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유전자와 사회생물학 (양장)
이상원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30주년 기념판이 나왔으니 이 논쟁이 있은지도 벌써 30년이렸다. 30년간 서양에서 많은 학자들이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개념과 주장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눴고, 그 중에는 이기적 유전자론을 지지하는 주장도 있었지만, 이를 비판한 학자들 또한 적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상황에 따라 도킨스와 함께 할 수 있으면서도 '이기적 유전자'의 영향력에 대해서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는 스티븐 제이 굴드가 있다. 그는 다윈의 후예라는 점에서 도킨스와 같지만, 생물학적 결정론이 유전자 결정론으로 모습을 바꿔 등장하는 것을 목격하고, 이것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우려한다. 생물학이 사회학의 영역에 발을 들여놨을 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현재 서울시립대 강의교수로 재직중인 이상원 교수는 <이기적 유전자와 사회생물학>이라는 얇은 책자를 통해서 그간에 논의되어온 이기적 유전자 논쟁에 대한 정리를 시도하고 있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함의하고 있는 바가 무엇이고, 그것이 왜 비판을 받는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살펴본다. 

  먼저, 도킨스의 프로필과 기본적 관점을 살펴보고, <이기적 유전자>에 드러난 그의 주장들을 하나하나 우리말로 더 쉽게 풀어준다. 도킨스는 스스로 책을 매우 쉽게 썼다고 하고, 또 그러한 것이 사실이지만, 해당 분야에 대한 기본적 지식이 없는 나같은 이는 심정적으로 어려움을 느끼기 때문에 더 쉬운 해설서가 필요하다. 이 책은 도킨스의 이론에 대한 해설역할을 해줄 뿐 아니라 그간의 비판점까지도 담아내고 있어 '이기적 유전자'에 관해 정리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7장 생물학적 결정론과 사회생물학, 8장 과학의 이데올로기적 성격 부분은 특히나 '이기적 유전자'를 생물학적 결정론, 사회생물학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를 살펴보고, 그것이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를 알아본다.

  "사회생물학은 사회성 동물의 행동이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장 자체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그런 유전 결정론적 구도 안에 우리 인간 종마저 포함되었다는 점에서 촉발되었"으며, 인간의 모든 행동이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면, 지금의 사회적 위치는 자연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므로 우리는 받아들여야 한다. 예를 들자면, 남녀차별이나 사회적 신분차, 계급, 불평등의 문제, 가부장제, 엘리트주의, 인종차별 등등의 모든 것들이 자연에 의해 불가피한 것이 되므로 생물학은 이데올로기로서 작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사회생물학자들은 인간의 행동을 유전자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바라보는데, 인간의 삶은 단지 유전자뿐 아니라 문화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 것이며, 그 어떤 것도 우리 개개인의 삶을 결정짓지 않는다. 저자는 "우리의 생물학적 특성, 특히 유전자가 우리의 삶에 심오한 영향을 준다는 이야기와 유전자에 의해서 우리의 삶이 결정된다는 이야기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라고 결론내리고 있다.

  <이기적 유전자>는 1판이 번역된 이래 엄청난 판매량을 보여왔다. 베스트셀러에서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하며 꾸준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개정판이 나오고, 15년판이 나오고, 이제는 30년 기념판까지 나왔다. 도킨스는 스스로 개정판이라 하여 자신의 처음의 이론에서 달라진 것은 없으며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문장을 고치고, 예를 첨가하는 수준에서 머물렀다고 말했다. 그가 그만큼 거만하게 구는 것은 나름대로 이론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있기 때문이겠지만, 수많은 과학자들과 인문/사회학자들의 그의 이론에 대한 비판은 각기 나름의 메세지를 전해주고 있다. 이 책으로 어느 정도 기본은 파악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정리과 비판에 관한 내용이 그다지 깊이있진 않으므로, 나같은 입문자가 아니면 권하고 싶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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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경고

참으로 힘겨운 영화. 좁아터진 영화관의 좌석과 좌석 사이의 공간을 뒤척이며 인내심을 요하는 영화다.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러닝타임 133분은 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에겐 너무나 길었고, 이를 참다못한 많은 관객들이 끊임없이 어둠과 탁한 공기로부터 벗어났다. 아마도 그들은 나같이 이 영화의 감독과 감독이 영화를 만들어나가는 방식에 대해 사전지식이 전무한 사람들이었을게다. 솔직히 매우 힘겨웠다. 기왕 자리에 앉은거 끝까지 봐야하지 않겠느냐, 또 다른 사람들의 관람을 방해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끝까지 함께했다.

"정말로 소박하게, 상대를 마주보는 기분자체를 소중히 한다는 느낌을 추억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라고 말하는 허우 샤오시엔 감독. <비정성시>와 <카페 뤼미에르>로 유명하다는데 이 감독의 수많은 작품 중 어떤 것도 본 적이 없으므로 나에겐 신인이나 다름없다. 간략히 감독에 대해 말하면, 대만 출생으로 1980년 <귀여운 여인>으로 데뷔해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인 <비정성시>와 방황하는 젊은연인의 초상 <밀레니엄 맘보>,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탄생 100년을 기념하는 <카페 뤼미에르> 등이 대표작으로 뽑힌다.

<쓰리타임즈>는 2005년 대만 금마장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2005년칸영화제 경쟁 부문. 2005년 부산 국제 영화제의 개막작이었다고 한다. 영화는 '사랑의 꿈' '자유의 꿈' '청춘의 꿈'이라는 세 가지 에피소드로 구성되어있으며, 각각 대만의 1911년, 1966년, 2005년의 시대를 뛰어넘는 시간적 배경설정으로 각기 다른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다.



* 어렵게 그녀를 찾아온 첸과 그를 보고 웃는 슈메이. 사랑은 그렇게 시작됐다.

첫번째, 1966년 가오슝. 사랑의 꿈. 당구장 종업원 슈메이는 이전의 종업원에게 온 편지를 보게되고, 휴가를 나와 당구장의 그녀를 찾아온 첸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이후에도 두 사람 사이에 편지가 오고 가고 첸은 슈메이가 떠난 당구장에서 그녀를 찾는다. 슈메이가 이곳을 떠나고 지나간 모든 경로를 추적하여 결국 어렵게 슈메이를 찾고, 그녀를 어렵게 찾아온 첸을 보고 그녀는 웃는다. 그건 사랑. 시간이 없어 함께 밥을 먹을 수 밖에 없는 두 사람, 함께 한 시간은 짧지만 충분히 서로를 확인할 수 있었다. 기차는 끊겼고, 버스만이 남은 어둠이 내린 인적없는 그곳에서 손을 잡는다.

* 양반신분의 지식인 창과 기녀 신분의 아메이. 날 사랑한다면 이곳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실 순 없나요.

두번째. 1911년 대도정. 자유의 꿈. 양반임에도 개화사상을 주장하는 창과 기녀 아메이의 사랑. 창은 축첩제를 반대하는 글을 신문에 쓰지만, 정작 그녀의 동생이 누군가의 아이를 배자 아이의 아버지와 혼인시키기 위해 자신의 돈을 내놓기까지 한다. 축첩제 폐지를 주장하지만 정작 첩을 들이는데 있어 도움을 준 것이다. 지식과 행동이 서로 반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그렸다. 대놓고 이야기하지 못하지만 자신을 데려가줬으면 하는 아메이와 그녀를 받아줄 수 없는 창. 두 사람의 대화는 말이 아닌 글을 통해 자막처리된다. 속내를 다 털어놓지 못하는 두 사람의 마음을 재밌는 방식으로 표현했다. 영화가 지루함에도 불구하고 중간중간 웃을 수 있는건 영화의 내용 때문이 아니라 형식미 때문이다.




* 도심을 가로지르는 오토바이와 무표정한 두 사람. 가는 길은 알고 있는가.

세번째. 2005년 타이페이. 청춘의 꿈. 1911과 1966년의 모습은 관객에게 숨을 턱 막히게 했다. 과거로 올라가면 갈수록 영화는 점점 지루해지고, 사람들은 떠나고 하품을 하지만, 2005년의 모습, 뻥 뚫린 아스팔트 도로 위로 질주하는 바람을 가르는 오토바이와 꼭껴안은 두 남녀의 모습은, 관객의 숨통을 틔여주었다. 간질병을 앓아 자신이 쓰러지면 어디로 데려가달라는 안내문까지 목에 걸고다니는 칭에게 반해버린 첸은 그녀의 사진을 찍으며 사랑을 나눈다. 애인이 있음에도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고, 잘못된 만남은 점점 엇갈려만 간다. 삶에 생기를 잃은 두 남녀의 방황하는 삶, 무엇을 향해가는지, 목적지는 있는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메뉴얼이 없는 이들은 하루하루의 삶이 힘겹다. 정체성의 상실, 방향성의 상실.

 "현대인의 연애와 옛날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의 연애는 다양한 의미로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 대비를 그리고 싶은 생각으로 찍은 것이 이 영화입니다. 지금은 다양한 연애의 세러모니나 이벤트가 있습니다만, 옛날에는 그런 일이 전혀 없었습니다. 정말로 소박하게 상대에게 마주보는 기분을 소중히 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연애의 형태였습니다. 그런 정서를 담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나는 최근이 되어서야 ‘지금의 시대를 어떻게 담을까’라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현재’를 그리는 것은 자신들과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객관화 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른바 현재라는 것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과거가 되어 가고 있으며 그 속도 또한 매우 빠르기 때문입니다. 나는 세 번째로 등장하는 에피소드 “청춘의 꿈”에서 현재를 다루었고, 그 전에 두 편의 에피소드에서 과거를 이야기 했기에 ‘현재가 어떤가’라는 것을 좀 더 쉽게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

  이 힘겹고 지루한 영화는 감독이 영화를 만든 의도를 읽고나면, 영화를 다 보고나면, 그제서야 서서히 빠져들게 된다. 러닝타임을 견디기 힘들었음에도 영화가 다 끝난 뒤 자리에서 일어설 수 없는건, 세 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다가오는 사랑의 느낌 때문이다. 그것은 내용보다는 형식에 맞추어져있다. 행동과 글로서 모든 것을 표현하고자 했으며, 말은 최소한으로 줄였다. 그나마도 '자유의 꿈'에서는 음성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자막으로 두 사람의 마음을 교환했다. 말하지 않아도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안다. 하지만 서로가 원하는대로 할 수 없음.도  알고 있다. '청춘의 꿈' 은 시끄러운 자동차 소리와 네온사인 불빛으로 화면을 가득 메우지만, 정작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만 귀청을 때리고 그들은 침묵하다. 침묵하다 툭툭 내뱉는 그 말들은 참참다못한 그들의 심정을 대변한다.

  사랑도 자유도 청춘도 결국 찾지 못했다. 사랑하지만 함께 할 수 없으며, 자유롭고 싶지만 자유로울 수 없으며, 나를 찾고 싶지만 내가 누군지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는 이들은, 계속해서 고민할 뿐이다. 아무 것도 얻은 것이 없으며,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결핍은 고민과 방황을 낳았다. 그리고 우리의 현재를 되돌아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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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26 16: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7-02-26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속닥님. 반가워요.
 



- 지구멸망

  2007년 1월 어느시점엔가 네이버와 엠파스 등의 검색어 1위는 '지구 멸망의 날'이었다. 검색창에 '지구 멸망의 날'이라고 검색하면 지금도 그 당시에 사람들이 질문을 올리고 대답한 흔적들이 남아있다. 2007년 새해 당장 지구가 어떻게 되는것도 아니고, 어떤 질문자의 말마따나 북한의 핵실험으로 지구가 멸망한다는 시나리오도 아니다. 케이블티비 XTM 에서 방영한 영화 <카테고리 6 : 지구멸망의 날>에 대답이 있다.

  극장용 영화는 아니고 2004년 미국티비방송용 영화인데, 174분(약 세시간)의 꽤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크게 지루하지 않다. 제목 그대로 '지구 멸망의 날'을 다루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이상기후가 여기저기서 감지되고, 어디는 시베리아를 넘어 알래스카 기온이 되었다가, 어디는 세상에서 가장 더운 나라의 기온수치를 넘어서는 등, 미국 전 지역에서는 지구상에서 볼 수 있는 온갖 기후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주마다 홍수가 나거나 가뭄이 들거나 허리케인이 밀려오거나 토네이도가 상륙하여 휩쓸어가거나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모든 자연재해가 미국을 덮쳤다.

  지구가 멸망하는 시나리오는 <아마겟돈> <투마로우> <딥 임팩트> <우주전쟁> <인디펜던스 데이>  등등을 통해 많이 접해봤지만, 지구가 멸망하는 원인은 영화마다 각기 다르다. 외계인의 지구침공으로 인해, 우주에 떠도는 거대한 행성과의 충돌로 인해, 인간이 자연에 끼친 해악의 댓가로서 심각한 자연재해가 발생함으로써, 지구는 멸망한다. 기존에 나와있는 극장용 영화 중에는 <투마로우>가 이 영화와 가장 근접하다고 하겠다.

  지구가 멸망하는데 대해 사람들의 여러 반응을 살펴볼 수 있다. 인간이 그동안 지구를 병들게 한 댓가이므로 당연하다며 운명에 순종하는 유형, 어떻게든 온갖 과학기술을 동원해 원인을 제거하려는 과학찬양 유형, 난 아무 것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쨌든 살고봐야하지 않겠느냐며 종말이 올때까지 벌벌 떠는 유형 등. 네이버와 엠파스에 질문을 올린 이들은 특히나 지구멸망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다. 두려움의 감정은 어디로부터 비롯되는가. 같은 충격에 대해서 각기 다른 반응양상을 보이는 이들은 어디에서부터 그 차이가 드러나는지 모르겠다.

  영화는 이상기온에서부터 재앙을 감지하고는 기상학자들을 비롯한 과학자들을 불러 끊임없이 관찰하고 분석함으로써 원인을 찾아내고자 한다. 원인을 찾으면 재앙을 막을 수 있으니. 뉴욕에서 토네이도 두 개, 아니 세 개가 만나 도심을 휩쓸고 다니는 꼴이란, 고질라나 킹콩에 비할 바가 못된다. 토네이도는 방향성 없이 도심을 이리저리 쓸고 다니며 자동차, 사람, 건물 등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하늘로 날려보낸다. 어느날 우리 집 앞에 자유의 여신상이 떨어져있다면 아 토네이도구나 하면 된다.

  영화는 지구멸망에 다가가는 모습을 현실감있게 보여준다. 극장판 영화가 아니어서 그런지, 이 영화는 흥미진진한 기승전결의 스토리보다는 서서히 지구에 재앙이 닥치는 순간과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는가에 주목한다. 영화는 지구멸망의 원인이 아주 사소한 부분에 있을 수 있고, 그것은 분명코 인간의 잘못이라는 점을 지적하는 듯 하다. 자연 상태 그대로 놔둔다면 사실상 생태계는 문제가 생길리 없다. 모든 것이 인위적인 행위를 가함으로써 연쇄작용에 의해 발생한다.  

- FTA

  재밌는 것은 영화 속 전기회사가 개인의 소유이고, 회사는 문제가 생기자 고객들에게 전기를 보급하고자 외부회사의 전력을 비싼값에 끌어오기도 하는 등 노력을 기울인다는 점이다. 사회의 공공재가 개인의 사적 소유 아래에 있을 때의 상황은 이 영화를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물이나 전기, 가스, 지하철 등이 어떤 개인에게 소유되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일은 뻔하다. 하나의 재화를 놓고 몇몇 회사가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고, 회사의 독점 내지 과점으로 인해 고객은 비싼 값에 기본재화를 사들여야할지도 모른다.

  지난주 어느 신문에서 한미 FTA가 체결된 그 이후의 모습을 그려놓은 글을 봤다. 소방산업이 민영화되었을 경우 여러 업체가 경쟁을 하면 서비스는 개선될 수 있다. 지금보다 더 빠르게 대처하고 불도 더 잘 끌 것이며 인명피해도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기업은 이익을 내야하고 주주들에게 배당도 줘야한다. 불이 났다고 무조건 불을 꺼줘서는 안되며, 돈을 받아야 한다는 앞선 전제가 깔린다. 경영자는 이왕하는거 돈 되는 강남지역 주민들만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하길 원할 것이고, 못사는 동네 주민들을 고객으로 유치하고 싶진 않을 것이다. 서비스가 뛰어난 만큼 이윤은 그만큼 많이 들어온다. 거꾸로 이윤이 많이 들어올 곳에 서비스를 제공한다. 결국 불이 났지만 아무도 꺼주지 않아 사망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고, 전화를 했더니 "죄송합니다. 고객님이 계신 지역은 저희 서비스 지역이 아닙니다." 하고 끊어버릴지도 모른다.

  <카테고리 6 : 지구멸망의 날>에서는 전기재화가 민영화되었을 때 어떻게 운영되는지,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어느 지역은 전기가 들어오고, 어느 지역은 전기가 안들어온다. 회사는 비싼 돈을 주고 우리회사에 전기를 맡긴 고객들을 위해 외부 회사의 전기를 끌어온다. 애초 이 전기회사는 문제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심각한 시스템상의 문제가 있었고, 외부의 간단한 바이러스에서 쉽게 무너질 구조였던 것이다. 최고 시스템 책임자는 이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했지만 회사는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를 들어 무시해왔다. 그리고 결국 이런 사고가 터졌고, 그제서야 회사는 시스템 상의 문제를 인지하기 시작했다. 역시 회사의 제일 목적은 이윤이다. 돈이 안되면 안한다. 돈이 많이 들면 안한다.

  지구의 생명이 어디까지인가는 학자들마다 견해가 다르다. 온갖 과학기술을 동원하여 지구가 얼마나 병들었는가를 분석/언급하고 있지만, 언제 지구가 멸망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변하지 않는 것은 많은 사람들은 지금 현세의 삶의 안락과 행복을 위해 오늘을 산다는 것 뿐이다. 그들 대부분은 지구에 재앙이 닥친다는 사실에 대해, 지구가 멸망한다는 사실에 대해 인지하지 못한다. 지구가 점점 더워지고 있다는 신문지상의 기사는 그저 아침 식사와 병행해 한번 읽고 내려가는 정도의 것으로 치부되고, 막상 올해 겨울이 따뜻하더라도 그것이 지구재앙의 시작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오늘 겨울이 따뜻해서 활동하기 좋으니까 내일 모든 것이 녹아내리는 것에 대해서는 모른다, 로 일관한다. 오히려 지구멸망의 시작을 먼저 눈치채는 것은 과학자들이 될 것이다. 과학기술이 지구를 병들게 했고, 과학기술자들이 지구멸망을 감지한다는 사실은 재밌다.  

 감독 딕 로우리는 2004년에  <카테고리 6 : 지구멸망의 날>을 만든데 이어, 2005년엔 <카테고리 7 : 토네이도>를 내놨다. 카테고리가 왜 1부터 시작하지 않고 6부터 시작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시리즈는 이 두 편이 전부이고, 전편을 재밌게 본 나로서는 후편까지 관심이 간다. 아마도 비디오로는 없을 듯 하고, 어느날 우연히 케이블에서 마주하는 수 밖엔 없겠다.

p.s 지구멸망이라기보다는 미국멸망의 날이 더 맞다. 재앙의 대상은 미국 영토에 한정되어 있고, 타국은 지구로부터 소외되었다. 미국이 만드는 모든 영화에서 언제나 지구의 위기는 미국에 먼저 오고, 미국의 멸망이 주축이 된다. '좋은 것도 미국 먼저, 나쁜 것도 미국 먼저'는 공평함을 보여주기보다는 미국이 세계의 중심, 지구의 중심임을 재확인시켜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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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경고

 <반지의 제왕> 피터잭슨의 야심작. 사실 피터잭슨은 <반지의 제왕> 3부작을 작업하기에 앞서 <킹콩>을 먼저 계획하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에 <고질라> 등 몇몇 괴물 영화들을 작업하고 있던 회사는, 이를 보류시키고 피터잭슨에게 <반지의 제왕>을 맡긴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 엄청난 대작의 환타지 영화를 완성시켰고, 아카데미상까지 거머쥐었다. 이제 남은 것은, 그가 아주 어릴적 계획했던 <킹콩>을 만드는 일이다.

  9살때 피터잭슨은 티비에서 <킹콩>을 봤고, 저걸 영화로 꼭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3년 뒤 어머니의 코트털과 침대 등을 이용해 킹콩흉내를 내는 등 실제 작업에 임했으나 실패했다. 그리고 영화감독이 되어 환타지 3부작을 완성시킨 다음, 그의 컨디션이 최고조에 도달해있을 때, 또한 영화란 이렇게 만드는 것이구나, 하고 깨달았을 때, <킹콩> 작업에 다시 들어갔다.

  <괴물>을 만든 봉준호 감독도 그랬다. 어린시절 한강을 배경으로 괴물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번에 저는 꿈을 현실로 만들었습니다. 대략 이런 내용의 인터뷰 기사를 본 거 같은데, 당시 영화를 보기 전에 인터뷰 기사를 접했던지라, 에이 괴물은 무슨 괴물 하고 별거 아닌 또 고질라 같은 영화 나오겠지, 하고 속으로 생각했더랬다. 그런데. 정말. 대단한 영화가 나왔던게다. 일반적인 괴물영화와는 전혀 다른.



<반지의 제왕> 골룸과 <킹콩> 킹콩을 연기한 앤디 서키스.
(출생 : 1964년 영국, 수상 : 2004년 BFCA Awards 배우조합상( 이상 네이버인물검색 참조))

  피터잭슨의 <킹콩>도 그의 어린시절의 꿈을 현실로 바꾼 것이다. 그는 아마도 이 영화를 통해 성취감, 만족감을 얻었을테지만, 관객입장에서 바라본 나로서는 그냥 그런 영화였다. 킹콩의 섬세한 동작과 표정 하나하나 신경썼다는 것은 인정한다. 감독은 킹콩의 표정연기를 위하여, <반지의 제왕>의 골룸을 연기한 앤디 서키스를 불러 동물학자와 함께 르완다에 보내 고릴라를 연구하고 오도록 했다. 그냥 컴퓨터 기술로서 만들어낼 킹콩이 아니란 판단에서였다. 앤디 서키스는 그곳에서 온갖 고릴라의 울음소리와 행동을 연구하고, 자신의 몸으로, 목소리로 연기했다. 그리고 이에 컴퓨터 기술을 이용 덧씌우기를 함으로써 킹콩을 완성해 나갔다. 킹콩의 사랑녀 나오미 왓츠나 영웅 시나리오 작가 잭 드리스콜 등이 킹콩을 바라보듯 연기를 하기 위해서는 허공상태가 아닌 무언가가 필요했고, 앤디 서키스는 이를 충족시켜줬다.



* 왜 원주민들은 이 여자만 '골라서' 데려갔을까. 이뻐서, 아니면 여자라서, 것도 아니면 뭐. 그리고 왜 킹콩에게 바쳤을까. 제물일까. 장난감일까. 것도 아니면 뭐. 그리고 킹콩은 왜 얘를 살려뒀을까. 질문하지 말라니깐. 뇌 비워.

  영화감독 칼 던헴은 거리의 삼류 여배우 앤 대로우와 시나리오 작가, 그리고 기타 스텝들을 이끌고 지도상에 존재하지 않는 해골섬으로 향한다. 수억만년전의 고대 정글이 보존되어있는 해골섬을 발견하고 이곳에서 영화촬영을 하려는데, 난데 없이 나타난 원주민들로부터 습격을 받는다. 결국 여배우 앤 대로우를 그들에게 빼앗기고, 그녀는 킹콩에게 제물로 바쳐졌다. 킹콩은 그녀를 먹지 않고 바라본다. 장난감처럼 건드리고 쓰러지면 좋아하고 하는 꼴이 꼭 아기같다. 왜 원주민들이 그녀만 골라서 데려갔는지, 킹콩에게 왜 바쳤고, 킹콩이 왜 그녀를 살려뒀는지는 물음표다. 킹콩영화, 괴물영화에 이것저것 질문하고 의심하는건 고상하지 못한 감상법이다. 그저 그러면 그런가보다 하고 보고 있는 것이 최선이다. 질문은 삼가할 것.

 

* 아 저 불쌍하고 가련한 표정봐라. 너무나 인간적이다. 못생긴 귀여운 아이공룡둘리 보는 듯 하다.  이 킹콩 영화의 압권은 괴물의 섬세한 동작과 표정연기다.

   대개의 괴물영화, 공룡영화, 모험영화들이 그렇듯 꼭 문제아는 있기 마련이고, 문제아와 맞서 싸우는 동료가 존재하고, 영웅도 있기 마련이다. 또한 이쁜 여배우도 하나 있어야 하고, 이 여자를 둘러싼 갈등관계도 필수다. 한쪽에선 문제 일으키고 다른쪽에서 죽어라 냅다 뛴다. 마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쥬라기 공원>을 보는 듯하다. 배경도 그러하거니와 전체적으로 진행되는 줄거리도 비슷하다. 탐욕스런 인간의 욕심으로 희귀동물이 삶의 터전으로 옮겨져오게 되고 문제가 발생하는건, <쥬라기공원>이나 <에일리언>과 다르지 않다. 출연자 중 일부는 출연료에 만족하지 못하고 거액의 로또대박을 위해 또다른 꿍꿍이를 가지고 있다. 어느 곳에서나 희귀물 앞에는 돈이 존재한다. 희소가치가 클수록 돈이 되니까. 지구상 마지막 남은 킹콩이 당연히 돈이 안될리 없고, 얘를 데려와서 문제가 안될리도 없다. 괜히 자극해가지고는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든다.

 <킹콩>은 우리가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어드벤쳐 괴물영화의 시나리오를 벗어나지 못한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결국 군대가 동원되고 미사일과 총알을 퍼붓고 괴물을 쓰러뜨린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 처치법과는 완전히 다르다. 헐리우드 킹콩은 절대 헐리우드 규칙을 깨지 않는다. 이쁜 여자 위해 내 몸 다 바쳐 방패막이하고, 스스로 몸을 떨구는 킹콩은, 영화 속 누군가의 말처럼 군인이 죽인 게 아니라 이쁜 여배우가 죽인 거다. 괜히 나타나가지고는. 그런데, 나오미 왓츠, 대사가 거의 없다. 꼭 나오미 왓츠가 아니어도 상관없지 싶은데. 뻔한 괴물영화지만 뻔한 괴물영화를 좋아한다면 원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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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고독 2007-02-25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영화 재미있게 보았답니다 ^^ 저도 강추~~

마늘빵 2007-02-25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무난하게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영화죠. 킹콩이 꽤 귀여웠어요. 불쌍하기도. 인간과 비슷한 행동방식과 표정에서 때문이겠죠. ^^
 
다시 만난 옛 벗 공자의 논어 Easy 고전 1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황희경 글, 정훈이 그림 / 삼성출판사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논술이 뜨기 시작한 뒤부터 사교육계의 논술강사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타 과목에 비해 논술강사들이 대접받는 이유는, 국어나 영어, 사회 등등의 교과목의 경우 학교와 학원이 크게 다를 바 없지만, 논술은 아무나 손댈 수가 없는 과목(?)이기 때문이다. 다방면에 해박한 지식과 사회를 보는 넓은 시선까지. 대개는 국문학을 전공하신 분들이 논술을 강의하지만, 요새는 철학전공자를 우대하는 추세다. 논술의 지문에 철학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창의적 사고를 할 수 있게 지도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부각된다.

  사교육계뿐 아니라 논술은 출판계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내노라하는 출판사들부터 이름없는 출판사들까지 모두가 논술교재를 편찬하느라 공력을 들이고 있다. 논술방법론부터 시작해서, 나는 논술로 대학갔다, 와 같은 자기체험서, 또 철학사의 주된 내용들을 중고등학생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조리한 대중철학서들 등 논술관련 책도 참으로 다양하다. 심지어는 일반 고전으로 분류되는 소설 띠지에도 몇년도 논술 출제 지문이라고 하면 더 잘 팔린다. '논술'자만 들어가면 먹고 들어가는게다.

  수많은 논술수험서(?)들 중에서 괜찮은 책을 발견했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에서 기획하고 내부 철학자들이  필진으로 참여해 만든 이지고전 시리즈가 그것인데, 어려운 철학 내용을 쉽게 풀어놨다. 아마 이정도도 중학생에겐 꽤나 어려울 것이고, 고등학생들 중에서도 이런 지문읽기에 익숙한 이들이나 무난하게 읽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보다 더 쉽게 풀어놓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지고전 시리즈에는 공자, 맹자, 노자, 플라톤, 마키아벨리, 이황, 모어, 이이, 정약용, 헤겔, 니체 등 동서양과 한국을 가리지 않고 내노라 하는 철학자들의 이론을 텍스트로 삼고 있다. 이 책은 공자의 <논어>에 대한 해설부터 인물로서의 공자, 제자들, 공부내용등을 살피고, 실제 <논어>의 대목들을 쉬운 한글로 풀이하고 해설을 덧붙임으로써 <논어>를 직접 경험할 수 있게 했다. 또 별책으로 본문에서 읽고 습득한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일종의 논술문제집을 만들어 공부할 수 있게 했다. 고전 따라잡기, 생각 넓히기, 논술 도전하기, 예시답안으로 구성된 이 별책부록(?)은 꽤 잘 만들어졌다. 공자의 <논어> 뿐 아니라 현대 사회문제, 또 다른 텍스트와 연계하여 의미있는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한 권 한 권 제대로 공부하면 각각의 철학자들에 관해서 꽤 깊이있는 지식과 안목을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까지 논술수험서 제작에 뛰어들어야하느냐는 비판도 있을 수 있겠지만, 잘 만든 수험서 한 권은 안읽히는 전문서보다 차라리 낫다.  사회와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를 열어놨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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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2-25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표방하는 이념적 선명성에 비해 학문적 성취에 관해서는 다소 회의적입니다.
특히, 제가 관심을 두고있는 동양철학 중 유학부문의 참여학자들의 학문적 퀄리티가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에서 발간한 유학부문 책들을 전에 제목에 끌려, 몇권 샀다가
모두 버린 적이 있답니다..


마늘빵 2007-02-25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제 생각에도 생각만큼 학문기여도나 업적이 크진 않아요. 참여자들도 많지 않은 듯 하고. 사회적인 영향력이나 목소리 면에서도 마찬가지죠. 이쪽 분야 사람들 아니면 아마 여기서 나오는 책을 볼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도 들고, 그만큼 봐줄만한 책을 만드는가에 대해서도 아직 바램에 못미치죠. 인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