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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문명인들은 자신의 세계에 존재하는 악마는 인정하면서도 토착민들이 두려워하는 악마는 믿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자신들의 악마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지만, 토착민들의 악마는 번개와 같은 자연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종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문명인은 토착민의 신앙이 아니라 신앙의 대상을 문제삼는다. 우리가 야만인으로 규정한 우데헤들은 다른 종교에 대해 유럽인보다 훨씬 너그럽다. 오히려 더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판단한다. 우데헤들은 결코 타인의 신앙을 경멸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각자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듯, 삶에 영향을 미치는 신앙도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데르수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여태껏 러시아 인이나 중국인의 신앙을 궁금해한 적이 없다. 자신이 중국인과 러시아 인의 삶을 이해할 수 없듯이, 그 신앙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데르수 우잘라. 이토록 선한 영혼이 또 있을까.

평생을 숲만 보며 숲을 사랑했던 사나이. 사냥꾼이자 파수꾼, 길잡이이며 호랑이와도 맞짱을 뜨는 귀여운 야만인인 그가 부르는 '사람'이라는 것은 살아있는 모든 친근한 생명을 뜻한다. 그의 만물과 공존하고 배려하는 삶이 경이로운 것은 '문명'의 삶에 지치고 쩔어서일까. 이 극동 시베리아 탐사 기행의 애초의 목적은 전쟁을 위해서였지만, 고리드인 데르수 우잘라의 삶을 조명하면서 문명의 반대로서의 야만의 의미가 아닌 우리가 살아본 적 없는 태고적 순수시대에 대한 영광을 떠올리고 향수를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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