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은 한국일보를 구독하고 있다. 지금의 기억으로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조선일보를 봤었다. 그러다가 서울경제신문과 한국일보 두 가지 모두 월 10,000원에 구독할 수 있다기에 한국일보로 바꾼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세상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은 대학교 3학년때로 상당히 늦은 감이 없지 않았다. 그때까지 나는 조선일보를 보건, 한국일보를 보건, 한겨레를 보건 다 똑같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사실 똑같다고 생각했다기 보다 그때까지는 세상 돌아가는 꼴(?)에 관심이 없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관심이 있었다면 그만큼 신문의 논조나 편집방향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한국의 정치를 비판하는 사람들 중에는 크게 두 부류가 있다. 하나는 정치인은 누구건 다 똑같이 못된 놈들이고 맨날 욕하고 싸움질이나 하는 녀석들이다 라고 주장하는 정치인 모두를 싸잡아 비판하는 부류이고, 또 하나는 분명 내 생각에는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옳은데 저 정치인은 그렇지 못하다 라고 생각하는 자기 주관적 생각에 비추어 이에 합당하지 않은 의견을 제시하는 자들을 비판하는 부류이다.(후자는 내 의견과 다르다고 무조건 비판하는 부류와 평화와 자유, 평등 등의 보편적 이념 차원에서 옳지 못한 의견을 비판하는 부류로도 나누어 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대학 2학년때까지는 전자의 '싸잡아비욕하기파'에 속해있었다. 그래서 나에게 주어진 첫번째 투표권을 거부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를 깨달았다. 그 소중한 한 표를 난 쓰레통에 버린 것이다.

위의 예는 정치의 영역에 국한 시키기는 했지만 그만큼 내가 세상사에 관심이 없었음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서서히 한국정치문제, 경제문제, 국제적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각종 신문들의 '다름'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는 신문을 보면서 '글자'는 읽되, '내용'을 읽지 못한 문맹이었던 것이다.  

이제 눈을 뜬 나는 주된 몇몇 신문들을 보고서 나름대로 그것을 분류하는 기준이 생겼다. 이는 나보다 먼저 눈 뜬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먼저 한 부류는 보수적 시각으로 쓰여진 '조선''중앙'동아'일보이다. 이 세가지 신문의 특징을 말하자면 먼저 조선일보는 자칭 대한민국 1등 신문이라는 둥, 할 말은 하는 신문이라는 둥 외치고 다니고 있다. 할말은 하는 신문이라... 이에 대해 전에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는 '할말은 하는 신문'이 아니라 '못 할 말을 하는 신문''해서는 안되는 말을 하는 신문'이라 평했다. 개인적으로 이는 아주 적절한 지적이었다고 생각된다. 조선일보를 보고있노라면 마치 하나의 소설을 읽고 있는 기분이다. 어쩜 그리도 잘 짜맞추고 있는 말 없는 말 조각조각 잘 끼우는지. 그런데 그것이 순수하게 정말로 소설이라면 문제가 될게 없겠지만 사실을 소설화시킴으로써 국민을 우롱하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조선일보를 보는 국민들은 대다수 그들의 논조에 '길들여져' 소설을 사실로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둘째로 중앙일보. 중앙일보에서는 조선일보와 같은 감수성(?) 깊은 소설과 같은 느낌은 받지 못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극단적 시각이 들어가 있다. 사회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들에, 정부가 추진하는 모든 일들에 대해 그들은 극단적 비판을 일삼고 있다. 그것이 전혀 비판받을 개재가 없는 단순 사건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그것을 정부비판의 수단으로 삼는다. 그러나 우매한 군중 중에서도 극히 우매한 군중(단 사회에서 벌어지는 현상들에 관심이 있는 군중에 한함)이 아니라면 그들의 기사를 보면서 매사에 극단적인 그들의 논조를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1등 신문이 되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셋째로 동아일보. 사실 동아일보에 대해서는 크게 할 말이 없다. 위 두 신문에 비해 크게 두드러지는 특징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보수우익의 논조를 가지고 있음은 더 언급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다음 부류는 한국일보 등의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는 신문이다. 한국일보를 보면서 느낀 것은 모든 사안에 대해 항상 양쪽 모두의 의견을 실으려 한다는 점이다. 어찌보면 객관적이면서도 어찌보면 주관이 없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이것이 이들의 생존전략인지도 모른다. 간혹 한국일보 사장의 개인적인 견해에는 객관적인 듯하면서도 결국은 보수우익의 손을 드는 미묘한 글로써 한국일보를 중도우파로 끌어가려는 장치가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한국일보는 객관적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객관적'이라 함은 사안의 타당함, 옳음과는 상관없이 그 사안에 대해 편이 갈리는 양쪽의 주장을 담고 있음을 말한다. 고종석씨나 박래부 편집위원의 글은 반대편에서 신문의 논조를 이끌며 중립을 유지해준다.

마지막으로 한겨레와 같은 진보적 신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홀로 진보의 길을 걸으며 외로운 투쟁을 하는 신문이다. 어떤 이는 그들이 진정 진보적이냐 라며 아직 멀었다고 외치기도 하지만 지금 이 정도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들은 이 시대의 진보를 내세우는 이들의 입장을 대변해주고 노동자를 비롯한 하층민, 억압받는 소수의 사람들을 위해 싸운다. 나는 개인적으로 한겨레를 가장 좋아한다.

여기서 그런데 왜 너는 한국일보를 보느냐? 라고 묻는 사람이 있을게다. 나는 한국일보와 한겨레 모두 보고 싶다. 그러나 집안 경제적 사정상 한 가지만을 봐야하고 서울경제신문을 보는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에 한국일보를 보는 것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한국일보를 보는 것은 아니다. 조중동을 볼 바에야 한국일보같이 양쪽의 입장을 모두 보여주는 신문을 읽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한국일보를 읽으면 조중동이 주장하는 바가 어떤 것인지 짐작이 가능하며 또한 한겨레가 이 사안에 대해 어떤 시각으로 다루었겠구나 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 여담이지만 한겨레는 어머니께서 가끔씩 공짜로 가져오실때도 있고, 학교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한겨레신문이기에 굳이 둘다 구독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즉 나는 지금 주어진 환경 속에서 가장 효율적인 선택을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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