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열한번째 촛불집회에서 복귀. 6월 15일. 광화문에 도착해 시청방향으로 걸어가려고 했는데 어라, 나왔는데 도로에 차가 다닌다. 쌩쌩. 그리고 광화문의 명박산성은 사라진건 알았지만, 경찰들이 이순신 장군쪽 중앙을 다 터놨네? 양옆으로만 닭장차를 배치하고. 무슨 일이지. 아니 걸어나오면 도로가 다 꽉 차 있을줄 알았는데 생각치 못한 장면에 충격을 받고. 심지어는 '오늘 집회 안하나?'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약간의 의심을 품고 시청으로 향하는데 도로는 역시나 차들이 쌩쌩 점거(?)하고 있었다. 시청광장에 사람들이 모여있었고, 인원은 생각보다 적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근래 큰 집회에서 인원이 10만, 20만, 50만 단위로 커지다보니 이제 몇만명(약 2만 남짓) 정도는 우습게보였던 것이다. -_-  

  오늘은 그래도 크게 한다고 했는데 사람들이 별로 모이지 않았다. 일요일이라 그런가. 시청광장은 꽉 들어찼지만 도로까지 점령할 인원은 되지 않았고, 그렇게 혼자 광장 한쪽에 주저앉아 구호도 외치고, 촛불도 들었다 내리고 했는데 뒤를 돌아보니 꽉 찼더군. 오늘 집회에선 6.15 남북 공동 선언일인지라 계속 남북한의 관계에 대한 발언들이 이어졌는데, 여기 모인 사람들이 통일 이야기하자고, 남북관계 이야기하자고 모인게 아닌데 자꾸 핀트가 어긋나는 느낌이랄까, 그런 느낌이 계속 들었다. 올라오는 사람들도 말들을 별로 못하고, 유쾌하지도, 재밌지도 않은 남자들의 발언만 계속 이어졌고. 그러다 마지막 기말고사 공부안하고 여기 왔다는 고3 여학생의 목소리에, 그 아이의 발언에, 다들 뒤집어졌다. 큭큭.

  "여러분! 문제만 있고 정답이 없는 문제지 출판사는 망해야 합니다. 그렇죠? 문제를 만들어놓고 해결하지 않는 정부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와아아아아아 망해야합니다!" 큭큭큭큭. 센스하고는. 앞쪽에 고등학생들이 쫙 몰려있었다고 들었는데, 참 기특하다. 남들 시험공부하고 있을 때 여기 나와서 민주주의의 실현을 이루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하니. 이런 학생들이 많아져야 하는데 말이지. 공부만 하고 생각 안하고 행동하지 않는 학생들은 공부를 하면 안된다. -_- 공부만 한 애들은 꼭 보면 나중에 뻘소리나 하고 앉았더라. 뻘소리란게, 나와 같은 의견, 같은 생각이 아니라고 해서 그렇다는게 아니라 딱 자기밖에 모르는 그런 관점에서 사회를 바라보더라고. 자기 주변의 타인을 전혀 고려치 않는.

  집회가 조금 늦게 시작한지라 늦게 광장에서 일어나 도로로 나갔는데, 내겐 아주 익숙한 코스다. 5월 중순만해도 아니 얘네가 어디로 가는건가 하는 불안감이 살짝 있었는데 이제 말 안해줘도 다 안다. 어디로 갈지. 코스가 몇 개 있는데 중간쯤 가다보면 아 얘네가 어디로 가는구나, 하는게 감이 딱 온다. 오늘은 온건한(?) 코스를 선택했는데, 시청에서 남대문, 명동, 종로, 광화문으로 가서 다시 시청으로. 가는 행렬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길어졌다. 처음엔 한쪽 도로만 점거하고 행진했는데, 나중에는 사람이 많아져서 한 차선을 더 점거하고, 급기야는 8차선을 다 점거해버렸다. 남대문, 명동을 지나면서 행진에 참여하는 동네시민(?)들이 늘어나서 그런 듯하다. 역시나 오늘도 아줌마 아저씨들, 밀려있는 차 안에 있는 아가씨들, 학생들이 호응을 해줬다.  

  돌아돌아 도착한 광화문에는 꽤 많은 인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 있던 사람들은 아마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뭐야 이게 다야? 하지만 우리가 도착하고 함성은 커졌다. 애초 시청으로 오지 않고 광화문에 모인 시민들과 시청에서 광화문으로 행진한 시민들이 모여 규모가 커졌고, 그들은 다시 시청으로 행진했다. 일부는 광화문에 남고. 명박산성이 없어지고 헌차를 어디로 보냈는지 새 닭장차를 가져왔다. 우리의 그래피티와 예술행위가 되어있지 않은 민둥이 닭장차가 서 있었다. 달라진건 앞에 전경이 아닌 경찰들이 라인을 그리며 닭장차 앞에 서있었다는 것. -_- 뭐니. 그러니까 얘네 세워서 우리보고 닭장차는 건드리지말라고? 닭장차 바리케이트는 뒤에있는 전경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면, 앞에 서 있는 경찰 몇명은 닭장차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였던 셈. 관심없다. 우리는 시청으로.  

  그리고 시청에 다다르고,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는 선언했다. 20일까지 시한을 줬다고 정부에. 그날까지 국민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 그 다음은... 침묵.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다 안다. 그 다음이 어떨지는. 87년의 재현. 오늘 집회는 아주 온건하고 밍숭맹숭하게 끝났다. 그렇게. 행진 중에 노래에 맞춰 춤을 추며 걷는 일부 어린 20대들이 있었는데, 흐흐 너무 귀엽더라. 무슨 고무줄 놀이보는 것 같았다. 어떤 할아버지는 머리에 밀짚모자 쓰고 양손에 촛불 들고 몸을 흔드시고. 축제다. 축제가 계속 이어진다. 5월부터 시작된 축제는 끝날줄을 모른다. 왜. 축제의 주인공이 아직 자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축제의 목적이 달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그랬다지. 이회창과의 만찬에서. 쇠고기를 안 내주면 자동차를 내줘야 할지 모른다고. 장난하니. 우리가 요구하는 재협상은 우리가 손해보지 않는 재협상이다. 그따위로 해서 재협상 한다해도 국민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지금 이 분노가 단지 쇠고기 때문이라 생각한다면, 얘는 가는 귀를 먹은게 틀림없다. 쇠고기는 5월 초에 나왔던 얘기고, 지금 우리는 그밖의 온갖 것들을 다 말하고 있다. 니가 해결해야 할 건 쇠고기는 기본이고, 다른 민영화 문제나 교육 문제, 대운하 문제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그거 다 해결해주지 않으면 너는 그냥 -_- 에혀. 87년에 니가 있던 위치에 우리가 있다. 그 다음이 어땠는지는 니가 더 잘 알게다. 알면 처신을 똑바로 해야 할게다. 지금 이게 장난으로 보이지 않는다면. 누가 심심하다고 일요일날 데이트도 못하고 - 여자친구가 없잖아 - 시청에 가니. 피곤하게 장거리 행진하고. 내가 심심해서 이러는걸로 보이니. 

  더 자주 가서 머릿수 채워야겠다. 지치면 안된다. 지쳐서 못나오면 안된다. 체력관리 하고, 일상생활에 지장이 가지 않는 선에서 잘 조절해서 꾸준히 지속적으로 자주 나와줘야 한다. 열번 채웠는데 머 서비스 상품 같은 것도 안줘서 스무번 채울란다. 열번째 안주고 스무번째엔 더 큰 뭔가를 주겠지. -_- 왜 자장면집도 그러잖아. 열번 채우면 잡채, 스무번 채우면 탕수육, 서른번 채우면 뭐주지? 팔보채인가. 하튼, 상품이 점점 커지잖아. 열번째 아무것도 안줬으니까 스무번 채우러 간다. 암 것도 안주기만 해봐라. 아 안줘도 돼. 안줘도 되는데 대신 니가 내려오면 돼. 그게 제일 큰 상품이야 나에겐. 에혀 스무번을 언제 채우냐. 스무번 채우기 전에 알아서 니가 잘 알아서 수습해라. 엉아가 곧 또 찾아가마. (아무래도 나 요새 투잡하는 기분이야. 퇴근하면 밀린 숙제하랴, 시청나가랴, 바쁘다 바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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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단 2008-06-16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생했어요.ㅠㅠ

이잘코군 2008-06-16 00:34   좋아요 0 | URL
:)

순오기 2008-06-16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휴~ 우리 아프님 투잡 빨리 접을 수 있게 돼야 할텐데...
담양 대나무 숲에 철학자가 서 있던데, 꼭 아프님 같았어요.^^

이잘코군 2008-06-16 08:54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돈도 안되는 투잡. -_- 저는 그냥 철학애호가 정도랄까요. 큭큭. 진짜 철학자는 발마스님이죠. 감사해요.

글샘 2008-06-16 0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7년엔 조선일보나 이런 건 건드릴 수도 없었는데, 올해는 조선일보 건드리고, 고봉순도 지켜주고... 대운하 삽도 집어 치우고(요즘 물류대란때문에 저색긔는 또 대운하 삽질하지고 지롤거릴지도 모르지만 국민적 정서로 이미 물건너 간 듯), 의보 민영화도 날려 버리는... 정말 뜨거운 촛불입니다. 고생하셨어요.
부산은 뭐, 좀 조용하긴 한데, 화욜의 딴날당 피자 시식회에 많이 가봐야 겠습니당.

이잘코군 2008-06-16 08:55   좋아요 0 | URL
고봉순은 머에요? 사람 이름이에요? ^^ 너무 모르는건가. 피자 시식회 큭큭큭큭. 강준만의 조선일보 폐간 운동이 이제야 빛을 발하네요. ^^

글샘 2008-06-16 11:32   좋아요 0 | URL
마봉춘과 고봉순... ㅋㅋ
MBC KBS

무스탕 2008-06-16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깝게 계시면 점심시간에 만나서 어깨라도 주물주물 주물러 드리고 싶네요.
(제가 체격보다 손아귀심이 셔서 손이 맵거든요 ^^)

이잘코군 2008-06-16 08:55   좋아요 0 | URL
^^ 이힛. 이런 댓글 만으로도 힘이 납니다.

건조기후 2008-06-16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BC가 마봉춘인 것처럼 KBS도 애칭이 붙었지요. 고봉순^^

이잘코군 2008-06-16 11:06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전 사실 마봉춘이 그런 의미인지도 몰랐어요. -_-a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 병역거부자 30인의 평화를 위한 선택
전쟁없는세상.한홍구.박노자 지음 / 철수와영희 / 2008년 6월
절판


"공산주의자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선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어떤 상황 하에서도 그 선한 마음에 호소해야지 폭력을 쓰면 안된다. 폭력은 하나님과 인간의 신성을 부정하는 것이다."(함석헌)-20쪽

각종 군사훈련은 직접적인 살상행위는 아닐지언정 살심을 유발하는 행위임에는 분명했습니다. 제가 진정 두려웠던 것은 급박한 상황에서 우발적으로 발현되는 폭력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그런 위기 상황에서 직간접적 폭력 행위가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유발되도록 쉴새없이 주입받고 훈련받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오태양)-44쪽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을 창살 아래 매어둔다고 해서 지금껏 지켜온 그들의 신념이 바뀌고, 삶의 방식이 변화될 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류 역사의 오랜 전통만 보더라도 인간의 양심과 종교적 신념은 사회적 격려와 강제적 교화를 통해서는 결코 '교도'될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오히려 이들은 고난받고 상처입은 이웃들의 삶을 함께 나누고 동참함으로써, 사회적 구성원으로서 책임감과 인생의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병역거부자들의 삶이 과거보다 더욱 성숙해진다면 그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교도'가 아닐런지요. (오태양)-49-50쪽

아무리 설명을 하고 또 해도 난감해하는 표정으로 "그래서 정말 당신이 병역거부를 결심하게 된 동기는 무엇이냐, 어떤 충격적인 경험이라도 했느냐?"라고 되풀이해서 묻는 사람들에게 그다지 명쾌한 답을 주지 못했던 적이 몇 번 있다. 사실이 그랬다. 마치 신내림을 받듯이 결심을 한 게 아니었다. 더더구나 대단한 결심을 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다만, '앎이 곧 덕'이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은 틀렸지만 적어도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행동할 수 있다'고만 생각했을 뿐이다. 이론과 실천이 항상 일치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게 나에겐 언제나 당위처럼 느껴졌다. 내게 만약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다면 질문을 던진 사람들에게 내면 깊숙이 들어가면서 나타나는 각양각색의 경험과 지식의 퇴적층을 보여줌으로써 어떤 공감대를 불러 일으킬 수는 있었을 것이다. (나동혁)-69쪽

저희들이 말하는 '평화주의'는 단순한 평화 애호도 아니고 이기심이나 방관이나 무기력도 아닙니다. 전쟁에 정의는 없습니다. 전쟁의 바탕이 되는 모든 유무형의 폭력에 '비폭력'으로 일관되게 맞서 싸우는 신념이 '평화주의'입니다. 저는 여기서 이상과 꿈을 말하려 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의 사태에 입각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분쟁지역 난민 구제, 평화 재건, 국가 간 빈부격차를 비롯한 불평등 해소, 평화교섭의 중재와 실현, 양심의 자유 인정, 평화교육 확산 등 평화를 위해 해야 할 일이 태산입니다. 그 모든 노력을 멀리하고 하필 우리는 파병을 선택했습니다. 군사력 행사는 가장 최악의 선택입니다. (나동혁)-84쪽

저는 이제 제가 아는 것을,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천하려고 합니다. 솔직히 이렇게 어려운 것인 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견디고 이겨내 보려고 합니다. 실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가게 되더라도 그 길이 낯설고 조금 두렵기도 하지만 옳은 길이라고 생각하기에, 그 길을 묵묵히 가려고 합니다. 아직도 저를 말리셨던 부모님의 눈물이 생각나고, 제가 없느 동안 부모님이 견디실 시간들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가슴이 아픕니다. 그러나 군사훈련을 받는 것은 저의 자아를 모두 파괴하는 일입니다. 평생이 지나도 못 지울 상처를 드리는 자식을 용서해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비록 부모님의 고통을 밟고 가는 길이지만 이 길이 폭력과 전쟁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을 멈출 수 있게 하는 길이라 믿으며 병역을 거부하겠습니다. (임재성)-123쪽

"막가자는 세상은 다소 고단하고 지친 나를 가르친다. 현실의 삶 속으로 더 녹아들라고, 긴 호흡으로 다시 시작하라고, 진정한 진보가 무엇인지 성찰하라고 한다. 네 자신을 돌아보라고 한다."(철도노동자 황하일의 칼럼 <변절에 대하여> 中, 한겨레21 제635호)-158쪽

"당신이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면 세상을 부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나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순응하면 아무 희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더 대담해지고, 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중국 영화감독 지아장커)-159쪽

만연한 군사주의와 폭력 속에 획일적인 방향만이 강요되고, 서로 간의 차이는 차별로 존재하고, 소수자는 배제시켜 나가는 사회에서 우리는 지금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회에서 차이를 다름으로 인정하고, 서로간에 개성을 존중하고 같이 살아가는 법을, 자신과 다른 사람과 자유롭고 평등하게 소통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을 바꾸어내는 것이 그리 어려운 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화를 바꾼다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삶의 양태를 바꾼다는 것이므로, 일상 속의 작은 실천들을 하나씩 모아나가면 어느 새 우리 삶의 문화는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또한 자신의 양심을 지키며 살아가는 일 역시 거창하고 큰 일이 아닐 것입니다.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인 삶 속에서 행해지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저도 제가 지금 위치해 있는 곳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을 하려고 합니다. (조의정민)-182쪽

"현실적으로 '영구평화'가 불가능하다면, 나는 차라리 평화를 기원하기보다 아득한 정망 속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소수자와 약자, 못 가진 자들의 정의가 승리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쪽을 택하겠다."(김재명, <나는 평화를 기원하지 않는다)-187쪽

군대는 국민의 안전을 지키고, 평화를 유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국방의 의무를 지닌다. 그런데 국방의 의무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간단히 병역의무와 동일하게 여겨지고, 총을 들어야만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처럼 평화를 목적으로 삼고 있으면서 동시에 총을 들고 합법적으로 살인기술을 배우는 이율배반적인 곳이 바로 군대다. 총은 국민의 안전을 지키고 평화를 유지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총은 불안을 불러일으키고, 나아가 총을 든 자의 폭력성을 불러일으키거나, 만들어낸다. (중략) 서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한, 손에서 무기를 내려놓지 않는 한, 평화는 찾아오지 않는다. 서로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되는 긴장감과 불안한 정적은 평화가 아니다. 그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일 뿐이다. (안홍렬)-199-200쪽

"최면을 가장 걸기 힘든 두 집단은 노인과 현역으로 군대를 제대한 한국 남성이다. 최면을 걸기 위해서는 감성이 풍부하고 상상력이 좋아야 한다. 한국처럼 아주 후진적인 군대에서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는 동안 상당수의 사람들이 정신의 일부를 거세당하는 것이다."(한 최면 전문가)-226쪽

김대중 대통령은 10월 2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병역의무의 기피는 우리 현실에서 어떤 이유로든 용납될 수 없고 형평에도 맞지 않다"면서 "일부에서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다’는 이른바 양심적 병역기피를 주장하며 다른 방식으로 봉사하겠다고 한다"면서 "그러나 군대 대신 다른 방식의 봉사를 용납하면 누가 군대에 가려고 하겠는가?"라고 비판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비록 "처벌만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라고 발언하는 했으나, 인권 대통령을 표방한 그가 ‘양심적 병역기피’라는 희한한 신조어를 만들어가며 양심적 병역거부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단언한 것은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었다.(한홍구)-322쪽

대체복무제도 문제는 병영문화 개선대책위 차원을 넘어서서 국회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대통령 개인으로서는 수용해야 한다는 확실한 생각을 갖고 있는데, 군이나 국방부, 병무청은 나와는 생각이 다른 것 같다. 국방부 등의 입장이 최종적인 것이라면 내가 어떻게든 설득해보겠지만, 국방부 등이 아직 최종 입장을 내놓은 것은 아닌 것 같아 그냥 대통령 개인의 소신으로 두고 있다. 국회의 논의과정을 지켜보면서 꼭 필요하다면 국방부 등을 설득하겠다. 그러나 당장은 국민적 논의가 중요한 것으로 보이니, 좀 두고 보면서 했으면 좋겠다. 어느 경우에나 국방력 약화나 군 복무자에게 박탈감을 주는 것은 아니었으면 한다. 정치적 결단은 좀 미루면서 군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적절한 타협점을 찾기 위해 같이 노력하도록 하자. (노무현 前 대통령)-3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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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10일. 전국적인 100만 촛불집회가 있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다시피. 10일은 집에 돌아와서 바로 뻗어버리고, 11일은 회사 회식하고 택시타고 집에 오느라 또 못쓰고, 12일 오늘에서야 그 후기를 남겨본다. 촛불집회에 처음 참여한 게 5월 셋째주 정도부터였던거 같은데, 벌써 6월 둘째주다. 10일로서 열번째 촛불집회 참여. 일찌감치 끝내리란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5년 동안 이짓을 해야할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해본다. 그래도 체력 안배하며 끝까지 간다. 이미 각계각층에서 의미있는 많은 이야기들을 내놓고 있어 나까지 거기에 쓸데없이 더 덧붙일 필요는 없어보인다. 그냥 참여할 때마다 보고 느꼈던 바를, 현장의 모습들을, 지금껏 해왔던대로 후기를 통해 풀어놓고자 한다.

  10일날은 참 많은 지인들이 함께 했고, 현장에서 보지 못한 이들은 각각의 다른 무리들과 함께 촛불을 들었다. 서울에서만 적게는 50만명, 많게는 70만명까지 참여했다고 한다. 경찰은 8만명이라고도 하는데, 이번에도 아마 십만 스물 둘, 십만 스물 셋, 세다가 까먹어서 다시 하나, 둘, 셋 셌나보다. 그러지 않고서야 8만이란 숫자가 어떻게 나오니. 심지어 이 어이없는 경찰들의 셈놀이에 과학적 증거를 들이대고자 한 네티즌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어느 건물 옥상에서 찍은 촛불집회 사진에 찍힌 촛불숫자만 세어 25만이라고 했다고도 한다. 사진을 찰칵 하는 순간, 모든 촛불이 찍히는 것도 아니고 - 심지어 서너명 세워다 놓고 사진 찍어도 그 중 한 놈은 눈을 감기 마련인데 - 그렇게만 세서 25만이면 안 찍힌 절반의 촛불과 촛불 안든 다수의 시민과, 사진 범위 내에 있지 않은 시민들까지 하면 70만은 되겠네.

  퇴근하고 바로 도착한 시청역. 지하철을 무정차 통과시킨단 말이있어 을지로입구로 갈까 하다가 가봤는데 시청역에도 서더라. 무정차 통과시키려다 저항이 거세니까 취소했나보다. 10일 이후에도 이에 대한 기사는 아직 보지 못했다. 어찌된 영문인지. 서울역 지하철에서 일하는 후배에게 한번 물어볼까? :) 시청역에 내렸는데 벌써부터 구호가 시작되고, 도로 곳곳에 자리잡고 앉은 시민이 가득했다. 이번에는 무슨 노조, 화물연대인가, 하튼 그런 단체에서도 왔고, 전에 못보던 단체 깃발이 여럿 보였다. 명박산성을 쌓는 바람에 사람들이 더 몰려들었다고 해석하는데, 아마 명박산성 없었어도 이 정도 왔을게다. 명박이를 포함해 주변에서 좀 뻘소리를 하고 다녀야지. 한놈씩 말 한마디 할 때마다 분노지수를 높여주는데, 나로선 아주 고맙다. 분노를 다 붓고 집에 돌아왔다가 다시 분노를 머금고 다음날 또 나가고.

  이른 시간이었지만 시청에서 광화문까지 지인을 만나러 가는 길은 너무나 험난했다. 어휴. 내가 길거리에서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고 빨리 걷기엔 능한데, 이날은 가는 곳마다 다 사람들과 부딪혔다. 아무리 피해가려고 해도, 천천히 가려도 해도, 반대방향으로 나를 향해 걸어오는 사람들을 피하기는 너무 어려웠다. 아니 피할 공간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니 그냥 앞사람 쫄래쫄래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했다. 광화문에서 지인들을 만나 가장 한적해보이는 동아일보 정문 난간으로 갔는데, 그 지척거리로 가기도 너무 힘들더라. 이미 광화문, 시청, 종각일대는 물론이고, 청계천, 종로3가, 명동, 남대문까지 꽉 차서 움직일 수 없는 지경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다들 밥을 먹지 않고 온지라 근처 김밥집으로 겨우겨우 갔는데, 줄은 또 어찌나 긴지. 현대차 노조와 고려대에서 3-40개 가량을 주문하는 바람에 다리에 힘이 빠져버렸다. 한 시간을 기다려 김밥 다섯줄을 샀다. -_ㅠ

  오자마자 우걱우걱 배속에 채워넣고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거리로 나갔다. 김밥 사느라 양희은의 아침이슬 라이브를 듣지 못했다. 옥소리도 보지 못했다. 아니 거기에 있었어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시청 어딘가에는 지승호씨가 공지영, 우석훈과 함께 했고, 시사IN 천막 앞에선 한 시인과 인사했다. 그때 그 장소에는 이름이 많이 알려진 유명인들이 다수 참여했지만, 그들은 모두 한 개인으로서, 한 시민으로서 그 자리에 있었다. 한 개인이 가진 모든 사회적 지위나 학벌, 학력, 재산, 정치성 등을 떠나 모든 시민이 각자 하나의 촛불을 들고 함께 구호를 외쳤다. "이.명.박.은.물.러가.라." 거리 행진이 시작됐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은지라 각지로 흩어진 것 같았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 김밥집 앞에선 아고라 팀을 목격했고, 나의 행렬엔 듣도보도못한 여러 단체들의 깃발이 나부꼈다.

  시위 행렬에 주목을 끄는 이들이 있었는데, 얼굴에 흰 분칠을 하고 검은 옷을 입고 무표정으로 투명우산과 촛불을 든 채, 일렬로 천천히 걷는, 연극인으로 추정되는 이들이었다. 이들은 가는 곳마다 주변에 사람들을 모았고, 사람들은 각자의 카메라에 그들을 담았다. 말도 없고, 구호도 외치지 않고, 그저 조용히 무표정으로 투명우산과 촛불을 들고 천천히 걷는 그들은 도대체 누구였는지 이후에도 기사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구호를 외치지 않아도, 깃발을 들지 않아도, 소속을 밝히지 않아도, 그들이 든 촛불만으로도, 그들의 변화없는 표정에 담긴 시무룩한 어둠을 나는 목격했다. 그것은 이명박에 대한 침묵 시위였다. 침묵 퍼포먼스였다. 시위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늘어날수록 매번 새로운 경험을 한다. 다음날 신문 기사에 실리거나, 뉴스에 나오는 정도는 지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언론에서 다루지 못하는 수많은 새로운 유형의 시위가, 퍼포먼스가 끊임없이 등장한다.

  명박산성을 유네스코 지정 문화재로 추진하자는 시민들을 보고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일단 웃자. 눈을 가리고 귀를 닫은 이명박의 소통(?) 상징물에 맞서는 시민들의 유머는 날이 갈수록 빛을 발한다. 아놔 이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그런 생각들을 하는건지. 조선일보사 앞에 쓰레기를 잔뜩 쌓아두는 시민들, 명박산성에 그래피티를 하는 예술인들, 산성에 오르고자(?) 대형 스티로폼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 정말 대단하다. 처음 스티로폼은 오를 버스가 없는 기자들의 유용한 지지대가 되었으나, 밤이 깊자 본래의 용도대로 명박산성 앞에 놓여졌다고 한다. 오르자 말자 오르자 말자 토론을 반복하다가 결국 대여섯시간이 지난 아침녁에야 산성에 올라 깃발을 나부끼기로 합의를 봤다고. 그 누구하나 자기 주장을 고집하지 않고 토론을 통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이들은, 진정한 아고라 시민들이다.  

  우리 행렬의 끝엔 경복궁이 있었다. 촛불집회 이전엔 이 장소를 한 번도 와본적이 없어 처음엔 여기가 어디여, 했는데, 이제 그 코스가 익숙해서 지인들에게 코스 설명까지 해준다. -_- 경복궁에 왔다는 건, 또다른 명박 산성과 만난다는 의미이고, 사람들이 주저앉아 토론을 하고 북치고 장구치며 노닌다는 것을 뜻한다. 왜. 이미 며칠 그래본 경험이 있었으니까. 그 중 일부는 집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일부는 행렬의 멈춤을 받아들이지 않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도 한다. 나는 이동파였다. 주저앉아 있다가 사람들과 함께 그곳을 떠나 이전의 집회 경험으로 체득한 경복궁 명박산성 옆 샛길로 향했다. 그곳을 통과하면 광화문이 나오므로. 그러나, 이번엔 경찰녀석들이 버스를 죄다 여기다 가져다 박아놔 막혔다. 이 샛길에. 사람들은 닭장차에 피켓을 집어넣고 차 주변에 촛불을 가지런히 둘렀다. 그리고 또다른 샛길을 통해 광화문으로 향했다.

  광화문엔 이미 애초 그 자리에 있었던 시민들이 가득했고, 경복궁에서 막혀버려 그곳으로 집결하는 또다른 무리들이 합류해 규모가 점차 커졌다. 그러나 시간이 이미 열한시. 직장인들은 집에 갈 시간이다. -_- 신데렐라인 나도 열한시반 그곳을 떠났다. 일행을 남겨둔 채. 아마 경찰들은 갑호비상령이라고는 하지만 명박산성 덕분에 편안히 휴식을 취했을 것이다. 듣기로는 서대문 어디 당구장에서는 특수기동대가 당구치다 기자에게 걸려 도망갔다지. 큭큭. 잘 한다. 다음날 어청수는 역시나 이명박에게 바치는 유네스코 유산에 자화자찬을 늘어놓으며 성공적이었다고 말했다지. 다음에 또 써먹겠다고. 응 그래. 써먹어라. 우리가 또 무료로 그래피티 해주마. 큭큭. 흉물사나운 유네스코 문화재 덕분에 세계 곳곳에서 주목받고 사진 찍히고 우리야 좋지. 이렇게 평화적인 시위는 일찍히 본 적이 없다던 외국인들의 동참도 늘고.

  아마도 내일 혹은 일요일 또 촛불 시위를 가게 될 것 같다. 내일은 확실히 말하지 못하겠고, 일요일은 확실하다. 토요일은 회사 간다. -_ㅠ 흙. 난 벌써 삼주째 주말이 없다. 쉬고 싶기도 하다. 그런데 내가 체력 꽉 채워(?) 시청 행렬에 동참할 수 있는 날은 주말이 유일하다. 평일엔 직장에서 힘 다 빼고 - 아니 무슨 막노동하는 건 아니지만 - 참여하느라 금방 지치는데, 주말엔 그래도 짐도, 몸도, 한결 가볍게 참여할 수 있다. 이번 주말도 시청에서 그들과 함께. 명박산성도 한번 더 보러가고. 이번엔 시민들이 어떤 그래피티를 하나 사진도 찍고. 사라졌다 나타나고 사라졌다 나타나는 희귀한 문화재인지라 그때그때 기념사진을 찍어두어야 한다. 다시는 기회가 없으므로. 일요일에도 사람들이 스티로폼을 가지고 올까. 이번엔 포크레인 타고 오는거 아녀? 큭큭. 아니면 이삿짐 사다리차 같은. 오 이거 정말 괜찮네. 이사짐 사다리차 대면 금방 올라가겠다. 이번주 일요일을 또 기대해본다. 어떤 새로운 시위 문화가 등장할지.

p.s. 참. 현재 촛불집회 참여시민들 대부분이 조중동 폐간에 동의할 걸로 생각하는데, 그런 시민들이 GS편의점을 이용하시면 안됩니다요. -_- 우리 시위에 참여할 때도 슈퍼나 빵집, 편의점 등 가려가면서 이용합시다. 어떤 분은 가슴에 조선일보 반대 피켓을 달고 GS편의점에 줄 서 있더이다. 아직 GS가 조중동에 광고한다는 걸 모르고서 그러신거 같은데, 널리 알려서 가지 않도록 합시다. 주요 GS 편의점으로는 시청역 몇번 출구 바로 앞에(광장 부근), 경복궁 역 샛길 무슨 호텔 1층입니다. 여기 이용하지 맙시다. 널리 광고해주세요.

p.s.2 나 10일날 10회 참여 채웠는데, 서비스 같은거 안주나. 10일날 10번째였으니깐 서비스 하나 줘야하고, 원래 열번 가면 뭐 하나 주니까 하나 더 줘야돼. 명박아, 엉아가 니 얼굴도 못봤는데, 서비스도 못 받고 왔다. 다리만 아프게시리. 열번이나 갔는데 대한민국 CEO란 녀석이 뭐 하나 주지도 않고. 명박산성 미니모델이라도 하나 줘야하는거 아녀? 비싼거 주기 싫으면 조립식이라도 주던가. 아니면 뭐 사탄인형이라도. 쳐키인형같은. 큭큭. 나 인형도 좋아하는데. 어릴 때 인형 껴안고 잘 잤는데. 다음에 열한번째 가면 그날 못준거 주길 바래. 그러길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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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80 2008-06-12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사진 속에 . ← 이게 접니다. . ← 이건 아프락사스 님.
이명박때문에 요즘 시차적응 안돼 죽겠어요. 자기는 아침 일찍 일어나고 우리는 아침까지 못자게 하고. 늘 촛불집회의 현장 어딘가에서 아프락사스 님과 함께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잘코군 2008-06-12 23:33   좋아요 0 | URL
엇, 우리 자기 찾는 놀이하는거에요? . ←이건 저에요. 큭큭큭. 이번에 열번 채웠는데 뭐 안주나 몰라요. -_- 명박이가 줘야하는거 아닌가. 열번이나 갔는데. 서비스도 없어. CEO란 사람이.

마노아 2008-06-12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촛불 사진 언제봐도 장관이에요. 경복궁역 2번 출구 방향으로 GS편의점 있어요. 이용하지 말아야지. 아, 그리고 또 '경북궁'이라고 하셨네요^^ㅎㅎㅎ
경복궁[景福宮] 복복자 씁니다. (>_<)

이잘코군 2008-06-12 23:38   좋아요 0 | URL
네네. 어. 나 왜 자꾸 경북궁이라고 하지. -_- 이상하다. 어감이 그게 더 맘에 들었나봐요. 큭큭. 다시 고쳐야겠네. GS편의점 진짜 사람들 뭣도 모르고 너무 많이 갑니다. 그 앞에서 일인시위하고 있으면 영업방해라고 할테고, 제발 쫌! 조중동 폐간시키려면 현장에서부터 본을 보입시다. 널리 알려주세요. 이런거. 지도 찾아다가 올려봐야겠다.
 
지식인을 위한 변명
장 폴 사르트르 지음, 박정태 옮김 / 이학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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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부터 지식인이라는 집단은 지적 능력에 관계되는 일(정밀과학, 응용과학, 의학, 문학 등)을 통해서 어느 정도 명성을 획득한 후에, 자신들의 영역을 벗어나, 인간이라는 보편적이고 독단적인 개념(그 개념이 애매하건 명확하건, 또는 도덕주의자이건 맑스주의자이건 상관없이)을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사회와 기존의 권력을 비판하기 위해 자신들의 명성을 남용하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 된 것입니다. -14쪽

모든 실천은 몇 가지 계기를 포함합니다. 다시 말해 행위란 아직 없는 것(도달해야 할 목표를 말합니다. 즉 최종 분석을 거친 후에 그 분석에 의거해서 삶을 다시 일구어내기 위하여 상황 속에 최초로 주어진 것들을 재배치하는 것)을 위하여 지금 있는 것(변화시켜야 할 상황으로 주어진 현실의 장)을 부분적으로 부정하는 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부정은 숨겨진 것을 드러내는 행위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또한 긍정을 동반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 부정 속에서 우리는 지금 있는 것을 가지고서 아직 없는 것을 실현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아직 없는 것의 관점으로부터 출발해서 지금 있는 것을 드러내는 파악 작업은 가능한 한 정확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파악 작업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을 이미 주어진 것 속에서 찾아야만 하기 때문입니다(예를 들어 재료에 요구되는 강도는 그 재료가 현실적으로 틀림없이 견디는 압력의 실제 정도를 따라서 정해지는 법입니다). 이와 같이 실천은 현실을 드러내고, 현실을 극복하며, 현실을 보존하는, 그리고 현실을 미리 앞서서 변경하는 실천적인 지식의 계기를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16쪽

따라서 지식인이란 자기 자신 속에서, 그리고 사회 속에서 실천적인 진리(자기의 모든 규범까지 포함한 실천적인 진리)에 대한 탐구와 지배 이데올로기(자기의 전통적인 가치 체계까지 포함한 지배 이데올로기) 사이에 벌어지는 대립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물론 이 깨달음이 실재적인 깨달음이 되기 위해서는 이 깨달음이 우선은 지식인에게 있어서 그의 직업 활동과 기능의 수준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그 시작이 이처럼 개인적이라 할지라도 궁극적으로 이 깨달음은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을 드러내는 깨달음과 다르지 않습니다. 즉 이 깨달음은 계급 간의 싸움을 드러내는 깨달음입니다. 또한 이 깨달음은, 지배계급이 자기의 사업을 위해 필요로 하는 진리가 한편에 있고, 지배계급이 자기의 헤게모니를 공고히 하기 위해 다른 계급에게 주입시키길 원하며 그 유지를 위해 애쓰는 신화, 가치, 전통이 다른 한편에 있다고 할 때, 바로 이 둘 사이에 벌어지는 유기적인 싸움을 지배계급의 한복판에서 드러내는 깨달음이기도 합니다. -53-54쪽

실제로 지식인이 사회 전체를 객관적으로 고려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지식인은 사회 전체를 지식인 자신 속에서 지식인 자신이 지닌 근본적인 모순으로서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식인이 지식인 자신을 단순하게 주관적으로 문제 삼는 일에만 만족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지식인은 지식인 자신을 만들어낸 정의된 어떤 한 사회 속에 정확하게 소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59쪽

지식인의 사유는 끊임없이 사유 그 자신을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지식인의 사유는 이 되돌아봄을 통해서 언제나 사유 그 자신을 특이한 보편성으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63쪽

지배계급의 영향을 받아 지식인 자신 속에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및 프티부르주아적 사유 방식과 감정을 필연적으로 재생산하는 바로 그 지식인 자신의 계급에 맞서 싸워야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식인은 자기 고유의 영역 속에서 보편성이 결코 완결된 상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오히려 보편성은 계속해서 만들어가야 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보편의 전문가입니다. -64쪽

지식인은 그의 조사를 모든 수준에 걸쳐서 실행하며 또 자신의 사유에서뿐만 아니라 자신의 감수성에 있어서까지도 스스로를 변경시키고자 시도합니다. 이 말은 곧 지식인은 가능한 한 자기 자신 속에서 그리고 타인들에게서 인격의 진정한 합치를 실현하고자 한다는 것, 인간 각자가 자신의 활동에 부과된 목적의 회복(이렇게 회복될 때 그것은 이제 또 다른 목적이 될 것입니다)을 실현하고자 한다는 것, 그리고 외적으로는 계급 구조가 낳은 사회적 금기를 제거하고 내적으로는 심리적 억압과 자기비판을 제거함으로써 소외 현상을 없애며 사유의 진정한 자유를 실현하고자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67쪽

진정한 지식인은 그 자신이 급진적이라는 점에서 자기가 도덕주의자도 아니요, 이상주의자도 아님을 압니다. 예를 들어 그는 베트남의 유효하면서도 유일한 평화는 눈물과 피의 값을 치러야 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또 그 평화는 미군의 철수와 폭격의 중지에 의해서, 따라서 미국의 패배에 의해서 시작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그가 지닌 모순의 본성 때문에 진정한 지식인은 우리 시대의 모든 갈등 속에 스스로 참여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시대의 갈등은 모두가 다 - 그것이 계급 간의 갈등이든 또는 국가 간의 갈등이든 또는 인종 간의 갈등이든 상관없이 - 혜택 받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지배계급의 억압으로부터 비롯된 특수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진정한 지식인은 그 자신이 곧 피억압자임을 의식하고 있는 피억압자라는 점에서 결국 그 또한 피억압자의 편에 서게 되기 때문입니다. -75-76쪽

지식인은 고독합니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지식인에게 무언가를 위임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 이것이야말로 그가 가진 모순 중의 하나입니다 - 그는 다른 사람들 또한 함께 해방되지 않으면 그 자신도 해방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자기 고유의 목표를 가지고 있는데, 체계에 의해서 이 목표가 끊임없이 도난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소외는 지배계급에까지 확장되어서 나중에는 지배계급의 구성원들마저도 그들에게 속하지 않는 비인간적인 목표를 위하여, 즉 근본적으로 이익을 위하여 일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자기 고유의 모순이 결국에는 객관적인 모순의 특이한 표현임을 깨닫게 된 지식인은 이러한 모순에 맞서서 자기 자신과 타인을 위해 싸우는 모든 사람과 연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77쪽

지식인과 함께하는 사람의 수가 얼마인가는 지식인이 하는 일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지식인의 임무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지식인 자신의 모순 속에서 사는 일이며,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급진주의를 통해(즉 진리의 기술을 환상과 거짓에 적용함으로써) 지식인 자신의 모순을 넘어서는 일입니다. 지식인은 이처럼 그 자신이 지닌 모순 자체를 통해 민주주의의 수호자가 되는 것입니다. -105-106쪽

롤랑 바르트는 글쟁이와 작가를 구분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글쟁이는 정보를 전달하기 위하여 언어를 사용합니다. 작가는 공통의 언어의 수호자이지만, 그는 글쟁이보다 훨씬 멀리 나아가며, 또 그가 사용하는 재료는 비-기표로서의 언어 또는 정보 왜곡으로서의 언어입니다. 말하자면 작가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의미 작용과 비-기표를 수단으로 취하면서, 단어의 물질성에 의거하는 작업을 통해 그 어떤 언어 대상을 생산하는 장인인 것입니다. -122쪽

글을 쓰는 것이 소통하는 것이라면, 문학적 대상은 언어를 넘어선 소통과 같은 것으로서 나타납니다. 왜냐하면 비록 단어들에 의해서 생산되었지만 다시 단어들에서 의해서 닫혀진, 의미 작용을 하지 않는 침묵을 통해서 문학적 대상은 언어를 넘어서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로부터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문학적 이야기입니다."라는 말은 곧 "당신은 아무 것도 말하지 않기 위하여 말을 합니다."를 의미한다고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이제 문학적 대상이 독자와 소통해야 하는 이 아무것도 아닌 것, 바로 이 침묵하는 비-지식이 과연 무엇인지 알아보는 일이 남게 됩니다. 이러한 탐구를 위한 방법은 유일합니다. 그것은 곧 문학작품 속에서 의미 작용을 하는 내용으로부터 출발하여 그 내용을 둘러싸고 있는 근본적인 침묵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는 것입니다. -123-124쪽

작가가 왜 공통의 언어의 전문가인지, 즉 최대한의 정보 왜곡을 내포하는 언어의 전문가인지 그 이유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은 바로 이 물음을 통해서입니다. 단어는 우선 세계-내-존재와 마찬가지로 이중의 측면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한편으로 보면 단어는 희생된 대상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단어를 넘어서 단어의 의미 작용을 향해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이때 단어의 의미 작용은, 일단 그 의미 작용이 한번 이해된 후에는, 서로 다른 수많은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는, 즉 다른 단어와 함께 표현될 수 있는 다가적(多價的)인 언어도식이 됩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보면 단어는 물질적인 실재성이기도 합니다. 단어가 단어 자신에게 부과하는 객관적인 구조, 의미 작용을 희생시켜가며 언제나 단어 자신을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인 구조를 가지는 것은 이와 같이 단어 그 자체가 물질적인 실재성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중략)(계속)-141-142쪽

(이어서)

작가가 공통의 언어를 사용하기로 했다면, 작가의 이 선택은 단어가 지니는 이와 같은 물질적인 무거움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한 선택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바로 이 물질적인 무거움 때문에 한 선택입니다. 작가의 예술은, 가능한 한 정확한 의미 작용을 단어로부터 빼내어 자유롭게 풀어놓음으로써 사람들의 주의를 단어의 물질성 위로 끌어들이는 것, 그리하여 의미가 주어진 사물이 단어를 넘어설 뿐만 아니라 동시에 바로 그 단어의 물질성 속에서 육화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143쪽

언어는 한편으로 보면 우리를 동일인으로서, 즉 의도적으로 소통하는 주체로서 연결시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언어가 우리를 동일인으로서 연결시키는 한에 있어서, 언어는 또한 타인으로서의 나를 타인으로서의 다른 사람에게 연결시킵니다. 작가의 목적은 결코 이 역설적인 상황을 제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목적은 오히려 이 역설적인 상황을 최대한 활용하여 그의 언어-내-존재를 그의 세계-내-존재에 대한 표현으로 만드는 것입니다.-145쪽

작가의 참여는 공통의 언어 속에 포함되어 있는 정보 왜곡의 부분을 활용함으로써 소통이 불가능한 것(체험된 세계-내-존재)을 소통하는 일을 겨냥합니다. 또 작가의 참여는 전체와 부분 사이에서, 전체성과 전체화 사이에서, 세계와 작품의 의미로서의 세계-내-존재 사이에서 긴장을 유지하는 일을 겨냥합니다. 이처럼 작가는 그의 직업 자체 속에서 특수성과 보편적인 것의 모순에 직면해 있는 것입니다. (중략)(계속)-156쪽

작가는 자신의 내적인 과업 속에서, 지평선상에서 삶을 확인하는 보편화를 암시해가면서 그 자신이 직접 체험의 차원 위에 머물러야 하는 의무를 발견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작가는 다른 지식인처럼 우연히 지식인이 된 게 아닙니다. 그는 본래부터 지식인인 것입니다. 작품 그 자체가 작가로 하여금 작품을 벗어나서 이미 다른 지식인이 자리를 잡고 서 있는 실천-이론적 차원 위로 옮겨 갈 것을 요구하는 것은 정확하게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왜냐하면 한편으로 작품은 우리를 짓누르는 세계 내에서 존재를 - 비-지식의 차원에서 - 복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작품은 절대적인 가치로서의 삶을 체험적으로 확인하는 것이자 다른 모든 자유에 호소하는 그 어떤 자유를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1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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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31일 토요일 자정을 기점으로 집으로 돌아간 나는, 그날 새벽에 발생한 충격적인 폭력진압 현장에 함께 하지 못한 미안함을 가지고 있다. 그날 조금만 더 오래 있었더라면 그들이 그토록 무자비하게 곤봉으로 구타당하고, 군화발로 짓밟히고, 구석에 몰려 집단폭행 당하고, 짓이겨지는 상황을 조금이나마 막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 정도가 되려면 나 하나로 그치지 않고 나와 같은 미안함을 가진 이들이 모두 그 현장에 남아있었어야 가능하겠지만. 가능했을까? 물음을 던져보면 많으면 많은만큼 더 당했겠구나 하는 생각도 한편으로 든다. 그래 그 상황은 머릿수 하나 더 보탠다고 막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머릿수 싸움이 아니라 개념나간 이메가와 어청수에 의한 집단 학살의 개념이었기 때문에.

  그 때문이었을까. 어제 자정을 넘기며 다리가 너무 아프고, 누워서 자고 싶고, 당장이라도 택시를 잡아 집에 가고 싶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그렇게 매 고비마다 어떻게든 버티면서 끝까지 남아 있었던건, 그 미안함을 반복하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나도 이렇게 힘든데 함께 있던 제이드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해보면 - 일요일 아침에 과외도 있다고 했는데 - 더 미안해진다. 혼자가 아니라 둘이라, 셋이라, 그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남아있는 수만명의 시민들이 있었기에 남아있을 수 있었다. 수천정도였다면, 수백정도였다면 나는 아마도 이 인원 가지고 뭘 하겠어, 속으로 생각하며 그냥 가버렸을지도 모른다. 

  어제 현장에선 그간 어디서도 보지 못한 아주머니 한 분이 함께(?) 밤을 지새며 주 예수를 믿으세요, 사탄의 무리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장면을 목격했는데, 조금 전 아홉시 뉴스에서 본 청와대의 추부길이란 녀석의 발언과 왜 이렇게 오버랩되는지. 촛불집회 참여자들은 사탄의 무리이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그 발언 장면을 보니, 참 꼴통들 많다. 어떻게 이런 애들이 청와대에 들어가 있을까. 하긴 대통령이랍시고 한마디씩 내뱉는 것마다 촛불집회 인원을 수만명씩 불려주는 이메가나 그 졸개들이나 거기서 거기겠지만 말이지. 역시 유유상종이라고, 같은 놈들끼리 뭉치는 법이지. 에혀, 언론에 나 꼴통이요, 하고 이름 알려진 녀석들이나, 아직 알려지지 않은 꼴통들이나 다 내쳐라. 가장 중요한 건 핵심 꼴통이 내려와야 하는거고.

  어제밤 그 아주머니는 사람들이 무리에서 계속 내보내도 어떻게든 다시 들어와서 혼자서 주 예수 운운, 사탄 운운 하면서 돌아댕겼는데, 아침이 밝아오자 사라졌다. 아니 정확히는, 왼쪽 대로에서 전경들이 우르르 몰려오자 시선이 모두 그쪽으로 꽂혔고, 그 이후로 그 아주머니는 보지 못했다. 이거 혹시 추부길 그 녀석이 보낸 아주머니 아냐? 명박이가 보낸 아주머니 아냐? 사탄인 촛불 시위자들을 기도로 내몰으려고?! -_- 좌파용공 어쩌고 하는 녀석이나, 사탄 어쩌고 하는 녀석이나, 어쩜 이렇게 바보같을까. 검찰에서 그랬다잖냐. 한참 전에. 촛불 시위자들은 평범한 시민이고, 가족 단위, 친구 단위로, 혹은 혼자서 오는 경우가 많아서, 연행하기도 어렵다고.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나온게 아니라고. 못 믿겠으면 좀 나와봐라. 사복경찰들도 나 시위자요, 하고 나오는 판에.

  어제 닭장차 너머 경찰들로부터 뭐가 자꾸 날아왔는데, 물병이나 돌맹이는 모양을 알아보겠는데, 잘 모르겠는 것들이 있었다. 이제보니 그건 오줌이었구나. 앞에 있지 않아서, 맞지 않아서 다행이다. 앞에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더러웠을꼬. 아니 이 미친 경찰들이 이제 시민들을 자극하고 있다. 언론을 통해 폭력경찰의 정체성(?)이 확인되자 곤봉구타와 군화짓밟기 같은 건 자제하는 듯 하면서 - 방패찍기와 집단구타는 여전하다 - 시위대가 자신들을 먼저 선제 공격하기를 바라는게다. 그러면서 우리를 폭력시위대로 매도하기 위해. 결국 그네들은 성공했다. 오늘 뉴스를 보니, 이미 쇠파이프 등장 어쩌고 하면서 - 그거 몇 명되지도 않지만 - 폭력시위대로 만들어버리더라. 성공했네? 근데 니네가 손가락질하고 실실 쪼개며 웃고 하는 사진도 인터넷에 나돌고 있는데 어쩌냐. ↓

  아주 얍실하게 나오겠다는 수작인데, 어디 한번 해보자. 어제 쇠파이프 들고 닭장차 부순 사람들이야 순진하게 너네 수작에 넘어갔지만, 그거 대여섯명 밖에 안되거든. 나머지는 오히려 그 사람들 뜯어말리고 쇠파이프 멀리 내던지고, "내려와 내려와", "하지마 하지마", "비폭력 비폭력" 외쳤거든. 아주 그냥 버스 흔드는 것도 폭력 시위라는 하는 통에 뭘 할 수 있는게 없다. 언론은 도대체 뭐가 폭력이고 비폭력인지 명확히 구분해야 할 것이다. 뭐 조금만 뭐 좀 할라치며 폭력이라 해버리니 이거야 원 그럼 바리케이트 앞에서 촛불들고 쎄쎄쎄 하고 앉았을까? 쎄쎄쎄는 두 손이 다 필요하구나. -_- 그럼 뭐 처음 뵙는분들끼리 통성명하고 악수라도.

  언제까지 폭력이라는 테두리 안에 갇히기 싫어서, 버스 흔들기도 못하고, 사다리 타고 올라가지도 못하고 하는 꼴로 있을 수는 없다. 왜 청와대로 가야하느냐, 고 물으면, 그건 명박이가 살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지, 라고 답해줘야지. 누가 청와대 치고 들어가서 암살하겠대? 청와대 앞 까지만 가서 얌전히 주변에서 거리행진하겠다니깐. 아니 왜 평화시위하겠다는데 자꾸 못하게 막아. 평화시위를 못하게 막고 있는 건,  폭력시위대로 만들려고 하는 건, 명박이와 검찰총장과 경철청장이다. 촛불 들고 얌전히 걷겠다고요. 어디서? 청와대 주변 도로에서. 세종문화회관 앞길, 옆길, 뒷길, 새문안교회, 안국역, 경복궁 아예 원천봉쇄해놓고 사람들 다니지도 못하게 해놓고 뭐하는 짓이야.불법주차한거 좀 빼. 경찰차라고 스티커 발부 안하나?

  그리고 촛불집회 시작된 이후로 매일같이 듣는 그 여경앵커 좀 교체해라. 아니 왜 말도 못하고 버벅대는 애를,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반복하는 애를 피곤하게 계속 데리고 다니냐. 애 잠 좀 재워라. 걔도 사람이잖니. 앵커 없어? 보아하니 종이쪼가리에 적힌 문구 그대로 읊다가 틀리고 그러는거 같은데, 읽기라도 잘하는 애들 데리고 오던가. 여경 중에 인재가 그렇게 없나? 글 제대로 읽고, 말 제대로 하는 애를 인재라고 칭해야 하다니 아이구 두야. 말을 못하면 노래라도 한 곡조 부르던가, 지루하게 날밤새는 사람들 귀에 대고 책 읽고 있으니 답답허다야. 이쪽에서 노래 하나 하면, 저쪽에서도 노래 하나 하던가. "한 박자 쉬고, 두 박자 쉬고, 세 박자 마저 쉬고, 하나 둘 셋 넷" 까지 해줬는데 예의가 아니지. (생각해보니 누가 나한테 그렇게 해줬어도 노래 안 한 적 많구나. -_-a)

  오늘 아홉시 뉴스보니, 기자가 전경들을 인터뷰 했는데, 쟤들도 미친소 싫단다, 싫은데 위에선 또 진압하라고 하니 어쩔 수 없단다. 그치. 쟤들도 싫은데 어쩔 수 없이 하고 있는거지. 이러니 같은 편끼리 싸우고 있는 형국이라고들 하지.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이메가 때문에 직장에서 이메가가 그토록 좋아하는 경제 활동에 매진해야 할 사람들이, 학교에서 공부해야 할 학생들이, 집에서 아이 돌보고 살림해야 할 주부들이, 노인정에서 친구분들 만나 바둑두고 수다떨어야 할 분들이, 여기에 나와서 이러고 있고, 전경들은 한달째 잠도 제대로 못자고 지 친구들이며 부모며 동생이며 때리고 방패로 찍고 앉았고. 명박아 애들 많이 고생한다. 애들이 너 싫단다. 너 하나 내려오면 다 해결되는데 왜 고집부리니. 이 나라 꼴을 보면 사탄이 누군지 모르겠니? :)

p.s. 광화문역 지하철 무정차 통과시켰다고 하는데, 10일날은 시청에 그 짓을 하겠다고 한다. 시민들의 안전 운운하면서 아예 촛불집회 참가를 방해하려들고 있다. 별 짓을 다 하는구나. 경찰은 한달동안 촛불집회 참가 인원수를 1/10로 보고하지를 않나 서울메트로는 이제 아예 시청에 오지도 못하게 하는구나. 유치하고 천박한 이메가와 졸개들 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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