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 노자 : 道에 딴지걸기 지식인마을 6
강신주 지음 / 김영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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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과거의 지평(선입견)을 수정, 보완해야 한다는 가다머의 주장을 주체 중심적인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주체는 새롭게 만날 타자에 대해서 근본적인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과거의 성심을 철저하게 폐기해야 한다는 장자의 주장은 타자 중심적인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주체의 연속성은 새롭게 만날 타자에 따라 근본적으로 다시 구성되어야 하기 때문이다.-32쪽

장자에 따르면 몸을 가지고 사는 인간은 항상 어떤 특정한 삶의 문맥에 처해 살아가는 존재다. 이 말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특정한 삶의 문맥에 처해 살아가며, 그 문맥과 소통하는 데 근거하는 구성된 마음을 지닐 수 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완성된 사람이나 평범한 사람이나 모두 성심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마치 때가 낀 거울이나 맑은 거울이나 항상 무언가 비추듯이 말이다. 다만 완성된 사람은 타자와 얽히는 특정한 삶의 문맥에서 구성된 마음을 다른 삶의 문맥에 폭력적으로 적용하지 않고, 다른 삶의 문맥에서도 타자와 소통하기 위한 허심(虛心)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33-35쪽

장자가 문제 삼고 제거하려는 것은 성심 그 자체가 아니었다. 그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마음을 작동시키는 성심을 절대적 표준으로 삼는 사태'를 문제 삼는다. 장자는 고착된 자의식과 무관한 성심은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부정하려는 것은 '특정한 성심을 표준으로 삼는 고착된 자의식'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고착된 자의식과 무관한 성심, 즉 임시적 자의식을 가능하게 하는 성심은 인간의 유한성에 기인하는 자연사적인 사실이기 때문이다. -37쪽

이처럼 장자에게는 두 종류의 자의식이 전제되어 있다. 첫째는 그가 부정적인 것으로 보아 제거하려고 한 것으로서, 과거 의식을 자의식의 기준으로 집착하는 고착된 자의식이다. 둘째는 인간이 사회에서 산다는 피할 수 없는 사실에서 유래하는 임시적 자의식이다. 임시적 자의식은 구체적인 사태마다 새롭게 구성되는 자의식이다. -40쪽

이렇게 우리 삶은 항상 타자와의 무매개적인 소통을 전제로 영위되고, 오직 이런 무매개적인 소통을 통해서만 변화되어 생성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소통을 인식론적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무엇보다 먼저 삶이 이루어지는 실존적 사태로 소통을 이해해야 한다. 타자와 소통함으로써 지금 나 자신으로 만들어지고, 앞으로도 전혀 생각지 못한 타자와 만나고 소통함으로써 전혀 생각지 못한 나로 생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소통의 긍정은 공존과 공생의 긍정과 연결되고, 비움으로 상징되는 깨어남은 이런 본래적 존재 양식으로서의 복귀를 의미한다. -43쪽

'알 수 없다'는 경험 또는 실존 상태는 자신만의 판단을 중지하게 만들고, 타자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강제한다. 스스로 판단할 수 없으니, 이제 타자의 움직임에 따라 자신을 새롭게 조율할 수밖에 없다. 장자는 이것을 인시(因是)'라고 부른다. -57쪽

'저것'과 '이것'이 대립하지 않는 경우를 '도의 지도리(道樞)'라고 부른다. 한번 그 축이 '원의 중앙(環中)'에 서게 되면, 그것은 무한히 소통하게 된다.

'저것(彼)'과 '이것(是)'이 대립하지 않는 것을 기호로 나타내면 '저것=이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저것'과 '이것'의 관계를 장자의 경우 'A=-A'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이 공식은 분명 모순이다. 따라서 'A=-A' 라고 표현하는 상황에서는 모든 판단을 유보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A'라는 것인가, '-A'라는 것인가? 이처럼 장자가 제안하는 '판단중지'의 상태는 기존의 형식 논리로는 이해할 수 없다.
따라서 그것은 언어와 그에 따라 작동하는 사유의 분멸 작용이 불가능해지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형식 논리에 길들여져 있는 사람에게는 이 공간이 인정하기 힘든 불편한 곳이다. 장자는 이런 불편한 '판단중지' 상태에 있을 때만 타자와 소통하는 삶의 공간을 창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59-60쪽

타자와 차이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동일성'을 무너뜨리는 어떤 힘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관조의 대상이나 풍경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삶의 차원에서 사건으로 나에게 닥쳐온다. 내면과 외면이라는 구조 속에서 결코 포착되지 않는 그 무엇이 바로 타자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내면과 외면이라는 동일성의 구조를 무너뜨리는, 예측할 수 없는 압도적인 힘이 타자다. 자신의 아이처럼 귀하게 키운 새끼호랑이가 어느 날 자기 손을 물 수 있다. 그렇게 타자의 타자성은 우리 삶에 지울 수 없는 상처와 흔적을 남긴다. -75-76쪽

진정한 의미의 타자와 차이는 자신의 동일성을 파괴하는 그 무엇을 통해서만 경험할 수 있다. 우리는 타자가 지닌 타자성은 내가 다른 주체로 생성될 수 있게 하는 강제적이고 폭력적인 힘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관조의 풍경이 아닌 타자성을 가진 진정한 의미의 타자는, 어떤 공백이나 의미의 결여로만 나에게 나타나는 그 무엇이다. 내가 어떤 주체로 생성될 것인지 예측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77쪽

노자에 따르면 모든 개체는 고립적이고 자족적인 실체가 아니다. 그들은 모두 타자와 관계를 맺으면서, 더 정확하게 말하면 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가득 차서 아무것도 채울 수 없는 그릇은 이제 더는 그릇일 수 없다. 어떤 사람도 들어갈 수 없이 가득 차 있는 방은 이제 방이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그릇은 다른 것을 담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먼저 비어 있어야 한다. 방은 사람이 들어가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먼저 비어 있어야 한다. -132쪽

재분배는 통치자가 직접 만들어 낸 것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압도적인 폭력을 내세워 남에게서 배앗아온 것이다. 그렇다면 계속되는 재분배의 목적은 단지 안정된 수탈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노자 당시 수탈의 유일한 대상이 농민이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국가가 왜 농민을 위해 관개사업이라든지 토지정리 사업같은 대규모 공적 사업을 시행하였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반면에 현대 자본주의 국가에서 세금을 가장 많이 내는 계층이 자본자이기에, 국가에서 가장 보호해야 할 존재도 역시 자본가일 수 밖에 없다. 국가는 기본적으로 폭력에 따른 수탈과 재분배 기능을 수행하지만, 은혜와 선물이라는 겉모습으로 다가와야 한다. 은행에서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처럼 자애롭게 재분배를 수행해야 한다. 왜냐하면 은행에서 투자금을 거둬들이는 경우, 채무자 스스로 약속을 이행한다는 겉모양이 유지되어야 일이 원활하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177-178쪽

뇌물의 논리와 선물의 논리를 가르는 기준은 사실 대가에 대한 기대 또는 기억 여부에 있다. 내가 타자에게 무엇을 뇌물로 주었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내가 준 그것에 대한 대가를 항상 기대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뇌물을 받은 타자가 뇌물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즉 그 사람이 대가로 나에게 무엇을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었다면, 내가 준 것은 역설적이게도 선물이 되고 만다.
반대로 타자가 내게 무엇을 뇌물로 주었다고 해도 내가 그것이 뇌물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내가 이제 상대에게 무엇을 대가로 주어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렸다면, 상대의 뇌물은 아이너리하게도 나에게는 선물이 된다. -180쪽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엇을 주거나 받을 때 그것을 뇌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뇌물이라고 생각한다면, 연인 관계는 바로 채권, 채무 관계로 변질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모든 사랑하는 사람이 알고 있듯이, 사랑은 채권, 채무 관계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것, 오히려 채권, 채무 관계를 잊어야만 다가오는 것이다. -1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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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부의 삶 - 옛 편지를 통해 들여다보는 남자의 뜻, 남자의 인생
임유경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7년 3월
품절


그러던 중 문득 깨닫는 바가 있어 벌떡 일어나 박생을 흔들어 깨우고는 "자네는 오늘 이 비를 앙는가? 이것은 옛사람의 문장일세" 라고 크게 말했다네. 박생이 무슨 소리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기에 상세히 말해주었지.

"지난날 비가 오지 않는 것은 오늘을 위해 쌓아두었던 것이고, 오늘 이 비는 지난날 쌓아둔 것이 쏟아져 내리는 것이네. 오로지 오래 축적해야 지금처럼 모자람 없이 쏟아질 수 있는 법이지. 문장도 마찬가지야. 옛날 작가들은 모두 길게는 수십 년이요, 짧아도 십여 년이 되도록 학문을 쌓고 생각을 깊이 하여 콸콸 솟아 넘쳐나고 눌러도 다 없어지지 않은 연후에야 마침내 그것을 꺼내어 문장을 지었네. 그래서 그 말이 콸콸 쏟아지고 항상 촉촉하여 마르지 않았지. 그렇지 않고 없는 살림에 하루하루 쓸 거리를 맞춰 살다 보면 머지 않아 부족하여 남에게 빌리고 표절하게 되니 어찌 굶주리지 않겠는가."
(서유구가 사촌 동생 유경에게 쓴 편지) -52쪽

산 높고 물 깊은 이곳에서 명예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옛말에 "움직이면 비방은 받겠지만 그래도 명예는 따른다"고 하였으나 모두 빈말인 것 같습니다. 겨우 한 줌 명예를 얻었다 싶으면 벌써 비방이 한 자 만큼이나 따라와 있습니다. 명예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늙어서야 그런 이치를 깨닫습니다.
저 또한 젊어서는 헛된 이름을 얻고자 옛사람의 글줄을 훔치고 꾸며 칭찬과 명예를 구했습니다. 그렇게 얻은 이름은 겨우 송곳 끝만 한데 비방은 산만 합니다. 밤마다 조용히 생각하면 신물이 납니다. 지금까지 구한 명예란 것도 제 손으로 깎아내도 모자랄 판에 다시 가까이하다니요. 그럴 리 없습니다. 명예를 좇는 친구는 제 눈에서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일찍이 이익이나 권세를 추구하는 길에도 들어서보았지만 다들 남의 것을 가로채서 자신의 몫으로 챙길 생각 뿐, 제 것을 덜어 남에게 보태주는 이는 보지 못했습니다. 명예란 본래 알맹이 없이 텅 빈 것. 사람들도 돈이 들지 않는 일이라면 쉽게 남에게 내어주기도 하지만 실제로 이익이 되고 권세가 되는 일을 기꺼이 미루어 남에게 주는 이는 결코 보지 못했습니다. 덤벼들어 내달리다가 앞으로 넘어지고 뒤로 나자빠지기 일쑤지요. 결국 기름통을 가까이 하다가 옷만 더럽히는 꼴입니다. 이 역시 이해를 따지는 비루한 소리겠으나, 어쩔 수 없는 사실입니다.
(박지원이 홍대용에게 쓴 편지)
-75-76쪽

"스승이면서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스승이 아니고, 친구이면서 스승이 될 수 없다면 그 또한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 (명나라 이탁오) -1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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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4-05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밑줄 긋고 싶은 구절이 아주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이잘코군 2007-04-06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읽고 귀찮아서 리뷰 안쓰고 있어요. 편지글이 재밌더라고요.
 
한나 아렌트가 들려주는 전체주의 이야기 - 철학자가 들려주는 철학이야기 4 철학자가 들려주는 철학 이야기 4
김선욱 지음 / 자음과모음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자음과 모음에서 기획된 철학자, 과학자 시리즈의 한편으로 동화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유명 철학자와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쉽게 동화에 녹여내 풀어내는 것이 기획목적이고, 꽤 잘 쓰여졌다는 생각이다. 철학 교수들이 동화를 직접 쓰니 전문적인 동화작가들보다야 못하겠지만 그럭저럭 봐줄만하다. 무엇보다 정확한건 초등학생의 시선이겠지만.

 숭실대학교 철학과 김선욱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한나 아렌트에 대한 활발한 논문, 저술작업을 하고 있는 몇 안되는 사람이다. 그는 숭실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미국으로 가 수년간 윤리학, 정치철학, 사회철학, 해석학 등을 공부하고 돌아왔다. 개인적으로는 나의 학부시절 스승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헤겔철학과 사회정치철학을 접했고, 그의 열정이 늘 부러웠다. 대학시절 이렇다할 멘토를 만나지 못한 나는 그를 마음에 두고 있었고, 현재도 관심갖고 있는 국내 철학자 중 한 사람으로 꾸준히 시선을 두고 있다. 철학에 있어서 내가 관심 갖는 분야들은 그의 관심분야와 상당 부분 겹치고, 그런면에서라도 난 그에 대한 시선을 거둘 수 없다. 

 이 동화는 꽤 재밌게 쓰여졌다. 한나 아렌트도 전체주의도 동화 속에 잘 녹아들어갔고, 내용 또한 재미있어, 누가 봐도 부담없이 쉽게 볼 수 있다. 교실 내의 왕따 문제와 스승의 날의 일일 교사를 통해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과 <전체주의의 기원>을 살펴본다. 책 뒷면의 동국대 철학과 홍윤기의 교수의 멘트대로 "한나 아렌트의 사상을 이 책보다 쉽고 효과적으로 어린이들에게 전달할 수는 없다." 책 값은 꽤 비싸지만 어떤 다른 한나 아렌트에 관한 책보다도 쉽다. 초등학생과 중학생뿐 아니라 일반인이라해도 먼저 쉽게 부담없이 한나 아렌트를 접해보고 싶은 이들은 찾아 볼만한 책이다. 소장할 만한 책은 아니지만 아무런 부담없이 그녀를 접하고자 하는 이라면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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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가 들려주는 전체주의 이야기 - 철학자가 들려주는 철학이야기 4 철학자가 들려주는 철학 이야기 4
김선욱 지음 / 자음과모음 / 2006년 1월
구판절판


"우리는 예루살렘의 교훈을 통해 현실의 결여와 생각 없음이 인간에게 내재하는 악한 충동들과 결합해, 많은 재난과 불행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한나 아렌트)-15쪽

"인간들이 조직화되는 곳에서 그 목적은 언제나 행동하고 권력을 쟁취하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49쪽

"좋은 질문이에요. 그 옛날 그리스에서는 경제 활동은 가정에서 일어나는 개인적인 문제였기 때문에 공적인 폴리스에서는 경제 문제를 금기시 했어요. 개인적인 경제 문제를 공적으로 다루면 공적인 폴리스가 파괴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그 대신 폴리스는 공적인 문제를 다루면서, 서로 다른 생각을 제시하고 토론을 하는 자리였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서로가 다르다는 사실을 귀중하게 여겼고, 서로 다름을 존중하는 가운데 뭔가 귀중한 공통점을 발견하려고 노력했던 거에요. 폴리스는 이처럼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자기의 다른 생각을 표현하고 드러내는 공간이었고 사람들은 이 같은 정치적 참여를 통해 참으로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가를 발견해 나갔던 것이었지요." -69-70쪽

"사회적 동물이란 말은 사회에서 공동으로 경제적 문제를 해결해 가는 동물이라는 말이 되고, 정치적 동물이란 말은 인간답게 살기 위해 정치에 참여함으로써 자기의 독특한 면을 표현하고, 공동의 생활을 추구하며 살아간다는 뜻이지요." -70쪽

전체주의는 전체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개인을 철저히 희생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국가나 단체의 힘을 최대로 만들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전체주의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공포 분위기가 필요하고, 결국은 그 공포심 때문에 사람들이 따라가는 것이지, 진정 자발적으로 찬성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 중략 ...
참된 힘은 타인의 생각을 존중하고 경청하고 진지한 대화를 나눈 다음의 합의를 통해서만 나온답니다. -121-122쪽

"대부분의 악행은 선해지거나 악해지기로 결심한 적이 결코 없는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진다. 이것은 슬픈 현실이다" (한나 아렌트) -123쪽

악한 일은 악한 계획 속에서 나오지만, 사실 그런 악한 계획은 자기가 하는 일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못한 것에서 나옵니다. ... 중략 ...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생각'이란 수학 문제를 풀거나 또는 시험공부를 하면서 열심히 암기하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이란 어떤 일의 의미를 알려고 하는 것이고, 그래서 그 일의 전후 과정과 파급효과, 또 그 일이 옳은지 그른지, 내가 그 일을 하면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지 등을 머릿속에서 그려 보는 것이지요.
그러니 공부를 잘한다고 생각을 잘하는 것이 아니고, 공부를 못한다고 생각을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을 잘 할 때 우리는 각자의 개별성이 생기게 되고, 생각을 잘할 때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저지를 수 있는 실수를 막게 됩니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공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지요.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때 우리 사회는 제대로 된 사회가 될 것입니다. -159-160쪽

"정치적 전체주의가 생각 없는 모든 사람들의 산물이었듯이 우리 시대의 기술적 전체주의도 현대인들이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아무런 행위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나 아렌트)-161쪽

전체주의와 정치는 서로 반대되는 것입니다. 전체주의가 있는 곳에서는 정치는 소멸되고, 정치가 바로 되기 위해서는 전체주의는 배제되어야 합니다. ... 중략 ...
모든 일을 획일적으로 해결하려고 할 때, 소수의 의견을 무시하고 다수의 의견만을 고집할 때, 내가 항상 옳고 내 의견만이 진리라고 주장할 때,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하고 남이 받는 고통을 전혀 고려하지 않을 때, 우리는 정치와 반대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의 정치 세계에서는 정치와 반대되는 일을 하면서 그것이 정치라고 믿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집단 행위가 정치 행위라고 믿거나, 또는 내가 원하는 목적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일이 정치 행위라고 믿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남을 이해하는 것, 내 생각 속에서 남을 고려하는 것이 정치의 시작임을 알아야 합니다. -192-1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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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3-31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로써 저를 반하게 만든 유일한 여자죠. 한나 아렌트.


이잘코군 2007-03-31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이 여자 좋아해요. 매우 관심도 높은 철학자입니다.

비로그인 2007-04-01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굴은 제가 더 예쁜 듯! ㅋㅋㅋ~

이잘코군 2007-04-01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공개안했으므로 무효.
 
묵자가 들려주는 겸애 이야기 - 철학자가 들려주는 철학이야기 17 철학자가 들려주는 철학 이야기 17
윤무학 지음 / 자음과모음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청소년용으로 만들어진 고전을 읽는 재미에 푹 빠졌다. 이번에는 자음과모음에서 기획한 철학시리즈인데, '철학자가 들려주는 철학 이야기'라는 컨셉으로 만들어진 이 녀석은, 동화다. 동화인줄 모르고, 자세히 보지 않고, 구입을 했다. 헉 근데 동화다. 게다가 초등학생용이란다. 아무리 논술 논술 하지만, 초등학생부터 논술교육을 위해 이런 책을 읽어야하는건가, 하는 생각에 기분이 찝찝해졌다.

  그러나. 시각을 달리해 뒤에 붙어있는 '통합형 논술 활용노트'를 떼어놓고 생각해보면, 철학자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겠단 생각도 든다. 묵자에 대한 전기라고 볼 수는 없고, 묵자의 철학이 스며들어간 '만들어진' 동화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입시논술이라는 광풍이 초등학생에까지 미친 것은 영 못마땅하지만, 그 덕분에 좋은 책들을 접할 수 있는 건 나쁘지 않다.

  논술공부의 도구로서 활용할 것이 아니라, 그저 한편의 동화로서 접하게 해야 할 것이다. 이걸 통해 공부를 하고 가르치려 들어선 안된다. 그냥 알아서 찾아 읽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다. '강요'가 들어가는 순간, 한편의 동화는 논술 텍스트로 둔갑하고 아이는 마음의 문을 닫아버릴 것이다. 동화인지라 매우 빠르게 순식간에 읽어내려갔다. 중간중간 들어가있는 가벼운 해설도 괜찮다. 아주 썩 재미난 동화는 아니지만 묵자의 핵심철학이 잘 녹아들어간 동화라고는 말할 수 있겠다.

 적정연령은 초등학교 5-6학년에서, 딱딱한 텍스트를 접하기 어려운 중학교 2학년까지. 책 좀 읽는다는 중학생들에겐 자음과모음의 이 책보단 풀빛의 <묵자, 사랑 그리고 참 지식인의 길>이 더 나을 것이다.   

  
* 동일출판사에서 동일한 제목으로, 동화 말고 세 권의 초급, 중급, 고급 시리즈가 있는데, 이건 뭔지 모르겠다. 가격을 봐서는 그냥 논술용 문제와 해설지가 아닐까 추측해보지만, 서점가서 직접 확인하지 않는 이상 뭔지 알기는 어려울 듯.

* 가격이 9,700원으로 매우 비싸다. 요즘 이 정도 두께(126쪽)의 동화 책 가격이 이 정도 하나? 두께에 비해서도, 내용에 비해서도 너무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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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3-30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구보니 묵자는 아직 못 읽었군요. 저는 동양철학은 논어,한비자,장자,왕필의 노자주 정도..

이잘코군 2007-03-30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테츠님 많이 보셨군요. 저는 (두꺼운) 완역본으로 제대로 본 건 없습니다.

비로그인 2007-03-30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마나,
두 분 내공이 상당하시군요(무식쟁이 고양이는 찌그러져야겠다;;)

이잘코군 2007-03-30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녀요. 이거 초등학생용 동화여요. :)

비로그인 2007-03-30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그러고보니, 저 역시 동양철학에 대해 아는 것이 없군요.
외우는 것이라곤, 고작 공자의 말 한마디 뿐이라니. (긁적)

이잘코군 2007-04-05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뭐 안다고 말은 못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