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서정시선 - 서정시는 어떻게 쓰여지는가
아르킬로코스 외 지음, 오자성 옮김 / 청개구리아카데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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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서정시인과 그들의 대표작을 소개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책이다. 저자가 십여 년 전에 펴낸 사포 시 전집에 이은 후속작이기도 하다.

일단 서양 문학사는 서사시에서 출발하여 서정시를 거쳐, 희곡의 시대로 넘어갔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자. 서사시에서 서정시로 이어지는 단계는 인류가 신과 영웅의 인식을 뛰어넘어 인간 자체를 주체적으로 인식하였음을 증명한다. 이는 일순간에 이루어진 게 아니라 사회 경제의 발전과 인간의식의 성장의 결과이다.

“서정시는 이 자유로운 몸에서 태동하는 것이다. 신으로부터 전제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몸, 세속화된 몸으로부터 서정시가 태동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서정시의 언어는 세속화된 몸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P.20)

“도시적인 경제적 개인주의 생활양식과 자유 경쟁적인 사고방식이 지배적으로 됨에 따라 정신생활의 모든 분야에서도 개인주의적 주관주의적 세계관이 표면에 떠오르게 되었다.” (P.21)

서정시는 자유롭다. 서정시가 다루는 소재는 제한이 없다. 사랑, 인생, 사물, 우주 등은 물론 감정과 행동의 모든 측면을 거리낌 없이 포괄한다. 더 이상 신과 영웅의 위대한 업적에 억매일 필요가 없다.

“그들 모두는 독특한 목소리와 색조를 지니고 변혁기였던 당대의 다양하게 변화하는 모험에 찬 생활을 그려내었다. 그들은 통상에 참여해 여행하고, 전쟁에 종군하고, 방패를 버리고 전쟁터에서 달아나기도 하고, 혁명에 가담하고, 사랑하고 질투하였으며, 노래로써 동료 병사를 독려하거나 전사자를 기리고, 입법을 하고, 올림픽 우승자를 찬양하였으며, 여행을 하고, 동료들의 성격과 행동을 비난하기도 했다.” (P.23)

최초의 서정시인은 아르킬로코스(Archilochos)다. 호메로스와 거의 동시대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시에서 이미 후대 시인들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신의를 배신한 자에 대한 비난(‘배반’, ‘배신’)과 결혼 약속을 깨뜨린 여자친구의 아버지에 대한 비난(‘여자친구의 아버지에게’)이 토로되고, 성(性)에 대한 거침없는 표현(‘성기’, ‘성급한 사랑’, ‘창부’, ‘남성의 기관’)과 음주 예찬(‘주신 찬가’, ‘만취’)이 당당하다.

티르타이오스(Tyrtaios)는 애국시 내지 전쟁 참여를 독려하는 독전(督戰)시를 썼다. 개인적 견해와 사회적 요구를 반영한 것인데, 아무래도 순수시보다는 목적시 성격이 강하여 공감은 어렵다.

세모니데스(Semonides)는 인생과 여성에 대한 시가 두드러진다. 인생의 어두운 면을 부각하면서 삶의 유한성을 절절히 읊는다(‘인생’, ‘인생의 덧없음에 대하여’, ‘삶과 죽음’, ‘죽음 이후’). 한편 ‘여자의 기질’은 비교적 장시인데, 당대적 관점에서도 반(反)여성시라고 하겠다. 시에서 그는 여자를 암퇘지, 암여우, 암캐, 진흙, 바닷물, 당나귀, 족제비, 암말, 유인원, 꿀벌로 비유하여 분류하며, 꿀벌형 여자에 대해서만 긍정한다. 그에게 있어 여자는 역병에 불과하다.
“여자보다도 더 나쁜 역병은 없다네.” (P.59)

밈네르모스(Mimnermos)는 청춘 예찬과 노쇠에 대한 슬픔을 주로 그리고 있다.

알크만(Alkman)은 사랑, 인생, 자연 등의 다양한 소재를 시의 제재로 삼고 있는데, 심지어는 음식마저도 시화(詩化)한다(“알크만의 식성”).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대표작은 ‘처녀합창단을 위한 노래’라는 합창시다. 내용은 평범하지만, 형식의 독창성 면에서 흥미롭다.

알카이오스(Alkaios)는 사포와 동시대 시인이다. 참주 피타코스에 의해 고향에서 쫓겨난 이후 그를 맹비난하는 시를 많이 남겼다. 혁명시, 투쟁시 외에 추방된 이후 망명객의 쓸쓸한 처지를 노래한 시들도 제법 있다. 이 시들에서는 자기 처지에 대한 탄식, 참주에 대한 분노, 신세를 달래기 위한 음주(‘치료약’, ‘창문’, ‘취기’, ‘삼인일조’, ‘순번’)의 내용이 담겨 있다. 그는 참주 지배하의 레스보스 섬을 배에 비유(‘추방지에서’, ‘구조’)하고 있는데, 그가 비난하는 피타코스가 후세에서는 그리스의 7대 현인으로 추앙받고 있으니 시와 역사의 아이러니다.

사포(Sappho)에 대하여는 이미 단상을 기록한 적이 있으므로 생략한다. 다만 다시 읽어도 사포의 시는 시대를 초월한 통시대성을 지니고 있어 여전히 감정이 절절하고 현대적이다.

솔론(Solon)은 입법가답게 정치에 관한 제재를 다루고 있다. ‘지도자를 선출할 때’에서는 잘못된 지도자 선출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변호’에서는 자신의 업적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며, “한 사람이 너무 높이 올라가고 나면 그를 통제하기 어려워지네.”하고 독재에 대한 경고(‘독재의 징조’)도 아끼지 않는다. 한편 ‘준법’에서는 악법도 법이라는 언뜻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연상시키는 구절이 나와 이채롭다.

포킬리데스(Phokylides)는 대부분의 시에 “포킬리데스는 또한 이렇게 말했다”라는 표현을 삽입하고 있어 강한 자의식을 드러내며, ‘아내를 고르는 어려움’은 세모니데스의 시 내용과 연결되어 흥미로우며, ‘현자의 외출’은 현자인 체 하는 부류의 사람들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를 보여준다.

스테시코로스(Stesichoros)는 합창시와 장시가 대표적이라고 하는데, 이 시선에서는 단시만 수록하여 아쉽다.

이비코스(Ibykos)는 소위 연애시의 대가라고 하겠다. ‘늙은 경주마처럼’, ‘사랑의 계절’ 등 수록된 시편으로는 그의 온전한 면모 이해에 한계가 있다.

히포낙스(Hipponax)는 귀족 계층의 시인과 다르게 하층민의 불우한 처지를 반영하고 있어 이채로운데, 속어와 비어(‘엿 먹어!’, ‘불행의 표지’)를 거리낌 없이 시 속에 사용하고 개인적 원한에 의한 비난(‘악당 부팔로스’, ‘부팔로스의 여자’)도 숨기지 않는다.

아나크로온(Anakreon)은 구애와 사랑, 늙음(더 이상 사랑이 불가능함에 대한 아쉬움), 술 등 사랑과 낭만의 시인이다. 유사한 제재를 다룬 시인 가운데는 가장 뛰어나다고 하겠다.

크세노파네스(Xenophanes)는 철학자인 탓인지 시의 성향도 매우 이성적이다. ‘신들의 초상’과 ‘향연의 주제’는 신의 허구성을 비판하며, ‘물과 바람’과 ‘무지개의 근원’은 자연현상을 합리적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시모니데스(Simonides)는 페르시아 전쟁 시기를 살다간 시인답게 죽은 용사를 위한 송가를 여럿 남기고 있다. 전쟁은 죽음과 아울러 인간의 숙명, 유한성 등을 깊이 되새기게 한다(‘변화’, ‘인간의 운명’, ‘반신’, ‘유한한 인간’, ‘시간’ 등).

테오그니스(Theognis)는 키르노스에게 주는 교훈시로 유명한데, 이 시에서 그는 삶의 지혜, 도덕률, 교우관계, 처세 등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또한 “고귀한 사람이 매도당하고, 천한 사람이 존경받는”(‘시민의 변화’) 당대의 현실에 대해 비판과 우려를 품고 있다. 특히 교우관계에 대한 시들(‘교우’, ‘진정한 친구’, ‘우정’ 등)은 요즘도 유효하다. 한편 그는 키르노스에 대한 불평도 늘어놓는데, 그가 자신을 존경하지 않으며 거짓말을 한다(‘키르노스에 대한 불평’)는 것이다. 수용자의 거부감을 극복하는 과제는 교훈시의 한계임을 깨닫게 한다.

핀다로스(Pindaros)는 올림픽 경기와 피티아 경기의 우승자를 위한 송가를 많이 지었다. 그만큼 당대에 인정받는 시인이었다. 하지만 이런 송가는 공식적이고 의례적인 것이라 핀다로스의 내밀한 참모습을 파악하기 곤란하다.

바킬리데스(Bakchylides) 역시 올림픽 경기 우승자를 위한 송가를 제법 남겼다는 점에서 핀다로스와 유사하다. 그 외에 테세우스, 헤라클레스 등 신화적 인물을 내세운 시들도 있지만 역시 진면목을 알기 어렵다.

프락실라(Praxilla)는 여류시인으로서 사물에 대한 시를 썼는데, 수록된 4편의 시는 너무 적어서 시인의 시 세계를 이해하기 불가능하다.

마지막으로 플라톤(Platon)은 유명한 철학자로서 그의 시들은 ‘사랑하는 알렉시스’나 창부 레이스‘처럼 표현 수법상 흥미로운 점도 있지만 대체로 평이한 느낌을 안겨준다.

역자는 고대 그리스의 서정시를 소개하면서 그것이 현대의 한국시에 주는 의미를 이렇게 풀이한다.
“그것은 서정시가 필히 갖추어야 될 어떤 내재적 이념의 회복이 아닐까 한다.” (P.248)
우리 현대시는 양적인 면에서 폭발적 성장을 거듭했지만, 질적인 측면에서도 상승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한다.

여기 소개된 시들을 겉핥기나마 읽으면서 갖는 느낌 또한 역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의 시는 현대인에게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서정성과 소박성을 지니고 있음이다. 그것이 수천 년의 시간의 경과에도 박제물이 되는 것을 막아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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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레스크 소설 대우학술총서 구간 - 문학/인문(논저) 7
이가형 / 민음사 / 199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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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의 신대륙 탐험 이후 변화된 스페인의 사회 풍조는 세계문학사에 피카레스크 소설이라는 개성적인 장르로써 기여하였다. 보통 악한(惡漢) 소설로 일컬어지는 피카레스크는 스페인에서 유래하여 곧 서구 각지로 퍼져나가 근현대의 가장 독특한 소설 장르가 되었다. 태생적 한계로 말미암아 기다란 수명을 갖지는 못했지만, 피카레스크적 특성을 차용한 문학을 제외하면 서양문학은 매우 빈약해진다.

몇 편의 스페인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피카레스크에 흥미가 생겨 학술적 관점에서 접근해 보고자 이 책을 펼친다.

저자는 피카레스크 소설의 역사적 흐름을 출현, 발전, 부활로 나누어 16세기 후반에 스페인에서 처음 나타난 장르가 국경을 넘어 영국, 미국, 독일, 프랑스 등지로 퍼져 나간 과정을 살핀 후, 20세기에도 여전히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저자의 서술은 단지 이론적 관점에서 딱딱하게 기술되지 않고, 각 과정을 대표하는 주요 작품들의 상세한 작품 분석으로 이어지고 있어 이론적 배경이 없는 독자라도 충분히 저자의 견해를 좇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저자가 분석하고 있는 작품을 모두 열다섯 편이다.

1부에서는 <라사리요 데 토르메스>, 알레만의 <구스만 데 알파라체>, 세르반테스의 <모범소설> 중 한 편인 ‘린코네테와 코르타디요’, 그리고 케베도의 <사기꾼>이 등장한다.

2부에서는 내쉬의 <잭 윌턴의 생애>, 그리멜스하우젠의 <짐플리치시무스>, 르 사즈의 <질 블라스>, 디포의 <몰 플랜더스>, 스몰릿트의 <로드릭 랜덤>, 새커리의 <허영의 시장>,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다룬다.

3부에서는 셀린느의 <밤의 끝으로의 여로>, 벨로의 <오기 마치의 모험>, 토마스 만의 <펠릭스 크룰>, 카포티의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분석한다.

열다섯 편 중 읽어 본 것은 단 2편이며, 이름이라도 들어본 것은 4편, 나머지는 처음 알게 된 작품이다. 더욱이 시중에서 번역본을 구할 수 있는 작품은 절반도 채 못 된다. 그만큼 국내에서 피카레스크 소설은 그리 대중적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피카레스크 소설은 사실주의의 조상 격이다. 물질적 풍요는 넘쳐흐르는 가운데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면서 더 이상 문학은 멋진 기사와 아름다운 귀부인의 로망스 문학에 머무르지 않는다. 점점 더 많은 현실의 대중은 가난과 억압의 질곡에서 신음하게 된다. 그들의 원성과 절규는 자연스레 반사회적 목소리를 낳게 되면 그들의 자화상으로 소위 ‘악한’이 등장한다. 피카로는 사회 밑바닥 인물이며 그가 겪고 만나는 인물들도 자연스레 하층 계급 사람들이다. 피카레스크 소설을 처참한 사회와 개인의 삶을 가감 없이 옮기며, 기만적 허세에 물든 상류계급의 속물들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피카레스크의 주인공은 한 곳에 정주하지 않는다. 그들의 삶은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방랑인의 삶이다.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자의든 타의든 끊임없이 옮겨 다닌다. 횡적으로는 작게는 스페인 내에서 크게는 세계 각지-유럽, 미국, 아시아 등-를 떠돈다. 종적으로는 최하층에서 최상층의 인물들까지 다양하게 접촉한다. 그들이 더 이상 떠돌이가 되지 않을 때 작품도 끝을 맺는다. 그래서 대체로 작품명에는 ‘...의 생애’ 또는 ‘...의 모험’이라는 명칭이 따라붙는다.

피카레스크는 반사회적, 풍자소설이기도 하다. 작가는 피카로의 눈과 행동을 통해 악한이 되기를 권하는 사회, 악한보다도 더 악덕과 위선이 넘치는 사회를 남김없이 비꼰다. 초기 피카레스크의 주인공은 선량하지만, 생존하기 위해서 악한이 될 수밖에 없다. 주인공을 둘러싼 각계각층의 인물들, 귀족, 기도사, 경찰, 상인, 사제 등은 호시탐탐 남을 등쳐먹을 기회를 노리고 있다. 그들의 진지하지만 허위적 삶의 정직한 기술은 자체로 사회풍자가 된다.

이렇게 남에게서 속기 전에 남을 등쳐야만 하는 사회, 즉 사회적 환경은 피카로와 피카라의 출현에 책임을 모면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악한이 되지는 않는 법. 그렇다면 악한이 되는 사람에게는 책임이 없는가? 피카로와 피카라는 환경적 요인으로 점차 악한으로 변모하지만, 악한의 삶과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도 이를 뿌리친다. 그들은 스스로 떠돌이를 선택한다. 이는 그들의 기질 자체가 악한적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말한다.

우리는 피카로와 피카라에 대해 모순된 감정을 갖는다. 그들의 연약한 인간적 모습에 동정심을 품는다. 그들의 사회규율의 거침없는 위반과 허식에 물들지 않는 자유분방함에 부러움을 가진다. 반면 그들의 정말로 악한다운 행위에 분노를 감출 수 없다. 이러한 이율배반적 감정은 그들이 남이 아닌 바로 우리들 자신의 숨겨진 또 다른 자아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내면에 피카로와 피카라의 태아를 지니고 산다.

피카레스크 소설이 일시적 유행에 그치지 않고 현대에도 형태를 달리하여 생존하고 있는 연유를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현대의 작가가 피카레스크 소설의 형태를 취하는 것은 그 소설의 다양한 가능성 때문이 아닌가 한다. 특히 피카로로 태어나는, 자아가 강한 현대인이 자기의 정체를 추구하거나 사회 문제를 다루는 소설 형태가 될 때 피카레스크 소설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P.164)

현대 사회는 개인 간의 경쟁을 부추기며, 적당한 이기심과 탐욕을 긍정적인 심성으로 권장한다. 나의 사회적 성공은 타인의 실패를 밟고 올라서게 마련이다. 기만과 폭력과 경쟁으로 점철된 사회에서 주류가 되는 20의 사람들은 물론, 주류가 되지 못하는 80의 사람들은 언제나 일상에서 피카로와 피카라의 유혹에 노출된다. 그러기에 피카레스크는 불사의 삶을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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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해의 사랑
사포 / 한겨레 / 199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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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시의 호메로스와 더불어 고대 그리스의 시 부문에서 쌍벽으로 일컬어지는 서정시의 대가 사포. 일찍이 플라톤은 그녀를 가리켜 열 번째 뮤즈라고 칭송하였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이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인 바로 그 인물, 서양철학사의 우뚝 선 거인 플라톤의 말이다.

도대체 사포는 어느 시절의 사람인가? 사료에 따르면 사포는 기원전 6세기와 5세기에 걸쳐 삶을 누렸다. 중국의 공자보다도 선대라고 하면 가히 신화적 인물이라고 하겠다. 그런 그녀의 시 작품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 것은 일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자연적 소실 외에 중세 기독교도의 인위적 훼멸도 만만치 않았다. 그것은 지금도 여전한 악평, 즉 그녀가 레즈비언이라는 점에 연유한다.

사포는 레즈비언일까? 레즈비언의 어원도 사포가 태어나서 살았던 그리스 레스보스 섬에서 유래하니 근거 없는 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녀의 시를 보자.

“사포여, 너의 마음은 아프겠지만
네가 원하는 그녀가 떠나게 그냥 내버려 둬라.” (P.21, 아프로디테의 송가)

“나는 그리움으로 말라가고
그녀의 사랑에 허기져 있네.” (P.26, 주지 못한 사랑)

또, 다음의 시 구절은 어떠한가?

“부드러운 침대 위에서
팔과 다리에 향기로운 향유를 발라 주었을 때
섬세한 너의 욕망은 만족했었지.” (P.37, 떠나는 아티스에게)

“그가 너와 마주 앉아
달콤한 목소리에 홀리고
너의 매혹적인 웃음이 흩어질 때면” (P.38, 질투, 일명 아티스를 위한 노래)

시구만으로 판단컨대 여성 간의 단순한 애정 차원을 넘어서는 뜨거운 열정이 느껴진다. 명백한 연인의 심경이 느껴지지 아니한가.

한편, 그렇지 않은 시도 보자.

“달콤하고 상냥한 한 젊은이를
열렬히 그리워하도록
날씬한 아프로디테가
나를 꾀어 버렸어요.” (P.17, 마비)

“내 지금 바라노니
그대 여자 친구들을 돌려보내다오.
그리고 신들이 정해놓은 운명대로
나와 사랑을 맺기를.” (P.18, 조우)

여기를 보면 분명히 사포는 남성에 대한 사랑을 갈구하고 있다. 게다가 사포의 삶을 보건대 정상적인 결혼 생활을 하여 딸까지 낳고 있다. 이렇게 보면 사포에 대한 비난은 시기심과 유언비어에 의한 억울한 누명이 아닐까?

“가장 아름다운 여인 사포가 우리와 함께
하얀 도시 미틸레네로 떠나가기 때문입니다.
딸을 거느린 어머니처럼.” (P.34, 아티스에게 4)

“저는 처녀들을 가르쳐
성스러운 신들을 섬기게 하겠습니다.” (P.156, 헤라 여신이여)

오히려 위 시구의 표현이 사포의 참 모습을 전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사포는 젊은 여성들로 이루어진 처녀 가무단을 이끌었다. 레스보스 섬은 그리스 본토와는 달리 여성의 사회생활에 관대한 편이었다. 이런 자유로운 분위기에 대한 보수주의자 및 후대 기독교도의 반감이 분방한 애정 표현으로 가득찬 시 내용을 곡해하도록 만든 것일 수 있다. 사포 자신의 말에 따르면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P.93, 이별)을 세진(世塵)에 물든 눈은 이렇게 왜곡한 것이다.

사포는 신과 영웅시대를 마감하고 인간이 당당한 역사의 주체로 등장하는 시기에 걸맞는 서정시의 선구자다. 이제 올림포스 신은 사람의 머리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풍성하게 빛내는 조연으로 물러서게 된다.

사포가 노래하는 대상은 다양하다. 무엇보다도 사랑, 그리고 청춘, 결혼, 삶의 예찬. 하지만 나이 들어서는 더 이상 사랑의 열병에 빠지는 것을 회피한다.

“부끄러운 욕망으로 나를
비틀거리게 하는 아프로디테가” (P.90, 자신에게)

“그대를 사랑하기엔 너무 벅찹니다.
젊은 그대와 함께 하기엔
이미 너무 나이를 먹었습니다.” (P.95, 너무 늦은 사랑)

“사랑은 이제 나에게는
꿀도 아니고 꿀벌도 아닙니다.” (P.95, 사랑을 거절하며)

이제 세월의 흐름과 죽음이 사포의 시 세계를 사로잡는다. 때로는 절망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끝까지 삶을 긍정한다. 노쇠와 죽음마저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인다.

“나 또한 계속 늙어가지만
나는 화려하고 찬란한 것을 사랑하네.
이것만이 나의 몫이요,
태양신처럼 빛나고 아름답게 여기는 것이라네.” (P.100, 세월)

“그리고 이제 나도 망각 속으로
완전히 걸어 들어가리라.” (P.131, 망각)

사포의 명성은 단지 그녀가 개인의 감정을 노래했다는 데 국한하지 않는다. 그녀 말고도 당대 및 후대의 많은 시인들이 인간과 사랑을 개성적으로 노래하였다.

“사포에게 커다란 명성을 가져다준 그녀의 시가 가진 특징은 감정의 격렬함과 솔직함, 외부세계와 내면세계에 대한 정확한 관찰과 분석, 절묘한 언어선택과 절제의 아름다움, 단순하면서도 극적인 구성에 있다.” (P.198)

작품해설에 나오는 이러한 평은 실로 적확하다. 수백여 편에 달한다는 그녀의 시 가운데 그나마 비교적 온전히 전하는 것은 ‘아프로디테의 송가’, ‘아프로디테의 사원에서’, ‘질투’, ‘아나크토리아를 위한 노래’가 전부이지만, 단편에서도 그녀의 섬세한 감성과 격정적인 감정(’질투’와 ‘아나크토리아를 위한 노래’를 보라!)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특히 표현의 참신성은 단순하고 소박함과 맞물려 현재의 시각에서도 전혀 진부함을 느낄 수 없다.

“시원한 샘물은 사과나무 가지 사이로 흐르고
장미는 도처에 그늘을 드리우고,
흔들리는 잎새들은 나른한 졸음을 선사합니다.” (P.147, 아프로디테의 사원에서)

“아도니스가 깨어날 시간은 오지 않습니다.
봄은 아직 말이 없고 꽃은 피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 울고 있습니다.” (P.152, 아도니스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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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 2011-12-12 0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책이 너무 읽고싶어 백방으로 찾다가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두고두고 보고 싶은 마음에 제 블로그로 담아갔는데 혹시 내키지 않으신다면 말씀해주세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수다에 관하여 - 플루타르코스의 윤리론집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플루타르코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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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타르코스는 흔히 영어식 표기의 <플루타르크 영웅전>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서기 1세기 경의 로마 시대 그리스 출신이니 무척이나 오래된 사람이라고 하겠다.

이런 그가 <영웅전> 외에 다른 글을 남겼다니 우선 놀랍기도 하고, 한편 남겨진 그의 글이 후대에 큰 영향을 끼쳐 몽테뉴의 <수상록>의 창작 계기가 되는 등 에세이의 원조로 일컬어진다고 한다.

역사성과 작품성은 같이 가는 게 일반적이지만, 때로는 별개로 구분되는 경우도 제법 적지 않다. 플루타르코스의 글들이 어디에 적용될지 궁금하다. 일단 번역자 권위 있는 천병희 선생인 것이 마음에 든다.

플루타르코스의 소위 <윤리론집>은 총 78편이 전해지는데, 이 책에서는 일단 6편을 번역하였다. 완역이면 좋겠지만, 분량도 상당히 방대할 터이고, 아직 검증도 안 된 작품을 일단 소개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수다에 관하여’
‘분노의 억제에 관하여’
‘아내에게 주는 위로의 글’
‘동물들도 이성이 있는지에 관하여’
‘소크라테스의 수호신’
‘결혼에 관한 조언’

이 단편들을 일관하는 키워드를 추출한다면 그것은 ‘이성’이다. 확실히 고대 그리스인의 후예답다.

수다를 예방하는 길은 타인의 말을 듣도록 하는 것인데, 수다쟁이는 계속 지껄여대므로 타인의 말을 듣지 못한다는 것은 우습지만 엄연한 진실이다. 작가는 수다의 폐해와 증세를 면밀히 고찰하는데 수다를 병으로 인식하고 병의 치료를 위해 진단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분노는 어떠한가? 작가는 분노를 “무엇보다도 허약함 탓에 혼의 괴로움과 고통에서 발생하는 것”(P.75)으로 인식하며, “자기방어의 의지로 지나치게 흥분해 있는 혼의 긴장과 경련”(P.75)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분노는 “자신이 무시당하고 푸대접받았다는 감정”(P.85)에서 출발한다.

수다와 분노를 예방하려면 훈련을 통해 혼의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부분을 길들이는 ‘감정의 습관화’(P.81)가 필요하다고 플루타르코스는 말한다.

앞의 두 편이 윤리론 성격이라면, 아내에게 주는 글과 결혼에 관한 조언도 대상은 각기 다르지만 모두 삶의 지침을 담고 있다.

자신의 어린 자식이 죽었을 때 슬픔에 빠져있는 아내를 위로하기 위한 서신에서 플루타르코스는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피해갈 수 없으며, 어린 자식이 살아생전 부모에게 끼쳤던 즐거움을 상기하자고 조언한다. 그리고 미신적인 관습에 빠져 과도한 슬픔을 보이지 말도록 요청한다.

한편 예비부부에게 한 조언을 통해 작가는 독자에게 2천년 전의 결혼 및 부부의 역할에 대한 견해를 들려준다. 플루타르코스는 기본적으로 남녀 간의 지위나 역할에 차이가 있음을 전제하고 있다. 현대적 시각에서 보면 고리타분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부부 상호 간의 배려와 사랑을 우선시하는 것은 요즘에도 유효적절하다. 특히 그는 신혼시절 신체적 매력에서 불타올랐던 사랑이 오래 지속되려면 “성격에 바탕을 두고 이성에 의해 유지”(P.213)되어야 함을 갈파한다.

‘동물들도 이성이 있는지에 관하여’는 신화에 바탕을 둔 일종의 우화다. 트로이 멸망 후 귀국하다가 바다를 방랑하는 오뒷세우스는 마녀 키르케의 섬에 머무른 적이 있다. 이 일화를 배경으로 작가는 돼지로 변신한 사람의 말을 빌려 인간보다 동물의 삶이 얼마나 우월한지 설파하고 있다. 동물은 신체적 능력에서 인간보다 앞서며 욕망 충족도 자연에 따르며 절제할 줄 안다는 점, 생존을 위한 자족적 기술 습득과 같은 이성적 능력을 제시하며 오히려 오뒷세우스를 비웃는다. 당대 최고의 지성적 인간이라 일컬어지는 오뒷세우스가 한낱 돼지에게 밀리는 모습에서 단순한 웃음뿐만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가 세계와 역사에서 발휘하는 부정적 역할을 되새기게 한다.

‘소크라테스의 수호신’은 고대 그리스의 역사적 사건을 다루고 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후 고대 그리스 세계의 패권은 스파르타[스파르테]가 차지한다. 이때 테베[테바이]가 스파르타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거사에 성공하는데, 플루타르코스는 아테나이를 방문한 거사 참여자 중 한 명을 통해 거사의 전모를 드러낸다. 하지만 작가는 이에 그치지 않고 거사 참여자들이 초조하게 때를 기다리면서 주고받았던 대화를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 사건의 긴박성에 어울리지 않게 그들은 소위 소크라테스의 수호신의 본질에 대해 철학적 해석을 주고받는다. 소크라테스에게 지혜의 빛을 드리워준 수호신의 존재가 이성적인 것인지 비이성적인 것인지 논쟁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 책을 펼치면서 지나치게 현학적-기억에 따르면 플라톤과 아리스토렐레스가 그랬던 듯싶다-이고 진부한 내용이 아닐지 우려도 일부 있었다. 하지만 설명을 위해 예시한 내용이 고대 그리스 역사이기에 요즘 관점에서는 지엽적이고 언뜻 이해가 되지 않은 점을 제외하고 내용상 고리타분함은 전혀 느낄 수 없다. 오히려 참신했다는 게 올바른 표현이다.

과연 몽테뉴가 분발하여 <수상록>을 쓸 만했겠구나 싶다. 이왕이면 완역본도 흥미로울 듯싶지만 기대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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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티리콘 - 노먼 린지 일러스트판
페트로니우스 지음, 강미경 옮김, 노먼 린지 그림 / 공존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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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개그맨 최양락의 전성 시절, 로마황제 네로 역을 맡은 코너가 꽤 인기를 끌었다. 이때 궁정에서 비교적 건전한 상식과 비판의식을 가진 신하에 페트로니우스가 있었는데, 네로로부터 구박과 괄시를 받고는 하였다.

그렇다. 바로 그가 이 글의 저자라고 한다. 서기 1세기의 역사 속에 화석화된 인물이 아닌 자신이 남긴 글로 생생히 살아 숨 쉬는 모습으로 말이다.

해설에 따르면 현존 원문은 전체 20권 내외 분량 가운데 14권에서 16권의 일부에 해당한다고 한다. 완결된 작품으로 조망하기에는 앞뒤는 물론 중간에도 단락이 많이 있어 여의치 않으므로 오히려 남아있는 내용 자체의 미학을 즐기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일단 궁금한 것은 페트로니우스가 이런 작품을 남긴 의도이다. ‘품위 판관’으로 네로 황제마저도 인정해 마지않던 그의 글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외설적이고 천박하기 조차한 내용을 담고 있다. 등장인물 중에서도 긍정적인 인간상이라고 할 만 이를 발견할 수 없다.

만약 이 작품의 내용이 작가의 기이한 상상력의 소산이 아니고 당대 로마 민중의 삶의 이면을 묘사한 것이라면 작가는 풍속화가의 자질이 뛰어나다 할 것이다. 신과 영웅이 문학의 주인공이 되던 시기, 작가는 대담하게도 시정잡배를 전면에 내세운다. 그것도 모자라 비정상적인 성적 사랑의 관계가 작품을 이끌어나가는 추동력이 되고 있다.

이 <사티리콘>은 고전 소설의 가장 오래된 원형으로서의 자격이 충분하다. 후대의 <황금 당나귀>보다 시대를 훌쩍 앞서는데 그치지 않으며, 거기에 결여된 악한소설적 면모가 확연하다.

주인공 엔콜피우스는 동행인 미소년 기톤과 동성애적 사랑에 집착하고 있다. 기톤을 사이에 두고 친구 아스킬토스와 다툼을 벌이기도 하며, 늙은 시인 에우몰푸스와도 대립한다. 그는 물건과 돈을 훔치기도 하며, 살인도 저지르며 용감한 척하지만 겁쟁이 기질도 다분하다. 부잣집 유부녀 키르케와의 정사 도중에는 성적 무능력이 되어 남근 신 여사제들의 치료를 받기도 한다. 어느 면에서 보더라도 결코 통상적인 주인공의 모습은 아니다.

작품은 엔콜피우스 일행이 여행 도중에 머무르다가 겪는 소동과 에피소드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공간적 배경도 푸테올리에서 타렌툼으로 가는 배, 다시 크로톤으로 옮겨진다.

푸테올리에서는 남근 신 프리아푸스의 여사제 콰르틸라 무리에 끌려가 방탕한 의식에 동참한다. 졸부 트리말키오의 연회에서 당대 로마 부유층의 호사스러운 연회 장면을 눈앞에서 목도할 수 있다. 세세한 묘사는 영화의 한 장면과도 같다. 타렌툼으로 가는 배에서 맞닥뜨린 선장 리카스와 트리파이나가 어우러진 장면은 또 어떤가? 하인으로 분장하고 크로톤에서 보내는 삶 등.

이 작품에서는 제정 로마 초기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로마 사회의 구석구석이 그대로 눈앞에 드러난다. 작가가 진정 페트로니우스가 아닐지라도 이러한 글을 남길 수 있는 이라면 웬간한 인물은 아닐 것이다. 이 작품은 당대 사회에 대한 풍자소설인 동시에 풍속소설이기도 하다.

완전하지도 않으며, 내용도 천박하고 음란한 이 작품의 묘미는 바로 그 외설성과 천박성에 있다. 세상은 신실함과 고상함만으로 완전해지지 않는다. 사회 계층의 절대 다수는 평범한 시민 계급과 천민 계급이 차지한다. 그들의 가치관은 지배층의 거짓 엄숙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그들은 꾸밈없이 솔직하며 자연스럽다. 이 글에서는 귀족 사회를 언급하지 않는다. 트리말키오의 연회도 결국 모방에 불과하다. 이 모방이 실제와 어느 정도 유사한지 아니면 심히 왜곡된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로마인들의 연회 관습, 그들의 남성 동성애에 대한 관대한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시장과 여관에서, 공중목욕탕을 오가는 평범한 로마인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흔한 분류로 나누자면, <사티리콘>은 순수 문학이 아닌 통속소설이며, 영화로 치자면 B급 영화에 불과하다. 그런데 아는가? 사람들은 대중예술에 보다 열광한다는 사실을. 그래서 포르노가 겉으로는 쉬쉬하지만 안 본 이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사람들의 울고 웃는 일상의 모습은 대중문화의 변천에서 보다 용이하게 파악할 수 있다.

도덕성과 예술의 순수성을 중시하는 이에게 이 작품의 일독을 굳이 권하고 싶지는 않다. 미학적 가치가 뛰어나다는 해설에 연연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해설에서 알 수 있듯이 <쿠오바디스>의 작가가 창작에 참고하였고, <위대한 개츠비>의 초판본 표제가 <트리말키오>라는 점, 시인 엘리엇과 소설가 헨리 밀러가 경애하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냥 무시하기 어려운 일면이 있다. 게다가 영화감독 페데리코 펠리니가 이를 다룬 영화를 남기기도 하였으며, 디스커버리 사의 다큐멘터리 <로마>의 중요한 대본 자료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고대 로마 사회의 일상을 이해하고 재구성하는데 이 작품은 매우 중요하며, 여전한 음란성에도 불구하고 계속적 관심을 끄는 연유이기도 하다. 더구나 트리말키오는 졸부의 사치는 고대와 현대가 차이가 없음을 입증하는 자료 역할을 한다.

조금 낯설고 황당하고 어이없지만, 심각성과 진지함을 요구하지 않으므로 책장을 넘기기는 비교적 수월하다. 게다가 ‘노먼 린지 일러스트판’이라는 특별 문구가 말해주듯이 20세기 대표적 삽화가의 거의 백편에 이르는 삽화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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