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역사 21세기
마이클 화이트.젠트리 리 지음, 이순호 옮김 / 책과함께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아 이런 불성실한 독자같으니. 출판사 '책과함께'로부터 이 책을 받은지 어언 몇달이 지났는지 셀 수도 없다 이제. 너무나 미안해서 고개도 못들겠다. 책 읽고 싶다고 함부로 도서신청을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절실히 든다. 제목이 참 끌렸고, 내가 충분히 관심 갖는 분야의 도서이기에 신청을 했는데, 결국 가장 늦게 리뷰를 올린, 가장 불성실한 독자가 되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출판사 여러분. <한권으로 보는 마르크스>는 제 날짜까지 올렸답니다. 꾸벅.

  지금은 21세기 초반. <가상역사 21세기>의 저자 마이클 화이트와 젠트리 리는 불과 21세기가 시작한지 얼마 안된 시점에서 21세기를 마무리짓는 저서를 쓰겠다고 나섰다. 주변 사람들이 뜯어 말릴 것은 당연한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저자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21세기의 역사를 쓰고 있다. 노스트라다무스 처럼 예언이라도 하겠다는 것일까? 아니다. 결코 아니다. 그들은 예언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예언이라는 것은 어떤 믿을 수 없는 힘에 의거해 신내린 인간이 앞으로 언제쯤 지구가 종말할 것이다, 언제쯤 대재앙이 닥칠 것이다 라고 그야말로 말 그대로 '예언'하는 것인데 비해, 두 저자가 하고자 하는 작업은 '예언'이 아닌 '예상'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한참 뒤의 미래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저자들 역시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가상역사 21세기>의 저자는 앞으로 일어날 수많은 일들의 가능성 중 단 하나에 대해서 서술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제목이 'THE' 로 시작하지 않고 'A'로 시작하는 것이다. 단지 많은 가능성 중 하나를 이야기해보고자.  

  이 책은 매우 두껍다. 장장 532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은 모두 미래의 가능한 이야기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아니 도대체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미래에 대해서 무슨 할 말이 이리 많을까? 뭘 근거로 해서 이렇게 방대한 책을 저술할 수 있었을까? 이건 내가 이 책을 읽는 내내 궁금했던 질문 중의 하나이다. 도대체 뭘 근거로 해서!

  <가상역사 21세기>는 지구상의 모든 분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생물학의 혁명, 쾌락, 죽음, 전쟁, 핵, 국제문제, 테러, 세계대국, 지진, 주식, 인구증가, 기아, 외국인, 대륙공동체, 아프리카, 일본, 멕시코, 중국, 네트워크, 오락, 가상세계, 사랑, 예술과 문화, 로봇, 환경, 물, 생태계, 우주 등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분야는 어느 하나만 딱 찝어서 말하기도 어려운 무거운 주제들 뿐이다. 아니 이것들을 도대체 어떻게 다 다룬단 말인가? 그가 모든 분야의 전문가도 아니고 저 많은 주제를 가지고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정말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방대하고 깊은 지식과 자료수집 능력에 찬사를 보냈다. 정말 대단하다. 모든 분야의 '과거의 역사'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지 않는 한 그 분야들의 미래를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얼마나 영양가 있는 책인지를 논하기에 앞서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저자는, 또 이 책은, 대단하다.

  또 하나의 의문. 이 책을 소설로 분류해야 할까, 아니면 인문사회과학 서적, 그 중에서도 역사서로 분류해야 할까? 소설은 허구를 다룬다. 이 책도 허구를 다룬다. 허구를 다루는 모든 책은 소설이다? 아니다. 꼭 그렇지는 않다. 소설은 허구를 다루지만, 허구를 다룬다고 다 소설은 아니다. 소설에는 등장인물과 사건의 요소가 포함되어야 한다. 이 책에는 등장인물이 없다. 물론 중간중간 가상의 인물이 등장하지만 그들은 각각의 주제를 설명하는데 제시되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그럼 역사서인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역사서라는 것은, 지금을 기준으로 하여 시간상으로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서 그 '사실'을 서술해 놓은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사실도 아니고, 과거의 일도 아니다. 그럼 뭐야. 소설도 아니고 역사서도 아니야?

  역사서다. 우리가 흔히 인식하고 있는 고정된 관념으로서의 역사서는 아니다. 분명히. 하지만 이 책은 역사서다. 저자의 주장에 대해 옮긴이가 말하고 있는 부분을 잠깐 살펴보자.

  "과연 그럴까? 역사는 꼭 인류 사회의 지나온 변천 과정만을 더듬어 가야 하는 것일까? 사실만을 다뤄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가상역사 21세기>를 쓴 저자의 주장이다. 과거의 자취를 현재의 관점으로 바라보든 현재의 관점으로 미래의 모습을 예측하든 역사는 다 같은 역사라는 것이다."  (옮긴이의 말 中)

  역사는 꼭 인류의 과거일만을 서술해야하는가? 사실만 다루어야하는가? 아니다. 현재를 기준으로 하여 과거를 살펴보는 것도 역사이지만, 현재를 기준으로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예측해보는 것도 역사다. 흔히 미래를 다루는 학문을 '미래학' 이라고 하지만 더 큰 범주에 있어서 미래학은 역사에 포함된다. 넓은 범주의 의미에서 미래를 다루는 이 책 또한 역사서라고 분류할 수 있겠다.

  저자는 정말 대단한 자료수집능력을 갖추고 있다. 또한 그 많은 지식을 자기화시켜서 씹고 또 씹고 곱씹어서 짜깁기하고 재구성해내어 미래를 바라본다.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정말 내가 21세기를 다 산뒤에 지난 과거를 정리하는 듯한 기분이다. 아니 어쩜 그렇게 세심하게 또 논리적으로 마치 일어났던 일을 머리로 재구성해 바라보듯이 쓸 수가 있단 말인가. 그는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에서 현재로 와서,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그냥 생각'이라고 말하고선, 정말 미래에 발생활 확실한 일들을 책으로 써낸 것일까, 하는 의문도 든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자세히 쓸 수가 있어. 다 말이 돼잖아.

  그가 예상하는 미래의 모습은 밝다. 대개의 소설들이 미래의 암울한 측면들을 바라봤던데 비해, 그가 바라보는 우리의 미래는 생각보다 확실히 밝고 긍정적이다. 정말 그의 말대로만 미래가 진행됐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핵전쟁과 같은 부분은 빼고. 그가 예상하는 미래는 간혹 테러나 핵전쟁과 같은 우울하고 슬픈 사건들도 있지만, 큰 맥락에서 봤을 때 매우 긍정적이다. 밝은 미래를 서술하고 있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도 기분이 좋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이런 분야에 있어서 우리의 미래는 어떨까, 그는 또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궁금했다. 그래서 쉬지 않고 후딱 읽었다. 진작 이렇게 읽었으면 좋았을 것을. 책 두께에 지레 겁먹고 미루고 미루다 여기까지 왔다. 나중엔 자포자기상태로 그냥 놔뒀다가 내내 마음이 찜찜했는데 이제서야 그 찜찜함을 거둔다. 어쨌든 즐겁게 읽었고, 책의 편집과 구성에 대해서도 만족한다. 물론 두꺼운 책에 비해 값싼 책값도 만족.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 세개인 이유는 그저 가능한 미래의 모습을 재미로 읽어본다는 의미를 가질 뿐, 이 책에 대한 대단한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미달 2006-02-01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이렇게 책을 많이 읽으시는데, 운동은 또 언제 하신대요?
부지런하셔라 >o<

이잘코군 2006-02-01 0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V
 
가상역사 21세기
마이클 화이트.젠트리 리 지음, 이순호 옮김 / 책과함께 / 2005년 3월
절판


과연 그럴까? 역사는 꼭 인류 사회의 지나온 변천 과정만을 더듬어 가야 하는 것일까? 사실만을 다뤄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가상역사 21세기>를 쓴 저자의 주장이다. 과거의 자취를 현재의 관점으로 바라보든 현재의 관점으로 미래의 모습을 예측하든 역사는 다 같은 역사라는 것이다.
(옮긴이의 말 中)-53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중그네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탁월한 선택이었다. 2005년의 12월, 인터넷 서점의 할인행사 물품 중 고를만한게 없을까 뒤지던 중에 <공중그네> <인터폴> 셋트를 발견. 아니 두 권을 한권 값에 준다네. 이런 할인행사 때는 왕창 많이 지를 염려도 있지만, 한 두개쯤은 질러주는 센스도 있어야.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시작으로, 보통 씨의 책을 다 찾아 읽다가, 연애소설로 나의 관심이 이동, 연애소설에서 이제 일본소설로 관심이 이동 중이다. 그리하여 최근 일본의 몇몇 작가들의 작품을 하나씩 골라 맛보고 있는 중. <공중그네> 역시 그 와중에 나에게 발탁(?)된 놈이다.  

  오쿠다 히데오라는 작가. 소설가로 데뷔하기 전 기획자, 잡지편집자, 카피라이터, 구성작가 등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비슷한 관련 분야의 다양한 직업 변천사 때문인지 모르지만, 처음부터 소설가로 데뷔한 작가들에게 묻어나오는 정통 소설의 구도를 과감히 깨버린다. 아카데미를 통해 영화를 제대로 배운 감독과 생판 아무 것도 없이 맨땅에 헤딩하기로 영화를 배운 감독과의 차이라고 할까. 지나치게 도식화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에서는 그런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유쾌한 한편의 코믹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 하지만 코믹영화라고 해서 그냥 웃고 떠들고 즐기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숨어있는 하나의 교훈.  

  <공중그네> 는 총 5개의 단편소설로 구성되어있다.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과 사건은 모두 다르다. 하지만 이야기의 구성방식은 같다. 각각의 단편 속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이라부 의사와 마유미 간호사, 두 사람의 환자 처방법이 특이하다.  

  내가 선택한 길이 과연 맞을까 의심이 들 때, 가장 친한 친구와 다퉈놓고 찜찜할 때, 여자친구로부터 시련당했을 때, 나를 보살펴준 부모님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등등의 사소한 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이런 고민들, 누군가의 나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주고 조언을 해줬으면 하는 바램, 딴지걸지말고 그냥 그래 그래 네가 맞아 네가 옳다 라고 이야기해줬으면 하는 바램을 갖게 된다. 내가 이 분야에서 만큼은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나보다 대단한 고수를 만났다. 이 때 느끼는 좌절감. 나를 포함한 누구나 다 느껴봤을 법한 일이다.

  대학교 1학년 때 짧게나마 정식으로 드럼을 배웠고, 이후 독학하며 이런저런 밴드들을 거치고, 프로젝트를 꾸려 공연을 하기도 하면서, 학교 내에서는 나름대로 최고의 드러머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학교 내 여러 밴드들이 공연할 때 보면 아무래도 나보다 더 나은 이를 찾기가 힘들었다. 아 이런 못말릴 거만함. 내가 거만하다는 걸 안다. 사람들도. 그러면서도 그들은 날 인정해줬다. 하지만 언젠가 나보다 나이 많은 다른 밴드의 드러머가 공연하는 것을 보고 헉! 이런, 이란 반응이 자연스럽게 나온 적도. 잘 모르는 사람이지만 그는 방송국의  세션드러머까지 했다고 하니. 아 이런. 그야물로 우울안의 개구리, 정저지와는 이럴 때 하는 말.  

  홍대 앞 라이브 클럽 재머스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공연을 할 때, 정식 인디밴드가 되었다는 자부심. 이제 언더그라운드의 한 축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웅큼의 흙 정도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는 자부심. 하지만 또 클럽에서 마주치게 되는 대단한 실력파의 밴드들. 이 이럴 때 같은 클럽 밴드지만 정말 우울. 이렇게 노력했는데 이거 밖에 안되나. 세상이 고수는 너무나 많다. 내가 학교에서 후배에게 드럼을 가르치며 하던 말이다. 여기서 아무리 잘해봤자 나가면 고수는 엄청나다.   이럴 때 이라부 의사에게 간다면 딱 좋겠는데.

   소설 속 이라부 의사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오랜 공부기간에서 나오는 해박한 의학지식과 권위주의적인 거만하고 뻔뻔한 태도의 의사들이 절대 아니다. 아니 뭐 이런 의사가 다 있어. 오자마다 반말 찍 하더니 처방은 안해주고 자꾸 딴소리만 해. 내가 야구선수라니깐 같이 캣치볼을 하자고 하질 않나. 서커스단이라니깐 자기도 공중그네 해보고 싶다고 정말 서커스장에 와서 매일같이 연습하지를 않나. 도대체가 이해가 안가. 당신 의사 맞아? 돌팔이 아냐? 당연 의심이 갈 수 밖에. 요즘 또 흰 가운입은 돌팔이들이 한 둘이야? 게다가 의사는 그렇다 쳐. 가슴 곡선 다 보이게 노출하고, 핫팬츠 입고 다니는, 껌 짝짝 씹으며 쇼파에 누워 패션잡지나 읽고 있는 저 여자는 뭐야. 간호사 맞아? 아니 무슨 일본 포르노 찍나. 하지만 이라부 의사를 찾아온 환자들은 다음 날 다시 이곳을 방문하게 마련. 무슨 최면술에 걸린 것도 아니고 말야.  

  이라부의 환자 처방법은 특이하다. 그냥 대놓고 비타민 주사를 시도때도 없이 놓지를 않나. 아니 무슨 처방법이 그래. 비타민 제만 주사하면 다 낫는데? 하지만 다 낫는다. 정말 의학적으로 처방한 것은 비타민 주사가 전부인데도. 이라부를 찾아온 환자들의 공통점은 모두 의사소통의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 그들은 각 분야의 최고의 인물들이지만, 불안과 강박증세, 자신감 부족, 결단력 상실의 문제를 안고 있다. 분명히 이분야에서 만큼은 날 따라올 자가 없는데 하찮은 기본기에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고, 타인에게 알려지기를 숨긴다. 누군가에게 나의 문제점을 솔직하게 상담해보고 싶지만 말 할 사람이 없고, 말할 사람이 있다 해도 내가 그런 문제로 고민한다는 자체가 이미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그러니 혼자서 끙끙 앓고 있을 밖에. 이라부는 바로 이 점을 고쳐준다. 일부러 고쳐주려고 노력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그가 환자와 함께 놀면서 환자는 저절로 자신의 문제를 발견하고 깨닫고 인정하고 마음을 열게 된다. 만병의 근원은 마음에 있나니. 마음을 열면 모든 병은 치유된다.

   분명 비정상적이고 황당한 병원이다. 의사나 간호사나 제대로 된 사람이 하나도 없다. 그러다 한번 이곳을 찾은 환자들은 다시 방문하게 마련. 그것은 어쩌면 병원에 대해, 의사에 대해 가지고 있던 기존의 고정관념들이 깨지면서, 그 자체만으로 마음을 열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환자들은 모두 의사소통의 문제를 겪고 있었으므로. 때로는 안놀아주면 울어버리는, 또 장난감 사달라고 조르고 떼쓰는 어린아이 같지만, 그의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이 환자를 완치로 이끈다. 우리가 못된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나도 같이 못된 놈이 되듯이, 착하고 순수한 어린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동심의 세계로 빠져들어 마냥 투명한 유리거울 같은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과 같다. 이라부의 마음이 환자들의 마음을 열게 하고 치유하게 만든 것이다. 이런 의사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살면서 아직까지 이런 비슷한 의사도 결코 보지 못했다. 물론 예전에 비해 권위주의적인 의사가 많이 줄긴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비지니스 차원에서 다른 병원과 경쟁해 이기려는 자들의 컨셉이 아닐까 생각. 

  이 소설 후딱 읽으며 정말 속으로 혼자서 큭큭 거린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한편의 코믹영화를 보고 난 느낌. 이라부를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벌써 마음이 후련해지고 기분이 상쾌해진다. 옮긴이의 말로 마무리를 대신할까 한다.  

 "인간의 삶에는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이 서로 경계를 알 수 없게 버무려져 있다. 그리고 사람마다 가벼움과 무거움의 정도는 다르다. 한마디로 상대적이다. 인간의 삶은 또한 겉과 속이 다르게 되어 있다. 완벽주의자는 있지만 완벽한 사람은 없듯이, 겉으로는 그렇게 보여도 속까지 그런 사람은 없을지도 모른다. 아 역시 상대적이다.

더러는 가벼워 보이던 것, 하찮던 것, 사소한 성격적 결함이 정신적 결함으로 이어지는 수가 있다. 그렇게 되는 계기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대다수의 사람은 그렇지 않닫는 것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 역시 알 수 없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누구나 만들어 쓰고 있는 가면이 어떤 방패 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 이제 당신의 문제를 치유하기 위해 이라부를 찾아가는 길만 남아있도다. 어서 가자 이라부에게.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야클 2006-01-31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뒤에 붙은 말들이 더 재미있어서 추천! ^^

이잘코군 2006-01-31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핫.

토트 2006-01-31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추천하구 가요.

마태우스 2006-02-01 0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아프락사스님 저도 이거 읽고 리뷰 쓰려고 합니다^^ 글구 저를 이라부에 비유해 주셔서 감사!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잘코군 2006-02-01 0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 ^^

하이드 2006-04-13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왜 지금 봤지? ^^;;
 
촘스키 하룻밤의 지식여행 1
존 마허 지음, 한학성 옮김, 주디 그로브스 그림 / 김영사 / 2001년 2월
평점 :
절판


 

 노엄 촘스키.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몰라도 그의 이름을 듣지 못한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나는 그가 언어학자로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어떤 이론을 정립했는지 알지 못한다. 많은 이들이 노암 촘스키를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의 언어학 이론을 알고 있다기보다는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을 까는 놈쯤으로 알고 있을 터. 나 역시 마찬가지다. 촘스키는 기본적으로 언어학자이자 엄청난 저술가이며, 가장 미국을 신랄하게 까는 비판적 지성인이다. 아니 왜 미국인이 자기 조국을 그렇게 까대? 애국심이 투철한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그런 의문이 들 수도 있을 터. 얼마전의 황우석 사건만 하더라도 많은 이들이 황우석의 비리(?)를 조사한 MBC를 테러하지 않았던가. 아 이 바람직한 애국심이여.  

  촘스키가 지은 책은 엄청나다. 다 세어 볼 수도 없다. 또 그가 낸 책의 다수는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했다. 대표적으로 <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 <숙명의 트라이앵글>, <불량국가>, <실패한 교육과 거짓말>,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 등이 있다. 그는 언어학자로서의 저술활동보다는 사회비평가로서, 비판적 지성인으로서의 저술활동을 더 많이 벌여왔고, 현재도 그러하다. 또 언어학자로서 유명하기보다는 지성인으로서 더 유명하다. 되려 그의 언어학 이론은 주류 언어학계의 이론에 속하지는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주류 언어학자가 아니라고 하여 그의 언어학적 업적을 무시할 순 없지만.  

  그의 이름이 유명세를 치루다보니 그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어떤  사람이기에 이토록 유명하고, 이처럼 대단한 활동을 벌이는가, 라는 의문을 갖게 되는 사람이 많아졌다. 김영사의 '하룻밤의 지식여행'에서 촘스키를 다룬 것은 그런 의도이지 않을까 싶다.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인물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려는 의미로서.

   나는 이 책을 산지 매우 오래되었다. 그리고 그때에는 촘스키의 저작이 아닌 촘스키에 대한 책은 거의 없었다. 아마 당시 이 책이 유일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지금은 이 책이 아니더라도 촘스키라는 인물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책이 여럿 있다. 솔직히 이 책을 받아보고 적잖히 실망했다. 촘스키란 인물에 대해서 소개해주기는커녕, 촘스키가 누구에요, 라는 나의 질문에 확실하게 부적절한 대답을 받은 느낌. 나의 질문이 무시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은 촘스키에 대해서, 촘스키의 언어학에 대해서, 촘스키의 지식인으로서의 활동에 대해서 소개해준다. 하지만 턱 없이 부족하고, 어설프게 나열해놓은 그의 언어학적 이론이나 지식인으로서의 활동은 되려 머리 속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솔직히 이 책 정독해서 끝까지 보진 않았다. 왜냐면 배신감을 느껴서. 차라리 그의 저작인 1차 서적을 꼼꼼히 읽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에 관한 나의 궁금증은 거기까지 미치진 않아서 그의 저작을 읽어본적은 한 차례도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 읽어볼 생각.

   만화그림과 사진을 조합해 만들고, 그 옆에 간략한 해설을 덧붙인 이 책은 그 구성이 너무나 조잡하다. 또한 한권에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다루려고 한 듯 하다. 인물에 관한 이야기만 하던지, 아니면 언어학에 대한 이야기만 하던지, 지식으로서의 그의 주장에 대한 이야기만 하던지 해야하는데 - '촘스키'라는 책의 제목대로라면 '인물탐구'에 할애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 그에 관한 모든 것을 다루려다 보니 이것도 저것도 아닌게 되어버린 책이 되었다. 다시는 김영사의 '하룻밤의 지식여행'시리즈를 보고 싶지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모 비룡소 걸작선 13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어둠 속에서 비쳐오는 너의 빛 
  어디서 오는지 나는 모르네.
  바로 곁에 있는 듯, 아스라이 먼 듯 
  언제나 비추건만 
  나는 네 이름을 모르네
  꺼질 듯 꺼질 듯 아련히 빛나는 작은 별아

 - 옛아일랜드 동요에서 -

 

  <모모>는 한편의 동화이고, 한편의 환타지이며, 한편의 모험담이다. 환타지 매니아라면, 미하엘 엔데를 아는 사람이라면 일찌기 이 책을 접했을 테지만, 나는 환타지 매니아도 아니고, 미하엘 엔데를 알고 있던 것도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모>를 접한 방식이 그렇듯,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을 통해서였다. 드라마 삼순이 속에서 다정하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김선아의 모습이 많은 시청자들의 가슴 속에 따뜻하게 와닿았나보다. 더불어 읽어주는 동화가 어떤 책일까 궁금하던 사람들은 이 책을 선뜻 구입해보기까지. 예전에 어떤 드라마에서 '안토니오 그람시'의 책이 나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사람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켜 베스트셀러까진 아니어도 그람시의 책이 좀더 팔렸다고 하지 아마. 한편의 인기드라마는 많은 인기 문화상품을 만들어낸다. 주인공이 하고 있는 핀에서부터, 옷, 가방, 신발, 들고다니는 책까지도.  

  <모모>는 드라마로 인해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링크되었다. 한 인터넷 서점에서 누적된 통계에 의하면, '청소년 주간베스트 2위'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을 정도로. <모모>가 이토록 많이 읽힐 수 있었던 것은, 이 책이 어려운 인문사회과학 서적도 아니고, '초등학교 5학년 이상'이라는 딱지를 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초등학생부터 시작해서 청소년은 물론이요, 대학생, 나이든 아줌마, 아저씨들까지도 다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마치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가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모든 나이대에 걸쳐서 읽혀지듯이 말이다.  

  책 속의 모모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아이이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것은 없다. 나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많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원하는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나의 이야기를 하지 않은 채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며 열심히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모모는 당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싸움판에서도 두 사람이 모모에게 와서 다시 싸우고, 모모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할 때, 모모는 조용히 들어준다. 그러다보면 두 사람은 깨닫는다. 각자 자신들에게 문제가 있었음을.  

  또 <모모>는 시간에 관한 이야기이다. 시간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마을에 회색신사들이 닥치면서 사람들은 싸우고, 시간에 쫓기며 마음의 여유를 잃어간다.  

   "세상에는 아주 중요하지만 너무나 일상적인 비밀이 있다. 모든 사람이 이 비밀에 관여하고, 모든 사람이 그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람들은 대개 이 비밀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비밀은 바로 시간이다. 

  시간을 재기 위해서 달력과 시계가 있지만, 그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사실 누구나 잘 알고 있듯이 한 시간은 한없이 계속되는 영겁과 같을 수도 있고, 한 순간의 찰나와 같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한 시간 동안 우리가 무슨 일을 겪는가에 달려 있다. 시간은 삶이며, 삶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니까." (p77)
 

  시간을 객관적으로 재기 위해, 우리는 어떤 일을 시간에 맞춰하기 위해 시계와 달력을 사용한다. 일초, 이초, 삼초..... 육십초. 어 일분이 갔네. 한시간이 지났군. 하루가 벌써 갔구나. 시계와 달력은 우리에게 시간을 알려준다. 객관적인 시간을. 하지만 그것은 정말 의미가 없다. 지금은 밤 11시 55분이다. 그게 무슨 의미람? 객관적인 시간은 시간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주관적으로 다가간다. 어떤 이에게는 한 시간은 정말 한없는 영겁과 같은 시간일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한 시간은 한 순간의 찰나와 같은 시간일 수도 있다. 그 한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시간은 길수도 짧을수도 있는 것이다. "시간은 삶이며, 삶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니까."  

 "죽은 것으로 목숨을 이어 가기 때문이지. 너도 알다시피 그들은 인간의 일생을 먹고 살아 간단다. 허나 진짜 주인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시간은 말 그대로 죽은 시간이 되는 게야. 모든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시간을 갖고 있거든. 시간은 진짜 주인의 시간일 때만 살아있지."(p208)  

  초등학생과 중학생에게는 조금 어려운 동화가 될지도 모르겠다. 동화와 환타지라는 형식으로 쓰여졌지만, 이 책의 내용은 지극히 철학적이다. 미하엘 엔데는 그런 철학적인 주제를 많은 이들의 마음 속에 다가가기 쉽게 동화와 환타지로 엮어낸 것이다. 얼마전에 그의 또다른 책 <자유의 감옥>을 읽게 되었는데, 이 책에서도 그의 기발한 상상력과 이야기 전개 솜씨가 빛을 발하긴 했지만 좀 어려웠다. <모모>는 그보다 더 쉽고 재미나게 사건 중심으로 쓰여졌고, 그 안에서 '듣는다는 것'에 대해서, 시간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생각해볼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을 때, 동화래, 환타지래, 하면서 에이 별로겠다, 라는 생각으로 읽지 않았다. 그리고 <모모> 열풍이 다 끝난 지금에 와서 미하엘 엔데의 <자유의 감옥>을 먼저 접하고, 그의 또다른 책을 읽어볼 요량으로 읽게 되었지만 생각보다 꽤, 많이 괜찮았던 작품이다. 미하엘 엔데, 그는 타고난 이야기꾼이었고, 이 책은 그의 풍부한 상상력을 다시한번 접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또 <모모>가 다루고 있는 주제, 들음과 시간에 대한 부분도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추.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