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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도와 떠도는 사원
김용규.김성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저자 김용규에 대한 관심은, 그가 지금까지 쓴 책들에게로 나를 몰아갔고, 결국 좋아하지 않는 환타지 장르의 소설까지 읽게 만들었다. 검색창에 '김용규' 라 쳤을 때 뜨는 <알도와 떠도는 사원>은 그의 다른 책들과는 성격이 너무도 달라, 동명이인이 아닌가 생각했었다. 그러나 분명 저자 이력을 확인해보니 그가 맞았고, 그렇다면 그는 철학서를 쓰면서, 곁다리로 환타지 소설가로서의 꿈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까지 이른다. 이런 의문은, 이 책의 부제를 통해 해결된다. 철학 환타지. 아마도 이 책이 단순한 환타지 소설이었다면 접하지 않게 되었거나 뒤늦게 접했을 것이다. 환타지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전자의 이유이고, 그것이 김용규의 작품이라는 것이 후자의 이유다. 하지만, '철학 환타지'라는 부제를 통해 두 가지 선택은 모두 날아갔고, 곧바로 이 책은 장바구니로 들어갔다.
저자후기를 통해 김용규는 이 책이 <소피의 세계>나 <장미의 이름>보다 더 유익하다는 과분한 찬사도 들었다고 언급하고 있는데, 그건 사실이다. 두 책을 모두 읽었고 두 책 모두 좋아하는 나로서는 감히 <알도와 떠도는 사원>을 동일선상에 올려놓고 싶다. <소피의 세계>는 철학소설이고, <장미의 이름>은 추리소설이고, <알도와 떠도는 사원>은 환타지 소설이라는 각각 다른 세 장르의 영역에 있지만, 세 책은 재미와 동시에 읽는 이의 지적욕구를 자극한다는 점에서 같다고 하겠다. <알도와 떠도는 사원>은 <장미의 이름>만큼이나 흥미진진하지는 않지만 그만큼 어렵지 않고, <소피의 세계>만큼이나 체계적이지는 않지만 그만큼 장황하지 않다. 쉽게 읽히면서 많은 철학지식을 동원하지 않고도 윤리학과 인식론의 핵심적인 고민들을 안겨주고 적절한 지식을 선사해준다. 동시에 그리 두껍지 않아 마음만 먹으면 첫장을 열면서 마지막장을 닫을 수 있다.
어느날 갑자기 등장해 자신의 영역을 서서히 굳혀가고 있는 철학자 김용규가 궁금하다.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경험들을 했길래 이런 책을 쓸 수 있는걸까. 그가 지금까지 쓴 책이라고 해봐야 철학통조림 시리즈와 이 책이 다이지만, 또 그것이 철학사상서가 아니라 청소년 책이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란 생각이다. <알도와 떠도는 사원>이 나오기 위해서는, 소설의 요건을 갖추어야 하고, 해박하고 깊이있는 철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그 밖에 등장하는 물리학, 생물학 등등의 지식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 어느 하나 만족시키기 어려운데 이 모든 것을 조합해 제대로 조리한 그가 대단해보인다. 그는 전공인 철학 뿐 아니라 참으로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많은 지식을 섭렵하고 있었으며, 그 모든 지식들과 탁월한 글솜씨가 조화를 이루어 이와 같은 작품이 탄생했다. 동생인 김성규 씨와의 공동작인데, 이력으로 추정컨대 김용규는 내용을 담당하고, 김성규는 이것을 소설로 다듬는 작업을 담당하지 않았을까 싶다.
한때 두 권으로 나뉘어 선보였던 이 책이 주목받지 못했던 것은 지금의 출판시장의 풍토와 그때는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다양하고 재밌는 책들이 많이 나오면서 철학대중서를 비롯한 인문대중서들이 관심을 끌기 시작했고,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이 책은 껍질을 바꾸고 다시 나올 수 있었으며, 대중의 관심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김용규의 통조림 시리즈가 인기를 끌지 못했다면, 그가 주목받지 못했다면, 어쩌면 이 책도 다시 한번 묻혀졌을지 모른다. 통조림 시리즈는 김용규에 대한 관심으로 이끌었고, 김용규에 대한 관심은 그의 책을 다 사보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결국 이 책도 그러한 맥락에서 접한 것이다.
이 책은 단순히 새로운 형태의 환타지 소설이 아니다. 이는 저자의 초판후기를 통해 확실히 드러난다. 김용규는 분명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어떤 메세지를 전달하고 싶었던게다. 그 메세지 전달이 효과적이려면 쉽게 읽히는 소설이어야 할 것이고, 환타지 장르는 철학과 과학 지식을 적절히 조리하기 좋은 그릇이었을 것이다.
"오늘날은 전문인의 시대이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전문인이 되려고 노력하며 또한 되어야만 한다. 전문인이란 기술자, 과학자, 관리자, 경영자, 의사, 법률가, 디자이너 등과 같이 도구적 지식을 가진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의 힘은 실용성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문인의 활동은 그 본성상 개인적이며 합목적적이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지식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도덕적, 거시적 전망이 요구되지 않는다. 여기에 이들이 중심이 되는 현대 사회의 위험성이 잠재되어 있다.
문제는 또한 우리의 삶이다. ... 중략 ... 우리의 삶과 사회를 의미 있고 풍요롭게 하는 다양하고도 숭고한 인류 보편적 가치들 대신에 실용성, 경제성이라는 획일적 가치만을 추구하면서, 기계적이고도 과도한 경쟁 체계 속에 살아야 하는 오늘날 청소년들과 젊은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황폐해지고 있다. 이들의 삶은 마치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열차에 오른 것과 같이 불안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진정한 해결책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해결의 열쇠는 지식인이라는 말에 있다. 지식인이란 인류 보편적 가치를 인식하고 그것을 수호하며 사회에 구현하려는 의무를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자이다. 때문에 이들의 사고와 행동은 초개인적이고도 합리적이며 도덕적이고 또한 인간적이어야 한다. 이러한 사고와 행동에 의해서만 사회가 발전하며 개인의 삶이 풍요로워진다. 때문에 우리 모두는 단순한 전문인이 아니라 지식인이 되기 위해 힘써야 한다.
지식인이 되기 위한 첫걸음은 '보편적 주제'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시작한다. ... 중략 ...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바르고도 바람직한 지식과 견해를 가져야만 하는데, 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곧 사상들이다. ... 중략 ...
<알도 시리즈>는 정치, 경제, 사회, 과학, 문화, 예술, 교육, 철학, 종교 등등 각 분야에 관한 다양한 사상들을 소설 형식에 담아서 독자들이 건전한 지식인으로서 가져야 할 각종 지식들을 흥미롭고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풍요롭고 의미있는 삶을 살기 위한 삶의 지침서이며, 전문인이 아닌 지식인이 되기 위한 단초를 마련하는 책이다. 중요한건 여기 나오는 철학사와 과학사의 지식이 아니라 그것을 토대로 사유하는 나의 삶이다. 이 책은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려주고 있다. 어떻게 하면 나의 풍요롭고 의미있는 삶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가, 하는 고민은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품고 있는 문제다. 한참 진로의 고민에 빠져있는 청소년들 뿐만 아니라 삶의 나침반 없이 하루하루 반복되는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유용'하다. 철학은, 매우 실용적인 학문이다. 다만 사람들은 철학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으로 '유용하게' 다루지 못할 뿐이다. 아직까지 철학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혀있는 이들은 이 책을 '읽으며' 재미를 느끼고, 이 책을 '읽은 후에' 사색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철학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철학을 사랑하게 되면 다음은 나의 삶이다.
* <지식을 위한 철학 통조림> 두 권과 <도덕을 위한 철학 통조림> 두 권을 먼저 읽고, 이 책을 접한다면 더욱 수월하게, 유익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