맡게 된다. 카페인 중독에 걸릴 정도로 커피를 마시고, 사무실에서 자고, 일요일에도 출근하고. 자신은 성공했다고 생각하고, 피라미드의 더 높은 자리를 향하여 끊임없이 달리지만, 그러는 만큼 개인적인 생활은 무너져가고 있다.
이 둘이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결국 26세의 상무는 자신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이었나를 깨닫게 된다.
김형태의 <너, 외롭구나>를 보면 '전통'을 무지 강조한다.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성공하는 사람은 없다고. 젊은 사람들은 '전통'과 나이든 어른들을 존경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어떤 면에서는 이 영화도 김형태님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런 부분에, 그리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또다시 대출을 늘리는 52세의 아버지의 모습에 완전 공감하고 마는 것은 나도 이제 '꼰대'가 되었기 때문일까. 여부는 확실치 않지만, 아아, 맞아. 하고 공감하고 말았다. ㅎㅎ
그리고 이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이 모두 너무 매력적이다.
아버지 역의 데니스 퀘이드. 감독 인터뷰에서 감독도 그런 말을 했지만, 정말 연기가 연기같지 않은, '현실적인' 연기를 해 주었다. 코미디 영화에서. ㅎㅎ
어머니 역은 마그 헬겐버그. 내가 좋아하는 CSI 라스베거스에서 많이 봐서 영화에 나온다는 사실만으로도 반가웠다.
26세 이사 역은 토퍼 그레이스. 무슨 시트콤에 나오던 아이라고 하는데, 정말 이 역할에 딱 들어맞게 연기를 잘했다. 그리고 무지 귀여웠다.
그리고 내가 이 영화를 보게 만든 스칼렛 요한슨. 요즘 가장 좋아하는 외국 여자 배우다. 예쁘면서도 독특하고, 예측을 벗어나게 행동한다. 그래서 좋다.
저 블라우스가 너무 예뻤다. ^^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알았는데, 이 영화의 감독 폴 웨이츠는 <어바웃 어 보이>를 감독한 사람이었다! 오오오. 역시. 어바웃 어 보이를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분명히 이 영화도 좋아할 것이다. 재미있었던 건, 이 사람이 <어메리칸 파이>를 기획한 사람이라고. 나는 어쩐지 연결이 안 되지만-. 이 감독이 연출하고, 어바웃 어 보이의 휴 그랜트와 데니스 퀘이드가 주연을 맡은 <어메리칸 드림즈>라는 영화가 있다는 것도 네이버 영화 검색을 통해 알아냈다. 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