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CEO - 명화에서 배우는 창조의 조건 읽는 CEO 2
이명옥 지음 / 21세기북스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창의적인 사람인가? 나 자신이 창의적인 사람인지 아닌지 여부는 내가 사물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 대개의 많은 사람들은 사물이 보여지는 그대로를 바라보나 어떤 사람들은 '보여지는대로'를 넘어 그 사물에 자기 해석을 가함으로써 사물을 뒤집어보기도 한다. '수동적인 바람봄'이 아닌 '능동적인 바라봄'을 통해 사물이 가진 다른 속성들을 끄집어낸다. 창의성은 이로부터 나온다. 국민대 미술학부 교수이자 사바나 미술관장인 이명옥에게 "예술은 일상이고, 업무이고, 여가다." 그녀 자신이 직접 창작 활동을 통해 작품을 만들어내지는 않지만, 그녀는 만들어진 작품을 새롭게 배치하거나 그것에 해석을 가하고, 때로 작품을 만든 예술가들을 만나면서 '창의적인 인간'이 되기 위한 기본 환경에 놓여있다.

  이 책의 주제는 '명화에서 보는 창조적 지혜'이다. '그림 읽는 CEO'라고 해서 나름 자기계발류의 상업적 흐름에 편승하고자 했으나 이건 어디까지나 책을 홍보하고 팔기 위한 장치일 뿐이고, 기본적인 컨셉은 '명화를 통해 보는 창조적 지혜'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미술관에서 이런저런 작품들을 새롭게 배치하고 꾸미는 등 작업의 연장이라 할 수 있다. 여기 실린 화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하나의 주제로, 또 그 안의 여러 주제로 세분화시켜 분류하고 해설하는 일은, 또 하나의 창작 활동이다. 1부에서는 작품을 통해 예술가들의 창의적 생각 기법을 벤치마킹하고, 2부에서는 예술가적 창의성을 혁신의 원동력으로 삼으며, 3부에서는 예술가들의 창의성을 빌어 자신을 재창조한다.  

  그림에는 문외한인지라 여기 실린 그림 중 익숙한 것은 몇 되지 않는다. 나름 유명한 화가들이고, 유명한 화가의 작품들일진대, 내가 직접 눈으로 본 건 르네 마그리트의 <골콘드> 정도뿐. 다른 몇몇 작품들도 어딘가에서 본 적은 있지만, 그 작품이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고, 제대로(?) 감상해 본 바도 없기 때문에 '작품을 접했다'고 말하긴 어렵다. 전시회에서 직접 본 이후 마그리트의 그림에 빠졌다. 어쩌면 그림을 좋아하는게 아니라 그림 밑에 달린 마그리트의 한 줄 문장을 더 좋아하는건지도 모르겠다. 단지 그림만 내 앞에 놓여있었다면 나는 별다름 감흥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림 아래 달린 한 줄 문장은 그림과 어우러지며 마그리트의 메세지를 생생하게 전달해준다. 이 책의 15쪽에 실린 <골콘드>는 명동거리 어느 건물 외벽에서 본 것 같다.

  책을 넘기다보면 화가들은 그림을 잘 그려서 유명해진게 아니고, 그림을 못 그려도 그림 안에 담긴 메세지나 그 기법이 독특하고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잡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잠자는 집시>라는 그림을 그린 앙리 루소라는 화가는 정규 미술 교육을 받아본 적도 없다고 한다. (<화가의 똥>을 그린 안찬홍도 마찬가지다.) 데생, 미술사, 원근법 등의 기초에도 무지했던 그가 세관일을 하며 나이 사십에 그림을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그들끼리의 미술계로부터 왕따당하고 무시당하면서도 주목받을 수 있었던 건, 열정과 꾸준함, 그리고 창의력 때문이었다. 고갱은 "루소의 그림에는 진실이 있어, 미래가 있다고. 바로 여기에 회화의 진실이 있"다고, 피사로는 "느낌이 학습에 의한 기법보다 우월하다"고 말했다 한다. 실력이 아닌 표현 방식과 느낌이 작품의 기준이다.  

  살바도르 달리며, 앤디 워홀 같은 이들은 그림보다는 그림 외적인 활동으로 주목을 받고 유명해졌으나,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것도 자기를 창조하고 가꿔나가는 하나의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미켈란젤로와 같이 20미터 높이의 비계에 올라가 척추가 휘고, 관절염과 근육 경련, 안료로 인한 눈병까지 겪어가며 고된 작품 활동을 거쳐 순수하게 작품으로만 인정받은 이들이 있는가 하면 작품 외의 쇼맨쉽과 놀이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상업적으로 이용해 자신을 팔아먹은 화가들도 있다. 엄밀히 예술이 아닌 포장술의 달인이라고 불러야겠지만, 그들의 작품도 나름의 독특한 컨셉과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여기 실린 모든 예술가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꾸준히 공부하고 현실을 극복하고 자신을 성찰함으로써 이름을 날리고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그들이 작품을 탄생시키기까지, 오늘날 사람들에게 주목받기까지의 과정은 각기 다르지만, 그들 모두는 무엇인가를 꾸준히 시도하고 실험하고 그것에 자기 자신을 내던졌다.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꾸준히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나는 발전할 수 있다. 창의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자기 삶을 통해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그들은 보여지는 사물을 그대로 보지 않고 스스로 만들어낸 창을 통해 재해석함으로써 자기를 발견했고 탄생시켰다. 이건 누구나 할 수 있다. 단지 누구나 하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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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읽는 CEO - 명화에서 배우는 창조의 조건 읽는 CEO 2
이명옥 지음 / 21세기북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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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전에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사물을 보고 생각한다. (르네 마그리트)-13쪽

경이는 언제나 아름다운 것이다. 아니, 경이로운 것은 어떤 것도 아름답다. 사실은 경이로운 것만이 아름다운 것이다. (앙드레 부르통)-21쪽

우리의 눈은 환상과 마찬가지로 바로 눈앞에서 또렷하게 보이는 것보다 막연하고 아련하게 보이는 것에 더 매혹되게 마련이다. (카스카 다비드 프리드리히)-81쪽

눈은 천문학의 주인이며, 인간이 창조하는 예술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최상의 감각 기관이다. 눈은 자연이라는 완전무결한 작품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게 만드는 필수적인 도구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97쪽

화가들이여, 그대는 자연이 창조한 모든 종류의 형태를 모방할 수 있는 만능인이 되지 않고서는 결코 훌륭한 화가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자연의 다양한 형태들을 관찰하고 머릿속에 각인시켜두지 않으면 만능인이 될 수 없다. 화가는 필연적으로 생겨날 수밖에 없는 자연 현상의 원인을 분석하고, 그 해답을 예술의 언어로 표현하는 통역사가 되어야 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111쪽

나는 고집스럽게 작업을 계속한다네. 나는 길을 개척하면서 죽을 결심을 했네. 나는 내 눈앞에 펼쳐진 약속의 땅을 본다네. (폴 세잔)-125쪽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왜 그것을 해야 한다는 말인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은 전혀 흥미롭지 않다. 그럴 바엔 다른 것을 하는 것이 훨씬 낫다.(파블로 피카소)-141쪽

정확성이 진실은 아니다. 완전히 다른 그림을 그리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 진정한 화가에게 장미 한 송이를 그리는 것보다 어려운 일은 없다. 장미를 제대로 그리려면 지금껏 그렸던 모든 장미를 잊어야 하기 때문이다. (앙리 마티스)-1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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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금 열한번째 촛불집회에서 복귀. 6월 15일. 광화문에 도착해 시청방향으로 걸어가려고 했는데 어라, 나왔는데 도로에 차가 다닌다. 쌩쌩. 그리고 광화문의 명박산성은 사라진건 알았지만, 경찰들이 이순신 장군쪽 중앙을 다 터놨네? 양옆으로만 닭장차를 배치하고. 무슨 일이지. 아니 걸어나오면 도로가 다 꽉 차 있을줄 알았는데 생각치 못한 장면에 충격을 받고. 심지어는 '오늘 집회 안하나?'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약간의 의심을 품고 시청으로 향하는데 도로는 역시나 차들이 쌩쌩 점거(?)하고 있었다. 시청광장에 사람들이 모여있었고, 인원은 생각보다 적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근래 큰 집회에서 인원이 10만, 20만, 50만 단위로 커지다보니 이제 몇만명(약 2만 남짓) 정도는 우습게보였던 것이다. -_-  

  오늘은 그래도 크게 한다고 했는데 사람들이 별로 모이지 않았다. 일요일이라 그런가. 시청광장은 꽉 들어찼지만 도로까지 점령할 인원은 되지 않았고, 그렇게 혼자 광장 한쪽에 주저앉아 구호도 외치고, 촛불도 들었다 내리고 했는데 뒤를 돌아보니 꽉 찼더군. 오늘 집회에선 6.15 남북 공동 선언일인지라 계속 남북한의 관계에 대한 발언들이 이어졌는데, 여기 모인 사람들이 통일 이야기하자고, 남북관계 이야기하자고 모인게 아닌데 자꾸 핀트가 어긋나는 느낌이랄까, 그런 느낌이 계속 들었다. 올라오는 사람들도 말들을 별로 못하고, 유쾌하지도, 재밌지도 않은 남자들의 발언만 계속 이어졌고. 그러다 마지막 기말고사 공부안하고 여기 왔다는 고3 여학생의 목소리에, 그 아이의 발언에, 다들 뒤집어졌다. 큭큭.

  "여러분! 문제만 있고 정답이 없는 문제지 출판사는 망해야 합니다. 그렇죠? 문제를 만들어놓고 해결하지 않는 정부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와아아아아아 망해야합니다!" 큭큭큭큭. 센스하고는. 앞쪽에 고등학생들이 쫙 몰려있었다고 들었는데, 참 기특하다. 남들 시험공부하고 있을 때 여기 나와서 민주주의의 실현을 이루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하니. 이런 학생들이 많아져야 하는데 말이지. 공부만 하고 생각 안하고 행동하지 않는 학생들은 공부를 하면 안된다. -_- 공부만 한 애들은 꼭 보면 나중에 뻘소리나 하고 앉았더라. 뻘소리란게, 나와 같은 의견, 같은 생각이 아니라고 해서 그렇다는게 아니라 딱 자기밖에 모르는 그런 관점에서 사회를 바라보더라고. 자기 주변의 타인을 전혀 고려치 않는.

  집회가 조금 늦게 시작한지라 늦게 광장에서 일어나 도로로 나갔는데, 내겐 아주 익숙한 코스다. 5월 중순만해도 아니 얘네가 어디로 가는건가 하는 불안감이 살짝 있었는데 이제 말 안해줘도 다 안다. 어디로 갈지. 코스가 몇 개 있는데 중간쯤 가다보면 아 얘네가 어디로 가는구나, 하는게 감이 딱 온다. 오늘은 온건한(?) 코스를 선택했는데, 시청에서 남대문, 명동, 종로, 광화문으로 가서 다시 시청으로. 가는 행렬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길어졌다. 처음엔 한쪽 도로만 점거하고 행진했는데, 나중에는 사람이 많아져서 한 차선을 더 점거하고, 급기야는 8차선을 다 점거해버렸다. 남대문, 명동을 지나면서 행진에 참여하는 동네시민(?)들이 늘어나서 그런 듯하다. 역시나 오늘도 아줌마 아저씨들, 밀려있는 차 안에 있는 아가씨들, 학생들이 호응을 해줬다.  

  돌아돌아 도착한 광화문에는 꽤 많은 인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 있던 사람들은 아마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뭐야 이게 다야? 하지만 우리가 도착하고 함성은 커졌다. 애초 시청으로 오지 않고 광화문에 모인 시민들과 시청에서 광화문으로 행진한 시민들이 모여 규모가 커졌고, 그들은 다시 시청으로 행진했다. 일부는 광화문에 남고. 명박산성이 없어지고 헌차를 어디로 보냈는지 새 닭장차를 가져왔다. 우리의 그래피티와 예술행위가 되어있지 않은 민둥이 닭장차가 서 있었다. 달라진건 앞에 전경이 아닌 경찰들이 라인을 그리며 닭장차 앞에 서있었다는 것. -_- 뭐니. 그러니까 얘네 세워서 우리보고 닭장차는 건드리지말라고? 닭장차 바리케이트는 뒤에있는 전경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면, 앞에 서 있는 경찰 몇명은 닭장차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였던 셈. 관심없다. 우리는 시청으로.  

  그리고 시청에 다다르고,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는 선언했다. 20일까지 시한을 줬다고 정부에. 그날까지 국민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 그 다음은... 침묵.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다 안다. 그 다음이 어떨지는. 87년의 재현. 오늘 집회는 아주 온건하고 밍숭맹숭하게 끝났다. 그렇게. 행진 중에 노래에 맞춰 춤을 추며 걷는 일부 어린 20대들이 있었는데, 흐흐 너무 귀엽더라. 무슨 고무줄 놀이보는 것 같았다. 어떤 할아버지는 머리에 밀짚모자 쓰고 양손에 촛불 들고 몸을 흔드시고. 축제다. 축제가 계속 이어진다. 5월부터 시작된 축제는 끝날줄을 모른다. 왜. 축제의 주인공이 아직 자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축제의 목적이 달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그랬다지. 이회창과의 만찬에서. 쇠고기를 안 내주면 자동차를 내줘야 할지 모른다고. 장난하니. 우리가 요구하는 재협상은 우리가 손해보지 않는 재협상이다. 그따위로 해서 재협상 한다해도 국민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지금 이 분노가 단지 쇠고기 때문이라 생각한다면, 얘는 가는 귀를 먹은게 틀림없다. 쇠고기는 5월 초에 나왔던 얘기고, 지금 우리는 그밖의 온갖 것들을 다 말하고 있다. 니가 해결해야 할 건 쇠고기는 기본이고, 다른 민영화 문제나 교육 문제, 대운하 문제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그거 다 해결해주지 않으면 너는 그냥 -_- 에혀. 87년에 니가 있던 위치에 우리가 있다. 그 다음이 어땠는지는 니가 더 잘 알게다. 알면 처신을 똑바로 해야 할게다. 지금 이게 장난으로 보이지 않는다면. 누가 심심하다고 일요일날 데이트도 못하고 - 여자친구가 없잖아 - 시청에 가니. 피곤하게 장거리 행진하고. 내가 심심해서 이러는걸로 보이니. 

  더 자주 가서 머릿수 채워야겠다. 지치면 안된다. 지쳐서 못나오면 안된다. 체력관리 하고, 일상생활에 지장이 가지 않는 선에서 잘 조절해서 꾸준히 지속적으로 자주 나와줘야 한다. 열번 채웠는데 머 서비스 상품 같은 것도 안줘서 스무번 채울란다. 열번째 안주고 스무번째엔 더 큰 뭔가를 주겠지. -_- 왜 자장면집도 그러잖아. 열번 채우면 잡채, 스무번 채우면 탕수육, 서른번 채우면 뭐주지? 팔보채인가. 하튼, 상품이 점점 커지잖아. 열번째 아무것도 안줬으니까 스무번 채우러 간다. 암 것도 안주기만 해봐라. 아 안줘도 돼. 안줘도 되는데 대신 니가 내려오면 돼. 그게 제일 큰 상품이야 나에겐. 에혀 스무번을 언제 채우냐. 스무번 채우기 전에 알아서 니가 잘 알아서 수습해라. 엉아가 곧 또 찾아가마. (아무래도 나 요새 투잡하는 기분이야. 퇴근하면 밀린 숙제하랴, 시청나가랴, 바쁘다 바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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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단 2008-06-16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생했어요.ㅠㅠ

마늘빵 2008-06-16 00:34   좋아요 0 | URL
:)

순오기 2008-06-16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휴~ 우리 아프님 투잡 빨리 접을 수 있게 돼야 할텐데...
담양 대나무 숲에 철학자가 서 있던데, 꼭 아프님 같았어요.^^

마늘빵 2008-06-16 08:54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돈도 안되는 투잡. -_- 저는 그냥 철학애호가 정도랄까요. 큭큭. 진짜 철학자는 발마스님이죠. 감사해요.

글샘 2008-06-16 0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7년엔 조선일보나 이런 건 건드릴 수도 없었는데, 올해는 조선일보 건드리고, 고봉순도 지켜주고... 대운하 삽도 집어 치우고(요즘 물류대란때문에 저색긔는 또 대운하 삽질하지고 지롤거릴지도 모르지만 국민적 정서로 이미 물건너 간 듯), 의보 민영화도 날려 버리는... 정말 뜨거운 촛불입니다. 고생하셨어요.
부산은 뭐, 좀 조용하긴 한데, 화욜의 딴날당 피자 시식회에 많이 가봐야 겠습니당.

마늘빵 2008-06-16 08:55   좋아요 0 | URL
고봉순은 머에요? 사람 이름이에요? ^^ 너무 모르는건가. 피자 시식회 큭큭큭큭. 강준만의 조선일보 폐간 운동이 이제야 빛을 발하네요. ^^

글샘 2008-06-16 11:32   좋아요 0 | URL
마봉춘과 고봉순... ㅋㅋ
MBC KBS

무스탕 2008-06-16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깝게 계시면 점심시간에 만나서 어깨라도 주물주물 주물러 드리고 싶네요.
(제가 체격보다 손아귀심이 셔서 손이 맵거든요 ^^)

마늘빵 2008-06-16 08:55   좋아요 0 | URL
^^ 이힛. 이런 댓글 만으로도 힘이 납니다.

건조기후 2008-06-16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BC가 마봉춘인 것처럼 KBS도 애칭이 붙었지요. 고봉순^^

마늘빵 2008-06-16 11:06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전 사실 마봉춘이 그런 의미인지도 몰랐어요. -_-a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 병역거부자 30인의 평화를 위한 선택
전쟁없는세상.한홍구.박노자 지음 / 철수와영희 / 2008년 6월
절판


"공산주의자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선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어떤 상황 하에서도 그 선한 마음에 호소해야지 폭력을 쓰면 안된다. 폭력은 하나님과 인간의 신성을 부정하는 것이다."(함석헌)-20쪽

각종 군사훈련은 직접적인 살상행위는 아닐지언정 살심을 유발하는 행위임에는 분명했습니다. 제가 진정 두려웠던 것은 급박한 상황에서 우발적으로 발현되는 폭력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그런 위기 상황에서 직간접적 폭력 행위가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유발되도록 쉴새없이 주입받고 훈련받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오태양)-44쪽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을 창살 아래 매어둔다고 해서 지금껏 지켜온 그들의 신념이 바뀌고, 삶의 방식이 변화될 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류 역사의 오랜 전통만 보더라도 인간의 양심과 종교적 신념은 사회적 격려와 강제적 교화를 통해서는 결코 '교도'될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오히려 이들은 고난받고 상처입은 이웃들의 삶을 함께 나누고 동참함으로써, 사회적 구성원으로서 책임감과 인생의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병역거부자들의 삶이 과거보다 더욱 성숙해진다면 그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교도'가 아닐런지요. (오태양)-49-50쪽

아무리 설명을 하고 또 해도 난감해하는 표정으로 "그래서 정말 당신이 병역거부를 결심하게 된 동기는 무엇이냐, 어떤 충격적인 경험이라도 했느냐?"라고 되풀이해서 묻는 사람들에게 그다지 명쾌한 답을 주지 못했던 적이 몇 번 있다. 사실이 그랬다. 마치 신내림을 받듯이 결심을 한 게 아니었다. 더더구나 대단한 결심을 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다만, '앎이 곧 덕'이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은 틀렸지만 적어도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행동할 수 있다'고만 생각했을 뿐이다. 이론과 실천이 항상 일치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게 나에겐 언제나 당위처럼 느껴졌다. 내게 만약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다면 질문을 던진 사람들에게 내면 깊숙이 들어가면서 나타나는 각양각색의 경험과 지식의 퇴적층을 보여줌으로써 어떤 공감대를 불러 일으킬 수는 있었을 것이다. (나동혁)-69쪽

저희들이 말하는 '평화주의'는 단순한 평화 애호도 아니고 이기심이나 방관이나 무기력도 아닙니다. 전쟁에 정의는 없습니다. 전쟁의 바탕이 되는 모든 유무형의 폭력에 '비폭력'으로 일관되게 맞서 싸우는 신념이 '평화주의'입니다. 저는 여기서 이상과 꿈을 말하려 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의 사태에 입각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분쟁지역 난민 구제, 평화 재건, 국가 간 빈부격차를 비롯한 불평등 해소, 평화교섭의 중재와 실현, 양심의 자유 인정, 평화교육 확산 등 평화를 위해 해야 할 일이 태산입니다. 그 모든 노력을 멀리하고 하필 우리는 파병을 선택했습니다. 군사력 행사는 가장 최악의 선택입니다. (나동혁)-84쪽

저는 이제 제가 아는 것을,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천하려고 합니다. 솔직히 이렇게 어려운 것인 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견디고 이겨내 보려고 합니다. 실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가게 되더라도 그 길이 낯설고 조금 두렵기도 하지만 옳은 길이라고 생각하기에, 그 길을 묵묵히 가려고 합니다. 아직도 저를 말리셨던 부모님의 눈물이 생각나고, 제가 없느 동안 부모님이 견디실 시간들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가슴이 아픕니다. 그러나 군사훈련을 받는 것은 저의 자아를 모두 파괴하는 일입니다. 평생이 지나도 못 지울 상처를 드리는 자식을 용서해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비록 부모님의 고통을 밟고 가는 길이지만 이 길이 폭력과 전쟁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을 멈출 수 있게 하는 길이라 믿으며 병역을 거부하겠습니다. (임재성)-123쪽

"막가자는 세상은 다소 고단하고 지친 나를 가르친다. 현실의 삶 속으로 더 녹아들라고, 긴 호흡으로 다시 시작하라고, 진정한 진보가 무엇인지 성찰하라고 한다. 네 자신을 돌아보라고 한다."(철도노동자 황하일의 칼럼 <변절에 대하여> 中, 한겨레21 제635호)-158쪽

"당신이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면 세상을 부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나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순응하면 아무 희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더 대담해지고, 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중국 영화감독 지아장커)-159쪽

만연한 군사주의와 폭력 속에 획일적인 방향만이 강요되고, 서로 간의 차이는 차별로 존재하고, 소수자는 배제시켜 나가는 사회에서 우리는 지금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회에서 차이를 다름으로 인정하고, 서로간에 개성을 존중하고 같이 살아가는 법을, 자신과 다른 사람과 자유롭고 평등하게 소통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을 바꾸어내는 것이 그리 어려운 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화를 바꾼다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삶의 양태를 바꾼다는 것이므로, 일상 속의 작은 실천들을 하나씩 모아나가면 어느 새 우리 삶의 문화는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또한 자신의 양심을 지키며 살아가는 일 역시 거창하고 큰 일이 아닐 것입니다.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인 삶 속에서 행해지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저도 제가 지금 위치해 있는 곳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을 하려고 합니다. (조의정민)-182쪽

"현실적으로 '영구평화'가 불가능하다면, 나는 차라리 평화를 기원하기보다 아득한 정망 속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소수자와 약자, 못 가진 자들의 정의가 승리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쪽을 택하겠다."(김재명, <나는 평화를 기원하지 않는다)-187쪽

군대는 국민의 안전을 지키고, 평화를 유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국방의 의무를 지닌다. 그런데 국방의 의무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간단히 병역의무와 동일하게 여겨지고, 총을 들어야만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처럼 평화를 목적으로 삼고 있으면서 동시에 총을 들고 합법적으로 살인기술을 배우는 이율배반적인 곳이 바로 군대다. 총은 국민의 안전을 지키고 평화를 유지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총은 불안을 불러일으키고, 나아가 총을 든 자의 폭력성을 불러일으키거나, 만들어낸다. (중략) 서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한, 손에서 무기를 내려놓지 않는 한, 평화는 찾아오지 않는다. 서로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되는 긴장감과 불안한 정적은 평화가 아니다. 그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일 뿐이다. (안홍렬)-199-200쪽

"최면을 가장 걸기 힘든 두 집단은 노인과 현역으로 군대를 제대한 한국 남성이다. 최면을 걸기 위해서는 감성이 풍부하고 상상력이 좋아야 한다. 한국처럼 아주 후진적인 군대에서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는 동안 상당수의 사람들이 정신의 일부를 거세당하는 것이다."(한 최면 전문가)-226쪽

김대중 대통령은 10월 2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병역의무의 기피는 우리 현실에서 어떤 이유로든 용납될 수 없고 형평에도 맞지 않다"면서 "일부에서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다’는 이른바 양심적 병역기피를 주장하며 다른 방식으로 봉사하겠다고 한다"면서 "그러나 군대 대신 다른 방식의 봉사를 용납하면 누가 군대에 가려고 하겠는가?"라고 비판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비록 "처벌만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라고 발언하는 했으나, 인권 대통령을 표방한 그가 ‘양심적 병역기피’라는 희한한 신조어를 만들어가며 양심적 병역거부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단언한 것은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었다.(한홍구)-322쪽

대체복무제도 문제는 병영문화 개선대책위 차원을 넘어서서 국회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대통령 개인으로서는 수용해야 한다는 확실한 생각을 갖고 있는데, 군이나 국방부, 병무청은 나와는 생각이 다른 것 같다. 국방부 등의 입장이 최종적인 것이라면 내가 어떻게든 설득해보겠지만, 국방부 등이 아직 최종 입장을 내놓은 것은 아닌 것 같아 그냥 대통령 개인의 소신으로 두고 있다. 국회의 논의과정을 지켜보면서 꼭 필요하다면 국방부 등을 설득하겠다. 그러나 당장은 국민적 논의가 중요한 것으로 보이니, 좀 두고 보면서 했으면 좋겠다. 어느 경우에나 국방력 약화나 군 복무자에게 박탈감을 주는 것은 아니었으면 한다. 정치적 결단은 좀 미루면서 군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적절한 타협점을 찾기 위해 같이 노력하도록 하자. (노무현 前 대통령)-3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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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10일. 전국적인 100만 촛불집회가 있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다시피. 10일은 집에 돌아와서 바로 뻗어버리고, 11일은 회사 회식하고 택시타고 집에 오느라 또 못쓰고, 12일 오늘에서야 그 후기를 남겨본다. 촛불집회에 처음 참여한 게 5월 셋째주 정도부터였던거 같은데, 벌써 6월 둘째주다. 10일로서 열번째 촛불집회 참여. 일찌감치 끝내리란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5년 동안 이짓을 해야할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해본다. 그래도 체력 안배하며 끝까지 간다. 이미 각계각층에서 의미있는 많은 이야기들을 내놓고 있어 나까지 거기에 쓸데없이 더 덧붙일 필요는 없어보인다. 그냥 참여할 때마다 보고 느꼈던 바를, 현장의 모습들을, 지금껏 해왔던대로 후기를 통해 풀어놓고자 한다.

  10일날은 참 많은 지인들이 함께 했고, 현장에서 보지 못한 이들은 각각의 다른 무리들과 함께 촛불을 들었다. 서울에서만 적게는 50만명, 많게는 70만명까지 참여했다고 한다. 경찰은 8만명이라고도 하는데, 이번에도 아마 십만 스물 둘, 십만 스물 셋, 세다가 까먹어서 다시 하나, 둘, 셋 셌나보다. 그러지 않고서야 8만이란 숫자가 어떻게 나오니. 심지어 이 어이없는 경찰들의 셈놀이에 과학적 증거를 들이대고자 한 네티즌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어느 건물 옥상에서 찍은 촛불집회 사진에 찍힌 촛불숫자만 세어 25만이라고 했다고도 한다. 사진을 찰칵 하는 순간, 모든 촛불이 찍히는 것도 아니고 - 심지어 서너명 세워다 놓고 사진 찍어도 그 중 한 놈은 눈을 감기 마련인데 - 그렇게만 세서 25만이면 안 찍힌 절반의 촛불과 촛불 안든 다수의 시민과, 사진 범위 내에 있지 않은 시민들까지 하면 70만은 되겠네.

  퇴근하고 바로 도착한 시청역. 지하철을 무정차 통과시킨단 말이있어 을지로입구로 갈까 하다가 가봤는데 시청역에도 서더라. 무정차 통과시키려다 저항이 거세니까 취소했나보다. 10일 이후에도 이에 대한 기사는 아직 보지 못했다. 어찌된 영문인지. 서울역 지하철에서 일하는 후배에게 한번 물어볼까? :) 시청역에 내렸는데 벌써부터 구호가 시작되고, 도로 곳곳에 자리잡고 앉은 시민이 가득했다. 이번에는 무슨 노조, 화물연대인가, 하튼 그런 단체에서도 왔고, 전에 못보던 단체 깃발이 여럿 보였다. 명박산성을 쌓는 바람에 사람들이 더 몰려들었다고 해석하는데, 아마 명박산성 없었어도 이 정도 왔을게다. 명박이를 포함해 주변에서 좀 뻘소리를 하고 다녀야지. 한놈씩 말 한마디 할 때마다 분노지수를 높여주는데, 나로선 아주 고맙다. 분노를 다 붓고 집에 돌아왔다가 다시 분노를 머금고 다음날 또 나가고.

  이른 시간이었지만 시청에서 광화문까지 지인을 만나러 가는 길은 너무나 험난했다. 어휴. 내가 길거리에서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고 빨리 걷기엔 능한데, 이날은 가는 곳마다 다 사람들과 부딪혔다. 아무리 피해가려고 해도, 천천히 가려도 해도, 반대방향으로 나를 향해 걸어오는 사람들을 피하기는 너무 어려웠다. 아니 피할 공간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니 그냥 앞사람 쫄래쫄래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했다. 광화문에서 지인들을 만나 가장 한적해보이는 동아일보 정문 난간으로 갔는데, 그 지척거리로 가기도 너무 힘들더라. 이미 광화문, 시청, 종각일대는 물론이고, 청계천, 종로3가, 명동, 남대문까지 꽉 차서 움직일 수 없는 지경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다들 밥을 먹지 않고 온지라 근처 김밥집으로 겨우겨우 갔는데, 줄은 또 어찌나 긴지. 현대차 노조와 고려대에서 3-40개 가량을 주문하는 바람에 다리에 힘이 빠져버렸다. 한 시간을 기다려 김밥 다섯줄을 샀다. -_ㅠ

  오자마자 우걱우걱 배속에 채워넣고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거리로 나갔다. 김밥 사느라 양희은의 아침이슬 라이브를 듣지 못했다. 옥소리도 보지 못했다. 아니 거기에 있었어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시청 어딘가에는 지승호씨가 공지영, 우석훈과 함께 했고, 시사IN 천막 앞에선 한 시인과 인사했다. 그때 그 장소에는 이름이 많이 알려진 유명인들이 다수 참여했지만, 그들은 모두 한 개인으로서, 한 시민으로서 그 자리에 있었다. 한 개인이 가진 모든 사회적 지위나 학벌, 학력, 재산, 정치성 등을 떠나 모든 시민이 각자 하나의 촛불을 들고 함께 구호를 외쳤다. "이.명.박.은.물.러가.라." 거리 행진이 시작됐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은지라 각지로 흩어진 것 같았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 김밥집 앞에선 아고라 팀을 목격했고, 나의 행렬엔 듣도보도못한 여러 단체들의 깃발이 나부꼈다.

  시위 행렬에 주목을 끄는 이들이 있었는데, 얼굴에 흰 분칠을 하고 검은 옷을 입고 무표정으로 투명우산과 촛불을 든 채, 일렬로 천천히 걷는, 연극인으로 추정되는 이들이었다. 이들은 가는 곳마다 주변에 사람들을 모았고, 사람들은 각자의 카메라에 그들을 담았다. 말도 없고, 구호도 외치지 않고, 그저 조용히 무표정으로 투명우산과 촛불을 들고 천천히 걷는 그들은 도대체 누구였는지 이후에도 기사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구호를 외치지 않아도, 깃발을 들지 않아도, 소속을 밝히지 않아도, 그들이 든 촛불만으로도, 그들의 변화없는 표정에 담긴 시무룩한 어둠을 나는 목격했다. 그것은 이명박에 대한 침묵 시위였다. 침묵 퍼포먼스였다. 시위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늘어날수록 매번 새로운 경험을 한다. 다음날 신문 기사에 실리거나, 뉴스에 나오는 정도는 지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언론에서 다루지 못하는 수많은 새로운 유형의 시위가, 퍼포먼스가 끊임없이 등장한다.

  명박산성을 유네스코 지정 문화재로 추진하자는 시민들을 보고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일단 웃자. 눈을 가리고 귀를 닫은 이명박의 소통(?) 상징물에 맞서는 시민들의 유머는 날이 갈수록 빛을 발한다. 아놔 이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그런 생각들을 하는건지. 조선일보사 앞에 쓰레기를 잔뜩 쌓아두는 시민들, 명박산성에 그래피티를 하는 예술인들, 산성에 오르고자(?) 대형 스티로폼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 정말 대단하다. 처음 스티로폼은 오를 버스가 없는 기자들의 유용한 지지대가 되었으나, 밤이 깊자 본래의 용도대로 명박산성 앞에 놓여졌다고 한다. 오르자 말자 오르자 말자 토론을 반복하다가 결국 대여섯시간이 지난 아침녁에야 산성에 올라 깃발을 나부끼기로 합의를 봤다고. 그 누구하나 자기 주장을 고집하지 않고 토론을 통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이들은, 진정한 아고라 시민들이다.  

  우리 행렬의 끝엔 경복궁이 있었다. 촛불집회 이전엔 이 장소를 한 번도 와본적이 없어 처음엔 여기가 어디여, 했는데, 이제 그 코스가 익숙해서 지인들에게 코스 설명까지 해준다. -_- 경복궁에 왔다는 건, 또다른 명박 산성과 만난다는 의미이고, 사람들이 주저앉아 토론을 하고 북치고 장구치며 노닌다는 것을 뜻한다. 왜. 이미 며칠 그래본 경험이 있었으니까. 그 중 일부는 집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일부는 행렬의 멈춤을 받아들이지 않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도 한다. 나는 이동파였다. 주저앉아 있다가 사람들과 함께 그곳을 떠나 이전의 집회 경험으로 체득한 경복궁 명박산성 옆 샛길로 향했다. 그곳을 통과하면 광화문이 나오므로. 그러나, 이번엔 경찰녀석들이 버스를 죄다 여기다 가져다 박아놔 막혔다. 이 샛길에. 사람들은 닭장차에 피켓을 집어넣고 차 주변에 촛불을 가지런히 둘렀다. 그리고 또다른 샛길을 통해 광화문으로 향했다.

  광화문엔 이미 애초 그 자리에 있었던 시민들이 가득했고, 경복궁에서 막혀버려 그곳으로 집결하는 또다른 무리들이 합류해 규모가 점차 커졌다. 그러나 시간이 이미 열한시. 직장인들은 집에 갈 시간이다. -_- 신데렐라인 나도 열한시반 그곳을 떠났다. 일행을 남겨둔 채. 아마 경찰들은 갑호비상령이라고는 하지만 명박산성 덕분에 편안히 휴식을 취했을 것이다. 듣기로는 서대문 어디 당구장에서는 특수기동대가 당구치다 기자에게 걸려 도망갔다지. 큭큭. 잘 한다. 다음날 어청수는 역시나 이명박에게 바치는 유네스코 유산에 자화자찬을 늘어놓으며 성공적이었다고 말했다지. 다음에 또 써먹겠다고. 응 그래. 써먹어라. 우리가 또 무료로 그래피티 해주마. 큭큭. 흉물사나운 유네스코 문화재 덕분에 세계 곳곳에서 주목받고 사진 찍히고 우리야 좋지. 이렇게 평화적인 시위는 일찍히 본 적이 없다던 외국인들의 동참도 늘고.

  아마도 내일 혹은 일요일 또 촛불 시위를 가게 될 것 같다. 내일은 확실히 말하지 못하겠고, 일요일은 확실하다. 토요일은 회사 간다. -_ㅠ 흙. 난 벌써 삼주째 주말이 없다. 쉬고 싶기도 하다. 그런데 내가 체력 꽉 채워(?) 시청 행렬에 동참할 수 있는 날은 주말이 유일하다. 평일엔 직장에서 힘 다 빼고 - 아니 무슨 막노동하는 건 아니지만 - 참여하느라 금방 지치는데, 주말엔 그래도 짐도, 몸도, 한결 가볍게 참여할 수 있다. 이번 주말도 시청에서 그들과 함께. 명박산성도 한번 더 보러가고. 이번엔 시민들이 어떤 그래피티를 하나 사진도 찍고. 사라졌다 나타나고 사라졌다 나타나는 희귀한 문화재인지라 그때그때 기념사진을 찍어두어야 한다. 다시는 기회가 없으므로. 일요일에도 사람들이 스티로폼을 가지고 올까. 이번엔 포크레인 타고 오는거 아녀? 큭큭. 아니면 이삿짐 사다리차 같은. 오 이거 정말 괜찮네. 이사짐 사다리차 대면 금방 올라가겠다. 이번주 일요일을 또 기대해본다. 어떤 새로운 시위 문화가 등장할지.

p.s. 참. 현재 촛불집회 참여시민들 대부분이 조중동 폐간에 동의할 걸로 생각하는데, 그런 시민들이 GS편의점을 이용하시면 안됩니다요. -_- 우리 시위에 참여할 때도 슈퍼나 빵집, 편의점 등 가려가면서 이용합시다. 어떤 분은 가슴에 조선일보 반대 피켓을 달고 GS편의점에 줄 서 있더이다. 아직 GS가 조중동에 광고한다는 걸 모르고서 그러신거 같은데, 널리 알려서 가지 않도록 합시다. 주요 GS 편의점으로는 시청역 몇번 출구 바로 앞에(광장 부근), 경복궁 역 샛길 무슨 호텔 1층입니다. 여기 이용하지 맙시다. 널리 광고해주세요.

p.s.2 나 10일날 10회 참여 채웠는데, 서비스 같은거 안주나. 10일날 10번째였으니깐 서비스 하나 줘야하고, 원래 열번 가면 뭐 하나 주니까 하나 더 줘야돼. 명박아, 엉아가 니 얼굴도 못봤는데, 서비스도 못 받고 왔다. 다리만 아프게시리. 열번이나 갔는데 대한민국 CEO란 녀석이 뭐 하나 주지도 않고. 명박산성 미니모델이라도 하나 줘야하는거 아녀? 비싼거 주기 싫으면 조립식이라도 주던가. 아니면 뭐 사탄인형이라도. 쳐키인형같은. 큭큭. 나 인형도 좋아하는데. 어릴 때 인형 껴안고 잘 잤는데. 다음에 열한번째 가면 그날 못준거 주길 바래. 그러길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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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80 2008-06-12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사진 속에 . ← 이게 접니다. . ← 이건 아프락사스 님.
이명박때문에 요즘 시차적응 안돼 죽겠어요. 자기는 아침 일찍 일어나고 우리는 아침까지 못자게 하고. 늘 촛불집회의 현장 어딘가에서 아프락사스 님과 함께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늘빵 2008-06-12 23:33   좋아요 0 | URL
엇, 우리 자기 찾는 놀이하는거에요? . ←이건 저에요. 큭큭큭. 이번에 열번 채웠는데 뭐 안주나 몰라요. -_- 명박이가 줘야하는거 아닌가. 열번이나 갔는데. 서비스도 없어. CEO란 사람이.

마노아 2008-06-12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촛불 사진 언제봐도 장관이에요. 경복궁역 2번 출구 방향으로 GS편의점 있어요. 이용하지 말아야지. 아, 그리고 또 '경북궁'이라고 하셨네요^^ㅎㅎㅎ
경복궁[景福宮] 복복자 씁니다. (>_<)

마늘빵 2008-06-12 23:38   좋아요 0 | URL
네네. 어. 나 왜 자꾸 경북궁이라고 하지. -_- 이상하다. 어감이 그게 더 맘에 들었나봐요. 큭큭. 다시 고쳐야겠네. GS편의점 진짜 사람들 뭣도 모르고 너무 많이 갑니다. 그 앞에서 일인시위하고 있으면 영업방해라고 할테고, 제발 쫌! 조중동 폐간시키려면 현장에서부터 본을 보입시다. 널리 알려주세요. 이런거. 지도 찾아다가 올려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