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 잔
캐서린 맨스필드 지음, 구원 옮김 / 코호북스(cohobooks)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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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작>

1. 피곤한 아이

2. 올드 언더우드

3. 어린 가정교사

4. 늦은 밤에

5. 나는 프랑스어를 못합니다

6. 해와 달

7. 환희

8. 영원한 사랑

9. 낯선 사람

10. 미스 브릴

11. 파커 아주머니의 인생

12. 만에서

13. 인형의 집

14. 차 한 잔

15. 파리

16. 결혼한 남자의 이야기(미완)

 

<가든파티>에 이은 맨스필드 작품집 두 번째 도전이다. 초기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연대순으로 골고루 작품을 선별하였다. 따라서 맨스필드의 작품세계가 변화 발전한 모습을 한눈에 조감할 수 있다. 앞선 책과 중복 수록된 <낯선 사람>, <미스 브릴>, <파커 아주머니의 인생>, <만에서>는 여기서 별도로 언급하지 않으련다.

 

맨스필드는 우아하고 고상한 미를 추구하지 않는다. 독자의 섣부른 예상과 기대에 영합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시각에서 개인의 삶과 세상에 깃들인 냉혹함과 부조리를 담담하게 때로는 입가에 냉소를 머금고 기술한다. 특별히 과장된 묘사와 수사를 동원하지 않으며 서서히 나아가다 일순간에 독자에게 일침을 가하는 작가의 수법은 묘한 뒷맛을 남긴다.

 

<피곤한 아이>는 초기작으로서 모방작이지만 맨스필드 만의 분위기는 여전하다. 어린 하녀 아이는 피곤함에 지쳐 어쩔 줄 모르지만 부인은 인정사정없이 아이를 부려 먹는다. 사생아라는 출생 상의 약점이 아이에 대한 인간적 대우를 망각하는 단초가 되는데, 결말은 다소 충격적이다. 작가의 후기작 같은 은근하고 미묘한 암시는 여기서 나타나지 않는다.

 

소리 없이, 생글거리며, 살금살금, 아이는 부인의 침대에서 분홍색 베개를 가져와 아기의 얼굴 위에 올려놓고, 버둥거리는 아기를 있는 힘껏 눌렀다. ‘대가리가 잘려나간 오리처럼 꿈틀거리네.’ 아이는 생각했다. (P.17)

 

<올드 언더우드>에서 영문을 모르는 독자가 서서히 알게 되는 진실은 올드 언더우드가 살인죄로 복역 후 출소하였으며, 살인 동기는 아내의 불륜이었는데 연놈이 아닌 아내만을 살인하였다는 사실이다. 늙어서 쇠락한 올드 언더우드의 가슴속에서 울리는 쉼 없는 망치질 소리는 무엇일까. 그의 상념의 변화에 따라 울림의 세기와 빠르기는 증폭된다. 선창의 어떤 배에서 자고 있는 건장한 사내의 모습, 환하게 웃으며 사내를 바라보는 아내의 사진. 작가의 글은 더 이상 나아가지 않지만 독자의 상상력은 그칠 줄 모른다.

 

세상사에 깃든 위험과 부조리함은 <어린 가정교사>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어린 여성 홀로, 낯선 땅에서의 여행은 아무래도 위험한 게 현실이다. 사방의 적대자에 둘러싸인 그녀에게 친절을 베푼 늙은 신사는 얼마나 안전하고 믿음직한 존재였을까. 어린 가정교사는 그를 완벽한 할아버지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꿈이다! 현실이 아니야! 노인이 완전히 딴사람으로 변했다. , 끔찍해라! 어린 가정교사는 경악하며 노인을 보았다. (P.42)

 

페미니스트라면 응당 여성의 안전을 담보하지 못하는 사회 현실과 늙은 나이에도 강압적으로 성적 욕망을 추구하는 남성 일반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리라. 물론 어린 가정교사도 잘못은 있다. 타인의 이유 없는 과도한 친절을 무비판적으로 덥석 수용한 결정은 순진하기보다는 어리석음에 가깝다. 물론 어리기에 그러했겠지만.

 

<늦은 밤에>는 짧은 작품이지만 사랑을 갈망하는 여성의 이율배반적으로 갈팡질팡하는 심정을 잘 묘사하고 있다. 호감을 표시하는 듯하지만 자신이 다가서면 물러서 버리는 남성을 향한 불만. 자신에게 보낸 편지가 호감일지 모욕일지 궁금해하면서 부정적인 해석으로 기울어가는 마음을 억지로 붙들려는 애처로움이 인간 심리의 미묘함을 나타낸다.

 

, 됐다그래. 제발 감상적으로 생각하지 말자. 태워버려! 아니, 지금은 안 돼. 불이 꺼졌잖아. 이제 자야지. 정말 일부러 모욕을 주려고 쓴 걸까. , 피곤해. (P.48)

 

<해와 달>은 어른 세계를 향한 아이들의 순수한 시각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아이들의 이름이 해와 달이기에 다소 우화적 느낌도 풍긴다. 뭉개진 아이스크림 푸딩 장식은 즐거운 파티의 정도에 대한 척도기에 어른의 관점에서 전혀 문제 될 게 없다. 해는 그렇지 않다. 아름답고 정교하게 준비된 파티 음식과 디저트는 그에게 순수한 미의 척도에 있어 망가뜨려서는 안 될 존재다. 완벽한 순간과 존재가 어른들의 향락과 욕망을 위해 일순간에 허물어지다니 그로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으리라. 그래서 해는 이렇게 외친다.

 

돌연 해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으앙 울음을 터뜨렸다.

끔찍해요-끔찍해요-끔찍해요!” 해가 흐느꼈다. (P.99)

 

이 책의 표제작인 <차 한 잔><환희>는 묘하게 닮은꼴이다. 우선 주인공이 유부녀이며 상류층에 가까운 환경에서 자신의 처지에 매우 만족함을 표명하고 있다. 후자에서 버사가 보여주는 삶에 대한 만족과 환희는 눈부실 만큼 싱그럽고 흐뭇하기조차 하다. 기쁨과 사랑과 행복에 휩싸인 그녀만큼 행복한 여성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전자의 로즈메리는 결을 달리하지만 삶에 별다른 불만이 없는 점은 똑같다. 그녀는 대신 자신의 마음대로 호화와 사치를 누릴 수 있으므로.

 

두 사람의 완벽한 세계가 무너진 계기는 사소하다. 버사는 파티에 어울리지 못하며 남편에게 미움받는 미스 풀턴에게 동정과 애정을 함께 느낀다. 차 한 잔을 구걸하는 가난한 여자를 기어코 자신의 저택으로 데려오는 로즈메리 또한 동정과 자부심의 어딘가에 위치해 있을 것이다. 우월자의 지위에서 열등한 사람을 내려다보는 그네들의 시선은 -의도의 선악에 무관하게- 현상의 뒤바뀜으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뀐다. 이제 버사는 사랑과 행복에 젖은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 미스 풀턴임을, 로즈메리는 거지 여인의 빼어난 미모에 남편의 관심이 쏠리자 돌연 위기감을 느낀다. 독자는 버사와 로즈메리의 섣부른 도취를 손쉽게 비판할 수 있지만, 기실 그네들에게 진정 잘못이 있다고 주장할 수 있을지 확실치 않다. 그런 면에서 불안한 마음으로 남편의 관심을 회복하려는 로즈메리의 노력이 딱할 따름이다.

 

로즈메리가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다.

필립.” 로즈메리는 속삭이고, 그의 머리를 가슴에 끌어안았다.

예뻐?” (P.252)

 

<인형의 집><가든파티>와 비슷하다. 버넬가를 배경으로 키지어와 베럴 이모가 등장할 뿐 아니라 주제 의식 역시 유사하다. 빈부격차에 기반한 사회계급의 명확한 구별은 바로 이웃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해도 가든파티 개최에 지장을 주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화려한 인형의 집을 구경할 수 있는 자격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켈비네 아이들이 따돌림당하는 까닭은 단지 그들이 가난하고 신분상 천하다는 이유다.

 

독자는 키지어의 용감한 행동에 박수를 보내는 한편 베럴 이모를 비롯한 어른들의 편협한 사고에 심한 불편함을 느낀다. 특히 대놓고 모욕적 언사를 퍼붓는 베럴 이모에게는 적개심이 생길 정도다. 한편 내쫓기는 찰나의 순간에 인형의 집의 조그만 램프를 본 것에 기뻐하며 미소 짓는 엘스를 바라보는 우리네 마음은 따스함과 안타까움 그 어디쯤이리라.

 

<영원한 사랑><결혼한 남자의 이야기(미완)>은 부부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는 면에서 함께 다루어봄 직하다. 전자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건 병든 아내를 간호하기 위하여 함께 요양 온 남자의 이야기다. 쇠잔하고 연약한 아내는 남편의 도움을 전적으로 필요로 한다. 남자는 분명 아내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어찌 보면 눈물겨울 정도로 아름다운 부부의 사랑이다. 한데 이상하다. 아무리 해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그것은 부부의 사랑을 다루는 맨스필드의 필치가 극히 담담하고 건조하기 때문이리라.

 

후자는 미완작이지만, 완성된 부분의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다. 여기서 부부는 이미 서로 간에 마음이 떠났다. 남성 화자는 아내를 가리켜 마음이 산산조각 난 여자라고 칭한다. 한때의 사랑과 아름다운 부부애는 한순간에 시들고 이제 그들은 남남과 같은, 어쩌면 남남보다도 못한 관계에 처해 있다. 그렇게 남처럼 살 거라면 헤어지지 않고 뭐 하는가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한다.

 

사람들이 서로를 떠나지 않는 이유를 파헤쳐보면 미스터리를 발견한다. 단순히 그들은 못 떠나는 것이다. 묶여 있다. 그들을 옭아맨 굴레가 무엇인지는 자신들만 안다. 내 말이 모호한가? 글쎄, 이 문제가 애초에 대낮처럼 명백하지 않지 않은가? (P.267)

 

결혼 관계는 하나의 사회적 약속이자 굴레이기에 애정의 소멸에도 상관없이 관계가 유지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들 부부도 이런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특별히 이상하지 않다. 화자는 양자의 관계가 어그러지기 시작한 연유를 설명하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화자의 유년 시절이 부부의 현재 애매한 상황에 어떤 빛을 던져줄지 독자는 알 수 없다. 이 작품이 미완성작이기에, 우리는 작가의 의도를 모른다.

 

이 책의 작품 중 가장 문제작이라면 단연 <나는 프랑스어를 못합니다><파리>를 꼽고 싶다. 그만큼 두 작품은 독자인 내게 당혹감과 충격을 주었다. 철저한 악행과 무자비한 잔인함으로. 후자에서 사장은 양면적 상황에 놓인다. 하나는 죽은 아들의 무덤 소식을 통해 잊고 싶었던 과거의 아픈 기억에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아파하는 아버지의 모습. 다른 하나는 잉크병에 빠진 파리에게 희망 고문을 선사하는 잔인한 인간의 모습. 존재는 분명 하나이련만 비극과 아픔의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로 변모를 아무렇지 않게 행하는 사장은 비단 유별난 인물은 아니리라. 압권은 가해와 살육의 즐거움에 빠져 자신이 조금 전 왜 눈물 흘릴 뻔했는지 기억 못 하는 대목이다.

 

조용히 걸어가는 늙은 개 뒤에서 사장은 조금 전에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하려 했다. 무엇이었지? 그건.... 사장은 손수건을 꺼내 목깃 아래를 훔쳤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그는 기억할 수 없었다. (P.260-261)

 

전자의 주인공은 단연코 위선자다. 신사이자 작가로 자처하는 그는 게으르지만 안락한 생활을 누리기 위해 온갖 악행을 서슴지 않는다. 심지어 자기 몸을 파는 일조차도. 그런 그가 파리의 한 카페에서 마주친 글귀-Je ne parle pas francais(나는 프랑스어를 못합니다)-를 통해 잊고 싶어도 잊히지 않는 과거의 사건을 떠올리는 것이다. 프랑스어를 할 줄 모르며, 연인에게 버림받아 곤경에 처한 여성 마우스. 그녀에게 주인공은 어떤 행동을 하였던가. 이 작품에서 맨스필드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지 자못 궁금하다. 사회 밑바닥, 그리고 양심의 구렁텅이에까지 영락한 인간성의 한계를 확인해 보고 싶었을까. 또는 사회적 타락은 주인공 개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일반의 현상이기에 그 부조리함은 일개인으로서 어찌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독자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인지.

 

<가든파티>를 통해 맨스필드 문학에 입문한 내게 이 책은 또 다른 의미에서 당혹감을 안겨준다. <가든파티> 수록작이 그나마 작가 후기의 완성되고 정제된 작품이라면 이 책에는 날 것, 미숙한 것, 원숙한 것 듯이 혼재되어 있다. 그렇게 보면 작가 맨스필드의 생소하면서도 온전한 실체를 단번에 알아차리기엔 이 책이 더욱 유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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