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 비룡소 걸작선 13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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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 속에서 비쳐오는 너의 빛 
  어디서 오는지 나는 모르네.
  바로 곁에 있는 듯, 아스라이 먼 듯 
  언제나 비추건만 
  나는 네 이름을 모르네
  꺼질 듯 꺼질 듯 아련히 빛나는 작은 별아

 - 옛아일랜드 동요에서 -

 

  <모모>는 한편의 동화이고, 한편의 환타지이며, 한편의 모험담이다. 환타지 매니아라면, 미하엘 엔데를 아는 사람이라면 일찌기 이 책을 접했을 테지만, 나는 환타지 매니아도 아니고, 미하엘 엔데를 알고 있던 것도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모>를 접한 방식이 그렇듯,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을 통해서였다. 드라마 삼순이 속에서 다정하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김선아의 모습이 많은 시청자들의 가슴 속에 따뜻하게 와닿았나보다. 더불어 읽어주는 동화가 어떤 책일까 궁금하던 사람들은 이 책을 선뜻 구입해보기까지. 예전에 어떤 드라마에서 '안토니오 그람시'의 책이 나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사람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켜 베스트셀러까진 아니어도 그람시의 책이 좀더 팔렸다고 하지 아마. 한편의 인기드라마는 많은 인기 문화상품을 만들어낸다. 주인공이 하고 있는 핀에서부터, 옷, 가방, 신발, 들고다니는 책까지도.  

  <모모>는 드라마로 인해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링크되었다. 한 인터넷 서점에서 누적된 통계에 의하면, '청소년 주간베스트 2위'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을 정도로. <모모>가 이토록 많이 읽힐 수 있었던 것은, 이 책이 어려운 인문사회과학 서적도 아니고, '초등학교 5학년 이상'이라는 딱지를 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초등학생부터 시작해서 청소년은 물론이요, 대학생, 나이든 아줌마, 아저씨들까지도 다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마치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가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모든 나이대에 걸쳐서 읽혀지듯이 말이다.  

  책 속의 모모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아이이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것은 없다. 나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많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원하는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나의 이야기를 하지 않은 채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며 열심히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모모는 당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싸움판에서도 두 사람이 모모에게 와서 다시 싸우고, 모모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할 때, 모모는 조용히 들어준다. 그러다보면 두 사람은 깨닫는다. 각자 자신들에게 문제가 있었음을.  

  또 <모모>는 시간에 관한 이야기이다. 시간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마을에 회색신사들이 닥치면서 사람들은 싸우고, 시간에 쫓기며 마음의 여유를 잃어간다.  

   "세상에는 아주 중요하지만 너무나 일상적인 비밀이 있다. 모든 사람이 이 비밀에 관여하고, 모든 사람이 그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람들은 대개 이 비밀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비밀은 바로 시간이다. 

  시간을 재기 위해서 달력과 시계가 있지만, 그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사실 누구나 잘 알고 있듯이 한 시간은 한없이 계속되는 영겁과 같을 수도 있고, 한 순간의 찰나와 같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한 시간 동안 우리가 무슨 일을 겪는가에 달려 있다. 시간은 삶이며, 삶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니까." (p77)
 

  시간을 객관적으로 재기 위해, 우리는 어떤 일을 시간에 맞춰하기 위해 시계와 달력을 사용한다. 일초, 이초, 삼초..... 육십초. 어 일분이 갔네. 한시간이 지났군. 하루가 벌써 갔구나. 시계와 달력은 우리에게 시간을 알려준다. 객관적인 시간을. 하지만 그것은 정말 의미가 없다. 지금은 밤 11시 55분이다. 그게 무슨 의미람? 객관적인 시간은 시간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주관적으로 다가간다. 어떤 이에게는 한 시간은 정말 한없는 영겁과 같은 시간일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한 시간은 한 순간의 찰나와 같은 시간일 수도 있다. 그 한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시간은 길수도 짧을수도 있는 것이다. "시간은 삶이며, 삶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니까."  

 "죽은 것으로 목숨을 이어 가기 때문이지. 너도 알다시피 그들은 인간의 일생을 먹고 살아 간단다. 허나 진짜 주인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시간은 말 그대로 죽은 시간이 되는 게야. 모든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시간을 갖고 있거든. 시간은 진짜 주인의 시간일 때만 살아있지."(p208)  

  초등학생과 중학생에게는 조금 어려운 동화가 될지도 모르겠다. 동화와 환타지라는 형식으로 쓰여졌지만, 이 책의 내용은 지극히 철학적이다. 미하엘 엔데는 그런 철학적인 주제를 많은 이들의 마음 속에 다가가기 쉽게 동화와 환타지로 엮어낸 것이다. 얼마전에 그의 또다른 책 <자유의 감옥>을 읽게 되었는데, 이 책에서도 그의 기발한 상상력과 이야기 전개 솜씨가 빛을 발하긴 했지만 좀 어려웠다. <모모>는 그보다 더 쉽고 재미나게 사건 중심으로 쓰여졌고, 그 안에서 '듣는다는 것'에 대해서, 시간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생각해볼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을 때, 동화래, 환타지래, 하면서 에이 별로겠다, 라는 생각으로 읽지 않았다. 그리고 <모모> 열풍이 다 끝난 지금에 와서 미하엘 엔데의 <자유의 감옥>을 먼저 접하고, 그의 또다른 책을 읽어볼 요량으로 읽게 되었지만 생각보다 꽤, 많이 괜찮았던 작품이다. 미하엘 엔데, 그는 타고난 이야기꾼이었고, 이 책은 그의 풍부한 상상력을 다시한번 접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또 <모모>가 다루고 있는 주제, 들음과 시간에 대한 부분도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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