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경고

참으로 힘겨운 영화. 좁아터진 영화관의 좌석과 좌석 사이의 공간을 뒤척이며 인내심을 요하는 영화다.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러닝타임 133분은 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에겐 너무나 길었고, 이를 참다못한 많은 관객들이 끊임없이 어둠과 탁한 공기로부터 벗어났다. 아마도 그들은 나같이 이 영화의 감독과 감독이 영화를 만들어나가는 방식에 대해 사전지식이 전무한 사람들이었을게다. 솔직히 매우 힘겨웠다. 기왕 자리에 앉은거 끝까지 봐야하지 않겠느냐, 또 다른 사람들의 관람을 방해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끝까지 함께했다.

"정말로 소박하게, 상대를 마주보는 기분자체를 소중히 한다는 느낌을 추억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라고 말하는 허우 샤오시엔 감독. <비정성시>와 <카페 뤼미에르>로 유명하다는데 이 감독의 수많은 작품 중 어떤 것도 본 적이 없으므로 나에겐 신인이나 다름없다. 간략히 감독에 대해 말하면, 대만 출생으로 1980년 <귀여운 여인>으로 데뷔해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인 <비정성시>와 방황하는 젊은연인의 초상 <밀레니엄 맘보>,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탄생 100년을 기념하는 <카페 뤼미에르> 등이 대표작으로 뽑힌다.

<쓰리타임즈>는 2005년 대만 금마장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2005년칸영화제 경쟁 부문. 2005년 부산 국제 영화제의 개막작이었다고 한다. 영화는 '사랑의 꿈' '자유의 꿈' '청춘의 꿈'이라는 세 가지 에피소드로 구성되어있으며, 각각 대만의 1911년, 1966년, 2005년의 시대를 뛰어넘는 시간적 배경설정으로 각기 다른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다.



* 어렵게 그녀를 찾아온 첸과 그를 보고 웃는 슈메이. 사랑은 그렇게 시작됐다.

첫번째, 1966년 가오슝. 사랑의 꿈. 당구장 종업원 슈메이는 이전의 종업원에게 온 편지를 보게되고, 휴가를 나와 당구장의 그녀를 찾아온 첸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이후에도 두 사람 사이에 편지가 오고 가고 첸은 슈메이가 떠난 당구장에서 그녀를 찾는다. 슈메이가 이곳을 떠나고 지나간 모든 경로를 추적하여 결국 어렵게 슈메이를 찾고, 그녀를 어렵게 찾아온 첸을 보고 그녀는 웃는다. 그건 사랑. 시간이 없어 함께 밥을 먹을 수 밖에 없는 두 사람, 함께 한 시간은 짧지만 충분히 서로를 확인할 수 있었다. 기차는 끊겼고, 버스만이 남은 어둠이 내린 인적없는 그곳에서 손을 잡는다.

* 양반신분의 지식인 창과 기녀 신분의 아메이. 날 사랑한다면 이곳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실 순 없나요.

두번째. 1911년 대도정. 자유의 꿈. 양반임에도 개화사상을 주장하는 창과 기녀 아메이의 사랑. 창은 축첩제를 반대하는 글을 신문에 쓰지만, 정작 그녀의 동생이 누군가의 아이를 배자 아이의 아버지와 혼인시키기 위해 자신의 돈을 내놓기까지 한다. 축첩제 폐지를 주장하지만 정작 첩을 들이는데 있어 도움을 준 것이다. 지식과 행동이 서로 반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그렸다. 대놓고 이야기하지 못하지만 자신을 데려가줬으면 하는 아메이와 그녀를 받아줄 수 없는 창. 두 사람의 대화는 말이 아닌 글을 통해 자막처리된다. 속내를 다 털어놓지 못하는 두 사람의 마음을 재밌는 방식으로 표현했다. 영화가 지루함에도 불구하고 중간중간 웃을 수 있는건 영화의 내용 때문이 아니라 형식미 때문이다.




* 도심을 가로지르는 오토바이와 무표정한 두 사람. 가는 길은 알고 있는가.

세번째. 2005년 타이페이. 청춘의 꿈. 1911과 1966년의 모습은 관객에게 숨을 턱 막히게 했다. 과거로 올라가면 갈수록 영화는 점점 지루해지고, 사람들은 떠나고 하품을 하지만, 2005년의 모습, 뻥 뚫린 아스팔트 도로 위로 질주하는 바람을 가르는 오토바이와 꼭껴안은 두 남녀의 모습은, 관객의 숨통을 틔여주었다. 간질병을 앓아 자신이 쓰러지면 어디로 데려가달라는 안내문까지 목에 걸고다니는 칭에게 반해버린 첸은 그녀의 사진을 찍으며 사랑을 나눈다. 애인이 있음에도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고, 잘못된 만남은 점점 엇갈려만 간다. 삶에 생기를 잃은 두 남녀의 방황하는 삶, 무엇을 향해가는지, 목적지는 있는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메뉴얼이 없는 이들은 하루하루의 삶이 힘겹다. 정체성의 상실, 방향성의 상실.

 "현대인의 연애와 옛날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의 연애는 다양한 의미로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 대비를 그리고 싶은 생각으로 찍은 것이 이 영화입니다. 지금은 다양한 연애의 세러모니나 이벤트가 있습니다만, 옛날에는 그런 일이 전혀 없었습니다. 정말로 소박하게 상대에게 마주보는 기분을 소중히 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연애의 형태였습니다. 그런 정서를 담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나는 최근이 되어서야 ‘지금의 시대를 어떻게 담을까’라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현재’를 그리는 것은 자신들과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객관화 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른바 현재라는 것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과거가 되어 가고 있으며 그 속도 또한 매우 빠르기 때문입니다. 나는 세 번째로 등장하는 에피소드 “청춘의 꿈”에서 현재를 다루었고, 그 전에 두 편의 에피소드에서 과거를 이야기 했기에 ‘현재가 어떤가’라는 것을 좀 더 쉽게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

  이 힘겹고 지루한 영화는 감독이 영화를 만든 의도를 읽고나면, 영화를 다 보고나면, 그제서야 서서히 빠져들게 된다. 러닝타임을 견디기 힘들었음에도 영화가 다 끝난 뒤 자리에서 일어설 수 없는건, 세 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다가오는 사랑의 느낌 때문이다. 그것은 내용보다는 형식에 맞추어져있다. 행동과 글로서 모든 것을 표현하고자 했으며, 말은 최소한으로 줄였다. 그나마도 '자유의 꿈'에서는 음성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자막으로 두 사람의 마음을 교환했다. 말하지 않아도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안다. 하지만 서로가 원하는대로 할 수 없음.도  알고 있다. '청춘의 꿈' 은 시끄러운 자동차 소리와 네온사인 불빛으로 화면을 가득 메우지만, 정작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만 귀청을 때리고 그들은 침묵하다. 침묵하다 툭툭 내뱉는 그 말들은 참참다못한 그들의 심정을 대변한다.

  사랑도 자유도 청춘도 결국 찾지 못했다. 사랑하지만 함께 할 수 없으며, 자유롭고 싶지만 자유로울 수 없으며, 나를 찾고 싶지만 내가 누군지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는 이들은, 계속해서 고민할 뿐이다. 아무 것도 얻은 것이 없으며,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결핍은 고민과 방황을 낳았다. 그리고 우리의 현재를 되돌아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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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26 16: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7-02-26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속닥님. 반가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