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운드 오브 뮤직 ㅣ 논술세계대표문학 2
마리아 트라프 지음, 이경애 엮음 / 훈민출판사 / 2020년 12월
평점 :
품절
누구도 이 작품의 원제를 <트라프 가족 합창단 이야기>로 기억하지 않는다. 뮤지컬과 영화의 대성공으로 우리는 모두 <사운드 오브 뮤직>으로 기억할 뿐이다. 이처럼 타 장르의 성공으로 기억되는 원작을 읽게 되면 항상 원작과의 차이점을 은연중에 비교하게 된다. 무엇은 영화 내용과 같고, 어떤 장면은 영화에서 변용을 가하였고 등등.
국내에 출간된 모든 번역본은 아동용으로 기획된 것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나마 아동용이라는 느낌이 비교적 덜하다. 놀라운 점은 익히 아는 영화의 내용은 이 작품의 딱 절반에 해당한다. 예비 수녀 마리아가 트라프 가문의 가정교사가 되고 가족 모두의 사랑을 얻게 되어 남작과 결혼하게 되며, 나치의 압박으로 생사를 건 탈출에 성공한다는 점에서 영화가 원작의 줄거리를 충실하게 따랐음을 알게 된다.
영화가 원작과 크게 차이 나는 점이 일부 있는데 가족의 탈출을 도와주는 인물이 원작에서는 바스너 신부다. 영화에서 남작의 생활 형편은 나치 치하에서도 그렇게 어렵게 그려지지 않지만 원작에서는 어려운 살림을 타개하기 위해 저택을 신학교로 사용하도록 대관한다. 바스너 신부는 음악에 조예가 깊은데 그가 트라프 일가의 음악 교육을 돕는 한편 그들이 무사히 탈출할 수 있도록 작전을 기획한다. 알프스산맥 입구에서 일가와 헤어져 오스트리아에 잔류하는 신부의 모습은 마치 순교자와 같은 아우라가 느껴진다. 영화에서 애청하는 여러 노래는 ‘에델바이스’를 제외하면 대체로 원작과 무관하게 작곡된 곡이다. 유명한 ‘도레미 송’ 장면도 원작은 상대적으로 담담하고 무난하게 묘사되어 있어 영화 애호가라면 다소 실망할 법하다.
전반부가 영화와 원작의 비교에 초점을 두고 보는 재미가 있다면 후반부는 전혀 생소한 원작의 이야기에 관심을 쏟게 된다. 후반부는 가족이 우여곡절 끝에 미국으로 도착하여 고생을 겪다가 가족 합창단으로 성공하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후반부를 통해서 우리는 비로소 영화가 가공의 이야기를 담은 게 아니라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미국에서 가족 합창단은 단번에 성공의 길에 오르게 된 것이 아니다. 문화적 차이와 정식 영주권이 없는 불안정한 상황에서 떠돌이 생활을 겪는 가족의 모습. 2급 연주가로서 취급받는 그들이 비로소 미국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 이야기는 당대 피난 유럽인의 전형적인 사연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그리고 트라프 남작이 귀족 혈통의 자부심으로 가족 합창단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뮤지컬과 영화 제작자가 원작의 전반부만 다룬 까닭도 충분히 납득이 간다. 누구나 역경과 고난을 겪는 주인공이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극복하는 소재에 마음이 끌린다. 여기에는 마리아와 아이들이 뿜어내는 유쾌하고 밝은 분위기와 아울러 나치 체제가 강요하는 암울한 전쟁 분위기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게다가 간발의 차이로 목숨을 건 탈출이 성공하는 대목까지. 반면 후반부는 가족의 고초는 이해 가지만 반복되는 연주 여행 장면은 배경이 미국이라는 점까지 고려하면 미국 관중들에게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할 것이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호루라기 소리가 아니라 관심과 사랑이란 말이에요.”
마리아의 목소리는 떨리고, 눈에는 눈물이 괴었다. (P.57)
장르의 차이는 있지만 마리아가 던지는 메시지는 동일하다. 트라프 남작의 죽은 부인에 대한 그리움이 어떠하든 아이들도 자신의 엄마를 여읜 것이며 아이를 돌봐 줄 책무가 남작에게서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트라프 남작은 순전히 자신만 생각한 편협한 사고를 지녔으며 마리아가 그것을 일깨워주었다. 그는 미국에 가서도 대중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게 귀족 혈통인 자신에게는 수치로 생각하였으니 유럽의 전통적 사고관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남작과 결혼하려는 이본 부인도 자기 본위라는 점에서 남작과 마찬가지다. 자신은 남작과 결혼하려는 것이지 아이들의 엄마가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어찌 보면 지극히 현대적이라고 하겠지만 재혼남의 아내가 되고자 하는 사람으로서는 굉장히 몰지각하고 무책임한 태도이다.
트라프 가족은 비로소 자기들의 ‘결함’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이다. 이 귀중한 몇 분 동안에 청중과 그들은 완전히 일체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제야 청중과의 사이를 잇는 다리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P.154)
미국에서 트라프 가족 합창단은 오랫동안 최고의 연주단체로 인정받지 못하였다. 기획자인 와그너 씨와 샹 씨가 공통으로 지적하는 건 그들이 유럽의 고답적 틀을 벗어나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공연 내내 바흐를 위시한 중세와 르네상스 종교 합창곡, 슈베르트 등의 고전 작품만 무대에 올렸으니 청중들로서는 예술 수준은 차치하고 일단 재미없고 따분하였으리라.
독자들이 이 책을 읽어야 할 가치가 있을지 묻는다면 기꺼이 긍정적으로 답변하고 싶다. 영화를 먼저 접한 독자들은 작중에서 트라프 남작과 아이들에게 가해진 나치의 위압과 협박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한다. 원작에서 남작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생존하려면 오스트리아를 떠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게 된다. 학교에서는 히틀러와 나치 찬미를 노골적으로 요구하여 트라프네 아이들과 갈등을 일으킨다. 큰아들 루베르트는 병원의 높은 자리 제안을 받는다. 트라프 남작은 독일 잠수함 지휘를 요구받는다.
주인공 마리아의 삶은 원작에서 비로소 확연히 드러난다. 영화에서 예비 수녀 마리아는 남작과 결혼하지만 아직 아내와 엄마다운 모습은 아니다. 경쾌한 처녀로서의 이미지가 지배적이다. 원작에서 마리아는 결혼 후 두 딸 로즈마리와 롤리를 낳는다. 미국에 가서는 아들 요하네스를 낳는다. 즉 일가족이 오스트리아를 탈출하기 전에 이미 마리아는 아기엄마였다.
작품의 결말은 썩 해피엔딩은 아니다. 남편 트라프는 암에 걸려 미국에 건너온 지 10년도 안 되었는데 사망한다. 마리아 또한 얼마 후 신장병이 악화하여 임종을 기다리는 신세가 된다. 기적적으로 회복하여 다시금 트라프 가족 합창단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 책의 마지막 단락이 인상 깊다.
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가는 동안, 트라프 가족은 스스로도 행복하고 다른 사람들도 행복하게 하는 데 필요한 것은 단 한 가지, 돈도 명예도 아니고 오직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P.20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