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열한번째 촛불집회에서 복귀. 6월 15일. 광화문에 도착해 시청방향으로 걸어가려고 했는데 어라, 나왔는데 도로에 차가 다닌다. 쌩쌩. 그리고 광화문의 명박산성은 사라진건 알았지만, 경찰들이 이순신 장군쪽 중앙을 다 터놨네? 양옆으로만 닭장차를 배치하고. 무슨 일이지. 아니 걸어나오면 도로가 다 꽉 차 있을줄 알았는데 생각치 못한 장면에 충격을 받고. 심지어는 '오늘 집회 안하나?'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약간의 의심을 품고 시청으로 향하는데 도로는 역시나 차들이 쌩쌩 점거(?)하고 있었다. 시청광장에 사람들이 모여있었고, 인원은 생각보다 적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근래 큰 집회에서 인원이 10만, 20만, 50만 단위로 커지다보니 이제 몇만명(약 2만 남짓) 정도는 우습게보였던 것이다. -_-  

  오늘은 그래도 크게 한다고 했는데 사람들이 별로 모이지 않았다. 일요일이라 그런가. 시청광장은 꽉 들어찼지만 도로까지 점령할 인원은 되지 않았고, 그렇게 혼자 광장 한쪽에 주저앉아 구호도 외치고, 촛불도 들었다 내리고 했는데 뒤를 돌아보니 꽉 찼더군. 오늘 집회에선 6.15 남북 공동 선언일인지라 계속 남북한의 관계에 대한 발언들이 이어졌는데, 여기 모인 사람들이 통일 이야기하자고, 남북관계 이야기하자고 모인게 아닌데 자꾸 핀트가 어긋나는 느낌이랄까, 그런 느낌이 계속 들었다. 올라오는 사람들도 말들을 별로 못하고, 유쾌하지도, 재밌지도 않은 남자들의 발언만 계속 이어졌고. 그러다 마지막 기말고사 공부안하고 여기 왔다는 고3 여학생의 목소리에, 그 아이의 발언에, 다들 뒤집어졌다. 큭큭.

  "여러분! 문제만 있고 정답이 없는 문제지 출판사는 망해야 합니다. 그렇죠? 문제를 만들어놓고 해결하지 않는 정부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와아아아아아 망해야합니다!" 큭큭큭큭. 센스하고는. 앞쪽에 고등학생들이 쫙 몰려있었다고 들었는데, 참 기특하다. 남들 시험공부하고 있을 때 여기 나와서 민주주의의 실현을 이루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하니. 이런 학생들이 많아져야 하는데 말이지. 공부만 하고 생각 안하고 행동하지 않는 학생들은 공부를 하면 안된다. -_- 공부만 한 애들은 꼭 보면 나중에 뻘소리나 하고 앉았더라. 뻘소리란게, 나와 같은 의견, 같은 생각이 아니라고 해서 그렇다는게 아니라 딱 자기밖에 모르는 그런 관점에서 사회를 바라보더라고. 자기 주변의 타인을 전혀 고려치 않는.

  집회가 조금 늦게 시작한지라 늦게 광장에서 일어나 도로로 나갔는데, 내겐 아주 익숙한 코스다. 5월 중순만해도 아니 얘네가 어디로 가는건가 하는 불안감이 살짝 있었는데 이제 말 안해줘도 다 안다. 어디로 갈지. 코스가 몇 개 있는데 중간쯤 가다보면 아 얘네가 어디로 가는구나, 하는게 감이 딱 온다. 오늘은 온건한(?) 코스를 선택했는데, 시청에서 남대문, 명동, 종로, 광화문으로 가서 다시 시청으로. 가는 행렬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길어졌다. 처음엔 한쪽 도로만 점거하고 행진했는데, 나중에는 사람이 많아져서 한 차선을 더 점거하고, 급기야는 8차선을 다 점거해버렸다. 남대문, 명동을 지나면서 행진에 참여하는 동네시민(?)들이 늘어나서 그런 듯하다. 역시나 오늘도 아줌마 아저씨들, 밀려있는 차 안에 있는 아가씨들, 학생들이 호응을 해줬다.  

  돌아돌아 도착한 광화문에는 꽤 많은 인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 있던 사람들은 아마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뭐야 이게 다야? 하지만 우리가 도착하고 함성은 커졌다. 애초 시청으로 오지 않고 광화문에 모인 시민들과 시청에서 광화문으로 행진한 시민들이 모여 규모가 커졌고, 그들은 다시 시청으로 행진했다. 일부는 광화문에 남고. 명박산성이 없어지고 헌차를 어디로 보냈는지 새 닭장차를 가져왔다. 우리의 그래피티와 예술행위가 되어있지 않은 민둥이 닭장차가 서 있었다. 달라진건 앞에 전경이 아닌 경찰들이 라인을 그리며 닭장차 앞에 서있었다는 것. -_- 뭐니. 그러니까 얘네 세워서 우리보고 닭장차는 건드리지말라고? 닭장차 바리케이트는 뒤에있는 전경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면, 앞에 서 있는 경찰 몇명은 닭장차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였던 셈. 관심없다. 우리는 시청으로.  

  그리고 시청에 다다르고,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는 선언했다. 20일까지 시한을 줬다고 정부에. 그날까지 국민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 그 다음은... 침묵.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다 안다. 그 다음이 어떨지는. 87년의 재현. 오늘 집회는 아주 온건하고 밍숭맹숭하게 끝났다. 그렇게. 행진 중에 노래에 맞춰 춤을 추며 걷는 일부 어린 20대들이 있었는데, 흐흐 너무 귀엽더라. 무슨 고무줄 놀이보는 것 같았다. 어떤 할아버지는 머리에 밀짚모자 쓰고 양손에 촛불 들고 몸을 흔드시고. 축제다. 축제가 계속 이어진다. 5월부터 시작된 축제는 끝날줄을 모른다. 왜. 축제의 주인공이 아직 자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축제의 목적이 달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그랬다지. 이회창과의 만찬에서. 쇠고기를 안 내주면 자동차를 내줘야 할지 모른다고. 장난하니. 우리가 요구하는 재협상은 우리가 손해보지 않는 재협상이다. 그따위로 해서 재협상 한다해도 국민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지금 이 분노가 단지 쇠고기 때문이라 생각한다면, 얘는 가는 귀를 먹은게 틀림없다. 쇠고기는 5월 초에 나왔던 얘기고, 지금 우리는 그밖의 온갖 것들을 다 말하고 있다. 니가 해결해야 할 건 쇠고기는 기본이고, 다른 민영화 문제나 교육 문제, 대운하 문제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그거 다 해결해주지 않으면 너는 그냥 -_- 에혀. 87년에 니가 있던 위치에 우리가 있다. 그 다음이 어땠는지는 니가 더 잘 알게다. 알면 처신을 똑바로 해야 할게다. 지금 이게 장난으로 보이지 않는다면. 누가 심심하다고 일요일날 데이트도 못하고 - 여자친구가 없잖아 - 시청에 가니. 피곤하게 장거리 행진하고. 내가 심심해서 이러는걸로 보이니. 

  더 자주 가서 머릿수 채워야겠다. 지치면 안된다. 지쳐서 못나오면 안된다. 체력관리 하고, 일상생활에 지장이 가지 않는 선에서 잘 조절해서 꾸준히 지속적으로 자주 나와줘야 한다. 열번 채웠는데 머 서비스 상품 같은 것도 안줘서 스무번 채울란다. 열번째 안주고 스무번째엔 더 큰 뭔가를 주겠지. -_- 왜 자장면집도 그러잖아. 열번 채우면 잡채, 스무번 채우면 탕수육, 서른번 채우면 뭐주지? 팔보채인가. 하튼, 상품이 점점 커지잖아. 열번째 아무것도 안줬으니까 스무번 채우러 간다. 암 것도 안주기만 해봐라. 아 안줘도 돼. 안줘도 되는데 대신 니가 내려오면 돼. 그게 제일 큰 상품이야 나에겐. 에혀 스무번을 언제 채우냐. 스무번 채우기 전에 알아서 니가 잘 알아서 수습해라. 엉아가 곧 또 찾아가마. (아무래도 나 요새 투잡하는 기분이야. 퇴근하면 밀린 숙제하랴, 시청나가랴, 바쁘다 바뻐.)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도단 2008-06-16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생했어요.ㅠㅠ

마늘빵 2008-06-16 00:34   좋아요 0 | URL
:)

순오기 2008-06-16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휴~ 우리 아프님 투잡 빨리 접을 수 있게 돼야 할텐데...
담양 대나무 숲에 철학자가 서 있던데, 꼭 아프님 같았어요.^^

마늘빵 2008-06-16 08:54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돈도 안되는 투잡. -_- 저는 그냥 철학애호가 정도랄까요. 큭큭. 진짜 철학자는 발마스님이죠. 감사해요.

글샘 2008-06-16 0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7년엔 조선일보나 이런 건 건드릴 수도 없었는데, 올해는 조선일보 건드리고, 고봉순도 지켜주고... 대운하 삽도 집어 치우고(요즘 물류대란때문에 저색긔는 또 대운하 삽질하지고 지롤거릴지도 모르지만 국민적 정서로 이미 물건너 간 듯), 의보 민영화도 날려 버리는... 정말 뜨거운 촛불입니다. 고생하셨어요.
부산은 뭐, 좀 조용하긴 한데, 화욜의 딴날당 피자 시식회에 많이 가봐야 겠습니당.

마늘빵 2008-06-16 08:55   좋아요 0 | URL
고봉순은 머에요? 사람 이름이에요? ^^ 너무 모르는건가. 피자 시식회 큭큭큭큭. 강준만의 조선일보 폐간 운동이 이제야 빛을 발하네요. ^^

글샘 2008-06-16 11:32   좋아요 0 | URL
마봉춘과 고봉순... ㅋㅋ
MBC KBS

무스탕 2008-06-16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깝게 계시면 점심시간에 만나서 어깨라도 주물주물 주물러 드리고 싶네요.
(제가 체격보다 손아귀심이 셔서 손이 맵거든요 ^^)

마늘빵 2008-06-16 08:55   좋아요 0 | URL
^^ 이힛. 이런 댓글 만으로도 힘이 납니다.

건조기후 2008-06-16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BC가 마봉춘인 것처럼 KBS도 애칭이 붙었지요. 고봉순^^

마늘빵 2008-06-16 11:06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전 사실 마봉춘이 그런 의미인지도 몰랐어요. -_-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