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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구판절판


나는 소설의 힘을 믿지 않았다. 소설은 그저 재미있기만 할 뿐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책을 펼치고 덮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단순한 스트레스 해소용 도구다. 내가 그런 말을 하면 정일이는 늘 이렇게 말한다.
"혼자서 묵묵히 소설을 읽는 인간은 집회에 모인 백 명의 인간에 필적하는 힘을 갖고 있어."
내가 전혀 이해하지 못할 소리였다.
"그런 인간이 늘어나면 세상은 좀 더 좋아질 거야."

- 전적으로 공감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럴싸한 말.-85쪽

"지금 네 주먹이 그린 원의 크기가 대충 너란 인간의 크기다. 그 원 안에 꼼짝 않고 앉아서, 손 닿는 범위 안에 있는 것에만 손을 내밀고 가만히 있으면 넌 아무 상처 없이 안전하게 살 수 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겠냐?"-65쪽

국적이라든가 민족을 근거로 차별하는 인간은 무지하고 나약하고 가엾은 인간이야. 그러니까 우리들이 많은 것을 알고 강해져서 그 인간들을 용서해주면 되는 거야. 하기야 뭐 나는 그런 경지에 도달하려면 아직 멀었지만."-102쪽

"스페인 말이야. 나는 스페인 사람이 되려고 했다."
"......."
"하지만 소용없었어. 언어의 문제가 아니었다구."
"그렇지 않아. 언어는 그 사람의 아이텐티티 그 자체고....."
아버지가 내 말을 가로막았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그럴지도 모르지만 인간은 이론으로는 다 해명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 거야. 뭐, 너도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107쪽

"이런 어둠을 알아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 어둠을 모르는 인간이 빛의 밝음을 얘기할 수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네가 좋아하는 니체가 말했어. '누구든 괴물과 싸우는 자는 그 과정에서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오래도록 나락을 들여보다 보면 나락 또한 내 쪽을 들여다보는 법'이라고 말이야. 그러니까 조심하라구."-108쪽

나는 한 번도 만난 적 없이 죽어버린 삼촌을 생각했다. 일본에서 북조선까지 비행기를 타면 몇 시간이면 갈 수 있을까? 두 시간? 세 시간? 나는 비슷한 시간에 한국까지 갈 수 있다. 하지만 북조선에는 갈 수가 없다. 뭐가 그렇게 만드는 것일까? 깊은 바다가? 넓은 하늘이? 인간이다. 돼지 같은 놈들이 대지 위에 또아리를 틀고 앉아 자기 영역을 주장하면서 나를 몰아내고 삼촌을 만나지 못하게 한 것이다. 믿을 수 있겠는가?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세계가 놀랄 만큼 좁아진 이 시대에 불과 몇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장소에 갈 수 없다는 것을. 나는 북조선 땅에 또아리를 틀고 앉아 으스대다 썩어갈 놈들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232쪽

"내가 국적을 바꾼 것은 이제 더 이상 국가 같은 것에 새롭게 편입되거나 농락당하거나 구속당하고 싶지 않아서였어. 이제 더 이상 커다란 것에 귀속되어 있다는 감각을 견디면서 살아가고 싶지 않아. 이젠 사양하겠어. 설사 그것이 무슨무슨 도민회 같은 것이라도 말이야."-2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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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05-23 0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을까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어찌 이 말때문에 읽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팍 오는대요?

알맹이 2007-05-24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늘 소 닭보듯 했었는데요;; 읽어보니 괜찮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