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 1학기인지, 2학기인지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으나 헤겔수업 시간이었다. 10여명의 학생들과 선생님 모두 동그랗게 빙 둘러앉아 한명씩 자신이 철학을 택한 이유와 목적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었다. 어떤 사람은 생각없이 점수맞춰 왔다고 솔직하게 고백하기도 했고, 어떤 사람은 존재의 문제에 대해 고민을 하다가 들어왔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신학을 하기 위해 왔다고 한다. 나는 무엇을 위해 철학과를 왔던가?
사실 앞으로 내가 말할 '내가 철학을 하는 목적'은 철학을 택하기 이전에 생각했던 그러한 것은 아니었다. 즉 앞으로 말할 '철학을 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내가 철학과를 택하고 철학공부를 시작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철학을 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이야기했으므로 여기서는 '철학을 하는 목적'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도록 한다.
철학하는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목적을 가지고 철학을 공부하는지도 모른다. 한 단어로 내가 철학하는 목적을 말하자면 '혁명'이다. 나는 혁명을 위해서 철학을 혁명의 수단, 도구로 삼고 있다. 여기서 내가 사용하고 있는 '도구', '수단'의 의미는 그것이 뜻하고 있는 사전적 의미의 도구, 수단과는 다르다. 사전적 의미로 '도구'라는 것은 '일에 쓰이는 여러가지 연장'을 뜻하며, '수단'은 '일을 처리해 나가는 묘안을 꾸며 내는 솜씨와 꾀' 혹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법'이다. 그러나 내가 사용하고 있는 수단. 도구의 의미는 이것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나를 포함한 인간은 일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시간의 경과를 통해 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다니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퇴직을 하고, 죽음에 이른다. 이들 모든 과정이 개인의 차에 따라 그 개인에게 포함될수도 생략될수도 있다. 또한 그것의 시간적 격차가 다를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어떠한 경과를 통해 무엇인가에 다다른다는 것이다. 내가 사용한 '도구'나 '수단'의 의미는 바로 이러한 것들이다. 내가 혁명을 달성하기 위해 철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을 하다가 그 결과물로서 혁명을 얻겠다는 뜻이다. 이 둘의 차이는 매우 크다. 전자에서는 혁명이 주가 되고, 철학은 이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후자에서는 철학이 주가 되고, 혁명은 철학함의 부산물이 된다.
자 이제 내가 '철학을 혁명의 도구로 삼는다'는 말의 의미를 해석했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니가 말하는 '혁명'의 의미가 뭐냐?"라고 묻는 분들이 있을게다. 그렇다면 나는 여기서 내가 말하는 '혁명'의 의미를 짚고 넘어가야겠다.
혁명! 그것은 위대한 이름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역사상 많은 혁명이 일어났고 혁명을 이끈 많은 혁명가들이 있었다. 프랑스혁명, 볼셰비키혁명 등등... 그런데 내가 말하는 혁명이 무엇인지를 말하기에 앞서 '혁명'과 '쿠데타'를 구분지어야겠다. 방금 앞에서 나는 세계의 혁명의 예를 들면서 "쿠데타도 혁명인가? 그렇다면 박정희의 군부쿠데타도 혁명으로 간주해야하는가?"라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 다시 사전적 의미를 빌려야겠다. 어떤 국어사전을 손에 들던 '혁명'과 '쿠데타'의 의미는 비슷비슷할 것이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혁명'이란 '급격한 변혁. 어떤 상태가 급격하게 발전변동하는 일' 이나 '이전의 왕통을 뒤집고 다른 왕통이 대신하여 통치자가 되는 일' 혹은 '비합법적 수단으로 국체, 정체를 변혁하는 일' 또는 '종래의 권위, 방식을 단번에 뒤집어 엎는 일'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럼 '쿠데타'는 무엇인가? '쿠데타'는 '비합법의 무력적 기습에 의하여 정권을 탈취하는 일. 지배 계급 내부의 권력 이동으로서, 체제의 변혁을 목적하는 혁명과는 구별됨'이라 정의되어있다. 무엇이 다른가? 앞서 정의에서 볼 수 있듯, '혁명'은 체제의 변혁을 꾀하는 반면, '쿠데타'는 혁명과 같이 체제의 변혁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도 단지 정권의 교체만으로도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혁명'의 대략적인 의미는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내가 꿈꾸는 '혁명'이 체제의 변혁이라면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는 반사회적이고 반국가적이라는 누명을 쓸 위험이 있으므로, 이에 대해서도 간단한(?) 부연 설명을 하도록 하겠다.
나는 내가 꿈꾸는 혁명이 체제의 변혁이 될지 그렇지 않을지는 자신할 수 없다. 어떤 것이 되던간에 혁명의 최종적인 모습으로서 만인이, 세계인류가 평화롭게, 평등하게, 자유롭게, 정의롭게 사는 사회를 꿈꾸는 것 뿐이다. 여기서 평화가 무엇이냐, 평등이 무엇이냐, 자유가 무엇이냐, 정의가 무엇이냐 라고 묻는 분들이 있을게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설명하자면 내가 이 글을 언제 끝맺게 될지 알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진다. 그만큼 이것들은 설명하기 어렵고, 또한 예민한 것들이다. 이에 대해서는 차차 시간을 가지고 논하기로(논한다? 논한다는 것은 둘 이상의 화자가 존재하는 것일진대 여기서 나는 '논한다'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이는 내가 이 단어의 뜻을 몰라서가 아니라 나의 내면에 존재하고 있는 진정한 자아와 지금 말하고 있는 나, 이렇게 두 화자를 상정해놓고 있음이다) 하고, 여기서는 간단하게만 설명하겠다.
자유, 평화, 평등 등등의 마냥 좋아만 보이는 개념들. 간단히 이야기하기로 했으니 정말 간단히 말하자. 나에게 있어 이것들이 의미하는 바를, 이 글의 독자들이 이해하려면 몇 가지 단어만 머리속에 집어넣으면 된다. 좌파, 반세계화...
"이것들이 의미하는게 뭐냐?" 고 또 물으시면 나는 대답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자꾸 이런식으로 단어 하나하나 캐묻고 소급해가자면 끝도 없어지므로 저 두 단어로 알아서 머리속에 조합해보라. 신문지상에서 여러가지 국제 회의를 저지하기 위한 반세계화시위들에 대한 기사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떠올리면 한층 쉽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자 그럼 나는 다음에 쓰여질(그러나 언제일지는 알 수 없음. 다음 글일수도 그 다음 글일수도 안쓸수도 있음) 글에서 나에게 있어 자유, 평화, 평등, 정의 등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논하면 이 글의 부족한 부분이 채워질 것이라 여겨진다.
그럼 '혁명'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으로 끝내고, 어떻게 철학을 통해서 혁명을 이끌어낼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말하기로 한다. 지금까지는 철학을 혁명의 도구, 수단으로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혁명이란 무엇인지, 내가 말하는 혁명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했으니, 정작 '철학'과 '혁명'을 이어주는 연결부분이 빠진 셈이다.
앞서 나는 철학을 통해 혁명에 이르는 과정을 인간의 인생사에 빗대 간단하게 설명했다. 이를 '물흐르듯 자연스럽게'라는 어구로 표현해도 될 듯하다. 철학을 공부하다보면, 아니 '철학을 하다보면'이라는 표현이 더욱 적합하겠다.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마치 생물학이 생물을 대상으로 하고, 유전공학이 유전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과 같이 철학을 대상으로 하는 것과 같은 인상을 풍기기 때문이다. 철학은 그 대상이 없다. 다시, 더 정확히 말하자면 철학은 모든 것을 그 대상으로 한다. 철학이 대상으로 하는 것은 존재의 문제일수도, 우주의 문제일수도, 사회의 문제일수도, 언어의 문제일수도, 생물의 문제일수도 있는 것이다. 철학은 그 대상을 정함에 있어 범주를 두지 않는다. 자, 다시 이야기의 논점으로 돌아가서, 철학을 하다보면 내 주변, 사회, 국가,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 문제시되는 것들에 대해 그 문제가 일어나게 된 원인이 무엇인가 하고 그 원인을 한없이 소급해 들어가는 것에 매우 익숙해진다. 어쩌면 그것이, 철학을 한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하늘에 붕 뜬 구름만 쳐다보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먼 산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건, 문제의 근본이 무엇인가를 찾는 모습이다. 이렇게 그 근본으로 소급해가다보면 무엇이 잘못되어 지금의 결과에 이르렀는가를 느끼게('알 수 있다'라는 표현은 안쓰겠다. 그것은 자칫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독단론에 빠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안다면 그 사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면 될터인데 실상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안다'는 표현보다는 '느낀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이다) 될 때가 있다. 바로 여기에서 나는 문제의 해결점을 제시하고 그것을 근본부터 바꾸고 싶은 것이다. 그것이 바로 혁명이다.
즉 철학을 하면서 지금의 잘못된 것들의 원인을 밝혀내고 그것을 근본적으로 고쳐가면서 혁명에 도달하는 것이다. 생각같아선 단한번의 변혁으로 혁명을 달성하고 싶지만 사실 그것은 너무나 꿈같은 이야기이다. 그러나 내가 말한 혁명은 그 가능성이 있다. 그 가능성이 있기에 나는 지금 이렇게 철학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글을 쓰고 난 뒤...
앞서 '철학을 공부한다'와 '철학을 한다'의 차이점을 언급하긴 했지만, 정작 차이점만 언급했지 '철학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에 대한 글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