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모든 먹이 속에는 낚싯바늘이 들어 있다. 우리는 먹이를 무는 순간에 낚싯바늘을 동시에 물게 된다. 낚시를 발려먹고 먹이만을 집어먹을 수는 없다. 세상은 그렇게 어수룩한 곳이 아니다. 낚싯바늘을 물면 어떻게 되는가. 입천장이 꿰여져서 끌려가게 된다. 이 끌려감의 비극성을 또한 알고, 그 비극과 더불어 명랑해야 하는 것이 사내의 길이다. 돈과 밥의 지엄함을 알라. 그것을 알면 사내의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아는 것이고, 이걸 모르면 영원한 미성년자다. 돈과 밥을 위해서, 돈과 밥으로 더불어 삶은 정당해야 한다. 알겠느냐? 그러니 돈을 벌어라. 벌어서 아버지한테 달라는 말이 아니다. 네가 다 써라. 난 나대로 벌겠다. (p. 15)


김훈의 책을 읽으며 하는 딴 생각 중의 하나는 그에겐 아마도 딸이나 여자형제가 없지 않을까 라는 거다. 딸이 있었다면 형평성을 고려해서라도 글에서 보여주는 아들에 대한 편애가 불가능했을 테니까. 여자형제는 있더라도 위로 있는 누나가 아니라 여동생이거나. 돈과 밥의 지엄함을 알라는 그의 호통 속에는 가장으로서 짊어진 남보다 무거운 책임감이 느껴진다. 남자라고 해서, 가장이라고 해서 누구나가 그처럼 반듯하게 살진 못한다. 얼마나 엉터리 남자와 가장들이 많은 세상인가. 마누라와 자식을 버리고 때리는 남자들 부지기수다. 올곧게 밥벌이라는 숙명을 짊어지고 묵묵히 걸어가는 남자로서는 아름답지만 그렇지 못한 남자들에 대한 부끄러움도 가끔은 말했으면 좋겠다. 네가 다 써라. 나는 나대로 벌겠다. 아버지로서의 그가 너무 멋있어서 웃음도 나고 눈물도 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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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7-06-03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하하. 네가 다 써라.
근데. 딸이 있답니다.^-^
딸은 영화 쪽 일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이것도 참 묘합니다.-.-

겨울 2007-06-03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딸이 있었군요. 전 분명히 없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게다가 영화 일을 한다니, 정말 의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