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0일. 전국적인 100만 촛불집회가 있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다시피. 10일은 집에 돌아와서 바로 뻗어버리고, 11일은 회사 회식하고 택시타고 집에 오느라 또 못쓰고, 12일 오늘에서야 그 후기를 남겨본다. 촛불집회에 처음 참여한 게 5월 셋째주 정도부터였던거 같은데, 벌써 6월 둘째주다. 10일로서 열번째 촛불집회 참여. 일찌감치 끝내리란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5년 동안 이짓을 해야할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해본다. 그래도 체력 안배하며 끝까지 간다. 이미 각계각층에서 의미있는 많은 이야기들을 내놓고 있어 나까지 거기에 쓸데없이 더 덧붙일 필요는 없어보인다. 그냥 참여할 때마다 보고 느꼈던 바를, 현장의 모습들을, 지금껏 해왔던대로 후기를 통해 풀어놓고자 한다.
10일날은 참 많은 지인들이 함께 했고, 현장에서 보지 못한 이들은 각각의 다른 무리들과 함께 촛불을 들었다. 서울에서만 적게는 50만명, 많게는 70만명까지 참여했다고 한다. 경찰은 8만명이라고도 하는데, 이번에도 아마 십만 스물 둘, 십만 스물 셋, 세다가 까먹어서 다시 하나, 둘, 셋 셌나보다. 그러지 않고서야 8만이란 숫자가 어떻게 나오니. 심지어 이 어이없는 경찰들의 셈놀이에 과학적 증거를 들이대고자 한 네티즌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어느 건물 옥상에서 찍은 촛불집회 사진에 찍힌 촛불숫자만 세어 25만이라고 했다고도 한다. 사진을 찰칵 하는 순간, 모든 촛불이 찍히는 것도 아니고 - 심지어 서너명 세워다 놓고 사진 찍어도 그 중 한 놈은 눈을 감기 마련인데 - 그렇게만 세서 25만이면 안 찍힌 절반의 촛불과 촛불 안든 다수의 시민과, 사진 범위 내에 있지 않은 시민들까지 하면 70만은 되겠네.
퇴근하고 바로 도착한 시청역. 지하철을 무정차 통과시킨단 말이있어 을지로입구로 갈까 하다가 가봤는데 시청역에도 서더라. 무정차 통과시키려다 저항이 거세니까 취소했나보다. 10일 이후에도 이에 대한 기사는 아직 보지 못했다. 어찌된 영문인지. 서울역 지하철에서 일하는 후배에게 한번 물어볼까? :) 시청역에 내렸는데 벌써부터 구호가 시작되고, 도로 곳곳에 자리잡고 앉은 시민이 가득했다. 이번에는 무슨 노조, 화물연대인가, 하튼 그런 단체에서도 왔고, 전에 못보던 단체 깃발이 여럿 보였다. 명박산성을 쌓는 바람에 사람들이 더 몰려들었다고 해석하는데, 아마 명박산성 없었어도 이 정도 왔을게다. 명박이를 포함해 주변에서 좀 뻘소리를 하고 다녀야지. 한놈씩 말 한마디 할 때마다 분노지수를 높여주는데, 나로선 아주 고맙다. 분노를 다 붓고 집에 돌아왔다가 다시 분노를 머금고 다음날 또 나가고.
이른 시간이었지만 시청에서 광화문까지 지인을 만나러 가는 길은 너무나 험난했다. 어휴. 내가 길거리에서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고 빨리 걷기엔 능한데, 이날은 가는 곳마다 다 사람들과 부딪혔다. 아무리 피해가려고 해도, 천천히 가려도 해도, 반대방향으로 나를 향해 걸어오는 사람들을 피하기는 너무 어려웠다. 아니 피할 공간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니 그냥 앞사람 쫄래쫄래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했다. 광화문에서 지인들을 만나 가장 한적해보이는 동아일보 정문 난간으로 갔는데, 그 지척거리로 가기도 너무 힘들더라. 이미 광화문, 시청, 종각일대는 물론이고, 청계천, 종로3가, 명동, 남대문까지 꽉 차서 움직일 수 없는 지경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다들 밥을 먹지 않고 온지라 근처 김밥집으로 겨우겨우 갔는데, 줄은 또 어찌나 긴지. 현대차 노조와 고려대에서 3-40개 가량을 주문하는 바람에 다리에 힘이 빠져버렸다. 한 시간을 기다려 김밥 다섯줄을 샀다. -_ㅠ
오자마자 우걱우걱 배속에 채워넣고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거리로 나갔다. 김밥 사느라 양희은의 아침이슬 라이브를 듣지 못했다. 옥소리도 보지 못했다. 아니 거기에 있었어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시청 어딘가에는 지승호씨가 공지영, 우석훈과 함께 했고, 시사IN 천막 앞에선 한 시인과 인사했다. 그때 그 장소에는 이름이 많이 알려진 유명인들이 다수 참여했지만, 그들은 모두 한 개인으로서, 한 시민으로서 그 자리에 있었다. 한 개인이 가진 모든 사회적 지위나 학벌, 학력, 재산, 정치성 등을 떠나 모든 시민이 각자 하나의 촛불을 들고 함께 구호를 외쳤다. "이.명.박.은.물.러가.라." 거리 행진이 시작됐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은지라 각지로 흩어진 것 같았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 김밥집 앞에선 아고라 팀을 목격했고, 나의 행렬엔 듣도보도못한 여러 단체들의 깃발이 나부꼈다.
시위 행렬에 주목을 끄는 이들이 있었는데, 얼굴에 흰 분칠을 하고 검은 옷을 입고 무표정으로 투명우산과 촛불을 든 채, 일렬로 천천히 걷는, 연극인으로 추정되는 이들이었다. 이들은 가는 곳마다 주변에 사람들을 모았고, 사람들은 각자의 카메라에 그들을 담았다. 말도 없고, 구호도 외치지 않고, 그저 조용히 무표정으로 투명우산과 촛불을 들고 천천히 걷는 그들은 도대체 누구였는지 이후에도 기사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구호를 외치지 않아도, 깃발을 들지 않아도, 소속을 밝히지 않아도, 그들이 든 촛불만으로도, 그들의 변화없는 표정에 담긴 시무룩한 어둠을 나는 목격했다. 그것은 이명박에 대한 침묵 시위였다. 침묵 퍼포먼스였다. 시위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늘어날수록 매번 새로운 경험을 한다. 다음날 신문 기사에 실리거나, 뉴스에 나오는 정도는 지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언론에서 다루지 못하는 수많은 새로운 유형의 시위가, 퍼포먼스가 끊임없이 등장한다.
명박산성을 유네스코 지정 문화재로 추진하자는 시민들을 보고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일단 웃자. 눈을 가리고 귀를 닫은 이명박의 소통(?) 상징물에 맞서는 시민들의 유머는 날이 갈수록 빛을 발한다. 아놔 이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그런 생각들을 하는건지. 조선일보사 앞에 쓰레기를 잔뜩 쌓아두는 시민들, 명박산성에 그래피티를 하는 예술인들, 산성에 오르고자(?) 대형 스티로폼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 정말 대단하다. 처음 스티로폼은 오를 버스가 없는 기자들의 유용한 지지대가 되었으나, 밤이 깊자 본래의 용도대로 명박산성 앞에 놓여졌다고 한다. 오르자 말자 오르자 말자 토론을 반복하다가 결국 대여섯시간이 지난 아침녁에야 산성에 올라 깃발을 나부끼기로 합의를 봤다고. 그 누구하나 자기 주장을 고집하지 않고 토론을 통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이들은, 진정한 아고라 시민들이다.
우리 행렬의 끝엔 경복궁이 있었다. 촛불집회 이전엔 이 장소를 한 번도 와본적이 없어 처음엔 여기가 어디여, 했는데, 이제 그 코스가 익숙해서 지인들에게 코스 설명까지 해준다. -_- 경복궁에 왔다는 건, 또다른 명박 산성과 만난다는 의미이고, 사람들이 주저앉아 토론을 하고 북치고 장구치며 노닌다는 것을 뜻한다. 왜. 이미 며칠 그래본 경험이 있었으니까. 그 중 일부는 집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일부는 행렬의 멈춤을 받아들이지 않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도 한다. 나는 이동파였다. 주저앉아 있다가 사람들과 함께 그곳을 떠나 이전의 집회 경험으로 체득한 경복궁 명박산성 옆 샛길로 향했다. 그곳을 통과하면 광화문이 나오므로. 그러나, 이번엔 경찰녀석들이 버스를 죄다 여기다 가져다 박아놔 막혔다. 이 샛길에. 사람들은 닭장차에 피켓을 집어넣고 차 주변에 촛불을 가지런히 둘렀다. 그리고 또다른 샛길을 통해 광화문으로 향했다.
광화문엔 이미 애초 그 자리에 있었던 시민들이 가득했고, 경복궁에서 막혀버려 그곳으로 집결하는 또다른 무리들이 합류해 규모가 점차 커졌다. 그러나 시간이 이미 열한시. 직장인들은 집에 갈 시간이다. -_- 신데렐라인 나도 열한시반 그곳을 떠났다. 일행을 남겨둔 채. 아마 경찰들은 갑호비상령이라고는 하지만 명박산성 덕분에 편안히 휴식을 취했을 것이다. 듣기로는 서대문 어디 당구장에서는 특수기동대가 당구치다 기자에게 걸려 도망갔다지. 큭큭. 잘 한다. 다음날 어청수는 역시나 이명박에게 바치는 유네스코 유산에 자화자찬을 늘어놓으며 성공적이었다고 말했다지. 다음에 또 써먹겠다고. 응 그래. 써먹어라. 우리가 또 무료로 그래피티 해주마. 큭큭. 흉물사나운 유네스코 문화재 덕분에 세계 곳곳에서 주목받고 사진 찍히고 우리야 좋지. 이렇게 평화적인 시위는 일찍히 본 적이 없다던 외국인들의 동참도 늘고.
아마도 내일 혹은 일요일 또 촛불 시위를 가게 될 것 같다. 내일은 확실히 말하지 못하겠고, 일요일은 확실하다. 토요일은 회사 간다. -_ㅠ 흙. 난 벌써 삼주째 주말이 없다. 쉬고 싶기도 하다. 그런데 내가 체력 꽉 채워(?) 시청 행렬에 동참할 수 있는 날은 주말이 유일하다. 평일엔 직장에서 힘 다 빼고 - 아니 무슨 막노동하는 건 아니지만 - 참여하느라 금방 지치는데, 주말엔 그래도 짐도, 몸도, 한결 가볍게 참여할 수 있다. 이번 주말도 시청에서 그들과 함께. 명박산성도 한번 더 보러가고. 이번엔 시민들이 어떤 그래피티를 하나 사진도 찍고. 사라졌다 나타나고 사라졌다 나타나는 희귀한 문화재인지라 그때그때 기념사진을 찍어두어야 한다. 다시는 기회가 없으므로. 일요일에도 사람들이 스티로폼을 가지고 올까. 이번엔 포크레인 타고 오는거 아녀? 큭큭. 아니면 이삿짐 사다리차 같은. 오 이거 정말 괜찮네. 이사짐 사다리차 대면 금방 올라가겠다. 이번주 일요일을 또 기대해본다. 어떤 새로운 시위 문화가 등장할지.
p.s. 참. 현재 촛불집회 참여시민들 대부분이 조중동 폐간에 동의할 걸로 생각하는데, 그런 시민들이 GS편의점을 이용하시면 안됩니다요. -_- 우리 시위에 참여할 때도 슈퍼나 빵집, 편의점 등 가려가면서 이용합시다. 어떤 분은 가슴에 조선일보 반대 피켓을 달고 GS편의점에 줄 서 있더이다. 아직 GS가 조중동에 광고한다는 걸 모르고서 그러신거 같은데, 널리 알려서 가지 않도록 합시다. 주요 GS 편의점으로는 시청역 몇번 출구 바로 앞에(광장 부근), 경복궁 역 샛길 무슨 호텔 1층입니다. 여기 이용하지 맙시다. 널리 광고해주세요.
p.s.2 나 10일날 10회 참여 채웠는데, 서비스 같은거 안주나. 10일날 10번째였으니깐 서비스 하나 줘야하고, 원래 열번 가면 뭐 하나 주니까 하나 더 줘야돼. 명박아, 엉아가 니 얼굴도 못봤는데, 서비스도 못 받고 왔다. 다리만 아프게시리. 열번이나 갔는데 대한민국 CEO란 녀석이 뭐 하나 주지도 않고. 명박산성 미니모델이라도 하나 줘야하는거 아녀? 비싼거 주기 싫으면 조립식이라도 주던가. 아니면 뭐 사탄인형이라도. 쳐키인형같은. 큭큭. 나 인형도 좋아하는데. 어릴 때 인형 껴안고 잘 잤는데. 다음에 열한번째 가면 그날 못준거 주길 바래. 그러길 바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