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기 전까지는 교과서 뒤에 있는 저자들이 모든 내용을 다 쓴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교과서를 만들면서 그게 아님을 명확히 '체험'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단행본도 저자의 필력과 내공에 따라 편집자의 개입 여부가 달라진다. 그러나, 교과서는 이게 좀 심하다. 저자가 십여 명이 있어도 이들 중 본인의 단원을 소화할 수 있는 저자는 많지 않다. 이유는 다양하다. 성실하지 않아서, 능력이 없어서, 둘 다 안 돼서 기타 등등. 대개는 인맥으로 필진이 구성되는지라 - 물론 대표 저자가 능력을 감안하고 모셔왔겠지만. 그렇다. 교과서 필자는 대개 대표 저자에 의해 구성된다. - 천차만별이다.  

  교과서 원고를 마무리 해야 하는데 '탐구 활동' 부분을 꾸밀 수 있는 저자가 없었다. 집필 능력이 탁월하신 분이 계시긴 했지만 그 분도 '탐구 활동'을 새롭고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내지는 못하셨다. 그래서, 고민 끝에 한 분을 모셔왔다. 중학교 선생님이시다. 이 분을 모셔와서 절반 이상의 탐구 활동을 새로 만들고, 나머지 절반 이하의 것도 형태를 바꾸거나 하는 식으로 개선했다. 그래서인지 학교 현장에 나갔을 때 탐구 활동에 대한 평가가 좋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이 분은 본인께서 교과서 필자로 들어가는 줄 알고 계셨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최초에 검토자로 모셔왔고, 검토보다 탐구 활동에 대한 의견이 좋아서 탐구 활동을 직접 만드시는 일까지 맡기게 된 것이다. 편집자나 대표 저자가 명확히 말했어야 하는데 잠 못자고 일분 일초가 급한 상황이라 그러지 못했다. 그 분이 탐구 활동을 거의 만들기는 했지만, 대표 저자는 이 분을 검토자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분이 교과서 필자란에 이름이 들어가지 않게 되자 이의를 제기하셨던 것이다. 다른 어떤 방식으로라도 본인의 이름을 표기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항의는 당연했다.  

  개인적으로 탐구 활동이건 뭐건 집필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분은 일년 동안 계속 모여서 회의를 하진 않았다. 급한 시점에 투입되어 탐구 활동만 만드셨다. 그러나 탐구 활동도 엄연히 집필이다. 집필했지만 집필자에 이름이 들어가지 않았다. 관행이다. 그러나, 부당한 관행이다. 이 분은 그 시스템을 모르셨던 게다. 어떻게든 해결을 해야 했다. 그래서, 다른 방식으로 교과서가 아닌 다른 곳에 이름을 표기하기로 했고, 이 분께 현재 교과서 필자란 입력 방식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말씀드리고 죄송하단 인사와 함께 양해를 구하기로 했다. 그 분께 탐구 활동을 모두 맡기자고 주장했던 나로서는 매우 죄송할 따름이다. 그 분은 대안을 받아들이셨고,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됐다.  

  알라딘, 인트잡, 김종호 씨 건을 보면서 이 일이 떠올랐다. 세 차례의 알라딘 표 팀장의 답변을 받았고, 어느 정도 의문은 해소되었다. 나름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알라딘 사의 진정성도 느껴졌다. 최초 문제는, 인트잡과 김종호 씨 사이에서 의사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데 있다고 생각한다. 인트잡의 관행과 근무 방식에 대해서 사전에 제대로 고지되지 않은 듯하다. 잘못된 관행을 개선하려는 의지도 중요하지만, 김종호 씨 개인의 아픔과 상처에 대해 인트잡과 알라딘이 어떻게 대응했는가 하는 문제도 중요하다.  

  탐구 활동을 만든 필자에게 편집자는 사전에 필자가 아닌 집필 보조자 혹은 검토자 자격으로 참여하고 있음을 명확히 알려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고, 그로 인한 갈등을 어떻게든 풀어야 했다. 만약 관행이니 어쩔 수 없어요, 라고 답했다면 그 분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김종호 씨 건도 비슷하다고 본다. 해고되어 화가 났다면 그 감정을 다독이고 풀어주려고 노력했어야 했다.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주는 것은 물론, 그 분의 감정까지도 고려했어야 했다. 내가 주목하는 부분은 여기에 있다. 거창하게 비정규직이나 윤리적 소비까지 말할 필요도 없고 - 물론 사건과 관련하여 '더 생각해볼 문제'로 논의해볼 수 있다 -, 개인의 아픔과 상처에 어떻게 대응했는가 하는 문제다. 인트잡과 알라딘은 그렇게 했는가. 그리고 그 분과 갈등이 해결됐는가. 그렇다면 난 더 이상 이 건에 대해선 할 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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