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성의 본질이란 아마도 결핍일 것이다. 스스로 결핍이 아니라면 남자들이 여자를 그리워할 리가 없을 것이다. 오입을 하고 바람을 피울 수밖에 없는 남자들도 다 그 결핍 때문인 것이다. 나는 남자의 ‘특권’을 이 사회에 반납하고 싶다. 그리고 마누라보다 오래 살아서, 내 마누라가 죽을 때 마누라를 이 세상의 가장자리까지 배웅해 주고 싶다. (‘남자도 오래 살고 싶다’ p.43)

 

흥, 소리가 저절로 나는 글이다. 세상의 친부모, 시부모를 둔 자식들에게 물어보라. 누가 더 오래 살기를 바라느냐고. 자매들끼리의 얘기지만, 엄마가 병원에 가셨다는 소식을 들으면 아버지보다는 더 오래 사셔야 하는데, 라는 말이 탄식이 나온다. 아무리 마음에 사이가 좋지 않은 엄마라도 아버지보다는 함께 살기 낫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그래서 건강 체질이신 아버지에 비해 잔병을 달고 사는 엄마를 보는 시선은 위태롭다.




결혼해 사는 동생이 조만간 시골에 계신 시아버지를 모셔와 살아야할 모양인데, 가족이건 이웃이건 이구동성으로 시어머니도 아니고 어떻게 시아버지를 모시느냐다. 사실 성품 좋기로 소문 자자하신 분이고 일찍 돌아가신 시어머니만큼은 아닐 지라도 여동생과 시아버지와의 관계는 아주 좋았다. 입버릇처럼 장남은 아니지만 언젠가 모셔야겠다는 각오도 할 만큼 했고, 담배를 많이 피우신다는 것만 빼면 어지간히 까칠한 시어머니 보다야 백배는 낫다고 했으면서 막상 모셔야할 상황에 다다르자 말이 많다. 아흔에 가까운 나이에 이르도록 홀로 끼니를 끓여 드신 그동안의 고생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의 불편쯤이야 감수하는 게 당연하지 싶은데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간사해서 제가 무슨 순교자인 냥 군다.

말나온 김에 동생은 아주 열렬한 기독교도인데, 자칭 봉사활동이 지나쳐 교회업무로 인해 가정을 소홀히 할 정도다. 아이들보다 신앙생활을 우선 순위에 둘 때마다 몇 번 큰 소리로 다투기도 하고 적당히 자제하라는 충고를 거듭했는데, 이번 시아버지 건으로 다시 말이 나왔다. ‘그 교회에서는 연로한 시아버지를 빨리 모셔 효도하라’고 가르치는 일은 없느냐고 억지소리를 좀 했다.

종교가 없는 나는 가능하면  교회 얘기를 않는 주의지만 신앙의 유익함에 비례한 해악도 만만치가 않아 보인다(뭘 알고 하는 소리냐고 하겠지만). 어떻게 라는 방법의 문제겠지만 현대에서 교회라는 공간은 특히 요즘 텔레비전에 종종 등장하는 유명인이 목사로 있는 교회는 예배와 헌신이라는 신앙의 개념보다는 사교의 장 같은 번잡함이 먼저 떠오른다.

초기에는 동생의 부탁으로 이끌려 나가 신자등록을 했는데, 그 낯설음이라니. 나는 말이 통하지 않는 세계에 불시착한 이방인처럼 겉돌았다. 언제부터 우리나라 교회가 경건함이란 단어가 어색하리만치 소란스러워졌을까. 목청껏 외치는 기도소리, 찬양 소리, 마이크를 통해 쾅쾅 울리는 설교 소리, 농담과 현란한 비유들, 장식적이고 화려한 내부 인테리어, 오케스트라를 방불케 하는 클래식 악기들의 향연, 아, 정말이지 어지러운 곳이 아닐 수 없다.



 교회에 대한 좋은 기억도 물론 있다. 서울에서 잠시 거주하던 시절. 지인을 통해 새문안교회를 잠시 다녔는데, 김동익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깜짝 놀랐다. 낮고 울림있는 목소리로 막힘없이 풀어나가시는 설교가 어찌나 멋지고 감동적이던지, 그곳에 계속 머물러 그 교회를 다녔다면 지금쯤 아무도 말리지 못할 기독교인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게 최초이자 마지막 기억이다. 이후, 아무리 명성이 대단한 교회라도 설교가 아니다 싶으면 다시는 발길을 돌리지 않았다.  

서민이 선이고 귀족이 악인 것도 아니다. 가난뱅이가 선이고 돈 많은 놈이 악인 것도 아니다. 그 반대도 아니다. 진보가 선이고 보수가 악인 것이 아니다. 물론, 그 반대도 아니다. 부자가 부자의 악덕에서 헤어나기 어렵듯이 가난뱅이에게도 가난뱅이의 악덕은 있다. 또 부자의 미덕이 있듯이, 가난뱅이의 미덕도 있는 것이다. 인간은 전면적으로 선하거나 악하지 않다. (p.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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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6-01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되는 이야기에요. 난리법석, 시끌벅적, 사교의 장..
저도 그곳이 낯설고 이물감 느껴져요. 그래서인지 완전 이름만 기독교인이지요.

마법천자문 2007-06-01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컷들이 오입질을 하는 이유는 이기적 유전자의 번식 욕구 때문이고, 먹사들은 극히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 전부 사기꾼들입니다.


아... 즐찾 줄어들면 어쩌려고 이런 댓글을... ㅎㅎ

겨울 2007-06-02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전자의 번식 욕구라 그거야말로 충분히 납득이 가는 걸요? 설마 이 정도로 즐찾이...



배혜경님. 참으로 민감한 얘기가 아닐 수 가 없는데요. 주변을 둘러봐도 교횔 다니는 사람 수가 훨씬 많아서 따 당하지 않으려면 입을 꾹 다물고 있어야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