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집에 오는 길 버스안에서 두 아저씨의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천재지변으로 인한 사고는 어쩔 수 없어"
"사람들이 국가에 대고 시위하고 소송제기해도 그건 어쩔 수 없는거야"

과연 그럴까? 국가는 '천재지변'에 한해서는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없는가?

그건 아니라고 본다. 국가는 국민의 인권, 재산권 등을 보호할 의무가 있으며, 이를 방조했을 경우에는 국민은 국가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이 당연하다. 자원이 풍부한 원시시대에는 돌아다니며 수렵생활을 할때에 국가라는 개념이 필요치 않았다. 그러나 수가 늘어나고 자원이 부족해지면서 사람들은 한정된 자원을 놓고 서로 다투게 되었고 여기에서 각 개인의 이익을 보호해줄 단체가 필요했다. 그것이 부족이고, 이것이 확대된 것이 국가이다. 국가는 국가를 구성하는 국민의 필요에 의해서 성립된 것이며, 국민의 권리를 보호받고자 형성된 것이다.

 그런데 천재지변의 재해라고 하여 국가가 국민이 피해를 입도록 방조한다면 이는 국가형성의 기본원리에 반하는 것이다. 재해를 막기 위해 국가가 노력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재해가 발생했다면, 재해가 발생한데에 대해 국가는 피해입은 국민들에게 사과를 하고 피해를 보상해줘야 한다.

 그런데 위의 두 아저씨들이 천재지변으로 인한 재해의 피해에 대해 "어쩔수없다" 라고 하며 미리 단념한 것은 왜 일까? 이는 과거로부터 계속되어온 국가의 국민에 대한 권력을 행사, 억압의 기재가 발동했기 때문이다. 권력과 억압에 길들여진 국민들은 국가의 명령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복종하게 되고, 이는 국민의 자발적 복종으로 발전(?)한다. 두 아저씨들은 바로 이러한 단계에 도달해있는 것이며, 재해로 인한 피해에 대해 시위를 하고 보상을 요구하는 시민들은 권력과 억압에 길들여지지 않았거나 과거엔 길들여졌으나 지금은 그로부터 벗어난 사람들인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선 다양한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이들 시위중에는 무조건 자기네 이익만을 요구하는 근본이 잘못된 시위도 있을 수 있지만, 많은 시위들은 국가의 잘못된 정책에 대한, 혹은 이러한 정책으로 인해 피해입은 사람들의 당연한 권리주장이다. 후자의 시위가 많은 사회는 불안, 위기에 둘러싸인 퇴보하는 사회가 아니라 국민의 의식이 깨인, 진보하는 사회임은 당연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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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학교에서 내려오던 길에 친구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고등학교때보다 대학교에서 시험을 더 많이 보는 거 같지 않냐?"

(친구는 경제학도로 증권이나 금융에 관련된 각종 자격증 시험을 치뤘고, 앞으로도 계속 치룰 예정이다.)

친구의 이 말을 듣고는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때에는 주어진 시험만 치루는데, 대학교에서는 자기가 시험을 찾아 본다'

사실 그렇다.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나는 3년내내 두 학기의 중간, 기말고사를 치뤘고, 일년에 4번의 모의고사를 치뤘다. 그 외에는 전혀 별다른 시험은 없었다. 그러나 대학생이 된 나는 대학교에서 보는 두 학기의 중간, 기말고사 외에 나의 필요에 의해 다른 시험을 찾아서 치뤄야만 했다. 나는 인문학도, 그중에서도 철학도라는 지극히 자격증과는 거리가 먼 학문을 하고 있기에 대학의 중간, 기말고사 이외에는 운전면허시험과 워드프로세서시험 밖에 본 것이 없다. 그런데 위에 언급한 내 친구는 경제학도로 이에 관련된 자격증 시험이 다양하다. 친구는 자신의 미래를 좀더 확실히 하기 위해서 미리 자격증을 따두려는 것이리라.

 이러한 고등학생과 대학생의 시험에 대한 태도, 주어진 시험에만 임하기만 하면 되는 고등학생과 대학의 주어진 시험 이외에도 스스로 필요한 시험을 찾아 치뤄야하는 대학생. 아무래도 전자는 시험에 수동적, 소극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고, 후자는 시험에 능동적, 적극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물론 이것은 시험을 보는 주체로서의 개인이 시험에 응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 아닌, 그들을 포괄하는 외연전체가 시험과 맺는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이런 고등학생과 대학생이 시험과 맺는 관계는 그들의 삶의 태도, 생활의 태도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고등학생들은 정해진 시간표, 정해진 내용의 교과서, 정해진 선생님에 의해 수업을 받지만, 대학생들은 자율적인 시간표, 자율적인 내용의 교과(수업에 정해진 교과서가 있을 수 있으나 교과서를 하나만 한정하지는 않는다), 자기가 원하는 선생님을 통해 수업을 받는다.

 흔히 우리네 고등학생들은 무기력하다, 기운이 없다 라고 표현되지만 이는 학생들의 주어진 환경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그들이 환경에 적응하면서 형성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들 스스로가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환경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창의적인 능력, 공부에 대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를 기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러한 제도적 측면, 환경적 측면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나는 고등학교시절, 학교를 감옥에 비유하곤 했다. 그곳에선 자유가 없다. 오로지 통제와 억압만이 있을 뿐이다. 통제와 억압이 있는 곳에선 그 조직에 복종하고 순응하는 것이 가장 편안하고 안락한 삶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게 느끼는 것일 뿐 실제 그러한 것은 아니다. 이는 사람을 수동적이고 소극적으로, 무기력하게 만들기 때문에 그들에게서 의지, 의욕이라는 것은 찾아 볼 수가 없다. 당연히 이런 사람들이 많은 사회, 조직은 진보적이 될 수 없다.

 이상 시험에 대한 두 가지 태도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사회로 그 범위를 확대시켜 적용해봤다. 여기에는 외연의 범주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학교든 사회든 그것을 구성하는 개인은 모두 같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을 것이다. 학교에서는 학생의 신분으로, 사회에서는 사회인으로, 국가에서는 국민의 신분으로 모든 개인은 각 조직에 관계하게 된다. 따라서 그 조직들 중 어느 한 곳에서 적용한 삶의 태도가 다른 조직에서도 동일하게 드러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위의 글은 그러한 관점에서 서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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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말'을 기반으로 할 때 더 값진 효과를 낸다.

 어머니께서 전에 TV 청문회에 나온 노무현 대통령의 대답하는 장면을 보시고는 "말 참 잘한다" 라고 하시며 감탄 비스므레(?)한 찬사를 보낸 적이 있었다. 또 내 경우, 어떤 사안에 대해서 남들과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이를 그들에게 설득시키려 할 때, 이땐 글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는 글은 소용이 없다. 오직 말이 있을 뿐이다. 보통의 경우 오프라인에서는 말을, 온라인에서는 글을 사용하는데, 우리들의 생활이라는 것은 온라인에서보다는 오프라인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글은 때로는 독자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기도, 채찍질을 가하기도 하지만 이것을 일방통행으로 그칠 경우가 많다. 결국 말의 쓰임의 범위가 글의 쓰임의 범위보다 넓은 것이다. 또 한가지 더 추가하자면, 말을 글로 표현하기는 쉬우나, 글을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말을 한다는 것은 이미 그것이 이미 자기화, 자기내면화 되어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글은 아직 나의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말'을 제쳐두고 '글'만 이용한다는 것은 이렇게 그 어려움이 많은 듯하다. 말을 못한다고 마냥 제쳐둘 것이 아니라 못하면 잘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가급적 말을 많이 하도록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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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글쓰기에 있어 사용하는 필명은 실명못지 않은 나를 대표하는 단어로써 자리매김한다. 내가 처음 인터넷 글쓰기를  시작한 1998년부터 지금까지 6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인터넷 세계에서의 나의 필명 또한 많이 바뀌었다. 그 변천사를 돌이켜보며 심경의 변화를 옮겨본다.

 고등학교 졸업 후 나는 처음으로 '컴퓨터 통신'이라는 것을 해보았다. 중고등학교땐 컴퓨터를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이 그저 게임뿐이었다. 졸업 후 대학에서 사용할 컴퓨터를 구입했는데 그 안에는 유니텔 무료이용권이 있었다. 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 등 다른 통신사들도 있었지만 무료이용권이라는 말에 한번 써본다는 것이 그 길로 계속해서 유니텔만 사용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유니텔측의 미끼에 걸려든 것인가?

 유니텔을 사용하면서 처음에 번개(인터넷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들을 실제로 만나는 것)도 하고, 동호회에 가입해 함께 이야기하기도 하고, 글도 쓰며 많은 활동을 했다. 어디 이런 세계가 다 있나 할 정도로 그동안 나는 너무도 좁디좁은 학교-집 코스만이 내 전부인줄 알았던 것이다.

< 머루, 크롬 >

 유니텔 안에서 나의 '대화명'(사실 처음에 대화명이라는 것이 뭘 의미하는지도 몰랐다. 게시판을 보면 []안에 각자 뭔가가 적혀있는 것이다.)에 대해 난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 이름을 대신할 수 있는 단어가 무엇이 있을까? 당시 대화명이라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나는 필통에 써있던 '머루와 다래'에서 따와 '머루'를 사용하기도, 신해철의 영국유학 후 새로운 닉네임인 '크롬'을 사용하기도, 당시 열심히 였던 드럼에서 따와 '드러머'를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들은 나라는 인간의 전체를 포섭할 수 있는 적정한 단어가 되지 못했다. 그것들이 내포하고 있는 외연은 너무도 작았다.

< 폐문 >

 이후 유니텔 아이디를 변경하면서 나는 '폐문'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것은 그동안 사용하던 다른 닉네임에 비해 나라는 인간 전체를 적절하게 표현해주는 단어같았다. 폐문! 닫힌문이다. 나의 비사교적이고 닫혀있는 성격이나 어두운 분위기를 적절하게 잘 표현해주고 있었다. 그렇다. 폐문은 곧 나였다.

< 이데아 >

 그러다가 나의 관심사가 기존에 음악:철학의 비율이 7:3 정도였던데에서, 3:7 정도로 바뀌면서 나는 철학적 측면에서 나를 표현해줄 수 있는 적절한 단어를 다시 찾기 시작했다. 물론 폐문도 계속해서 사용하고 있지만 이것말고 다른 무엇인가를 찾았다. 결국 찾아낸 것이 '이데아'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철학적 시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있는 그대로를 관찰하는 현상학적 시각과 확고한 체계적 기준(예를 들자면 플라톤의 이데아나 헤겔의 절대이성)를 기반으로 한 유토피아적 시각이다. 그런데 나는 그 두 가지중 후자에 매력이 끌렸다. 앞서 예를 든 플라톤이나 헤겔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이기도 하다. 플라톤의 철인정치에서 나는 깊은 감명을 받았고, 이후 나의 닉네임은 '이데아'가 되었다.

 세상의 유토피아, 자유, 정의, 평등 이러한 추상적 이념들이 실현되는 곳. 그곳이 바로 이데아의 세계이다. 지극히 이상적이라 비판한다면 할 말 없다. 그러나 그것을 추구하기위해, 그에 닮은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최소한의 노력을 할 수는 있다.

 그렇게 나를 대표하는 단어는 얼마전까지 '이데아'가 되었다. 그런데 여기에 약간의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세상을 현상학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결코 무시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무조건 이데아만 외칠 것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는 시각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이후 여러가지 닉네임을 섞어 썼다.

< 이데아, 폐문, 자유 >

 '이데아', '폐문' 그리고 '자유'이다.
 '자유'는 내가 꿈꾸는 최고 이념이다. 그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각을 초월하여 모든 곳에 적용될 수 있고, 결코 비판받을 수 없는 이념이다. 세계의 역사는 자유의 역사의 다름아니다. 많은 이들이 자유를 부르짖으며 죽어갔고 아직 세상은 자유의 이념을 실현하기에 멀었다. 이에 나는 그들의 삶에 동참하기로 했다. '자유'는 평생 내가 추구해야할 이념이다.

< 내이름, 이데아 >

 위의 필명들을 사용하던 중 내가 너무 이상에 집착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가장 솔직한 필명인 내 이름으로 잠시 돌아왔다. 그러다 다시 내 마음속에서 철학적 이상이 약해지는 것을 발견한 나는 다시 '이데아'로 회귀하였고, 그 후로 오랫동안 '이데아'는 나와 동일시 되었다.

< 검정벌레 >

 하지만 역시 또 너무 추상적이고 사람들에게 다가가기에 어려운 단어라는 생각을 했다. 필명이라는 것은 나를 대표함과 동시에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어야 하는데 나는 너무나 사람들과 단절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의 외양과 내면을 표현해줌과 동시에 사람들에게도 어렵지 않은 '검정벌레'라는 것을 생각해냈다. 평소 검정색 옷차림을 즐기고, 고독과 평온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나를 설명하기게 적절한 것 같았다. 또한 친근한 단어이기도 하다.
 
 '검정벌레'를 사용한지는 얼마되지 않았지만 한동안 이 필명을 바꾸지는 않을 듯 하다. 글쎄 또 얼마나 오래 갈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썬 가장 마음에 드는 필명이다.

 

p.s 지금은 '아프락사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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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마음이 잘 맞았던 동아리 후배녀석이 죽은지 3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군대에 들어가 100일 휴가를 앞두고 싸늘한 시체가 되어 바다에 떴다. 군대에서는 자살이라고 판정을 내리고 사건을 빨리 마무리 지으려했다. 그러나 결코 자살할 애가 아니란건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동의할 것이다. 얼마나 천진무구하고 낙천적인 아이였는데...

 녀석의 사망소식을 접한건 집에서 인터넷을 하고 있을 때였다. 동아리의 다른 후배가 전화속에서 울고 있었다. 아니 얘가 왜 이러지? 무슨 안좋은 일이 있었던 게로구나. 그런데 후배의 첫 마디...

"정욱이가 죽었대요. 군대에서 죽었대요"

 당시 난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상황에서 수화기 안에서 들리는 후배의 울음 소리를 듣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정욱이가 군대에서 자살을 하다니? 말도 안된다. 활달하고 낙천적인 성격을 가진 아이였다. 그가 군대가기 전 남긴 마지막 글에서도 한동안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기까지 했다. 그러던 그가 자살을 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이제 나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국방의 의무를 마친 대한민국 시민이 되었다. 남자는 군대를 갔다와서 국방의 의무를 마침으로써 어엿한 성인이 되고 대한민국 시민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그랬던가. 훗... 쓴웃음만이 지어진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지니자!"

 정욱이가 좋아하던 쿠바 혁명가 체 게바라의 말이다. 음악적 취향면에서, 가치관면에서 그는 나와 참 비슷했다. 체 게바라 평전이 처음 나왔을 때, 정욱이는 내게 이런 말을 건냈다. "형! 체 게바라 평전 나왔대요." 짧은 말 한마디는 많은 것을 함축한다. 그는 내가 체 게바라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서로 통했음을 느꼈다.

 그래... 그렇게 친한 아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와 비슷한 아이였다. 그의 죽음 이후 난 그의 부모님을 따라 부대앞에 가서 시위를 하지도 않았고, 그저 분노에 가득차 인터넷 상에 그의 죽음을 알리는 글을 작성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에 대해 알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졌을 뿐이었다. 그게 다였다. 나는 훗날 정욱이와 같이 의문사하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도록 사회를 바꾸겠다고 생각하며, 그때는 그 모든일들이 해결될거라고 스스로 위안하며 자기합리화를 시키곤 했다. 후배의 죽음 앞에 난 무력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후에 내가 노력하겠다는 나의 다짐은 변치 않았다. 그의 죽음을 다시 돌아봄으로써 나의 의지를 강화시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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