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 전기소설의 여인상
장기근 지음 / 명문당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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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신화와 중국소설과의 관련성을 다룬 책을 읽다 보니 문득 지괴소설이나 전기소설을 읽고 싶어졌다. 여태까지는 관심도 없었고 더욱이 그런 장르가 있는지도 알지 못하였다. 이 책 <당대 전기소설의 여인상>은 표제에 현혹되기 쉬운데 솔직히 말해서 내용과 표제는 그다지 연관성이 없다. 이 책은 당나라 전기소설의 대표작 18편을 편역한 작품집이다. 전기소설에 입문하기 적합한 책이라고 하겠는데 한가지 변수가 있다. 즉 원본 번역이 아니라 편역이라는 점이다. 읽어나갈수록 옮긴이의 주관과 윤색이 많이 반영되어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으며, 때로는 작품 내용조차도 임의로 짜깁기할 정도이므로 원전의 충실한 모습을 확인하고자 한다면 추천하기 어렵다. 윤색의 정도가 가장 심한 게 <장한가전>이며, <무쌍전>의 결말은 원전과 전혀 다르기에 거의 각색 수준이라고 할 정도다.

 

1부 애절한 사랑 이야기 : 앵앵전, 곽소옥전, 이와전, 양창전, 장한가전

 

여성의 단심을 배반하는 무정한 남성이 등장하는 이야기가 <앵앵전><곽소옥전>이다. 장생과 앵앵이 결합하지 못할 이유는 없지만 장생은 스스로 이를 피한다. 그의 변명은 구차하지만 앵앵은 담담하며 의연하게 받아들인다. 후에 장생이 만나보고자 하지만 부질없는 짓이다. 만나서 무엇하겠는가? 그나마 여기서는 비극적 파탄으로 이어지지 않은 반면 곽소옥과 이익의 사연은 정염의 불꽃이 휘몰아치는 듯하다. 곽소옥이 이익에게 바라는 바는 크지 않다. 출세하면 첩실로라도 받아들여 달라는 것, 이익이 벼슬길에 올랐을 때 죄인처럼 곽소옥을 피해 다니는 몰골은 구질구질하기 이를 데 없다. 마지막 상면 대목에서 곽소옥의 부르짖음은 너무나 처절하다. 한 여인의 순정을 짓밟아 놓고 영혼마저 말라버리게 한 죄악에 대가가 뒤따라야 함은 당연하다.

 

아무리 소첩이 박복하고 운수가 기구한들 남정네가 그렇듯이 박정하고 의리 없이 무고한 계집을 내팽개칠 수가 있습니까? 기진맥진한 소첩 이제는 욕할 기력조차 없으며 또 더 이상 생명을 지탱할 여력도 없습니다. 오직 남은 길은 이승을 하직하고 저승으로 갈 뿐이옵니다. (P.67)

 

양씨와 총관의 신분과 지위를 초월한 사랑이 불행한 결말로 이어짐은 안타깝다. 누구를 탓할 수 있으랴, 그저 운명일 뿐. 양귀비와 당 현종의 이야기는 역사적으로 너무나 유명하다. 그네들이 평범한 촌민이라면 거리낄 것 없이 행복한 사랑의 삶을 살아갔을 텐데 그러기엔 너무나 지위와 신분이 높았다. 후대인은 인정에 약한 듯싶다. 나라를 망친 임금과 여인임에도 그네들의 사랑을 애절하고 낭만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니. 게다가 양귀비는 착한 신선들의 세상에 살고 있다고 하니 말이다.

 

<이와전>이 내용과 구성의 조화 면에서 무척 흥미롭다. 여주인공은 극과 극의 성격을 작중에서 보여주는데 공자를 파멸과 죽음 직전으로 몰아넣는 악역을 맡다가 돌연 그를 구원하고 입신출세하도록 지극정성으로 내조하는 인물로 변신한다. 이와의 눈부신 변신과 공자의 생사를 넘나드는 삶, 형양공의 비정과 온정을 넘나드는 부정이 매우 잘 짜여 있다.

 

2부 인간과 신괴와의 교감 : 고경기, 백원전, 임씨전, 유의전

 

전기소설은 기이한 이야기를 전한다는 뜻이다. 이런 의미에서 제2부와 제3부가 전기소설의 본령에 어울리는 기이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동물이 인간으로 변신하는 경우는 옛이야기에서 자주 보이는 소재다. 아무나 그런 게 아니라 오래 묵어 신통력을 지닌 동물이 그러한데, <고경기>의 너구리, <임씨전>의 여우가 이에 해당한다. 두 작품은 모두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 전자는 인간 세상의 추악함, 후자는 박정하고 표리부동한 여성들의 행태를 비난한다. 인간사회를 동경하던 너구리는 이렇게 말한다.

 

겉으로는 인간세상이 화려하고 즐거워 보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안에 들어와서 직접 겪어보니 참으로 겁나고 추악한 구석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 자신이 사람으로 탈바꿈한 것을 스스로 뉘우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P.131)

 

<고경기>에서 재앙의 원인을 악귀 망령들의 만행으로 이해하는 대목에서 시대적 관념을 떠올릴 수 있다. 한편 구양순을 비난하고 조롱하기 위한 창작이라고 평가받는 <백원전>은 정말로 비판인지 아니면 그의 위대함을 기이한 출생으로 미화하는 것인지 모호하다. 자신의 친부가 원숭이라면 응당 기분 나쁘겠지만, 고대의 제왕과 영웅들은 모두 기이한 출생을 하였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동정호 용왕의 친동생이 전당강을 다스리는 전당군인데 <유의전>에서 매우 용맹한 장군으로 기술되고 있다. 전당강 물결의 사나움을 이렇게 문학적으로 형상화하였으니 흥미롭다. 용녀를 위기에서 구하였음에도 그녀와의 결혼을 올바르지 않다고 거부한 유의의 의연함과 지조는 결국 해피엔딩을 맞이하였으니 제2부 수록작 중 유일하게 긍정적 결말이다.

 

3부 환상과 영혼의 세계 : 두자춘전, 침중기, 남가태수전, 이혼기

 

현실은 행복보다 불행이 많다. 즐거운 일보다 고달픈 경우가 더 많다. 현실이 어려울수록 사람들은 꿈과 상상의 세계를 동경한다. 만사가 내가 원하고 뜻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세상,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 가닥 위안을 얻고자 함이다. <침중기><남가태수전>이 그러하다. 각각 노생지몽남가일몽이라는 고사성어의 출처에 해당하는 이야기들이다. 인생의 부귀영화는 봄날의 덧없는 한줄기 꿈에 불과하다는 것.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속으로는 그 꿈이 영원히 깨지 말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못내 입맛을 씁쓸하게 한다.

 

모두가 꿈이었구나.”

도사가 빙그레 웃으며 말한다.

인생의 부귀영화가 그렇듯이 덧없는 것이니라.” (222)

 

<두자춘전>은 도가사상의 영향을 짙게 드러낸 작품이다. 불로불사의 선약을 완성하기 위해 완전한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를 것을 요구하는 도사. 이것에 성공하면 두자춘은 신선이 될 수 있다, 모든 인간적 욕망과 본성을 포기할 수 있다면. 자식에 대한 사랑을 포기할 수 없어 실패하고 만 선약 완성. 선약의 실패가 그에게는 행일까 불행일까 그것은 알 수 없다. 다만 인간이 인간다움을 포기한다면 인간이라고 불릴 수 있을지, 신선이 된다고 해서 무슨 행복이 있을지 회의적이다.

 

한 사람의 혼을 둘로 갈라지게 할 수 있다면 지극한 사랑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부모를 떠난 천낭 아씨와, 병들어 누워 있는 천낭 아씨. 두 사람은 수년간 독자적으로 살아왔지만 결국은 한 사람이었기에 하나가 됨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두 사람의 별개의 삶이 부정당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주목할 대상은 오직 현실의 장애를 뛰어넘는 사랑의 힘이므로.

 

4부 여협객 : 규염객전, 무쌍전, 유씨전, 곤륜노, 홍선전

 

일단 제4부가 왜 여협객인지 모르겠다. 수록작 중 여협객이 나오는 작품은 <홍선전> 하나뿐이다. 당대의 권세가에 당당하게 도전하는 이정을 따르는 홍불의 대담함을 인정하지만 여협객이라고 하기는 곤란하다. 무쌍을 구해내는 이는 협객 고압아이고, 유씨를 구출했던 것은 군관 허준이다. 안타깝게도 왕선객과 한익은 연인을 구해낼 능력을 지니지 못하였다. 주인을 위해 홍초를 빼내온 영웅적 역할도 최생이 아니라 그의 검둥이 노복 곤륜노였다.

 

<규염객전>에서 주목할 점은 협객이 아니라 당 태종이 되는 이세민을 향한 예찬이다. 새로운 세상을 수립할 야망을 품은 규염객을 좌절시키는 이는 천명을 받은 이세민이다. 그가 있는 곳에는 왕기가 서리고 천명을 받았음을 규염객과 그의 스승 도사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천명을 받은 이에 대항할 수 없기에 규염객은 모든 것을 이정에게 건네주고 남만으로 떠난다. 시대적 성격을 반영한 동시에 후대인들의 당 태종에 대한 존경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의외의 인물에게서 예상치 못한 뛰어난 능력을 발견하는 재미는 흥미진진하다. 곤륜노가 실은 누구도 상대 못 할 무예의 고수였다는 점은, 그러한 능력자가 왜 비천한 노비 생활을 살고 있는지 합리적 설명으로는 불가능하다. 곤륜노의 신출귀몰한 무술 솜씨와 아울러 당대에 남만의 검둥이 노복을 부리는 게 유행이었다는 점이 이채롭게 다가온다. <홍선전>의 주인공인 홍선이 기생 신분이라는 점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공중비행술과 은신술 같은 비범한 무술을 지녔음에도 천한 가기(家妓)의 삶을 감내한다. 두 세력 간의 전면전을 절묘한 솜씨로 막아낸 후 홀연히 속세를 떠나고자 하는 그녀를 작가는 신선처럼 묘사하고 있다.

 

이 책에서 돋보이는 점은 전기소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저자의 노력이다. 저자는 서언에서 전기소설의 개론을 통해 정의와 특성, 배경 및 분류 등을 친절하게 소개한다. 결언에서는 수록작에 대한 작품 해설을 통해 역시 각 작품에 대한 독자의 이해와 저자의 편역 의도를 밝히고 있다. 전기소설이 기이하고 비현실적 소재를 사용한 것이 단지 대중의 흥미를 끌기 위한 차원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의 다층성과 다면성, 불합리성을 드러내고 모순과 악덕을 고발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음을 알려준다. 무엇보다 전기소설의 주인공은 왕후장상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기생, 노비, 상두꾼 같은 하층계급뿐만 아니라 동물도 당당한 한몫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자못 근대적이라고 할 만하다.

 

당대의 전기소설을 일목요연하게 훑어보려던 의도는 저자의 과도한 윤색과 각색으로 온전하지 못하였다. 보다 원전에 가까운 내용을 알기 위해 부득불 다른 책을 추가로 집어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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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신화 그리고 소설
이인택 지음 / 울산대학교출판부(UUP)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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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신화와 전설을 다룬 책을 읽고, 중국 신화에 관한 MOOC 강의를 듣다 보니 자연스레 강의자가 집필했던 이 책에 관심이 쏠렸다. 신화의 시각에서 중국소설을 조망한다니 무척이나 흥미로울 것 같았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적어도 내게는 무척 유용하면서도 흥미진진하였다고 하면 충분하리라.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3부가 핵심적 내용이다. 우선 제1부는 중국 신화에 대한 개론적 소개다. 2부는 간략한 중국 소설사에 해당한다. 4부는 중국 소수민족 신화를 다룬다. 전체적 맥락에서 보면 구성에 짜임새가 있다고 하기 어렵고, 중국 신화와 소설의 관계를 다룬 글을 중심으로 관련 글들을 모아놓았기에 각 편을 독립적으로 읽어도 나쁘지 않다. 중국 신화에 문외한인 독자가 이 책을 읽으면 중국 신화와 중국소설의 이해라는 일거양득을 거둘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일장일단이 있겠다.

 

1부 중국 신화는 앞서 언급했듯이 중국 신화 개론이다. 여기서 저자는 신화의 정의와 특질에서 출발한다. 이어서 신화에 대한 이해와 고전문학의 깊은 상관성을 강조한다. 중국 신화가 대중적인 그리스·로마 신화에 친숙한 독자의 눈에는 생소하고 이질적으로 비쳐지는 이유가 일관성 있는 신화 체계가 없다는 점도 언급한다. 확실히 중국 신화는 단편적으로 산재하기에 내용상 모순이 있을 수 있다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론에 이어서 대표적인 중국 신화와 고사 내용을 소개하고 있는데, 천지와 인류 기원, 자연계, 영웅, 전쟁과 갈등, 재생과 변형, 그리고 원국이인. 마지막으로 기타 유형과 같이 유형별로 나누어 중국 신화 고사를 전반적으로 훑고 있어 중국 신화에 대한 기초 소양이 부족한 독자라도 이후 전개되는 논의를 충분히 따라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2부 중국소설도 역시 소설의 정의와 기원 등의 이론을 간단히 다루면서 출발한다. 이어서 개략적인 중국 소설사가 이어지는데, 육조의 지괴 고사, 당의 전기소설에서 근래 루쉰을 거쳐 현대 중국소설의 주요 작가에까지 죽 훑어나가고 있어 중국 고전소설이라면 4대기서 외에 알지 못하는 일반 독자들에게 중국소설의 문학적 전통과 유래가 매우 뿌리 깊음을 일깨워 주고 있는 동시에 제3부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게 될 중국소설과 신화의 내용에 대한 기초지식을 전달해 주고 있다. 한편 견우직녀 고사와 서왕모 고사의 문학적 변천을 별도의 장에서 다루고 있어 이채롭다.

 

3부 중국소설의 신화 운용 편은 핵심적 내용답게 분량 면에서도 가장 많은 영역을 차지한다.

 

중국신화와 소설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그 연원이 길며, 신화 자체의 내용과 모습이 변화하는 와중에도 소설은 시종 자신의 특성을 지닌 채 신화를 운용해왔다. 소설가들은 신화를 소설의 소재로 하여 기교운용상의 도구로 삼거나 비유를 위해 쓰기도 하고, 때로는 신화 전체를 빌려 소설의 구성에 활용하기도 한다. 소설이 신화의 영향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P.163)

 

이 편의 모두에서 저자가 선언 조로 주장한 의견이다. 저자의 이러한 의견을 염두에 두면서 이후 다루어지는 내용을 살펴보면 저작의 성격과 의의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시기별로 선진, ..육조, , ., ., 현대 소설로 구분하고 있는데, 선진은 고사, ..육조는 신괴 소설, 당은 전기 소설, .원은 화본 소설, .청은 소설로 각기 시기별 소설의 특성을 핵심적으로 짚어내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명.청 시기로 접어들어 서유기, 홍루몽 등이 나오기 전까지는 생전 처음 듣는 작품명이 많이 나왔기에 저자의 친절한 풀이에도 불구하고 해당 소설이 신화와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신화가 작품 속에서 운용되는 양태를 쉽사리 알아차리기는 여의치 않았다.

 

그럼에도 후대보다는 육조 시기에 지인.지괴고사가 신화와 전설의 원형이랄까 변형 이전의 순수한 면모를 많이 지니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당 시기의 전기 소설부터 소설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음은 의미심장하다. 단순히 신기하고 기이한 고사를 소개하고 전달하는 차원을 넘어서 신화를 소재 또는 모티프로 삼아서 문학 창작이라는 적극적 행위에 반영하고 있다.

 

당 전기 소설 작가들은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신화를 작품에 운용하여 창조적 문학을 만들어왔다. 어떤 때는 직접적으로 신화 소재를 빌어 운용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신화의 주제나 모티프를 반영하기도 한다. (P.224)

 

.원 시기에 이르러서는 신화 운용에서 변형이 발생하는데, 신화는 이제 종교적, 사상적 의의를 상실하고 오락적 목적의 도구로 전락한다. 신화의 드높은 지위가 바닥으로 추락한 셈이지만, 사회의 발전 차원에서 보면 이성의 확장을 뜻하므로 불가피한 셈이다.

 

, 청 시기에서 여러 작품을 소개하지만 <서유기>, <홍루몽>, <요재지이>를 특히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어 신화와의 깊은 연관성을 알 수 있게 한다. 서유기와 요재지이는 그렇다 하겠지만 홍루몽에서 신화적 요소를 많이 찾을 수 있다니 다시 한번 읽을 기회가 있다면 유심히 살펴볼 일이다. 마지막으로 현대 소설의 신화 운용 편은 전적으로 루쉰의 <고사신편>을 분석하고 있다. 오래전에 읽어서 어렴풋한 기억밖에 없지만 새삼 저자의 충실한 풀이와 해석을 보자니 흥미롭게 되새겨 볼 수 있다.

 

4부 중국 소수민족 신화에서는 타이완 원주민, 납서족[나시족], 묘족[먀오족]의 신화를 소개하고 있어 신화 애호가라면 흥미롭겠지만, 이 책의 전반적 기조, 즉 소설의 신화 운용이라는 주제로 볼 때 다소 곁가지라고 보는 게 마땅하다.

 

중국 소설사를 훑어볼 때 제법 많은 신화와 전설의 영향과 반영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서양 고전문학에서 그리스·로마 신화를 모르면 깊은 함의를 이해 못 하는 것처럼 중국 고전문학에서도 시는 물론이고 소설도 마찬가지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신화의 신비성과 환상성, 신화 속 영웅의 강렬하고 숭고한 의지와 삶의 분투가 시대를 초월하여 사람들의 심금에 직접적으로 호소하는데 연유하기 때문이며, 그것은 현대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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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경 - 지만지고전천줄 38
동방삭 지음, 김지선 옮김 / 지만지고전천줄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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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얄팍한 이 책을 펼쳐 든다면 황당함을 느끼게 된다. 뭐 이런 책이 다 있어 하며 책장을 덮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만큼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과 언급하는 항목은 사실과 무관하며, 이성과 상식을 초월한다. 믿거나 말거나 전적으로 독자의 선택이다. 오죽하면 책 제목도 신기하고 기이하다고 붙여놓았으니 말이다. 저자는 누군가? 장수의 대명사로 유명한 삼천갑자 동방삭이다. 해설에 따르면 원저자는 알지 못하며, 동방삭의 이름을 가탁한 것으로 간주한다.

 

<산해경>과 내용과 형식 면에서 유사하여 영향을 받았음이 인정된다. 곳곳에 보이는 도교적 색채는 이 책이 <산해경>과 차별되는 지점일 것이다. 이 책의 저자와 독자는 여기에 수록된 황당하고 기이한 인물과 사물, 현상을 진실로 수용할지 아니면 단순히 흥미를 끌기 위해 꾸며낸 이야기로 간주할지 궁금하다. 의도를 갖고 지어낸 이야기로 볼 만한 진술을 간혹 찾을 수 있다.

 

[선인(善人)] 거짓말을 하지 않고 배시시 웃기만 하니 언뜻 그들을 보면 마치 바보와 같다. (P.24)

 

[불효조(不孝鳥)] 하늘이 이 기이한 새를 만든 것도 (이를 본보기로 하여) 충효를 보여주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P.161)

 

선을 행하는 사람이 바보 취급을 당하는 현실, 충효의 미덕이 상실되는 세태를 풍자하고 비판하려는 의도를 쉽게 읽을 수 있다. 오늘날도 착한 사람은 바보로 불리게 마련이다.

 

<신이경>의 가치는 학술적으로 <산해경>과 더불어 중국의 신화와 전설의 중요한 원전이라는 점에 기인한다. 현대에 와서는 상상력과 창의력을 자극하는 문화콘텐츠의 원천이기도 하다.

 

서왕모(西王母)는 애초 성별도 불분명한 존재였는데 여기에 이르러서 비로소 여성이며, 동왕공(東王公)이라는 배우자를 갖게 되었다. 동왕공은 동황경 동왕공 편에 처음 나타나며, 중황경 곤륜천주 편에 희유(希有)라는 큰 새를 통해 서왕모가 남편을 만나러 이동한다고 풀이한다. 음양 사상과 부계사회의 자취를 확인할 수 있다.

 

[성인(聖人)] 사람들이 다니는 땅의 지리에 밝고 백 가지 곡식 중 먹을 수 있는 것과 못 먹는 것을 분별해 내며 풀과 나무 중 어느 것이 짜고 쓴 것인지를 안다. 이름을 성()이라고 하며, 일명 철(), (), (), 무부달(無不達)이라고 한다. 세속의 사람들이 이들을 보면 절을 하는데 신령함과 지혜로움을 느끼게 된다. (P.79)

 

성인의 판단 기준이 매우 실용적임을 보게 된다. 유학 경전을 잘 외는 사람이 아니라 백성에게 유용하고 삶을 풍족하게 하는 사람이 성인이다. 한대에 이미 교조화된 유학의 폐해가 은연중에 드러나 있다.

 

역사는 항상 승자의 산물이다. 승자의 관점에서 미화되고 보전되며 패자는 잊혀지거나 왜곡된 기록으로만 남게 된다. 황제의 후손인 전욱과 싸워 패한 염제의 후예 공공이 그러하다.

 

[공공(共工)] 오곡과 금수를 먹으며 음식을 탐내고 미련한데 이름을 공공이라고 한다. (P.113)

 

현재도 중국 소수민족으로 존재하는 묘족(苗族)에 관한 기록도 보인다. 요와 순에게 반기를 들었던 그들의 지위 전락이 참담하다.

 

[묘민(苗民)] 천성적으로 재물과 음식을 탐내며 음란하고 방종한데 이름을 묘민이라고 한다. (P.95)

 

혼돈(渾沌)이라는 짐승에 대한 서황경 혼돈 편의 소개는 독특하다. 인간의 지성이 있지만 덕을 싫어하고 악을 좋아하는 천성이라고 하니 혼돈 자체에 대한 당대인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주석에서는 인간 이하의 행동을 하며 동물보다 못한 비열한 인간에 대한 풍자라고 풀이한다. 이 책에서는 인간과 동물의 구별이 명확하지 않다. 고니에게 잡아먹히는 곡국인(鵠國人), 잡아먹으면 충치에 물리지 않는다는 주의소인(朱衣小人), 물고기와 사람으로 변신하는 횡공어(橫公魚) 등은 물론 암컷밖에 없어서 인간 남자와 교합해야 새끼를 밴다는 주수(綢獸)라는 동물이 그러하다.

 

저자는 옥계(玉鷄)와 천계(天鷄), 화서(火鼠), 박보(朴父) 같은 기이하고 상상력이 극대화된 존재들도 다루고 있지만, 사람과 동물의 선과 악에도 민감하다. 악독하고 간사한 존재인 환두(驩兜), 도철(饕餮), 혼돈, 궁기(窮奇)가 한편이라면 무로지인(無路之人), 해치수는 사람이나 만물을 해치지 않으며 정직한 존재이다. 세상에 악이 득세하지만 선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는 의도로 이해하고 싶다.

 

[해치수(獬豸獸)] 천성적으로 충성스럽고 정직하다. 사람들이 다투는 것을 보면 잘못한 사람을 들이받고 말싸움하는 것을 들으면 거짓말한 사람을 물어 씹는다. 이름을 해치라고 하고 일명 임법수(任法獸)라고도 한다. (P.169)

 

중국의 신화와 전설에 대한 기초지식을 지닌 사람이라면 흥미롭게 읽어나갈 수 있다. 반대로 이 책을 통해 중국 신화와 전설의 원류를 확인할 수도 있다. 대중적으로 될 수 없는 타고난 운명을 가진 책이지만 관심을 가지고 일독한 가치는 충분하다.

 

옮긴이는 충실한 번역문, 원문, 꼼꼼한 주석의 형태로 독자에게 최대한 친절을 베풀고 있다. 원전의 분량이 많지 않기에 완역을 하였으며, 산일 된 몇 편도 함께 수록하여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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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신화전설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
위앤커 지음, 전인초.김선자 옮김 / 민음사 / 199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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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이 창세부터 은나라까지를 다루었다면, 2권은 주나라와 진나라를 대상으로 삼고 있다. 본격적인 역사 시대에 해당하기에 수록한 내용도 신화가 아닌 전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 시기에 관련한 각종 사료가 비교적 풍부하게 남아 있어서 통상적인 의미에서 신은 더 이상 존재할 명분과 근거를 상실하여서다.

 

왜 중국에서는 신화전설을 확실하게 구분하지 않고 한꺼번에 묶어 같은 범주에 두는가 등의 문제들은 중국만의 <개별적>인 특성을 이해해야 대답이 가능한 것들이다. 서구의 보편적 틀에 맞추어 <이것이 신화이고 이것은 전설이다>라고 일도양단식으로 답을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P.368)

 

2권에 실린 전설과 고사들은 비교적 친숙하다. <사기 열전>, <열국지>, <초한지> 등을 비롯한 여러 고전을 통해 대강의 인물과 사건 등을 접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신화의 장엄하고 신비로운 아우라를 기대하지 않고, 공식적인 역사서의 뒤안길을 보충하는 야사 또는 야담으로 간주하면 흥미롭게 읽어나갈 수 있다. 주 목왕과 서왕모의 만남 정도를 제외하면 포사를 웃게 하려다 생긴 서주(西周)의 멸망, 공자와 노자, 묵자에 얽힌 일화, 오자서와 토사구팽, 진시황 등이 이 책에서 다루는 굵직한 사건과 인물이다.

 

공자 자신이 <괴이한 것을 언급한> 적도 많은데, 여러 가지 기록에서 그러한 예를 찾아볼 수 있다. 공자가 괴력난신을 말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제자들이 스승을 위해서 체면치레로 그랬던 것일 뿐, 사실은 그리 믿을 만한 주장이 못 되는 것 같다. (P.81)

 

무엇보다도 공자와 그의 제자들 이야기가 이채롭다. 소위 괴력난신과는 거리를 멀리하였던 공자에 얽힌 괴력난신의 고사들은 역설적 쾌감을 독자에게 안겨준다. 물론 여기에 소개된 고사들이 모두 실제라는 근거는 없다. 공자를 존경하여 권위를 더해주거나 아니면 공자를 깎아내리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진 이야기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말싸움에서 공자를 이긴 어린아이 향탁 전설만 보더라도 말싸움의 소재와 공자의 대응이 극히 유치하다. 게다가 공자는 유세술의 달인으로 보기 어렵다. 굶주린 처지에서 거대한 물고기 요괴를 쓰러뜨린 후 서둘러 요리하기 시작하는 공자 제자들의 모습도 더없이 인간적이다.

 

묵자에 관한 전설에서는 사상가가 아닌 기술자 묵자와 못지않은 공수반 즉, 노반의 뛰어난 기술 솜씨가 관심을 끈다. 오늘날의 로봇과 드론 종류를 만들 정도의 실력이었으니 후대 기술자들에게는 신격화된 존재였고, 그에 관한 민간전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한다. 새로운 인물을 발견하는 재미가 남다르다.

 

와신상담, 토사구팽, 오월동주 등의 고사성어를 양산한 오나라와 월나라의 대결, 그리고 오자서의 원한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초나라를 탈출하여 오나라로 도주하는 오자서의 여정은 결코 평탄하지 못하였다. 그를 돕던 노인과 여인이 그의 의심으로 인해 연달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 딱한 대목에 이르러서는 오자서의 최후가 비극으로 막을 내릴 수밖에 없는 당위성이 바탕에 깔려 있음을 깨닫는다. 더구나 오왕에게 충성하기 위해 자신의 일신과 가족을 희생한 후에 흘리는 요리의 눈물은 인생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한다.

 

요리가 몸을 일으켰는데 얼굴이 눈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는 솟구쳐오르는 격정을 주체하지 못하며 말했다.

나는 내가 도대체 무슨 바보 같은 짓을 한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소. [......] 이런 세 가지 죄악을 범했는데 어찌 계속 이 세상에 살아 있을 수 있겠소.(P.214-215)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자신의 목을 바친 미간척과 <삼왕묘>의 처절함, 가난한 시절 헤어졌다가 수십 년 만에 해후한 진나라의 늙은 승상 백리해 부부의 눈물범벅, 노기등등하게 진시황을 꾸짖는 맹강녀의 분노. 역사서에 빠져 있거나 들어 있다고 해도 단지 한두 줄에 불과한 사연이 전설과 고사에서는 구구절절하게 이어진다. 전설이 시간의 시험을 견디고 살아남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역사 사건을 그대로 전하려면 역사서의 기록으로 족하다. 그것이 민간 전설이 되어 오랜 세월 전승된다는 것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기 때문인데 그것은 그 전설들이 일반 국민들의 정서에 부합되기 때문이다. (P.370)

 

역사상의 진시황은 공과가 뒤섞인 인물이다. 민간전설에서도 만리장성과 아방궁, 불사약, 맹강녀처럼 탐욕, 잔인, 비인간성을 드러내는 고사를 여럿 확인할 수 있다. 제아무리 폭군으로 치부되더라도 그는 분열된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인물임을 부정할 수 없다. 저자의 말대로 그를 하걸, 은주, 주유 같은 부류와 동급으로 비교할 수는 없다. 어쨌든 그는 영웅적 제왕이고 걸물이었기에 그의 신성(神性)을 인정하는 전설도 제법 볼 수 있음은 당연할 것이다.

 

<중국신화전설>을 읽다 보면 너무나 매끄럽고 체계적으로 정리된 중국의 신화와 전설에 감탄하게 된다. 창세신화에서 시작하여 수많은 신과 괴물, 영웅과 신선들이 눈앞에서 꿈틀거릴 정도로 생생하게 기술되어 있다. 이것이 원래 그러한 게 아니라 저자 위앤커가 다듬은 결과라는 사실을 작품 해설을 통해 알게 되었다. 무수한 단편들을 한 줄로 꿰는 과정은 매우 힘겨웠을뿐더러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분명히 인위와 주관, 오류가 개입할 수밖에 없었을 테니 한계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본래 단편적인 중국의 신화 자료들을 모아 <체계적 신화>로 정리한 그[위앤커]의 작업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단편적인 이야기들을 모아 서사 구조를 지닌 이야기로 만들어가다가 보니 저자의 상상력이 가미되어 이야기들이 인위적으로 연결된 부분이 눈에 띄기도 하고, 부분적인 신화 인물에 관한 해석에 있어 저자의 주관이 개입된 부분이 많이 보이기도 한다. (P.372)

 

그럼에도 저자의 작업에 경의를 표하는 동시에 부럽기도 하다. 정작 우리네는 단군신화를 비롯한 몇 개의 짤막한 건국신화를 제외하면 이 책에 비견할 정도로 신화와 전설 등이 남아 있는지, 그리고 있다면 토막 난 단편으로 방치할 게 아니라 읽어서 민족의식을 앙양할 수준으로 정리하는 작업은 언제쯤 이루어질지 막막한 심정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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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신화전설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
위앤커 지음, 전인초.김선자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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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와 북유럽 신화를 읽다 보니 자연스레 동양 신화, 그중에서도 중국 신화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머릿속에 중국 신화란, 삼황오제 정도만 어렴풋이 남아 있을 뿐이며, 그것도 신화인지 역사인지 모호하게 드리워져 있어 도대체 중국에 일반적 의미에서의 신화가 존재하는지 여부를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위앤커의 <중국신화전설 1>을 보면, ‘개벽편에서 하은편까지 시대순으로 중국의 신화와 전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어 마치 역사책을 읽는 마냥 자연스레 흐름이 이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렇게나 체계적이고 짜임새 있는 중국 신화를 이전에는 왜 미처 몰랐을까 할 정도로. 그것은 전적으로 중국 신화학계의 대부라고 할 저자 위앤커의 공로가 크다. 단편적이고 산재되어 있는 이야기의 조각들을 짜 맞추어 흥미롭고 다채로운 신화 세계를 재창조하였다.

 

중국 신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세계 창조와 인류 창조를 다룬 개벽편과 황제(黃帝)가 최고신의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염제(炎帝)와 그 후손들과 벌이는 신들의 전쟁을 포함하는 황염편이라고 하겠다. 중국 신화 역시 혼돈에서 출발함은 다른 지역의 신화와 유사한 모습을 보여준다. 반고(盤古)는 북유럽 신화의 이미르와 비슷한 구실을 하는데, 그 사체에서 지구의 갖가지 현상과 사물, 그리고 인류가 비롯해서다. 여와(女媧)도 인류 창조라는 면에서 반고와 또 다른 의미에서 주도적 기능을 맡는데, 양자의 공존은 상이한 지역적 배경이 결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신은 아득히 높은 구름 위에 존재하면서 인간들이 바치는 희생물과 제사를 받았지만, 인류는 고통과 재난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그러나 신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고 인간들은 그저 눈물을 삼키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P.91)

 

저자는 유독 전욱(顓頊)을 부정적으로 기술하는데, 인간의 관점에서 신과 인간의 세계를 단절시킨 천신이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비록 지위의 차이는 있었지만 소통과 교류가 가능했던 두 세계가 특히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머나먼 세계가 되었고, 인간은 신들의 전횡에 고통을 겪는 존재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저자의 사회주의적 인식에서 비롯한 짙은 감정이 투영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오히려 전욱에게 도전했던 공공(共工)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이해한다.

 

황제는 중국인들의 자신들의 시조로 여기는 천신이다. 요즘은 역사 공정의 차원에서 황제와 염제를 동급으로 취급한다고 하는데, 염제와 공공, 치우(蚩尤)는 모두 동이족 계열로 인정받고 있어서다. 황제는 염제와 대결에서 승리하여 중앙 천제의 자리를 차지하고, 이에 반발한 공공, 치우, 형천(刑天) 등의 도전도 모두 물리쳐 명실상부한 제일인자가 되었다. 특히나 치우와의 전쟁이 매우 격렬하여 황제가 상당히 고전 끝에 간신히 제압했음을 신화는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형천의 처절한 도전이 심금을 울린다. 저자 역시 같은 의미에서 그를 예찬한다.

 

[형천]는 결코 진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 음모의 칼날에 우연히 머리가 잘려진 것뿐이었다. 그는 절대로 지지 않았다. [......] 좌절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영웅이 끊임없이 분투하는 정신에 대해 쓴 그 내용이 과찬이라고 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P.212)

 

불운한 영웅의 사례는 천신 예(羿)에서 극대화된다. 그는 그리스 신화의 헤라클레스와도 같은 존재다. 세상을 불태우는 열 개의 태양 중 하나만을 남기고 쏘아 떨어뜨렸으며, 인간들을 괴롭히는 여러 괴물을 차례차례 제거하여 세상을 편안하게 만드는 크나큰 공덕을 쌓았다. 그럼에도 천제의 미움을 받아 하늘에 오르지 못하였고, 아내의 배신으로 불사의 몸도 얻지 못하게 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았으니 참으로 비극적 영웅의 전형이다.

 

예에 못지않은 슬픈 천신이 곤()이다. 그는 하 왕조의 개창자이자 유명한 우() 임금의 아버지다. 중국 정사와 고전은 곤을 매우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심지어 사흉(四凶)이라고 대표적인 악인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신화는 그것이 위정자의 조작임을 알려준다. 한마디로 그는 중국의 프로메테우스다. 그리스 신들의 관점에서 프로메테우스는 불을 훔쳐다 인간에게 준 배신자였듯이, 곤도 인간 세상을 대홍수로부터 구하기 위하여 식양(息壤)이라는 신들의 물건을 훔쳤다가 처참한 말로에 이르게 되었다. 정사 기록에 굴하지 않는 민중의 끈질긴 구비문학 전통이 오늘날 곤에 대한 평가를 새롭게 한 셈이다.

 

역사 시대 이전의 많은 영웅들, 즉 황제와 싸운 치우라든지 천제의 흙을 훔쳐다가 지상의 홍수를 막은 곤, 그리고 공공이나 예 같은 인물들은 위대한 천신들이었거나 혹은 한 부족의 훌륭한 지도자였을 가능성이 크지만, 후대의 문헌 속에서 그들은 하나같이 포악하고 못된 인물들로만 그려져 있다. 이것은 통치의 정통성을 지니게 된 사람들이 고의적으로 고쳤을 가능성이 크다. (P.535)

 

<작품 해설>에서도 이 점이 명확히 언급되어 있다. 역사 기록과 마찬가지로 신화 역시 지배세력의 입맛에 맞게 변형됨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일 것이다. 그래야만 기록될 수 있고 살아남을 수 있었을 테니까.

 

중국 신화를 차근차근 읽어나가다 보면, 기존에 우리가 간과하고 있던 중국 역사의 숨겨진 단면이 조금씩 드러나게 되는데 이로써 중국 역사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질 수 있다. 중국 역사에서 태평성대의 대명사였던 요순(堯舜)시대의 요 임금 시절을 보면 과연 태평성대가 맞는 것일지 의심스럽다. 임금은 인덕이 훌륭할지라도 열 개의 태양이 나타나는 괴변과 곧이어 대홍수에 이르기까지 민초들의 삶은 매우 퍽퍽하였으리라. 게다가 양위와 관련하여 부자간 대립이 있었고 마침내 아들 단주(丹朱)의 반란과 죽음이라는 불행한 사태로 이어졌다.

 

자신의 뛰어난 궁술만 믿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후예(后羿)는 자만심이 영웅을 몰락시키는 전형적인 이야기다. 어디 신화에서뿐이랴, 오늘날도 여전히 자기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이들이 끊이지 않으니 통탄할 뿐이다. 역사상 폭군의 대명사는 걸주(桀紂)인데, 그들 역시 개인적 능력은 매우 뛰어났다고 하니 뛰어난 인물은 더더욱 근신해야 함을 보여준다. 저자는 우 임금이 만들었다고 하는 구정(九鼎)의 실질적 의미를 잃지 않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후대에 단순히 제왕의 권위를 나타내는 보물로 표피 상으로 이해하는 역사상의 사례에 부정적 의견을 피력한다.

 

그 존경심이라는 것이 어찌 그 몇 근의 구리가 상징하는 <왕권>이라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랴. 정을 얻었다는 것과 잃었다는 신화 전설은 그야말로 몇몇 독재자들의 시끌벅적한 헛된 짓거리에 불과할 뿐, 만인의 존경을 받는 우임금과는 근본적으로 아무 상관도 없는 얘기일 뿐이다. (P.384)

 

저자의 견해 중에서 유독 동의하기 힘든 대목이 하나 있는데, 요와 순의 관계 설정이다. 순 임금이 요 임금의 사위라는 데는 역사와 신화가 모두 일치한다. 기록에 따르면 요는 제곡(帝嚳)의 아들이라고 하는데, 저자는 제곡과 제준(帝俊), 순을 동일 인물로 간주한다.

 

순임금이 요임금의 사위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일이지만 제곡은 또 요임금의 아버지라고도 한다. 순과 제곡은 본래 동일인인데 이렇게 한 인물이 갑자기 아버지도 되고 또 사위가 되기도 하니, 고대의 신화와 전설이 역사로 변화할 때 생겨난 복잡함이 바로 이와 같았다. (P.235)

 

저자가 제시하는 몇몇 근거만을 가지고 이렇게 삼자가 동일 인물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소위 족보가 꼬이는 문제를 해명하기 어렵다고 볼 때 개인적으로 과잉해석으로 생각한다. 저자의 주장대로 신화와 전설에서는 이야기의 분화 또는 복사가 다반사로 일어난다. 참고로 걸과 주의 이야기를 동일한 전설로 평가하는 저자의 해석은 설득력 있는 견해다.

 

중국 신화의 이해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신화에 등장하는 신과 영웅을 역사상의 실존 인물과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서구 신화와 마찬가지로 신화와 역사는 혼재될 수밖에 없지만 중국 신화는 그 정도가 유달리 심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독자는 사서의 기록을 사실(史實)로써 맹신해서도 곤란하고, 신화와 전설의 이야기를 중시하거나 외면하는 일방적 접근도 곤란하다. 작품 해설에서도 지적되었듯이 중국 신화의 신화성과 역사성의 중심을 찾는 노력과 태도가 필요하다.

 

이 책은 중국 신화와 전설을 체계적으로, 그리고 흥미진진하게 수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추천할 만하다. 다만 무엇보다도 시대적 한계도 명확히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 원저가 출간된 해가 1984년이고, 한국어 번역본은 1999년에 발간되었다. 당시로써는 최신의 중국 신화 관련 문헌이었을 테지만, 현시점에서 보면 원서는 거의 40년 전의 것이다. 그동안 이루어진 중국 신화 연구의 많은 발견과 발전이 이 책에는 구조적으로 반영될 수 없는 요인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이 책의 내용에 연연하지 않고 중국 신화의 더욱 새로운 지평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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