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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에 관하여 - 플루타르코스의 윤리론집 ㅣ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플루타르코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0년 10월
평점 :
합본절판
플루타르코스는 흔히 영어식 표기의 <플루타르크 영웅전>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서기 1세기 경의 로마 시대 그리스 출신이니 무척이나 오래된 사람이라고 하겠다.
이런 그가 <영웅전> 외에 다른 글을 남겼다니 우선 놀랍기도 하고, 한편 남겨진 그의 글이 후대에 큰 영향을 끼쳐 몽테뉴의 <수상록>의 창작 계기가 되는 등 에세이의 원조로 일컬어진다고 한다.
역사성과 작품성은 같이 가는 게 일반적이지만, 때로는 별개로 구분되는 경우도 제법 적지 않다. 플루타르코스의 글들이 어디에 적용될지 궁금하다. 일단 번역자 권위 있는 천병희 선생인 것이 마음에 든다.
플루타르코스의 소위 <윤리론집>은 총 78편이 전해지는데, 이 책에서는 일단 6편을 번역하였다. 완역이면 좋겠지만, 분량도 상당히 방대할 터이고, 아직 검증도 안 된 작품을 일단 소개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수다에 관하여’
‘분노의 억제에 관하여’
‘아내에게 주는 위로의 글’
‘동물들도 이성이 있는지에 관하여’
‘소크라테스의 수호신’
‘결혼에 관한 조언’
이 단편들을 일관하는 키워드를 추출한다면 그것은 ‘이성’이다. 확실히 고대 그리스인의 후예답다.
수다를 예방하는 길은 타인의 말을 듣도록 하는 것인데, 수다쟁이는 계속 지껄여대므로 타인의 말을 듣지 못한다는 것은 우습지만 엄연한 진실이다. 작가는 수다의 폐해와 증세를 면밀히 고찰하는데 수다를 병으로 인식하고 병의 치료를 위해 진단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분노는 어떠한가? 작가는 분노를 “무엇보다도 허약함 탓에 혼의 괴로움과 고통에서 발생하는 것”(P.75)으로 인식하며, “자기방어의 의지로 지나치게 흥분해 있는 혼의 긴장과 경련”(P.75)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분노는 “자신이 무시당하고 푸대접받았다는 감정”(P.85)에서 출발한다.
수다와 분노를 예방하려면 훈련을 통해 혼의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부분을 길들이는 ‘감정의 습관화’(P.81)가 필요하다고 플루타르코스는 말한다.
앞의 두 편이 윤리론 성격이라면, 아내에게 주는 글과 결혼에 관한 조언도 대상은 각기 다르지만 모두 삶의 지침을 담고 있다.
자신의 어린 자식이 죽었을 때 슬픔에 빠져있는 아내를 위로하기 위한 서신에서 플루타르코스는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피해갈 수 없으며, 어린 자식이 살아생전 부모에게 끼쳤던 즐거움을 상기하자고 조언한다. 그리고 미신적인 관습에 빠져 과도한 슬픔을 보이지 말도록 요청한다.
한편 예비부부에게 한 조언을 통해 작가는 독자에게 2천년 전의 결혼 및 부부의 역할에 대한 견해를 들려준다. 플루타르코스는 기본적으로 남녀 간의 지위나 역할에 차이가 있음을 전제하고 있다. 현대적 시각에서 보면 고리타분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부부 상호 간의 배려와 사랑을 우선시하는 것은 요즘에도 유효적절하다. 특히 그는 신혼시절 신체적 매력에서 불타올랐던 사랑이 오래 지속되려면 “성격에 바탕을 두고 이성에 의해 유지”(P.213)되어야 함을 갈파한다.
‘동물들도 이성이 있는지에 관하여’는 신화에 바탕을 둔 일종의 우화다. 트로이 멸망 후 귀국하다가 바다를 방랑하는 오뒷세우스는 마녀 키르케의 섬에 머무른 적이 있다. 이 일화를 배경으로 작가는 돼지로 변신한 사람의 말을 빌려 인간보다 동물의 삶이 얼마나 우월한지 설파하고 있다. 동물은 신체적 능력에서 인간보다 앞서며 욕망 충족도 자연에 따르며 절제할 줄 안다는 점, 생존을 위한 자족적 기술 습득과 같은 이성적 능력을 제시하며 오히려 오뒷세우스를 비웃는다. 당대 최고의 지성적 인간이라 일컬어지는 오뒷세우스가 한낱 돼지에게 밀리는 모습에서 단순한 웃음뿐만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가 세계와 역사에서 발휘하는 부정적 역할을 되새기게 한다.
‘소크라테스의 수호신’은 고대 그리스의 역사적 사건을 다루고 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후 고대 그리스 세계의 패권은 스파르타[스파르테]가 차지한다. 이때 테베[테바이]가 스파르타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거사에 성공하는데, 플루타르코스는 아테나이를 방문한 거사 참여자 중 한 명을 통해 거사의 전모를 드러낸다. 하지만 작가는 이에 그치지 않고 거사 참여자들이 초조하게 때를 기다리면서 주고받았던 대화를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 사건의 긴박성에 어울리지 않게 그들은 소위 소크라테스의 수호신의 본질에 대해 철학적 해석을 주고받는다. 소크라테스에게 지혜의 빛을 드리워준 수호신의 존재가 이성적인 것인지 비이성적인 것인지 논쟁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 책을 펼치면서 지나치게 현학적-기억에 따르면 플라톤과 아리스토렐레스가 그랬던 듯싶다-이고 진부한 내용이 아닐지 우려도 일부 있었다. 하지만 설명을 위해 예시한 내용이 고대 그리스 역사이기에 요즘 관점에서는 지엽적이고 언뜻 이해가 되지 않은 점을 제외하고 내용상 고리타분함은 전혀 느낄 수 없다. 오히려 참신했다는 게 올바른 표현이다.
과연 몽테뉴가 분발하여 <수상록>을 쓸 만했겠구나 싶다. 이왕이면 완역본도 흥미로울 듯싶지만 기대하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