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을 전공했으나 들뢰즈와는 인연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학부 시절엔 프랑스 철학을 다루는 강의가 아예 없었고, 들뢰즈는 당시 한국 강단에 막 수입된 최신(?) 학문이었기에 학부생들이 다룰 만한 철학자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학부 때부터 들었고, 졸업한지 수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이름을 듣고만 있다. 대학원에 가서도 윤리학을 공부했기에 존재론, 형이상학을 다루는 들뢰즈는 역시 전공 외 영역에 있었다.  

  르네21에서 들뢰즈 강의를 한다. 지난 수요일 첫 강의를 들었고, 들뢰즈의 철학에 입문했다. 정확히 그 강의는 들뢰즈와 바디우를 다룬다. 바디우는 들뢰즈보다 늦게 이름을 접했고, 모르기는 역시 마찬가지다. 첫 강의는 들뢰즈 존재론의 바탕이 되는 철학을 배웠다. 수강생들은 대학생 또래부터 장년층까지 다양했고, 그 수는 많지 않았다. 한 10여명 정도. 그 분들은 모두 왜 이 강의를 들을까. 단지 들뢰즈를 알고 싶어서, 아니면 강유원 선생님의 말마따나 노후를 즐기기 위해서. ^^ 아무도 모른다. 어쨌든 적지만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들뢰즈를 함께 듣는다.  

  강사 박정태 선생님은 <들뢰즈가 만든 철학사>를 엮으셨다. 들뢰즈가 직접 쓴 책은 아니지만, 들뢰즈의 초기부터 이전 철학자들에 대해 쓴 논문을 모아 번역/엮은 것이다. 들뢰즈의 사유를 따라가기에는 적절한 교재다. 선생님은 열정적으로 들뢰즈의 철학을 소개했고, 전공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가 아닌 만큼 쉽게 전달하려고 노력하셨다. 입문해보자. 들뢰즈의 철학은 다음 다섯 가지 바탕을 깔고 있다.  

  첫째, 들뢰즈의 존재론은 내재주의의 특징을 보인다. 반대되는 말은 초월주의. 존재는 존재자들에 내재하고, 존재자들은 존재에 내재한다. 신은 양태들 속에, 양태들은 신 속에 들어있다(스피노자를 받아들임). 생명은 생명의 다양한 형식들에 내재하고, 생명의 다양한 형식들은 생명에 내재한다(베르그송을 받아들임).  

  둘째, 분간불가능성. 식별불가능성이라고도 한다. 반대되는 말은 식별가능성, 분간가능성. 존재와 존재자, 신과 양태, 생명과 생명의 다양한 형식들, 잠재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들이 서로 내재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분간, 식별 불가능하게 된다. 고로 존재의 일의성이 유지된다. 플라톤에게 있어 이데아와 이데아가 깃든 것은 엄밀히 구분되지만 들뢰즈는 그렇지 않다. 이 세상은 잠재적인 것이면서도 동시에 현실적인 것. 이때 '동시에'라는 말이 분간불가능성을 일컫는다.  

  셋째, 등가성 또는 동등성. 반대말은 비등가성 또는 비동등성. 들뢰즈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의 가치가 다 똑같다. 가치의 우위와 서열을 들뢰즈의 일의성이 참아내지 못한다. 존재와 존재자들의 가치를 동일하게 본다. 플라톤에게 있어 이데아 세계와 현실 세계의 가치는 엄밀히 구분되고, 가치 또한 다르다. 플라톤에게 있어 현실의 사물은 이데아를 모방하고 분유한 것이기에 가치 측면에서 이데아 아래 줄을 서게 된다. 이데아를 기준으로 참의 정도에 따라 사물을 줄 세운다. 국가의 지도자 또한 이데아에 가장 근접한 철인을 설정한 것이다.  

  들뢰즈는 이데아와 현실 사물의 가치 체계를 뒤집는 것이 아니라 그 둘의 가치를 동등하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전복이다. 현실 사물을 이데아의 위에 놓는 방식으로 뒤집는다면 그건 여전히 비등가적이고, 비동등한 것. 들뢰즈는 이를 동등하게 함으로써 플라톤을 전복한다.  

  넷째, 생기주의. 유기체로 나타나기 이전 생기주의에 따른 머리의 생산이 있어야 한다. 생기주의는 유기체를 가능하게 하는 토대이다. 존재는 존재자들의 역능이고, 생명은 생명의 다양한 형식들의 역능, 잠재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들의 역능, 신은 양태들의 역능, 존재는 존재자들을 생산함으로써 실재하는 파워. 잠재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들을 만들어내는 능력이고 동력이며 구조가 된다. 역능이란 앞의 것이 뒤의 것을 만들어내는 힘이다. 역능은 또한 자기 원인적인 힘이다.  

  플라톤의 경우 영혼이 세 가지로 나뉘어진 것과 같이 국가도 세 가지 계급으로 나뉘어져 있다. 각 영혼들이, 각 계급들이 제 역할을 잘 할 때 온전한 몸, 온전한 국가가 된다. 들뢰즈는 잠재적인 것을 선험(경험보다 논리적으로 앞서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것)적인 장으로 이야기한다. 현실적인 것들을 발생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따라서 선험적.  

  다섯째, 매개가 배제된 종합. 존재, 신, 생명, 잠재적인 것들의 구조가 하나, 존재자들, 양태들, 생명의 다양한 형식들, 현실적인 것들의 구조가 하나가 각각 있지 않고, 매개를 배제한 종합으로 이를 바라본다. 플라톤의 삼각형에서는 이데아 안에 현실의 여러 삼각형들이 포함되고 포섭된다. 하나가 다수를 엮고 종합하고 있다. 그러나 플라톤의 현실 삼각형은 이데아의 삼각형과 유사한 것일뿐이다. 플라톤도 종합을 보여주지만 여기엔 매개가 개입되어 있다. 존재가 집합과 비집합으로 나누어진다. 유사한 이데아의 범주에 들어가느냐 안 들어가느냐에 따라서 분화된다. 우리 현실에서도 대한민국 국민이 되기 위한 나와 너와 그에게 어떤 의무, 공통점이 있다. 이것이 매개이다. 들뢰즈에게 있어서 그 둘이 서로를 해하지 않고 종합이 되려면 매개가 없어야 한다. 다수인데 종합, 두 개인데 종합되는 것. 잠재적 차원과 현실적 차원에 매개가 개입되어 있지 않고 둘을 묶어 종합한다.

  어렵다. 하지만 플라톤과 대비하여 쉽게 풀어주셨다. 대략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고, 다음 강의를 듣는데 어려움이 없을 듯하다. 존재론은 현실의 문제와는 많이 다르다. 철학에서 윤리학, 정치철학, 사회철학 등은 현실의 문제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존재론은 다소 구름에 붕 뜬 느낌이 들 것이다. 그러나 존재론은 지금까지 내가 인식하던 세계의 틀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 존재론, 형이상학의 묘미가 여기에 있다. 두 번째 강의를 기대한다. 르네21에는 서양, 동양철학 강좌가 지난주부터 진행 중이고, 금요일마다 매번 다른 책의 저자와 함께 하는 교양 강의가 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로. http://www.renai21.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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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화 2011-09-05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먹고 살기 바쁜 우리는 '행동하기 위한 사유하기'에 익숙하기 때문에 '사유하기 위한 사유하기'에 어려움을 느끼지요. 하지만 '행동하기 위한 사유하기'에는 반드시 뺄셈 작용이 필요해요, 가장 경제적인 행동 패턴을 만들어야 생산성과 유용성이 높아지니까. '사유하기 위한 사유하기'에는 그러한 뺄셈 작용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노력을 기울일 때, 우리의 사유와 인식은 '있는 그대로의 것'에서 출발할 수 있습니다. 존재 그 자체에서 출발한 인식은 필요에 따른 인식보다 더 정확할 수 있고, 존재 그 자체의 본성에서 출발한 윤리는 유용성에 따른 윤리보다 더 정치적으로 올바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늘빵 2011-09-06 09:03   좋아요 0 | URL
동의합니다. ^^ 존재론 자체는 일상과는 좀 떨어져 있어보이지만, 윤리는 존재론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

yamoo 2011-09-05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저하고 같군요^^ 진짜 학부때는 프랑스철학을 거의 안 다뤘고, 특강 형식의 강의가 개설되어도, 베르그송과 푸코 사르트르만 다루더군요~ 철학과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고 영문과과 불문과 대학원 과정에 프랑스 사상사 강의에서 들뢰즈를 다루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들뢰즈는 까막눈이었다는..ㅎㅎ

들뢰즈가 만든 철학사...이 책은 저도 들뢰즈에 입문하기 위해서 들뢰즈를 잘 아시는 분한테 문의해서 구입한 책이에요. 렘브레이트 서양철학사를 거의 다 보고 봤던지라 상대적으로 무척 쉽게 읽었던 책입니다.

르네21에서 강의가 있군요~ 이 강의는 몇시부터 어디에서 하는 건가요?? 저도 한 번 가봤으면 하네요~ 좋은 정보에요!

근데, 아프락사스님은 이런 정보를 어떻게 잘 아시는지 궁금합니다요..ㅎㅎ

마늘빵 2011-09-06 09:06   좋아요 0 | URL
학부에서 프랑스 철학 다루는 데가 없지 않나 싶어요. 요즘엔 또 모르겠는데. 정말 거의 불문학과 이런 쪽에서만 하는 듯하고. 아무래도 기존 교수들이 미국, 독일에서 공부하신 분들이다보니.

르네21 동, 서양 철학 강의는 수요일 일곱 시에 있고, 교양 강의는 금요일에 있어요. 사이트 들어가 보시면 확인할 수 있다는. 위치는 시청역 안쪽(광화문 방향 시청 건너편) 성당입니다. 저야 돌아다니다가 정보를 줍고... ^^
 
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 줄까 - 동화로 만나는 사회학
박현희 지음 / 뜨인돌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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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싫어할 이유가 충분한 누군가를 싫어할 권리가 있다. 용서하고 싶지 않은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화해는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우리의 관념이 때로 누군가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계속해서 문제를 유발시킨다. 모두와 사이좋게 지내겠다는 것은 얼마나 무모한 욕망인가. 또 모두와 사이좋게 지내라는 것은 얼마나 무리한 요구인가. -22쪽

선거 때만 되면 각종 교육 정책들이 난무하는데, 그 정책들을 보면 하나같이 사교육비 절감을 이야기한다. 선심 공약 치고 이만한 것이 없다. 사교육의 폐해는 누구나 동의하는, 정말 안전한 문제니까. 아무도 교육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학교의 근본적인 사명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다. 그저 사교육만, 사교육만 잡자고 한다. 그러고 나서 모든 문제의 원인은 대학 입시 제도에 있다고 뜻을 모은다. 위원회가 생기고, 프로젝트가 만들어지고, 정부의 예산이 새 입시 제도를 만드는 데 쓰인다. 많은 대학 교수들과 전문가들이 이를 통해 부수입을 챙기고 경력을 추가한다.
이제 입시 제도가 바뀐다. 게임의 규칙은 더 복잡해지고 더 예측하기 어려워진다. -75-76쪽

우리 사회의 큰길, 즉 규칙과 질서가 사회에 자리 잡는 과정을 생각해 보자. 사회에는 어떤 의미로든 더 큰 힘을 가진 자들이 존재할 것이고, 그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질서를 만들어 나간다. 그리고 그 질서가 불변의 진리인 것처럼 세상 사람들을 세뇌한다. 이 질서는 지배하는 우리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야, 세상 모두에게 좋은 것이야, 그러니 이 질서가 무너지면 세상은 끝장나는 거야, 하고 말이다. 처음에는 저항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우리의 기억은 얼마나 얄팍한지, 곧바로 질서가 지금과 다른 시절도 있었고 앞으로 다른 질서를 가진 세상이 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그 질서를 수용한다. -84-85쪽

지혜 있는 사람은 옳고 그름에 대해 두 마음을 갖지 않고, 자비로운 사람은 미래를 결코 걱정하지 않으며, 용기 있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공자)-1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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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처럼 질문하기 - 흥미진진 철학 여행
매슈 모리슨 지음, 하정임 옮김 / 다른 / 2008년 7월
절판


철학적 논쟁에는 몇 가지 방법이 있지만 우선 갖추어야 할 자세는 신중함이다. 선의의 논쟁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이기 때문에 반박하기가 쉽지 않다. 악의의 논쟁은 처음에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허점으로 가득 차 있다.
나쁜 의도가 있는 논쟁은 이상하고 거짓인 것을 믿게 하려고 사용된다. 재치 있는 논쟁은 누군가를 속이기는 쉽고 겉으로 보기에는 타당하게 보일지 몰라도 내면에는 수상한 점이 많다. -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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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긋는 남자 (보급판 문고본)
카롤린 봉그랑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5월
품절


당신이 알고 있는 대로, 나는 젊은 여자이고, 몽상적인 데가 있으며, 갈색 머리이고, 혼잣몸이에요. 산다는 것이 내겐 아주 두려워요. 나는 이렇게 사는 삶의 끝이 어디인지, 이 모든 습관과 몸짓이 나를 어디로 이끌고 가는지 잘 모르고 있고, 아직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버리지 못하는 단계에 있어요.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나는 존재해요. 이 종이 위에 묻은 이 잉크가 꿈은 아닐 테니까요. 솔직히 말해서 나는 혼잣몸으로 자족하며 살지는 못할 것 같아요. 말하자면 불완전한 사람이지요. 그래서 나를 채우고 완전하게 하기 위해, 진정으로 살기 위해, 나는 다른 사람을 원해요. 내가 전혀 할 줄 모르는 것을 할 줄 아는 어떤 사람, 그리고 흔히 하는 말로 나를 사랑해 줄 어떤 사람이 내겐 필요해요. -131-132쪽

나는, 우리가 뭔가를 착각한 게 틀림없으며, 두 개의 고독을 합친다고 해서 하나의 행복이 만들어지는 건 아니라고 내 생각을 이야기했다.-160쪽

사내란 모름지기 처음엔 차갑고 신비스럽게 보여야 미더운 느낌을 주는 법이다. 처음부터 꿀 같고 캐러멜 같아서는 안 된다. -162쪽

사랑에는 살을 섞는 일이 필요하다. 그건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1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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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0분의 상영 시간이 결코 지루하지 않다. 한 여인의 삶을 거슬러 추적한다는 점에서 씨네큐브에서 현재 상영 중인 다른 영화 <사라의 열쇠>와 구조가 닮았다. 두 영화 모두 인상적이고, 아프다. 전쟁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닮았다. 보는 내내 제발 실화가 아니길 바랐다. 엔딩 크레딧 올라가고 포털에서 검색해본 결과 다행히 실화는 아닌 듯. 결코 예상할 수 없는 탄탄한 스토리에,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까 싶을 만큼 가슴 먹먹해지고 아프다. 미리 검색하지 말고 그냥 가서 관람하시길.  

  같은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가 수도 없이 많이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에 세계 곳곳에서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것을 겪어낸 이들이 많기에 각 개인의 인생에 하나씩의 영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독일과 폴란드가 아닌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점이 기존에 나온 영화들과 조금 다르다. <그을린 사랑>과 마찬가지로 한 여인의 삶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한다. 단 다른 것이 있다면, <사라의 열쇠>는 <그을린 사랑>과 달리 실화를 토대로 하고 있다는 점. 실화에는 별도의 스토리가 필요치 않다. 탄탄한 스토리는 애써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있었던 일을 재현하는 데서 나온다.  

  보기 전 누군가 내게 건넨 감상평 때문일까. 이 영화가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일단 국내 애니메이션치고 이렇게 흥행가도를 달린 작품은 없었다고 했기에 그만큼 또 기대를 했고-사실 배급사가 상영관을 많이 잡은 것도 원인일 것-, 그 기대를 충족시키기엔 부족했다. 물론 재미있었다. 그러나 이 애니에 담긴 어머니의 희생 정신, 아낌 없이 주는 나무 정신은 불편하다. '모성 신화'에 관한,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떻게 보면 다문화 가정의 이야기로 바라볼 수도.  

 
  <혹성 탈출-진화의 시작>. 오래 전에 나온 혹성 탈출 시리즈보다 시간 순서상 앞선 상황을 그린다. 침팬지가 왜 지구를 지배하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추적하는 스토리. 시작부터 끝까지 예상 가능한 줄거리지만 그것과 상관 없이 영화를 즐길 수 있다. 뻔한 스토리지만 영상으로 잘 구성했으며, 침팬지의 탈출 장면과 공격 장면은 다른 할리우드 액션 영화 못지 않다. 동물 실험, 동물 보호 차원에서 볼 수도 있다.  

 
  김하늘의 연기로 일단 반은 먹고 들어간 영화. 영화 <눈 먼 자들의 도시>에서 영감을 받은 듯한 시각 장애인의 입장에서 사물을 인식하고 바라보는 장면들이 괜찮았고, 공감이 잘 되었다. 사고로 꿈을 잃었지만 그 꿈을 다른 방식으로 실현하는 주인공과 그로 인해 일이 틀어져버린 한 남자,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들로 구성되었다. 영화 속 인물들 간의 관계 설정이 다소 인위적이지만, 각 인물들의 행동이 전혀 어색하지는 않다.  그런대로 개연성을 가지고 이해할 수 있는 장면들이고, 영화의 끝까지 잘 유지했다.  

  이런 액션이 가능하구나 싶은 영화. 역사 속 한 장면을 다룬 국내 영화는 꽤 있었다.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사>.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봐줄만 했고, 배우들이 많이 고생했겠다 싶은 영화다. <무사>의 액션은 긴박감도 웅장함도 별로 안겨주지 못했지만, <최종병기 활>은 '활'을 이용한 저격 액션을 실감나게 보여주었다. 카메라의 구도나 지형지물을 이용한 격전 등 모자랄 것 없었다. 지금까지 본 한국 액션 장면 중 가장 신선했고, 완벽했다. 사라진 청나라의 고유 언어를 부활시킨 것도 자료 조사, 준비가 얼마나 철저했는지 추측할 수 있는 부분.

  브라질의 쌈바 리듬과 화려한 색채로 귀와 눈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애니. 앵무새가 주인공이고, 그 앵무새의 순탄치 않은 생을 그렸다. 여느 애니와 마찬가지로 악당이 있고, 삶의 굴곡이 있고, 사랑이 있고, 두 번 이상의 어려움이 있다. 또, 여느 애니와 마찬가지로 해피엔딩은 예견되어 있다. 대개의 애니가 이러한 흐름과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어떤 소재로 어떤 스토리를 짜느냐에 따라서 각기 다른 작품으로 탄생하는 것. 등장하는 여러 새나 원숭이 등 남미 동물들을 이용해 역할 분담을 잘 하였고, 즐겁게 볼 수 있었다. 이것도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밀렵과 동물 보호를 다루고 있달까.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면 적당히 만족할 만한 영화. 같은 소재를 활용한 한국 영화가 몇몇 있는데, 그 영화들과 특별히 다를 바는 없는, <태극기 휘날리며>와 <공동경비구역 JSA>가 떠오르는 영화다. 전체적인 인물 설정이나 배경, 전투 장면들이 닮았고, 스토리는 그보다 좀 부족하다. 6.25 전쟁에서 치열했던 한 장소를 구체적으로 잡았다.  

 

  자신이 지난 밤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모르는 한 남자. 이야기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그 남자의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주변 인물들과 엮이며 사건이 벌어지고, 진실은 그 어디엔가 있다. 관객은 그 진실을, 이 남자와 함께 추적하는 재미를 맛볼 수 있다. '심리 스릴러'라고 할 수 있고, 생각보다 재미있다. 상영관은 몇 안 될 것. 
  
  

 폭력과 폭력에 대응하는 방법을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 아버지와 아들이 처한 각각의 상황에서 그들이 대응하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 둘 사이에서 복수와 용서, 분노를 생각한다. 우리가 관용해야 할 대상과 행동은 어디까지이며, 폭력에 대해 비폭력 무저항을 고수하는 것이 옳은지, 약자는 인내하고 감내해야만 하는 것인지, 영화는 답을 주지 않지만, 관객은 영화를 재료로 삼아 충분히 느끼고 생각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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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11-08-24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랑 상당히 유사하게 보셨군요.지방이라 다양한 영화를 못본 것이 좀 아쉽습니다만 어쨌든 비슷해요. 혹성탈출은 기대만 못했고(ㅎㅎ 파랑이는 좋아했습니다만) 고지전은 전혀 기대를 안하고 봐서 그런지 괜찮게 봤습니다. 목요일에 4개가 한꺼번에 개봉되는데 2개 끊었습니다. 시간 안배하는 것이 너무 힘드네요. 하필 조조도 못보는 시점인지라..
세얼간이는 생각보다 유쾌했구요. 로맨틱크라운은 딱 그정도. 기회되시면 숨도 한번 보셔요.

마늘빵 2011-08-24 08:53   좋아요 0 | URL
최근 볼만한 영화들이 많이 나왔죠. ^^ 파랑이는 스머프인가요? 이것도 보고 싶은데. 부지런히 찾아봐야겠습니다.

반딧불,, 2011-08-24 09:20   좋아요 0 | URL
하하.파랑이는 제 아이라죠^^(레오레오니의 파랑이와 노랑이에서 땄습니다)
스머프는 지나친 기대는 안하시고 그냥 어릴적 기억을 즐긴다 정도?

다락방 2011-08-24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도 봤구나, 그을린 사랑과 사라의 열쇠를. 이 리스트중에 [인 어 베러 월드]가 없어서 아쉬워요. 아프님이 봐도 좋았을 것 같은데.

마늘빵 2011-08-24 09:25   좋아요 0 | URL
응응, 나 인 어 베러 월드 봤어요. 이걸 내가 빼먹었네. 정리하면서. 이것두 완전 좋아요.

다락방 2011-08-24 11:00   좋아요 0 | URL
'우리가 관용해야 할 대상과 행동은 어디까지이며, 폭력에 대해 비폭력 무저항을 고수하는 것이 옳은지, 약자는 인내하고 감내해야만 하는 것인지'


나도요. 나도 이런걸 생각하게 됐어요. 그래서 이 영화가 좋았어요. 아프도 그랬구나. 역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내가 좋아하는 영화(혹은 책)를 좋아하는건 참 기분 좋은 일인것 같아요.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