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 나, 타인, 세계를 이어주는 40가지 눈부신 이야기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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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이 책은 관계에 대한 물음으로부터 그 여정이 시작된다. 우리의 자아는 다양한 경험으로부터 관념을 형성하고 이 관념은 세계를 해석하고 타인을 해석하는 주체가 된다. 혹은 자아는 타인의 입장에서 세계와 타인을 보는 객체가 되기도 한다. 채사장은 우리 인생의 여정 중에서 반드시 알아야 될 것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관계로부터 출발하고 관계야말로 자아와 세계, 자아와 타인을 설명해 줄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관계에 대해 탐구하기 위해서는 의무적으로 언어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음을 주장한다. 왜냐하면 언어가 자아의 고립을 넘어 외부의 타자에게 닿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어 역시도 한계성을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해 채사장은 



언어의 한계는 언어생활을 한 지 한두 해가 아닌 우리에게 이제는 그리 큰 걱정거리가 아니다. 우리는 말과 글이 얼마나 오해의 소지가 많은지 대강이라도 느끼고 있어서, 오해를 줄이기 위해 나름대로 의 노하우를 사용한다...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것은 언어의 양을 늘리는 방향과 언어의 양을 줄이는 방향이다. 164 ~165쪽


나는 이 신박함에서 언어를 늘이고 줄인다는 표현에 전혀 감을 잠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곧 책과 시라는 말에 아하!!! 완전 공감!!!이라는 탄성을 내질렀다. 우리는 책을 통해 작가와 만남을 갖는다. 그런데 사람마다 살아온 경험치가 다르다 보니 작가의 작품을 보고도 다양하게 해석하고 또 받아들인다. 작가는 이런 의도로 이야기를 펼친 것인데 반해 독자는 저런 의미로 자기 해석을 한다. 이것이 저자가 말한 자아와 타자의 만남 중 한 종류임을 알게 된다. 시는 어떤가? 우리는 함축적인 아주 짧은 글귀에도 감명을 받고, 공감을 한다. 


그래서 저자가 말한 타인과의 관계 탐구에서 언어가 차지하는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의 의견에 동의하게 된다. 왜 우리는 타인을 알고 세계를 알아야 할까? 그는 터키에서 발굴된 세이킬로스의 짧은 글귀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1883년 터키의 아이딘 지방에서 원통형 비석이 발견되는데, 기원전 200년 무렵에 만들어진 노래 가사와 음을 연주할 수 있는 악보로 밝혀진다. 그리고 저자는 고대의 사람들과 현대의 사람들이 똑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 인간이라는 존재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구나. 입고 있는 것, 들고 다니는 것은 바뀌었을지 모르지만 인생이라는 제한된 시간 속에서 느끼는 감정과 생각들은 그대로구나, 가사를 보고 있으면 그런 거창한 생각에 빠져든다. 가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살아 있는 동안, 빛나라.


그대여 결코 슬퍼하지 말라.


인생은 찰나와도 같고, 


시간이 마지막을 청하게 되니. 219~220쪽

저자는 나는 무엇인가라는 자아의 본질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세계란 무엇인가란 새로운 질문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세계는 빛으로 이뤄져 있고(우리가 사물을 인식하는 이유는 사실 광파 때문이긴 하다. 실질적으로 태어나면서부터 장님인 사람은 코끼리의 모습을 전혀 상상해 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과학적으로는 태양광에서 방출되는 자외선, 적외선, 가시광선 등의 빛에 의해 우리는 세계를 이해하고 있는 건 사실이니까...)) 관조자인 나는 이 빛을 통해 나에게 받아들여지고 재해석 된 세계를 보게 된다. 


저자가 말한 


'나란 무엇인가? 그것은 관조자다. 그리고 관조자의 특성은 빛이다.'


라는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기엔 역부족이지만, 그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알 수 있다. 


인간은 인간이라는 종이 세계의 전부라 생각하고 특히 자기 눈에 보이는 세계가 실제 세계의 보편적 기준일 것이라고 믿지만, 세게는 그렇게 보편과 특수로 나눌 수 있는 무엇이 아니다. 모든 보는 존재는 충분하고 완벽한 세계를 자기 내면으로 갖고 있고, 그 내면의 빛은 그 존재를 부족함 없이 사로잡는다.  241쪽

여러분들은 저자의 이런 견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개인적으로 나는 내 삶의 물음에 (책 말미에는 철학적 개념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어서 그 깊은 뜻은 모르겠으나) 살짝 컨닝을 한 기분이다. 그리고 저자가 불교의 윤회를 언급함으로써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제목을 붙인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꿈이라 표현한 부분도 윤회를 떠올리게 했다. 아무튼 우리는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 더 좋은 직장을 가지면 행복할 거라 생각하지만, 실제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부분적으로 잠시 그것이 안겨주는 풍족함과 기쁨을 누리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고통, 질투, 억압, 슬픔, 외로움 등에 시달리며 산다. 

 

반복된 일상속에서 지친 영혼의 쉼을 원한다면 그리고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다면, 타자와 세상의 관계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추천하는 바이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드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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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로 산다는 것 - 워킹푸어의 시대, 우리가 짓고 싶은 세계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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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 온 파란 눈을 가진 한국을 사랑했던 남자!!! 그가 들려주는 미아 이야기...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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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게 범죄 - 트레버 노아의 블랙 코미디 인생
트레버 노아 지음, 김준수 옮김 / 부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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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버 노아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백인 아버지와 흑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탄생은 당시 남아공 정책에 의해 절대 존재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남아공에는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인종차별정책이 있었는데, 그 정책들 중 하나가 백인과 흑인 사이의 성관계를 금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금기를 어기고 태어났기에 그는 자신의 존재를 범죄라 말한다. 트레버 노아는 백인에도 흑인에도 속하지 못했지만, 타고난 긍정적 사고와 어머니의 창의적인 교육 덕분에 연못에 핀 연꽃처럼 그렇게 자신을 꽃 피운다.


개인적으로 이 에세이를 읽으면서 가장 부러웠던 점은 트레버의 어머니에 대한 깊은 사랑과 존경심이었다. 트레버는 어린시절부터 성인이 될때까지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긴 인생이란 여정 속에서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들려준다. 그는 남아공에서도 빈민가라 불리는 지역에서 대부분의 성장기를 보냈었고, 우수한 지적 능력이 있었음에도 가난 때문에 대학에 진학할 수 없었다. 그는 아파르트헤이트라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존재했던 인종차별정책에서 이제 막 벗어난 시대의 아이였다. 만델라 대통령이 그들의 지도자가 되면서 아파르트헤이트는 붕괴되었지만, 사회적 분위기는 백인과 흑인 그리고 유색인종에 대한 구분으로 여전히 나누어져 있었다. 


이 에세이는 내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아마도 내가 아이를 키우는 주부여서 더욱 그랬다. 트레버는 자신을 세상에 존재하게 해준 자신과 아버지 그리고 자신과 어머니의 이야기를 중점으로 들려주고 있다. 이는 자기 존재에 대한 정체성으로 귀결되는 이야기이면서 트레버라는 인물의 존재론적 접근이기도 했다. 백인 아버지를 두었다는 것은 무의식적으로든 의식적으로든 아이의 심리에 긍정적인 씨앗을 심어준 듯하다. (물론 아파르트헤이트가 붕괴되기 전까지였지만,,,) 아무래도 그의 핏속에 백인의 피가 흐른다는 사실이 그를 특별한 존재로 인식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듯하다. 트레버 주변에는 그와 같은 출생의 비밀? 을 안고 태어난 아이들이 없었다. 그리고 흑인 가족들은 그를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이런 특별한 경험이 있었기에 아파르트헤이트가 붕괴된 이후 그를 유색종이라 부르며 차별하고 멸시했던 타인 과의 관계에서 그는 생존 할 수 있었으리라! 그는 자신의 불우한 환경과 특별한 출생 그리고 그 출생으로 인한 타인들의 멸시 앞에서 절대 주눅들지 않았다. 그 힘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트레버의 영유아기 때 받은 가족들의 특별한 사랑이 그 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트레버는 악동이었다고 자신을 회상하고 있다. 그리고 그와 어머니의 관계는 톰과 제리의 관계와 같았다고 말한다. 그의 어머니만이 그를 엄격히 대했고, 그의 교육에 엄청난 정성을 쏟았다. 트레버는 이런 사실을 깊이깊이 기억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의 잘못에 대해 관대한 처분을 내리지 않으셨다. 그리고 주말마다 그를 교회에 데리고 다니셨다. 어린 트레버에게 책도 많이 읽히셨다. 트레버의 어머니 육아 방식에는 그냥 평범한 엄마들의 소망이 표현된 것들이다. 하지만 트레버는 이 모든 것에 대해 비판하고 자신의 생각을 밝히면서도 왜 어머니가 자신을 그렇게 키웠는지 그래서 자신이 어머니를 얼마나 존경하고 대단히 여기며 사랑하는지 고스란히 독자들이 느끼게끔 해주었다. 특히 좋지 않은 일을 당해도 그녀는 결단코 낙담하거나 실의에 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유머와 통찰로 경험에서 무엇인가를 배우려했다. 


자녀가 성인이 된 이후 부모를 향해 존경한다는 말을 한다는 건 정말 대단한 찬사가 아닐 수 없다. 꼭 그런 찬사를 듣기 위해 자식을 키우는 것은 아니지만, 기왕지사 자식을 낳았으니, 최선을 다해 키우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 아닐까? 그래서 그녀는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아이는 그녀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태어난 게 범죄』에서는 트레버가 태어나고 자란 남아공이라는 공동체에서 빈민가 그리고 가정 내 폭력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그에게 휘두른 폭력은 자신에 대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었고, 아벨이란 이름의 의붓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이 불러온 이유 없는 폭력이었으며, 남아공이 오랜 시간 고통받아온 인종차별정책은 국가가 개인의 피부색에 따라 휘두른 폭력이었다. 궁극적으로 트레버와 어머니는 폭력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트레버는 직업을 가지고 싶었고 학교에도 가고 싶었지만 가난이라는 현실적 문제로 결국 불법 음반 복제를 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당시에 그는 그것이 불법행위라는 사실 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정부가 그들의 국민들에게 제대로된 법률과 생계를 보장해 주지 못했을 때 불법은 민초가 된다는 부분에서 그의 통찰력을 느낄 수 있었다. 어찌 그의 가난 앞에 도덕의 잣대를 함부로 갖다 될 수 있을까? 하지만 동시에 나는 혼명에서라는 작품 속 정현수가 떠올랐다. 트레버가 그랬던 것처럼 정현수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처한 환경이 아무리 열악하고 범죄를 조장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지녔을지라도 극한의 악인이 되게 발을 들여놓지는 않았다. 트레버는 자신의 행동이 잘못된 것임을 인지하지는 못했지만, 더 이상의 범죄로 발을 들여놓지 않도록 늘 스스로를 단속했고, 정현수는 자신의 행동이 정당한 것이 아님을 알았기에 끊임없이 양심 앞에서 괴로워했다. 


태어난 게 범죄라는 작품은 내게는 정말 감동적인 에세이였다. 자신이 살아온 삶 속에서 의미를 찾고 잘못을 던지고 또 깨달음을 얻어 가는 과정이 생각하며 삶을 사는 주체적인 인간상을 보는 듯 해 좋았다. 또한 두 모자의 유머 넘치면서도 의미가 담긴 평범한 사람 사는 이야기가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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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흄 - 인간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자 한 철학자 클래식 클라우드 25
줄리언 바지니 지음, 오수원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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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클라우드에서는 철학가, 음악가, 과학자, 화가, 문학가 등등 우리 귀에 익숙한 유명인사들의 삶과 그 여정을 흥미로운 관점에서 알게 해주는 교양서적이다. 적어도 나는 그리 생각한다. 이번에 만난 데이비드 흄은 계몽주의 사상에서 경험주의로 그 명성을 드높였던 인물이다. 사실 그의 저술이 그의 이름을 더 높였다기보다는 그의 사상을 기반으로 주변 지인들이나 후학들에게 밑거름의 역할을 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을 듯하다. 순수이성비판의 저자 칸트도 "흄은 나를 이성이라는 독단의 잠에서 비로소 깨워주었다"라 평했으며, 국부론을 쓴 애덤 스미스도 흄의 사상 및 저술에 영향을 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18세기 시절 유럽은 한창 계몽주의 사상이 꽃을 피우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많은 사상가들이 배출되었는데 데이비드 흄도 계몽주의 시대 흐름에 따라 경험론자들 중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인물이었다. 당시 인간의 지성이 어디로부터 시작되는가에 대해 합리론자들과 경험론자들이 첨예한 토론을 벌였는데, 흄은 우리가 세계를 알 수 있게 된 근본 원인이 오감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보았다. 오감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 관념으로 전환된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이성은 감정의 노예라는 주장을 하게 된다. 그는 첫 번째 파리행에서 그의 대표 저술작 <인성론>을 완성시키는데, 이 책이 자신을 알려줄 것으로 기대했던 그는 <인성론> 때문에 곤욕을 치른다. 왜냐하면 이 책이 널리 오해되어 알려졌기 때문이다. 특히 영국의 철학자 토머스 리드는 <인성론>을 가리켜 '​뭐든 모조리 의심하려는 아주 부정적인 시도'​라고 평했다. 이런 견해 때문에 그는 회의론자로 낙인찍힌다. 


하지만 흄의 회의론은 고대 철학자 피론이 주장한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한다는 입장과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론과는 그 관점이 달랐다. 흄은 데카르트와 피론보다 더 온건한 '완화된 회의론'을 주창했는데, 그가 이런 주장을 하게 된 원인은 종교가 가진 극단적 믿음, 인간의 이성을 절대 지 혹은 선으로 보는 극단적 행위를 경계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스토아학파의 금욕주의를 비판하게 된다. 인간은 완전무결한 존재가 아니다. 그는 이런 완전함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보았다. 흄은 '적절한 중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중용의 법칙이다. 이 중용의 법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나 흄은 이를 숨기듯 말 듯 인정했다. 아무튼 중용의 원칙에 미뤄 미덕을 보자면, 


미덕이란 결핍과 과잉 사시의 중간 지대에 존재한다고 보았다. 관대함은 비열함이라는 결핍과 낭비라는 과잉 사이의 중도다. 용기는 비겁함이라는 결핍과 무모함이라는 과잉 사이의 중도이며, 유연함은 줏대 없음이라는 결핍과 경직성이라는 과잉 사이의 중도다. 흄은 검소함의 사례를 들면서 탐욕은 결핍이라는 악덕이요 헤픔은 과잉이라는 악덕이라고 설명한다.  67쪽


데카르트가 주장한 이성에 대한 관점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이 유명하다. 이는 확실한 지식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적 회의론으로 그는 완전무결한 앎에 도달하기 위한 도구가 이성이라 보았다. 그리고 이 이성을 끊임없이 의심함으로써 궁극적 앎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흄의 견해는 달랐다. 흄은 이성이란 우리의 경험으로부터 출발한다고 보았다. 우리가 고양이의 모습을 보지 않고도 고양이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이유는 눈으로 고양이의 모습을 먼저 보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관념은 오감 이후에 발휘된다고 보았다. 


흄은 필연적 연결이라는 사고를 통해 경험론을 주장하기도 했는데, 예로 우리가 빗소리를 들었을 경우 밖에 비가 온다는 사실을 눈으로 보지 않아도 지금까지 인과적으로 쌓아온 경험의 축적 때문에 밖에 비가 내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필연적 연결은 습관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흄은 "경험에서 나오는 모든 추론은 이성이 아니라 관습의 결과다"라고 정의 내리게 이른다. 


저자 줄리언 바지니는 흄의 사상적 한계도 몇 가지 언급하고 있는데, 그의 경험주의 주장은 관념의 내재를 인정하지 않으면, 자기모순에 빠지는 점을 버틀런트 러셀의 주장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또한 그 역시도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지 못해, 인종에 대한 평가나 여성에 대한 평가가 동시대와 같은 시각이 내재되어 있음을 지적했다. 줄리언 바지니는 데이비드 흄은 시대를 앞서간 천재 사상가라고 지칭했는데, 이런 천재 사상가도 그가 살았던 시대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점 그리고 사상적으로는 상당히 진보적인 사람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상당히 보수적인 사람이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한때 자신의 나라에서 추방당하고 여러 나라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던 루소를 받아들이고, 두 사람이 결국 오해로 헤어졌지만, 그 오해조차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한 그의 성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나 역시도 남성우월과 백인우월 시각이 강했던 시대를 감안한다면 패널티를 주고 그를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평생 독신자로 살았으며, 자유를 사랑했고, 소박하고도 검소한 삶을 지향했다. 물론 그의 선천적인 성격은 타인과의 소통 혹은 교류를 즐기기도 하였지만, 혼자만의 고독의 시간도 즐겼다. 시대적 한계는 있었지만, 흄은 스스로가 중용의 삶을 실천하면서 살려고 노력했던 사상가였다.


데이비드 흄에 대해서는 경험주의 대표자라는 배경지식 말고는 딱히 아는 바가 없었다. 하지만 클래식클라우드를 통해 또 한번 나의 지평을 넓힐 수 있었고, 몰랐던 그에 대한 생애를 알게 됨으로써 나에게는 참으로 유용한 책이었다. 다만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다. 부분 부분 오타 발견 및 번역이 매끄럽지 못해 읽는 사람에 따라 책의 완성도에 대한 만족이 크게 나누어질 우려가 있어 보인다. 그동안 쌓아올린 클래식클라우드의 명성에 흠이 생기지 않도록 출판사의 각고의 노력이 필요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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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짓, 기적을 일으켜줘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8
팀 보울러 지음, 김은경 옮김 / 놀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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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용서에

관한 물음

 


저명한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용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 내린다. 용서란 생각을 하지 않는 완전히 잊어버리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상대방을 위한 이타적 행위라기보다는 스스로가 더 편해지기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 나는 소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동시에 이 글귀가 떠올랐다. 내가 처음 만난 팀 보울러의 『미짓, 기적을 일으켜줘』는 소설 말미에 큰 여운과 질문을 남긴다.

 

소설 속 주인공 미짓은 선천성 장애를 안고 있는 15세 소년이다. 소년의 가족은 형과 소년을 너무나 사랑하는 아버지가 있다. 15년 전 소년이 태어날 때 어머니는 죽었다. 그 죽음의 원인을 두고 끊임없이 동생 미짓에게 책임을 묻고 괴롭혀 온 형 셉과 그런 미짓의 어리숙한 행동이나 간질 증상에 따뜻한 관심을 보낸 이웃들이 있다. 그리고 간질을 앓고 있는 미짓은 다수의 사람들로부터 이상한 눈빛의 대상이 되는 존재다.

 

아이를 키우는 나는 처음에는 아버지가 큰 아이의 괴롭힘을 알지 못한다는 설정이 조금 억지스러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질문은 곧 나는 자녀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진정 자녀의 모습을 알고 있는가? 내가 아는 자녀의 모습은 실제 자녀의 모습과 얼마나 일치되는가?라는 질문으로 확장되었고, 그제서야 작가의 단순한 설정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작가의 의도가 있든 없든 나는 자녀에 대해 내가 얼마만큼 알고 있는지 나 자신에게 묻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설정이라는 데 생각이 이르렀다.

 

미짓의 발작 증세가 최근 들어 심해지자 아버지는 새 정신과 의사 패터슨에게 미짓의 상담을 의뢰한다. 패터슨은 미짓이 형 셉과 어머니를 언급할 때 미세하지만 눈에 띄게 드러나는 신체적 반응을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뇌파 테스트를 통해 미짓의 남다른 재능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선착장에 정착만 하고 있는 요트 주인인 조셉이 매일 그 녀석을 보기 위해 발걸음을 하는 미짓을 보고 그에게 요트 '미라클 맨'을 물려주면서, .미짓은 그동안 감춰왔던 아니...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특별한 재능을 드러내게 된다.

 

 

선장을 확인해야 해. 알아듣겠냐?

대개 사람들은 선장을 확인하지 않아.

잘못된 기적을 따라가다가 그냥 익사해버리고 말지. 그러니 결과가 나쁘다 해도 선장의 잘못은 아니야P. 106

 


하지만 좋은 기적이 있고, 나쁜 기적이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해. 그러니 넌 반드시 선장이 기뻐할 만한 일을 원해야 해... 반드시 선장이 기뻐할 만한 일을 원하고 바라야 하는 거야.

P. 106


설령 네가 나쁜 기적을 원한다 해도...

완전하게 그리고... 완전하게 믿으면... 그걸 얻을 수는 있어. 다만 대가가 따라오지...

악이 뒤따라 온다.P. 120

 

소설에서 등장하는 '선장'의 상징적 대상은 누구일까? 바다? 미라클 맨? 아니면 미짓? 그에게 요트를 선물한 조셉일까? 소설 속 미짓은 늘 주변에서 멸시와 부정을 습관적으로 받아왔던 인물이다. 그리고 미짓에 대해 주변 사람들은 편견과 선입견으로 뭉쳐 있다. 마치 '미라클 맨'이 해초에 묶여 바다로 나아갈 수 없는 것처럼.... 그런 그에게 꿈에 대해 확신을 심어준 인물이 조셉 할아버지다.

 

우리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종종 상처와 미움을 주고받는다. 미짓, 기적을 일으켜줘라는 바로 우리 가족의 모습을 탐구해 볼 수 있는 감동적이면서도 유익한 소설이다. 또한 미짓을 이해하고자 했던 제니와 조선소 소장 그리고 조셉 할아버지와 패터슨 의사 선생님 모습과 대다수 사람들이 미짓을 바라보는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도 투영해 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는 세계에서 여러 현상을 경험하며, 그 현상이 일으키는 감정의 다양한 파편들을 만난다. 이 파편들은 우리의 선택을 방해하기도 하고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이도 저도 아닌 혼란의 상태만 줄 때도 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정은 추상적인 개념이다. 자녀들과 이런 추상적인 감정에 대해 구체적인 소설을 가지고 대화를 나눠보는 것은 어떨까? 또한 심한 갈등 상황에 놓여 있는 형제들이 있다면 각자 소설을 읽고 난 후 부모와 대화를 나눠 보는 것은 어떨까?


자신의 기적에는 늘 책임이 따른다.


가족이란 무엇인지, 가족 간의 갈등에 대해, 개인이 내린 결과에 대해 여러 질문을 하게 만든 책 『미짓 기적을 일으켜줘』는 우리가 내린 판단이나 선택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었다 해서 당장 눈에 드러나는 해결법은 없겠지만, 대화를 통해 문제의 단초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책을 싫어하는 자녀가 아니라면 형제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고 싶으나 그것이 어렵다면 이 소설을 읽어 볼 것을 추천한다. 또한 일반 독자들에게도 우리 내면 속 편견과 맞서고 싶다면 이 소설을 추천한다.

 

가족이란 무엇인지, 가족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에 대해, 그리고 개인이 내린 결과에 대해 여러분들의 생각을 묻는 소설 『미짓 기적을 일으켜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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