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학교 서열화 현상. 대학을 가기 전까지는 서열화에 대해서 무심했다. 대학에 입학하고도 그저 해방감을 만끽하며 즐거운 일년을 보냈다. 대학 2학년, 3학년, 4학년 그리고 졸업. 졸업을 앞두고, 졸업을 하고서 대학서열화를 몸소 체험하고 있다. 누가 너는 어떠니, 쟤는 어떠니 이런식으로 말한건 아니지만 사실 취직을 하는데 있어서 대학 네임밸류는 대단히 크게 작용한다.

정부에서는 서열화를 없애기 위해 학력란 폐지를 하네 어쩌네 말하지만 사실 서열화는 없어진 것처럼 보일뿐 없어지지 않았다. 조금도 죽지 않았다.

서열화가 나쁜가? 그래 이름있는 명문대학 간 사람들이 아무래도 서열상 그 밑에 있는 대학에 간 사람들보다는 꾸준히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 생각된다. 물론 가정형편에 따라 얼마전 신문에 났듯 손자 대학보내라고 과외비로 천만원씩 던져주는 집들도 허다할 것이다. 상류층에서는. 또 그정도까지는 안되더라도 고액과외와 각종 학원비, 유학비를 대가며 교육시키는 집들도 허다할 것이다. 돈없어 사교육 제대로 받지 못한 이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돈있는 집 자식이 공부를 잘한 건 돈이 뒷받침 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꾸준히 공부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서열화는 정당한가? 또 그렇지는 않다. 대학의 서열화는 오로지 수능점수에 의한 것이다. 얘는 수능 몇점이고, 쟤는 수능 몇점이니까 쟤가 얘보다 10문제 더 맞았어. 이런 기준으로 서열화를 하는 것이다. 웃긴 이야기다. 몇문제 더 맞고 덜 맞고로 대학졸업후까지 그 사람의 가치가 평가된다는 것은.

한가지 재밌는 사실은 우리나라에서 쳐주는 학벌은 학부시절의 학벌이라는 것이다. 대학원을 소위 이름있는 명문대학 나온다해도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 가령 예를 들어서 이름없는 지방 사립대 학부를 나온 사람이 서울대 대학원을 들어간다고 해도 서울대  학부를 나온 사람보다 서열면에서는 떨어질 것이다.  대학원은 수능이 아니라 영어 혹은 전공시험으로 판정되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수능점수와 영어 혹은 전공시험점수의 차이는 무엇인가? 모르겠다. 왜 수능점수를 더 중요시하고 전공시험점수와 영어시험성적을 그보다 덜 중요시하는지는. 하긴 영어도 안되는 나는 이름있는 명문대 대학원을 다니고는 있지만 평가기준으로 따진다면  수능점수도 떨어지고 영어도 안되는 하지만 전공시험은 아는 것도 없이 운좋게 합격한 케이스가 된다. 최악의 케이스.

단한번의(어떤이들에겐 단한번이 아니라 재수, 삼수를 통해 단 두번, 단 세번이 될 수도 있겠다) 수능점수가 평생을 따라가는 이런 꼴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온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또 해봤다.

만약 각 대학들이 한 가지 전공면에서는 각자 최고의 학과를 지니고 있다면, 그렇다면 학교네임밸류의 서열화가 아니라 과별로 분류된 학교네임밸류가 형성된다면, 어떨까 하고 말이다. 이것도 서열화는 서열화다. 단지 통합적인 대학 학부별 네임밸류가 아니라 과별 네임밸류라는 점에서 다르다. 흠... 생각끝에 이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렇더라도 서열화는 서열화이기 때문이다.

대학원에 있어서 서열화는 학부의 서열화보다 느슨하다. 그런데 좋은 대학원을 나왔는데 왜 나를 대접해주지 않느냐는 외침은 바람직하지 않다. 좋은 대학을 나오고도, 좋은 대학원을 나오고도 '특별히' 대접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나는 학부는 서울 중위권(수능점수에 따라-얘도 웃긴 기준이다. 수능점수에 따라 서울 상위권, 서울 중위권, 서울 하위권, 경기권, 지방권 이런식으로 분류하는건 참으로 웃기다)을 나오고 대학원을 명문대학을 다니고 있다. 그런데 그렇다고 내가 특별하게 대접받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물론 마음 깊은 곳에 그런 심정이 전혀 없다고는 말 못한다. 그럼 다른 대학원보다 100만원이상을 더 주고 이 대학원을 다니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명문 대학원 나왔다고 특출나게 대접받지 않는 사회가 오기를 소원한다. 물론 물론 대학원은 별로 인정해주지도 않지만 말이다.

학부에 있어서 서열화의 엄격함이 대학원에 있어서 서열화의 느슨함으로 옮겨갈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점차 느슨하게 느슨하게 이동하면서 차이를 없애는 것이 바람직하다.

추가로 이런 생각도 해본다. 프랑스에서 바칼로레아 시험을 여러번에 나눠보는 걸로 정부방침이 바뀌었다(?)고 한다. 그런데 프랑스 고교생들이 안된다며 길거리로 나섰다. 프랑스 고교생들의 정책에 대한 이해와 참여, 행동력은 높이 살 만한데 나는 이게 더 좋다고 본다. 프랑스 정부의 편이라는 이야기다. 내가 간과한 사실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험을 나눠서보면 단박에 결정되는 사태를 방지할 수 있지 않은가. 또 학생 개인도 꾸준히 공부할 수 있지 않은가. 어떤 프랑스 고교생은 돈없는 고학생들은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시험을 준비해야하기 때문에 시험을 여러번 보면 돈벌 시간이 없다고 한다. 흠... 일리있는 말이기도 하다. 부유층 자녀는 마음놓고 공부하고, 극빈층 자녀는 돈벌며 공부하면 아무래도 여러번 시험을 볼 경우 꾸준하게 공부만 한 아이가 더 좋은 성적을 낼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한번에 결정되는 것보다는 여러번 기회를 주는 것이 더 좋지 않은가 싶다. 여러번의 시험을 전부 반영하지 않고 그중 좋은 성적을 골라서 반영하게 하면 돈없는 고학생들은 한번의 시험만 준비하면 되지 않을까. 평소 돈벌다가 자신이 시험시기를 정해놓고 그때에 맞춰 공부하면... 우리도 그렇게 하면 안되나? 나눠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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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09 2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연우주 2005-03-09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열화에 대해 부정적이시면서도, 대학원을 '명문'이라고 표현하시는 건 어색하네요. ^^ 그리고, 수능 성적이 오래 가는 건, 중고 시절 내내 공부했던 결과이기 때문이겠지요? 소위 sky에 다니는 애들과 많이 놀아봤는데(^^) 역시나 그 친구들 똑똑하긴 하더군요. 전 따라가지 못할 무언가가 있긴 해요. 물론, 서열화에 찬성하는 건 아니지만, 왜 그런 친구들을 더 선호하는지는 조금은 알 것 같아요. 배도 아프지만. ^^;
대학원은 대학에 비해 느슨하기 때문에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아요. 저도 솔직히 교육대학원에 대해서는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거든요. 아프락사스님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요.

연우주 2005-03-09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원론적으로 아프락사스님의 서열화를 없애야 한다는 의견에 찬성해요. 그런데, 학벌 = 취업이 연결되어 있는 한 어려울 것 같아요.

릴케 현상 2005-03-09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득 홍세화님의 따님이 서울대 다닌다는 게 생각나네요

이잘코군 2005-03-09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주님 / 제가 다니는 대학원을 '명문'이라고 표기한 것은 제 의견이 아니고 그냥 일반적으로 그렇게 지칭하기 때문에 붙인 것이랍니다. 전 제가 다니는 대학원을 명문이라고 규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설대, 연대, 고대 애들이 '대체로'똑똑하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들만 '특별히' 똑똑한건 아니라고 봅니다. 단지 똑똑한 애들이 다른대학에 비해 조금 더 많을 뿐이죠. 전 서울대나 고대다니는 애들중에서 생각없고 개념없는 애들 많이 봤답니다. 물론 좋은 애들이 더 많지만. 그런데 우리사회에서는 똑똑이가 70%인 것을 100%로 취급하고, 똑똑이가 30%라도 존재하는 것을 0%로 취급하는 극단화의 논리가 심하다고 봐요. 서열화의 무서움은 거기에 있죠. 다른 대학에도 똑똑이가 있는데 이들을 무시하는거죠. 간판이 아니라는 이유로.


연우주 2005-03-10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똑똑하다는 기준, 참 모호하죠? 때론 말이죠.
쨌든 전반적으로 아프락사스님의 서열화가 없어져야 한다 라는 말에 공감이 가요. 우리 사회의 오랜 모순이잖아요. 다들 문제의식은 가지고 있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대야 할지 잘 모르는거구요. 어려운 문제지요.

이잘코군 2005-03-10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네. 그런면에서 철학자 김상봉의 학벌반대모임은 의미있는 활동이죠. <학벌사회>라는 두꺼운 책을 샀는데 아직 못봤네요. 이걸 보면 그의 나름의 해답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해법은 계속 고민중...

릴케 현상 2005-03-10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들레라는 출판사에서 나오는 류의 책들도 함 보심이^^'학교를 넘어서' 같은 책들은 이제 학교 없는 사회를 제안하고 있더군요.

이잘코군 2005-03-10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감사합니다. ^^; 추천. 저 책 다 보고 나면 봐야겠어요.

2005-03-10 1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릴케 현상 2005-03-10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70%의 똑똑한 명문대생에 대해서 저는 좀 비관하는 편이에요^^ 대부분 겉똑똑이거든요. 이런 사람들과 중요한 일을 하면 낭패보기 쉽죠. 언젠가 아웃사이더가 망하는 거 보면서도 그런 생각 좀 했어요 대한민국에서 젤 똑똑하다는 위인들이 하는 게 저정도라고...(어떤 사람들은 사업은 그 사람들 전공이 아니지 않느냐고 하는데, 그 사람들이 거기서 단순 필자일 뿐이었다면 아웃사이더는 우리가 아는 아웃사이더가 아니었지 싶어요)

이잘코군 2005-03-10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명한 산책님/ 책 주신다면야 감사히 읽겠습니다. ^^; 저도 그들 70% 마저도 의심스럽습니다. 70%라는건 다수를 나타내는 임의의 숫자이긴 하지만요.
 
극단의 형벌 - 사형의 비인간성에 대한 인간적 성찰
스콧 터로 지음, 정영목 옮김 / 교양인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극단의 형벌'은 곧 '사형제'를 의미한다. 사형은 법정에서 부여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형벌이고, 이는 죄인의 죽음을 의미한다. 죄인을 죽이는 형벌 이상의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죄인을 죽일 수 밖에 없는 것은 그가 만기출소 한 뒤에 나와 동일 범죄를 다시 저지르는 상황을 사전에 막기 위함이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와 같이 앞으로 일어날 범죄를 미리 예견하는 시스템이 있으면 좋으련만 우리에겐 그런것은 영화 속에나 볼 수 있는 것일 뿐이다. 또 설령 그런 것이 있다 하더라도, 또 그것이 정확한 예견이라 하더라도, 아직 일어나지 않은 범죄에 대해 형벌을 미리 부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형은 오래전부터 존재해왔고, 지금도 존재한다. 또한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다만 국가별로 사형제를 실시하는 곳이 다수를 차지하느냐, 소수를 차지하느냐 하는 비율이 달라질 뿐이다. 인간 세상에서 사형제가 아주 사라지기를 바라는 것은 그저 희망이지 싶다. 마치 성매매가 사라지기를 바라는 것처럼 말이다. 성매매 특별법을 시행한다 하지만, 그리고 그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되지만, 성매매가 사라졌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좀더 깊숙한 곳으로 숨어들었을 뿐.

 <극단의 형벌>은 스탠퍼드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하버드 법과대학원을 졸업한 뒤 연방검사로 지내고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스텃 터로의 책이다. 그는 이미 문학전공자 답게(?) 탁월한 글빨을 자랑하며 6편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내놓았다고 한다. 변호사에 베스트셀러 소설가에 사형위원회에도 소속되어있다? 대단한 경력과 재능이다. 어느 한 가지만이라도 잘 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라는 걸 실감하고 있는 요즘 그는 다양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거 같다.

 <극단의 형벌>은 그가 속해있는 사형위원회의 성과를 집필한 결과물이다. 저자는 그 혼자지만 내용은 그만의 것은 아니다. 그들 모두의 것을 그가 종합했을 뿐.

 2002년 일리노이 주지사 조지 라이언이 14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사형 위원회의 제안에 따라 무고한 사형수 4명을 석방하고 167명의 사형수를 감형했다. 정말 대단하다. 주지사라는 정치적 입지를 지키기 위해선 미국사회에서 사형제를 옹호하는 것이 훨씬 이득일텐데 그는 정말이지 대단한 일을 벌였다. 지금은 어찌되었는지 궁금하다. 저런 개혁을 단행하고도 정치적으로 현재 살아있을까?

 이 책은 위원회의 구성과 진행, 결과에 대해 순서대로 서술하고 있다. 구체적인 사례들을 들어가면서 사형제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다. 하지만 내가 기대했던 사형제에 대한 담론의 구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좀더 이론적이고 사형제 그 자체에 대한 논의를 기대했는데 이 책은 사례들로 가득하다. 사례가 객관적인 자료로서 기능하기는 하겠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담론이 빠져있어 많이 아쉽다. 물론 책에 대한 기대는 독자인 나만의 것인지라 단지 '사형위원회'의 조직과 진행, 결과만을 다룬 그를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형제에 대해 관심을 좀더 증폭해준 것만으로 이 책에 대해 만족을 표해야겠다.

 추가발언
 책 앞부분에 있는 소크라테스의 죽음, 잔 다르크의 순교, 루이 16세의 처형, 막시밀리언의 죽음 등의 사진과 간단한 코멘는 인상적이었다. 각각의 죽음에 대한 역사 전반적인 지식욕구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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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5-05-03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사형국가들에 관한 도표 같은 통계자료들도 있나요?

이잘코군 2005-05-03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요. 도표나 통계는 없고요. 글쓴이가 말을 하면서 중간중간 수치를 이야기하긴 합니다. 정확한 자료를 원하신다면 이 책은 아닙니다. ^^

릴케 현상 2005-05-03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도서관 가서 확인해 보려고 했는데...쩝 안 가도 되겠군요...도표같은 건 어디서 구하나...
 
극단의 형벌 - 사형의 비인간성에 대한 인간적 성찰
스콧 터로 지음, 정영목 옮김 / 교양인 / 2004년 7월
절판


"우리가 사형논쟁에 깊이 빠져들게 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런 질문들의 본질적인 성격 때문이다. 자신이 사형에 대해 초연한 태도를 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옹호자이든 반대자이든, 또는 그 중간에서 갈등을 겪는 사람이든 모두 이 문제에서 한 나라의 정신을 형성하기 위한 투쟁응ㄹ 보고 있다. 종교적이거나 영적인 확신 때문에 사형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사형에 찬성하는 사람들을 야만인이나 방종한 죄인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사형 지지자들은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이 동정을 과장하는 사람들이거나 위선자라고 생각하며,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살해된다면 분명히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고 믿는다."-67쪽

"사형제도를 지지하는 사람이라도 무고한 사람을 처형하는 일은 당연히 끔찍하게 여길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이런 처형에 대해 말로는 완전히 표현하기 힘든 특별한 공포를 느낀다. 물론 무고한 사람을 평생 감옥에 가두어두는 것도 인권을 능욕하는 무시무시한 짓이다. 그러나 확실한 근거 없는 처형은 분명히 그보다 더 나쁘다. 법원이 종종 간결하게 표현하듯이, "사형은 다르다". 한 가지 이유는 죄수가 살아있기만 한다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할 희망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형수 감옥에 있다가 퍼먼 판결로 목숨을 구했던 사람들 가운데 넷이 결국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우리가 극도의 혐오감을 느끼는 더 큰 이유는 무고한 사람을 처형함으로써 정의가 거꾸로 서고, 법을 문명의 힘이 아니라 야만의 힘으로 만든다는 것이다."-93쪽

"모든 사형 집행은 정의로워야 한다. 만일 무고한 사람이나 그럴 만한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을 처형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도덕적 균형 감각이나 사형이 전하고자 하는 분명한 메시지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훼손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법 제도는 틀림없이 정확해야 한다. 이 제도는 극한의 악이 무엇인지에 대한 섬세하게 조율된 감각에 따라 운영되어야 하며, 그런 악을 저지른 자가 누구인지 오류 없이 밝혀 내야 한다."

-134쪽

" '극한의 악'을 처벌한다는 상징적인 문제를 고려할 때, 재활이나 속죄는 계산의 한 부분이 될 수밖에 없다. 피고가 지배적인 도덕의 요구를 인정하게 되면 그런 가치들을 재확인하기 위해 벌을 줄 필요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일단 그 길로 접어든다 해도, 누가 속죄를 할지, 언제 할지 파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 사형 집행은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 자체를 없애 버린다는 것이다."
-1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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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VS 사람 - 정혜신의 심리평전 2
정혜신 지음 / 개마고원 / 2005년 2월
절판


"아기는 대상을 '좋은사람' 과 '나쁜사람'으로 분리해서 받아들인다. 엄마가 젖을 주고 포근히 안아줄 때는 좋은 사람이고, 욕구를 채워주지 않고 야단을 칠 땐 나쁜 사람이다. 통합되지 않은, 두 사람으로 인식한다. 한 사람 안에 'good' 과 'bad'가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성인이 되어서도 이런 극단적인 증상이 지속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게 바로 '경계선 인격장애'다. 경계선 인격장애를 가진 이들은 특정인에 대해 좋고 싫음의 극단적인 감정을 갖는다. 자신이 인정하는 사람을 거의 신처럼 숭배하다가도 아주 사소한 이유로 같은 사람에 대해 극도의 증오심과 적개심을 드러내며 폄하한다."(책을 펴내면서)-9쪽

"내가 경험했다고 해서 그 문제의 보편성을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동일한 경험의 잣대를 들이댈 수 있는 사안이라도 그때마다 개별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이명박 대 박찬욱, 이명박 편)-29쪽

"과거의 성공을 미래의 가장 위험한 요소로 파악해야 한다"(앨빈토플러)(이명박 대 박찬욱) -31쪽

" '절세미인'의 미모에 대한 끊임없는 결핍감을 "아직도 부족하다"는 겸양으로 보기는 어렵다. 쉼없는 회의와 불안과 자조와 두려움을 거치지 않고 어찌 탄탄한 안정감이 만들어질 수 있으랴만, 거기에도 균형은 필요한 법이다."
(이명박 대 박찬욱, 박찬욱편)-47쪽

"동일한 물리적 상황에서도 '내 현실'과 '네 현실'은 다르게 인식된다."(정몽준 대 이창동)-63쪽

"주관적으로 '나의 현실감각'이란 늘 공정하고 객관적이다. 나의 현실감각과 어긋나는 현실은 이미 현실이 아니다. 무시해도 좋은 마이너리티거나 불가해한 예외적 상화일 뿐이다. 무엇보다 먹거리를 중시하는 사람에게 옷가지에 많은 돈을 들이는 사람의 태도는 정신 나간 '비현실적 행동'으로 보일 것이다."(정몽준 대 이창동)-63쪽

" '감이 없다'는 게 별거 아니다. 다른 현실이란 있을 수 없고 내가 알고 있고 좋아하는 것만 현실이라고 우기다 보면 필연적으로 현실감각을 잃게 된다. 현실감각을 유지하려면 타인의 행위 뒤의 동기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의 행동에 대한 현상적 시각이 필ŸG다ㅏ. 내가 보고 싶은 상황만 보지말고 나와 타인의 전체적 현실을 동시에 인식해야 하는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으니 문제다."(정몽준 대 이창동)-63쪽

"현실감각은 한 개인이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까닭에, 어떤 이의 현실감각을 살펴보는 일은 단순한 스타일의 차원을 넘어 개인적 성향이나 가치관의 문제로 이어진다."(정몽준 대 이창동)-64쪽

"그림자 없는 물체는 '실체'가 아니듯, 완벽한 '객관적' 현실이란 이데아일 뿐이다. 그럼에도 나와 남이 함께 소통하는 장은 그 '현실'이란 마당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도 '현실감각'을 잃지 않으려는 치열한 소통의 노력은 값진 것이다."(정몽준 대 이창동, 이창동편)-83쪽

"영화촬영 현장이란 때때로, 또는 자주 소외의 구조 속에 빠질 때가 많다. 역할이 작을수록 중심에서 멀어진다. 중심에서 멀어진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심지어 지금 어떤 장면을 찍는지도차 알지 못하는 수가 있다. 그래서 그들은 현장의 변두리에서 고개를 파묻은 채 무작정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작은 역할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와 중요성을 스스로 인식하면서 작업에 임할 수 잇는 열린 구조를 만들고 싶었다."(이창동의 말)-89쪽

"내향성/외향성의 분류는 정신분석가 융의 이론에 의한 것이다. 융은 심리학적 유형의 하나로 인간을 '외향형'과 '내향형'으로 구별하였는데, 그들은 주체와 객체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어떤 사람이 행동과 판단을 결정하는 기준이 주로 객체에 의한 것일 때 그의 태도는 외향적이며, 반대로 객체보다도 주체에 의해 결정되면 내향적이라고 한다."(심은하 대 김민기)

"가령 어떤 사람이 미술전람회에 가서 작품을 감상하면서 신문의 호평이나 화가의 지명도에 근거해 특정한 그림을 좋다고 평가를 내린다면 그의 태도는 외향적이다. 객관적 규준에 따라서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평이 좋고 그 화가의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고 해도 자신이 보기에 좋지 않다고 판단한다면 그의 태도는 내향적이다. 그의 판단기준은 주관적 측면이 객관적인 사실보다 앞서 있기 때문이다."-140쪽

"사람에게는 '자아 동조적' 측면과 '자아 비동조적' 측면이 있다. 원래 자아 동조적/자아 비동조적이란 개념은 정신과에서 성격장애와 신경증을 구분할 때 중요한 잣대가 된다. 청결과 반복적 확인, 정리정돈에 집착하는 두 질환인 강박증과 강박적 성격장애를 예로 들어 설명하자면 이렇다. 하루에 수십 번 손을 씻어야 직성이 풀리는 '강박증' 환자는 본인도 괴로워한다. 안 그러고 싶은데 계속해서 그런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 자신의 행동이 힘들고 짜증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아 비동조적'이다. ...... 그러나 '강박적 성격'을 가진 사람은 '자아 동조적'이다. 건강을 위해서라도 청결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며 하루 종일 걸레를 들고 쉴새 없이 닦고 또 닦는 것도 단지 집이 더럽기 때문이라고 말한다."(심은하 대 김민기) -152쪽

"오해가 지속되면 편견이나 잘못된 고정관념이 되어버린다. 편견을 고치려 하지 않고 될 수 있는 대로 편견의 대상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회나 개인은 언제나 불행하다."(심은하 대 김민기)-165쪽

"욕심과 희망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누구에게 피해가 가면 욕심이고 누구에게 피해가 안되면 희망인가. 그냥 생각해볼때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 버려야 할 것이 욕심이라면 불행해졌을 때 가져야 할 게 희망일 것이다. 잠시 욕심을 버린다고 생각하고 희망을 버린 적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건 욕심이 아니라 그냥 정당한 (...) 내 삶의 희망인 것 같았다."(이인화 대 김근태, 20대 어느 젊은이)-169쪽

"역사소설은 그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대보다 그 소설을 쓴 작가가 살고 있는 시대의 배경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황석영 왈)-185쪽

"인간은 원래 과거에 겪은 쓰라린 일보다 행복하고 즐거운 일을 더 잘 회상할 수 있다고 한다. 또 과거의 괴롭고 쓰라렸던 일들이 지금의 행복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믿는다. 거의 모든 사람이 자기는 쓰라린 과거를 딛고 일어섰다고 믿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다."(이인화 대 김근태, 이인화 편)-188쪽

"타인과의 적절한 거리 유지를 위해선 일단 나의 실체가 어디까지인지부터 정확하게 아는 것이 필요하다. 인간에게 개성이 필요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다. 정신분석가 융이 정신치료의 궁극적 목적을 '자기 개별화' 혹은 '자기 개성화'로 정의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융이 말하는 '자기 개성화'란 무의식에 있는 자기 모습을 찾는 것이다."(김수현 대 손석희)-247쪽

"반 박자 앞서야 할 때와 반 박자 물러서야 할 때를 안다는 건 '지금 여기'의 나를 제대로 인식할 때만이 가능한 일이다."(김수현 대 손석희, 손석희 편)-275쪽

"모든 존재가 존재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조각상의 외적 형태를 색깔, 무게, 길이 등으로 말할 수 있으나 그것만으로 작품의 의미를 알 수 없는 것처럼, 사람도 그 외적인 조건만으로 존재성이 있따고 할 수 없다. 현실적으로 아버지이긴 하지만 아버지가 가져야 하는 온전한 존재의 형태, 즉 부성이 없으면 아이에게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다. 존재는 하지만 존재성이 없는 것이다. 존재성이 있는 사람이라야 타인에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인간의 본질은 '존재성'에 있으며, 존재성이란 자신의 존재를 명확히 드러냄으로써 상대의 존재도 그만큼 명백해지게 하는 그런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존재성은 언제나 관계 속에서만 일어난다."(김대중 대 김훈)-285쪽

"기능적 사고에 고착화된 사람에게 나타나는 가장 큰 특징은 '정서적 격리'현상이다.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인식할 때 정서기능은 거의 정지상태에 이르고 사고기능만 비대해지는 현상이다. 이들이 사건이나 상황을 기억하는 방식은 좀 특별하다. 사건이나 생각은 자동적이라고 할 만큼 정확하게 기억되지만 그 사건에 수반된 정서는 거의 휘발되어 기억되지 않는다. 김훈의 글에는 그런 '정서적 격리'현상이 극명하게 드러난다."(김대중 대 김훈, 김훈편)-308쪽

"나는 정의로운 자들의 세상과 작별하였다. 나는 내 당대의 어떠한 가치도 긍정할 수 없었다. 그대들과 나누어 가질 희망이나 믿음이 나에게는 없다. 그러므로 그대들과 나는 영원한 남으로서 서로 복되다. 나는 나 자신의 절박한 오류들과 더불어 혼자서 살 것이다."(김훈, <칼의 노래> 서문)-3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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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VS 사람 - 정혜신의 심리평전 2
정혜신 지음 / 개마고원 / 2005년 2월
평점 :
절판



 

 <사람 VS 사람>은 정혜신의 두번째 작품이다. 그녀는 이미 <남자 VS 남자>라는 책으로 주목을 받았고 책도 꽤 잘 팔렸던 것으로 알고 있다. 아마도 그녀는 자신의 첫 시도가 잘 먹혀들자 이에 힘입어 두번째 작품을 내놓은 듯 하다.
 
 나는 <남자 VS 남자>를 읽지는 않았다. 관심은 가지고 있었지만 그저 읽고싶은 책 목록에 추가만 했을 뿐 정작 선택의 갈림길에 가서는 항상 다른 책이 나의 사랑을 차지했다.

 <남자 VS 남자>에도 그녀가 다룬 인물들은 나의 주 관심인물들이었다. 김영삼, 김어준, 조영남, 강준만, 유시민, 김윤식, 이외수, 마광수, 김종필 등등 그들은 나의 관심인물 리스트의 한켠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그 책은 나의 선택을 받지 못했고 같은 구도를 가지고 등장인물만 싹 바뀐 <사람 VS 사람>은 나의 관심을 받았다. 별 차이는 없을 것이다. 그저 두 책이 나온 시점에서 내가 관심갖게 된 다른 책들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정혜신은 연세대 의대를 나와 정신과 의사를 하고 있는 여성이다. 의사가 이런 책을 썼다면 머리를 갸우뚱하게 되지만 의사 앞에 '정신과'라는 수식어가 붙게 되면 고개를 끄덕끄덕하게 된다. 의사라는 카테고리 안에서도 외과의사, 내과의사, 성형외과, 정형외과, 마취과, 산부인과 등 여러가지 직업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정신과는 다른 과와는 확실히 외따로 떨어진 영역을 점하고 있다. 정신과 의사는 의사이긴 하지만 의사이면서 심리학자  혹은 철학자 쯤으로 생각해도 될 터이다. 마음의 병, 정신의 병이 든 사람들과 상당하고 치료를 유도한다는 면에서 의사지만 그가 다루고 있는 영역은 심리학이나 철학의 영역이 아닐까. 그래서 정혜신이라는 사람이 정신과 의사라는 말에도 나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그런데 이건 확실해 해둬야한다. 그녀는 의사지만-의사중에도 정신과 의사이긴 하지만, 확실히 글발이 대단하다. 내공도 상당하다. 마치 여자 강준만을 보는 듯 하다. 물론 강준만과 같이 적나라한 솔직함과 대담함, 공격성을 띄지는 않지만 엄청난 자료 수집능력과 인물분석은  실로 강준만에 버금간다. 아니 어디서 도대체 이런 자료들을 수집하고 언제 이걸 다 읽어내는지 궁금하다. 의사라는 안정된 직업 때문에 시간적 여유를 가지게 된 것일까. 내공도 대단하고 글발도 대단한 인물이다.

 그녀는 이 책에서 정몽준과 이창동, 이인화와 김근태, 이명박과 박찬욱, 심은하와 김민기, 박근혜와 문성근, 나훈아와 김중배, 김수현과 손석희, 김대중과 김훈을 대립시켜 다루고 있다. 언뜻 두 사람을 붙여놓은 것이 이해되는 부분도 있지만-가령 김대중과 김훈, 박근혜와 문성근처럼-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이명박과 박찬욱, 심은하와 김민기 처럼 말이다. 그러나 각 장으로 들어가 그녀가 풀어놓은 서두를 보기만 하면 왜 두 사람을 붙여놨는지 금방 이해된다.

 나는 대체로 그녀의 인물분석에 동의한다. 각각의 인물들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던 평상시의 이미지와 나름대로의 분석이 그녀의 그것과 대개 일치한다. 하지만 그녀의 그것이 좀더 세밀하고 탁월하다. 나는 그저 두루뭉실한 이미지만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어찌보면 각각의 인물들의 배치와 분석내용은 순전히 그녀의 주관적인 관점이라고 볼 수도 있다. 객관적인 자료들이야 어떻게 짜깁기 하느냐에 따라 가져다 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글 중간중간 조금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분석대상이 된 인물들이 자신의 글을 봤을 때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내용을 쓰고 싶었다고 한다. 이는 아마도 그녀가 대상인물들로부터 비판을 받고 싶지 않기 때문에 사전에 자기검열을 한 것이 아닐까.

 그녀의 심리평전 제 3탄은 또 어떤 인물들을 다루고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다음 책 제목은  '여자 VS 여자'는 아닐까 추측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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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5-03-07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체도 강준만을 연상하게 하더군요

이잘코군 2005-03-08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네 저도 강준만의 흔적을 많이 느꼈습니다. 저자가 그동안 강준만을 모델로 수련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