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학교에서 내려오던 길에 친구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고등학교때보다 대학교에서 시험을 더 많이 보는 거 같지 않냐?"
(친구는 경제학도로 증권이나 금융에 관련된 각종 자격증 시험을 치뤘고, 앞으로도 계속 치룰 예정이다.)
친구의 이 말을 듣고는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때에는 주어진 시험만 치루는데, 대학교에서는 자기가 시험을 찾아 본다'
사실 그렇다.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나는 3년내내 두 학기의 중간, 기말고사를 치뤘고, 일년에 4번의 모의고사를 치뤘다. 그 외에는 전혀 별다른 시험은 없었다. 그러나 대학생이 된 나는 대학교에서 보는 두 학기의 중간, 기말고사 외에 나의 필요에 의해 다른 시험을 찾아서 치뤄야만 했다. 나는 인문학도, 그중에서도 철학도라는 지극히 자격증과는 거리가 먼 학문을 하고 있기에 대학의 중간, 기말고사 이외에는 운전면허시험과 워드프로세서시험 밖에 본 것이 없다. 그런데 위에 언급한 내 친구는 경제학도로 이에 관련된 자격증 시험이 다양하다. 친구는 자신의 미래를 좀더 확실히 하기 위해서 미리 자격증을 따두려는 것이리라.
이러한 고등학생과 대학생의 시험에 대한 태도, 주어진 시험에만 임하기만 하면 되는 고등학생과 대학의 주어진 시험 이외에도 스스로 필요한 시험을 찾아 치뤄야하는 대학생. 아무래도 전자는 시험에 수동적, 소극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고, 후자는 시험에 능동적, 적극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물론 이것은 시험을 보는 주체로서의 개인이 시험에 응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 아닌, 그들을 포괄하는 외연전체가 시험과 맺는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이런 고등학생과 대학생이 시험과 맺는 관계는 그들의 삶의 태도, 생활의 태도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고등학생들은 정해진 시간표, 정해진 내용의 교과서, 정해진 선생님에 의해 수업을 받지만, 대학생들은 자율적인 시간표, 자율적인 내용의 교과(수업에 정해진 교과서가 있을 수 있으나 교과서를 하나만 한정하지는 않는다), 자기가 원하는 선생님을 통해 수업을 받는다.
흔히 우리네 고등학생들은 무기력하다, 기운이 없다 라고 표현되지만 이는 학생들의 주어진 환경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그들이 환경에 적응하면서 형성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들 스스로가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환경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창의적인 능력, 공부에 대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를 기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러한 제도적 측면, 환경적 측면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나는 고등학교시절, 학교를 감옥에 비유하곤 했다. 그곳에선 자유가 없다. 오로지 통제와 억압만이 있을 뿐이다. 통제와 억압이 있는 곳에선 그 조직에 복종하고 순응하는 것이 가장 편안하고 안락한 삶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게 느끼는 것일 뿐 실제 그러한 것은 아니다. 이는 사람을 수동적이고 소극적으로, 무기력하게 만들기 때문에 그들에게서 의지, 의욕이라는 것은 찾아 볼 수가 없다. 당연히 이런 사람들이 많은 사회, 조직은 진보적이 될 수 없다.
이상 시험에 대한 두 가지 태도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사회로 그 범위를 확대시켜 적용해봤다. 여기에는 외연의 범주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학교든 사회든 그것을 구성하는 개인은 모두 같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을 것이다. 학교에서는 학생의 신분으로, 사회에서는 사회인으로, 국가에서는 국민의 신분으로 모든 개인은 각 조직에 관계하게 된다. 따라서 그 조직들 중 어느 한 곳에서 적용한 삶의 태도가 다른 조직에서도 동일하게 드러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위의 글은 그러한 관점에서 서술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