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기 전까지는 교과서 뒤에 있는 저자들이 모든 내용을 다 쓴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교과서를 만들면서 그게 아님을 명확히 '체험'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단행본도 저자의 필력과 내공에 따라 편집자의 개입 여부가 달라진다. 그러나, 교과서는 이게 좀 심하다. 저자가 십여 명이 있어도 이들 중 본인의 단원을 소화할 수 있는 저자는 많지 않다. 이유는 다양하다. 성실하지 않아서, 능력이 없어서, 둘 다 안 돼서 기타 등등. 대개는 인맥으로 필진이 구성되는지라 - 물론 대표 저자가 능력을 감안하고 모셔왔겠지만. 그렇다. 교과서 필자는 대개 대표 저자에 의해 구성된다. - 천차만별이다.  

  교과서 원고를 마무리 해야 하는데 '탐구 활동' 부분을 꾸밀 수 있는 저자가 없었다. 집필 능력이 탁월하신 분이 계시긴 했지만 그 분도 '탐구 활동'을 새롭고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내지는 못하셨다. 그래서, 고민 끝에 한 분을 모셔왔다. 중학교 선생님이시다. 이 분을 모셔와서 절반 이상의 탐구 활동을 새로 만들고, 나머지 절반 이하의 것도 형태를 바꾸거나 하는 식으로 개선했다. 그래서인지 학교 현장에 나갔을 때 탐구 활동에 대한 평가가 좋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이 분은 본인께서 교과서 필자로 들어가는 줄 알고 계셨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최초에 검토자로 모셔왔고, 검토보다 탐구 활동에 대한 의견이 좋아서 탐구 활동을 직접 만드시는 일까지 맡기게 된 것이다. 편집자나 대표 저자가 명확히 말했어야 하는데 잠 못자고 일분 일초가 급한 상황이라 그러지 못했다. 그 분이 탐구 활동을 거의 만들기는 했지만, 대표 저자는 이 분을 검토자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분이 교과서 필자란에 이름이 들어가지 않게 되자 이의를 제기하셨던 것이다. 다른 어떤 방식으로라도 본인의 이름을 표기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항의는 당연했다.  

  개인적으로 탐구 활동이건 뭐건 집필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분은 일년 동안 계속 모여서 회의를 하진 않았다. 급한 시점에 투입되어 탐구 활동만 만드셨다. 그러나 탐구 활동도 엄연히 집필이다. 집필했지만 집필자에 이름이 들어가지 않았다. 관행이다. 그러나, 부당한 관행이다. 이 분은 그 시스템을 모르셨던 게다. 어떻게든 해결을 해야 했다. 그래서, 다른 방식으로 교과서가 아닌 다른 곳에 이름을 표기하기로 했고, 이 분께 현재 교과서 필자란 입력 방식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말씀드리고 죄송하단 인사와 함께 양해를 구하기로 했다. 그 분께 탐구 활동을 모두 맡기자고 주장했던 나로서는 매우 죄송할 따름이다. 그 분은 대안을 받아들이셨고,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됐다.  

  알라딘, 인트잡, 김종호 씨 건을 보면서 이 일이 떠올랐다. 세 차례의 알라딘 표 팀장의 답변을 받았고, 어느 정도 의문은 해소되었다. 나름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알라딘 사의 진정성도 느껴졌다. 최초 문제는, 인트잡과 김종호 씨 사이에서 의사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데 있다고 생각한다. 인트잡의 관행과 근무 방식에 대해서 사전에 제대로 고지되지 않은 듯하다. 잘못된 관행을 개선하려는 의지도 중요하지만, 김종호 씨 개인의 아픔과 상처에 대해 인트잡과 알라딘이 어떻게 대응했는가 하는 문제도 중요하다.  

  탐구 활동을 만든 필자에게 편집자는 사전에 필자가 아닌 집필 보조자 혹은 검토자 자격으로 참여하고 있음을 명확히 알려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고, 그로 인한 갈등을 어떻게든 풀어야 했다. 만약 관행이니 어쩔 수 없어요, 라고 답했다면 그 분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김종호 씨 건도 비슷하다고 본다. 해고되어 화가 났다면 그 감정을 다독이고 풀어주려고 노력했어야 했다.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주는 것은 물론, 그 분의 감정까지도 고려했어야 했다. 내가 주목하는 부분은 여기에 있다. 거창하게 비정규직이나 윤리적 소비까지 말할 필요도 없고 - 물론 사건과 관련하여 '더 생각해볼 문제'로 논의해볼 수 있다 -, 개인의 아픔과 상처에 어떻게 대응했는가 하는 문제다. 인트잡과 알라딘은 그렇게 했는가. 그리고 그 분과 갈등이 해결됐는가. 그렇다면 난 더 이상 이 건에 대해선 할 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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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학
아리스토텔레스 외 지음, 천병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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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고 더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왜냐하면 시는 보편적인 것을 이야기하는 경향이 더 많고 역사는 개별적인 것을 이야기하기 때문"(아리스토텔레스)-13쪽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에 따르면, 시인의 모방은 아무런 통일성도 없는 사건의 복합을 사진사처럼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유기적인 통일을 이루고 있는 사건을 필연적인 인과 관계의 테두리 내에서 재현하는 데, 다시 말해서 하나의 보편적인 진리를 말하는 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은 플라톤이 말하는 단순한 모방자가 아니라 일종의 ‘창작자’인 것이다.-13쪽

비극의 목적은 특정한 쾌감을 산출하는 데 있다(아리스토텔레스)-14쪽

쾌감 그 자체는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순조롭게 전개되는 활동에 자연적으로 수반되는 정신 상태로서 활동의 선악에 따라 그에 수반되는 쾌감으니 선악도 결정된다.-14쪽

우리가 비극에서 얻는 쾌감은 위험 부담을 남에게 전가하고 얻는 경험의 쾌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상생활에서는 우리 자신이나 이웃에 불행과 고통을 주지 않고는 배출될 수 없는 격렬한 감정의 스릴을 비극이라는 안전판 위에서는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것이다. -14-15쪽

비극은 행동의 모방이고 행동은 행동자에 의하여 행해지는 바 행동자는 필연적으로 성격과 사상에 있어 일정한 성질을 가지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이 양자에 의하여 우리는 그들의 행동을 일정한 성질의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의 행동의 원인은 자연히 두 가지인데 사상과 성격이 그것이며 그들의 생활에 있어서의 모든 성공과 실패도 이 두 가지 원인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행동의 모방은 플롯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제6장)-51쪽

비극은 인간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동과 생활과 행복과 불행을 모방한다. 그리고 행복과 불행은 행동 가운데 있으며 비극의 목적도 일종의 행동이지 성질은 아니다. 인간의 성질은 성격에 의해서 결정되지만 행, 불행은 행동에 의하여 결정된다. 그러므로 드라마에 있어서의 행동은 성격을 묘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격이 행동을 위하여 드라마에 포함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건의 결합, 즉 플롯이 비극의 목적이며 목적은 불가능하겠지만 성격 없는 비극은 가능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제6장)-52쪽

플롯도 일정한 길이를 가져야 하는데 그 길이는 쉽게 기억할 수 있는 정도의 것이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제7장)-57쪽

다른 모방 예술에 있어서도 하나의 모방은 한 가지 사물의 모방이듯, 시에 있어서도 스토리는 행동의 모방이므로 하나의 전체적 행동의 모방이어야 하며 사건의 여러 부분은 그 중 한 부분을 다른 데로 옮겨놓거나 빼버리게 되면 전체가 뒤죽박죽이 되게끔 구성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있으나마나 두드러지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은 전체의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제8장)-61쪽

시인의 임무는 실제로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일어날 수 있는 일, 즉 개연성 또는 필연성의 법칙에 따라 가능한 일을 이야기하는 데 있다는 사실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제9장)-62쪽

한 사건이 다른 사건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것과 다른 사건에 ‘이어서’ 일어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제10장)-68쪽

플롯을 구성하고자 함은 비극의 효과를 산출하기 위함이고, 또 비극의 효과를 산출하고자 함은 비극의 궁극 목적인 공포와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위함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제13장)-77쪽

1) 유덕한 자가 행복하다가 불행해지는 것을 보여서는 안 된다.
2) 악한 자가 불행하다가 행복해지는 것을 보여서도 안 된다.
3) 극악한 자가 행복하다가 불행해지는 것을 보여서도 안 된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제13장)-77-78쪽

훌륭한 플롯은 단일한 결말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되며, 일부 사람들이 말하듯이 이중의 결말을 가져서는 안 된다. 주인공의 운명은 불행에서 행복으로 바뀌어서는 안 되고 행복에서 불행으로 불행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그 원인은 비행에 있어서는 안 되고 중대한 과실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주인공은 우리가 앞서 말한 바와 같은 인물이어서는 안 된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제13장)-80쪽

플롯은 눈으로 보지 않고 사건의 경과를 듣기만 해도 그 사건에 전율과 연민의 감정을 느낄 수 있게끔 구성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제14장)-84쪽

성격에 있어서도 사건의 구성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언제나 필연적인 것 혹은 개연적인 것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이러이러한 사람이 이러이러한 것을 말하거나 행할 때 그것은 그의 성격의 필연적 혹은 개연적 결과라야 하며, 두 사건이 이어서 일어날 때는 후자는 전자의 필연적 혹은 개연적 결과라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제15장)-93-94쪽

가능하지만 믿어지지 않는 것보다는 불가능하지만 있음직한 것을 택하는 편이 좋다. 스토리는 있음직하지 않은 사건으로 구성되어서는 안 되며 그와 같은 사건은 되도록 하나도 포함하지 말아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제24장)-144쪽

시인이 자신이 한 말이나 또는 건전한 판단력을 가진 사람의 견해와 모순된 말을 하고 있다고 단정하기에 앞서, 우리는 그가 과연 동일한 사물을 동일한 관계에서 동일한 의미로 말하고 있는지 검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제25장)-156-1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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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09-12-11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는 어려워요...( ㅡ_ㅡ);;
철학은 더 그렇구요.

마늘빵 2009-12-11 22:47   좋아요 0 | URL
음, 여기서 시학은 지금으로 치면 시나리오 정도에 해당돼요. 아리스토텔레스가 그 기초를 마련했죠. ^^ 재밌는거부터 접하면 그렇게 어렵지만도 않아요. 이 책은 어려워요. 아리스토텔레스 부분은 차라리 쉽고, 그 뒤에 룽기누스나 다른 아해들은.

L.SHIN 2009-12-12 22:00   좋아요 0 | URL
에헹~ 그렇구나. 정말이지 과거 사람들은 다재다능한 것 같아요.^^
 
유쾌하고 독한 쇼펜하우어의 철학읽기 - 쇼펜하우어의 재발견
랄프 비너 지음, 최흥주 옮김 / 시아출판사 / 2009년 10월
구판절판


무엇이 좋고 나쁜지는 자신이 결정한다고 착각하는 비평가들이 있다.-12쪽

그러나 철학교수들은 이 진리뿐만 아니라 그 밖의 다른 크고 중요한 진리들, 즉 내가 내 평생의 과업과 직분으로 삼아 그것들을 글로 써서 인류의 영원한 재산이 되도록 하려했던 그 진리들에 대해서도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38쪽

철학을 위해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철학과 관련된 모든 교수직이 폐지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모든 폐단 중 가장 큰 것, 즉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한 조각의 빵만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충돌하는 일이 없어질 것이다. 그들의 권모술수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방해만 되지 결코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철학은 예외적인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즉 오직 매우 특출한 천재들만이 철학의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반면에 범인은 자신의 말을 한마디라도 덧붙이는 순간 철학을 타락시킬 뿐이다. 그 모든 교수들, 정원 외 교수들이 대화에 끼어듦으로써 칸트 이후 철학이 어떤 꼴이 되어 버렸는가?-38-39쪽

나는 뮤즈의 은총, 즉 자신의 시적 재능을 팔아 먹고살려는 사람을 보면 어쩐지 자신의 매력을 팔아 먹고살려는 소녀처럼 느껴진다. -44쪽

교사들은 돈을 벌기 위해 가르치며 ‘지혜’가 아니라 지혜가 있다는 ‘평판과 명성’을 구한다. -70쪽

그러므로 거의 종일 책을 읽으면서 간간이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휴식을 삼는 사람들은 자발적인 사고 능력을 점점 잃어버리게 된다. 이는 항상 말을 타고 다니면 결국은 걷는 법을 잊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아주 많은 학자들이 이 꼴이 되어 있다. 그들은 바보가 될 때까지 읽은 것이다. -75쪽

앞으로 나의 저술을 출판할 때 문장이든, 하나의 단어, 음절, 글자, 구두점에 불과하든, 그것을 조금이라도 의도적으로 변형하는 자는 나의 저주를 받을 것이다.-94쪽

황소는 뿔이 있어 받는 것이 아니라 받고 싶기 때문에 뿔이 있는 것이다. -126쪽

아무도 이해할 수 없도록 쓰는 것처럼 쉬운 일은 없다. 의미심장한 생각을 모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쓰는 것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이다. -174쪽

철학자나 작가가 결혼을 했다면 이미 그것으로 학문과 예술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210쪽

인류 발전의 가장 큰 장애 중 하나는 사람들이 가장 현명하게 말하는 사람들의 말이 아니라 가장 크게 말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는다는 것이다. -240쪽

만일 어떤 신이 이 세계를 만들었다면 나는 그 신이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비탄이 나의 가슴을 찢을 것이기 때문이다. -2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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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6 0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26 09: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9-11-26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계는 비합리적이며 맹목적인 의지"라는
쇼펜하워의 언명에 감복하던 시절이 있었지요..


마늘빵 2009-11-26 17:30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쇼펜하우어의 평소 언행을 담고 있는데, 철학 사상에 깊이 들어가지 않으면서 주변부를 모아놓았습니다. 쇼펜하우어의 개인사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 보면 딱 좋을. ^^ 쇼펜하우어의 철학엔 개인적으로 끌리진 않지만, 삶의 과정들을 살펴보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가 되더라고요.
 
깐깐한 독서본능 - 책 읽기 고수 '파란여우'의 종횡무진 독서기
윤미화 지음 / 21세기북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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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게 배우되 뜻을 독실하게 하여, 절실하게 묻고 가까운 일에서 생각하면 인이 그 가운데 있다."(주희, <근사록>)-9쪽

책이란 순전히 자신의 체제하에서 자신이 지휘하므로 읽는 자의 절대권력에 의해서 서평이 나온다. -10쪽

"모든 책은 빛이고 다만 그 빛의 밝기는 읽는 사람이 발견하는 만큼 밝아진다."-27쪽

"내가 글을 쓴 진짜 이유는 나 자신이 원하기 때문이었다. 글을 써서 주택 융자금도 갚고 아이들을 대학까지 보냈지만 그것은 일종의 덤이었다. 나는 쾌감 때문에 썼다. 글쓰기의 순수한 즐거움 때문에 썼다. 어떤 일이든 즐거워서 한다면 언제까지나 지칠 줄 모르고 할 수 있다."(스티븐 킹, <인생론>)-100쪽

"소설이란 쓰는 사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소설이 원하는 방식으로 흘러간다."(마르케스)-111쪽

가난은 결핍의 문제다. 자본가들도 항상 결핍을 말한다. 그들이 말하는 결핍과 6세 미만 어린이들이 네 명당 한 명꼴로 사망하는 아이티의 결핍은 차원이 다르다. 그들의 결핍은 탐욕을 낳았다. 그런데 가해자의 탐욕론은 종종 운명론으로 대변된다. 헨리 키신저가 말한, 바구니 밑바닥에 처박힌 신세는 언제까지고 바닥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는 배스킷 케이스는 가난 운명론이다. 이 말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직도 잘 써먹고 있는, 가난은 나라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말과 상통한다. 가난을 항변하는 것을 피해의식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사회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축소하면서 자신의 탐욕을 채운다. 수전 손택은 의도적인 무관심을 ‘방치된 폭력’이라고 부른다.-206쪽

그런데 이 책(<나쁜 기업>)을 읽고 심히 화가 나서 인터넷 홈페이지에 서평을 올렸더니 ‘그렇다고 달라지는 게 있겠느냐’는 댓글이 달렸다. 맞는 말이다. 달라지는 건 없다고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이 없으니까 계속 나쁜 기업의 부당한 노동착취를 당연하게 여겨야 하는 것이냐고 나는 반문했다. "스타벅스나 이케아도 기부 같은 것 많이 해요!" 앞에서 내 글에 항변한 독자가 다시 달아준 댓글이다. 그 말도 맞다. 인도네시아에 지사를 둔 스웨덴 가구업체 이케아는 14세 미만의 어린이 노동을 수용함녀서 한편으로는 유니세프에 지속적으로 재정 협력을 한다. 스타벅스는 수익금의 일부를 팔레스타인 어린이를 쓰러뜨리는 이스라엘 폭탄 값으로 보내고 한편으로는 미국 빈민가의 공립학교를 지원한다. 콩고의 탄탈광산에서 15세 미만의 어린이들에게 하루 1달러의 임금을 주는 삼성은 휴대폰 사업으로 번 수익금을 저소득층 탁아소 운영에 기부한다. 유니세프에 지속적인 기부를 하고 숲 가꾸기 비용을 부담하고 저소득층 자녀 장학금 재단을 만드는 기업정신은 훌륭하다. 거의 완벽한 톨레랑스로 보인다. 설마.-216쪽

"사람에게 마음이 없다면 자신을 칭송하는 말이 천하에 가득 퍼져도 원숭이 한 마리가 태어났다 죽은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한다."(<남명집>)-241쪽

"사진이 먼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고통을 우리 눈앞에 가져온다는 걸 알았다고 해서 도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수전 손택)-269쪽

수전 손택은 대중의 ‘의도적 방관’을 무너뜨리는 일이 우리의 과제라고 말하지만 과자 앞에서 금방 온순해지는 어린아이 같은 대중에게 기대할만한 것이 있을까 싶다. 나는 부화뇌동의 대중을 신뢰하지 않는다. 내가 믿는 것은 소수자의 피 끓는 혁명이다. 그들이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세계를 변화시킨다고 본다. -269-270쪽

"나는 어릴 때부터 성인의 가르침이 담긴 책을 읽었지만 성인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몰랐고, 공자를 존중했지만 공자에게 무슨 존중할만한 것이 있는지 몰랐다. 속담에 이른바 난쟁이가 키 큰 사람들 틈에 끼어 굿거리를 구경하는 것과 같아, 남들이 좋다고 소리치면 그저 따라서 좋다고 소리치는 격이었다. 나이 오십 전까지는 나는 정말 한 마리 개와 같았다.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어대자 나도 따라 짖어댄 것일 뿐, 왜 그렇게 짖어댔는지 까닭을 묻는다면, 그저 벙어리처럼 아무 말 없이 웃을 뿐이었다."(<속분서 권2 성교소인> 중)-290-291쪽

박정희에 대한 또 하나의 날조는 그의 예술가적 감성을 확대한 것이다. 아내의 초상화를 그리고 아내를 위해 시를 짓고 피아노를 치는 로맨티스트 아버지는 아우슈비츠 소장이 가스실에 유대인을 밀어 넣고 집으로 돌아와 자신의 아이들에게 슈베르트 가곡을 피아노로 들려주는 대목을 연상시킨다. 박근혜의 부성 콤플렉스는 독재자로서의 이미지를 자상하고 다정한 아버지와 남편으로 윤색했다. 실제로 다른 독자 서평에서 박근혜의 이런 이미지 조작에 넘어가 인간 박정희와 어린 딸에게 향수와 연민의 시선을 보내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중략) 진실의 의도적인 은폐와 은닉과 봉합의 삼박자 리듬을 탄 박근혜의 자서전은 한마디로 역사의 날조를 기술하는 것에 불과하다. 환상조작이란 얼마나 쉬우며 그것에 속아 넘어가기는 또 얼마나 쉽던가!-300-301쪽

"은퇴 이후로 독서가 나를 위로한다. 독서는 괴롭기 짝이 없는 게으름의 짓누름으로부터 나를 해방시켜준다. 그리고 언제라도 지루한 사람들로부터 나를 지켜준다. 고통이 엄습할 때도 그 정도가 매우 심하거나 극단적이지만 않다면 그 날카로운 예봉을 무디게 만든다. 침울한 생각으로부터 해방되려면 그냥 책에 기대기만 하면 된다."(<드 보통의 삶의 철학 산책> 중)-388쪽

"책 문화에서 하수구 구실을 하는 곳이 헌책방입니다. 책이라는 흐름에서 맨 위에 윗물인 새 책방이 있다면 흘러흘러 맨 아래에는 아랫물인 헌책방이 있어요. 이곳에서 바다라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책을 갈무리합니다. 그리고 값어치를 매기며 새롭게 빛을 보도록 이끌어요. 빛을 본 어떤 책은 새 책으로 되살아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하늘에서 내린 빗물이 말라서 하늘로 올라가 다시 빗물로 내려오는 흐름고리라고도 말할 수 있는 책이 헌책방 책입니다."(최종규, <모든 책은 헌책이다>)-436쪽

꿈과 현실의 혼합이 개인의 고통과 사회의 부조리를 해결하지는 못하지만 최소한 고통의 파장을 줄일 수는 있다. 게다가 그들은 아직 젊다. 그러니 앞으로 지갑 걱정 없이 마음껏 로브스터를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부자가 될 수도 있다. 부자가 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돈을 밝히는 일은 속물이다. 그런데 속물이 되지 않고는 부자가 되기도 어렵다. 돈을 속물이라고 비웃지만 돈은 좋은 것이다. 속물로 전락되지만 않는다면.
-4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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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6 1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26 1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삼국지 10 - 천하대세는 하나로
나관중 지음, 황석영 옮김, 왕훙시 그림 / 창비 / 2003년 7월
구판절판


(촉이 위에 점령당한 뒤)
사마소가 촉나라 사람에게 명해 촉의 음악을 들려주니, 옛 촉의 관리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는데 후주(유비의 아들 유선)는 태연히 즐거워하며 웃음을 지었다. 술이 얼큰히 취하자 사마소가 가충에게 말한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무정하다니! 비록 제갈공명이 살았다 해도 저런 자는 온전히 보좌할 수 없었을 터인데, 하물며 강유가 어찌 도울 수 있었겠소?"
그러고 나서 후주에게 묻는다.
"서촉이 생각나지 않으시는가?"
후주가 답한다.
"이렇게 즐거우니 촉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중략)
(후주는 극정의 조언을 듣는다.)
후주는 명심하고 자리롤 돌아왔다. 술이 좀더 취한 뒤에 사마소가 또 물었다.
"촉이 그립지 않으신가?"
후주는 극정의 말대로 대답하고 울려고 하는데 도무지 눈물이 나오지 않자 눈믈 감아버렸다. 사마소가 말한다.
"어째서 극정의 말과 똑같소?"
후주는 눈을 뜨고 놀라 쳐다보더니 말한다.
"참으로 그러합니다."
사마소와 좌우 사람들 모두 웃었다. 사마소는 후주의 고지식함을 보고는 그로부터 다시 의심하지 않았다. -204-2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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