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콘서트 1 - 노자의 <도덕경>에서 마르크스의 <자본론>까지 위대한 사상가 10인과 함께하는 철학의 대향연 철학 콘서트 1
황광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까지 읽은 어떤 철학 대중서보다도 '안' 철학적이고, '안' 어려운 책이다. 오늘은,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이 천시받는 동시에 인기를 끄는 기이한 현상을 바라보고 있다. 인문학의 위기가 부풀려진 것이니, 거짓된 것이니, 인문학을 하는 이들이 게으르기 때문에 생긴 결과이니  '인문학의 위기'의 실제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어쨌든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이 천대받는건 명백한 현실이다. 하지만 동시에 현실의 삶과는 달리, 출판시장에서는 철학이 인기를 끌고 있다. 아마도 논술열풍 때문이렸다. 이렇게라도나마 사람들이 인문학 지식과 인문학적 사유에 관심을 갖는건 참으로 "기분이. 좋~습니다."

  얼마전 황지우 시인이 문화부장관에 내정되었다는 깜짝 기사를 봤는데 지금은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다. 어제 얼핏 버스 라디오에서 문화부장관에 누가 내정되었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는 아닌 것 같았다. <철학콘서트>는 황지우 시인의 동생인 황광우 씨가 쓴 책이다. 권두문을 작성한 문학평론가 정과리는 "서양 사람이라면 한 시대의 의식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고 흔히 간주되곤 하는 철학자, 예술가, 행동가가 한 가족 안에 모여 있다는 데에 경탄을 표할지도 모른다"고 말하며, 황광우 씨의 첫째 형은 스님, 둘째 형은 시인, 그는 노동운동가라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 정말 각각의 다른 세 분야에 머물며 도를 닦는 이 형제들이 대단해보인다.

  저자 황광우는 고교 시절 반독재 시위를 주도하다 구속, 제적되었고, 검정고시로 서울대 사회과학대에 입학했으며, 1980년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제적을 당하며 공장에 들어가 노동자로 살았다. 1998년 서울대 경제학과를 뒤늦은 나이에 졸업했고, 2002년 민주노동당 중앙연수원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광주 '다산학원'에서 제자들과 고전을 공부 중에 있다한다.

  참으로 굴곡이 많은 삶을 살았다. 철학을 전공하지도 않았으면서 철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깊이있는 자기성찰이 가능했던 것은, 그가 탐독한 고전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닐까, 몸으로 부딪히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래서 그런지 <철학콘서트>는 노동을 중심으로 쓰여졌다. 대중적인 철학책도 나름 글쓴이의 관점에 따라서 다르게 쓰여진다. 철학사의 객관적인 지식을 쉽게 전달하는 책이 있는가 하면, 나의 주관에 따라 대상철학자를 선정하고 나의 주관에 따라 그들을 해석하는 책도 있다. 황광우의 <철학콘서트>는 후자에 속한다. 고로 이것이 철학사에 등장하는 철학자에 대한 객관적 시각이다, 라고 생각하지는 말 것. 철학자 선정에서부터 그에 대한 해석까지 모든 것은 황광우 개인의 주관에 따라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렇다하여 이 책이 잘못 쓰여졌다는 말은 아니다. 소위 '객관적'이라 칭하는 그것들도 실상 객관적일수 없으며, 단지 많은 이들의 평가와 해석이 주로 그렇다, 라는 의미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이 책에서 황광우는 흔히 철학사에서 다루지 않는 이들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고작 10명 밖에 안되는 이들을 다루면서 철학사에서 제외한 '철학자'를 집어넣은 이유는, 이 책을 읽어보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그것은 저자 황광우의 삶의 이력을 타고 들어간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공자와 노자, 예수와 석가, 토마스모어와 애덤스미스, 퇴계이황, 마르크스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한 이들을 담아냈다. 서양 고대철학의 핵심인물들과 종교계의 성인들, 철학자로 다루지 않는 토마스모어와 애덤스미스, 한국철학의 거장 이황, 여기 다룬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 마르크스까지. '차례'만 보고서는 대상을 선정한 기준을 알 수 없다. 하지만 내용을 읽으면 이해된다.

  이 책이 다른 철학대중서들과 다른 독특한 점 중 하나는, 서로 잘 비교하지 않는 이들을 끌어다 비교한다는 것이다.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와 플라톤의 이상국가를 비교하고, 애덤 스미스와 플라톤, 애덤 스미스와 한비자, 애덤 스미스와 맹자를 비교한다. 순서도 어떤 기준인지 알 수가 없다. 소크라테스에서 플라톤으로 이어지는가 하면, 석가가 나오고 공자가 나오고 예수가 나온다. 그러다 퇴계가 나오고 다시 토마스 모어가 나오고, 끝에가선 마르크스 이후에 노자가 나온다. 나름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토머스모어에서 애덤스미스, 마르크스, 노자로 이어지는 부분은 그럭저럭 이해가 되지만, 예수에서 퇴계로 이어지는 부분은 아무런 맥락이 보이지 않는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난 지금, 저자 황광우가 독자들에게 말하고자 했던 것은 철학사를 좀더 쉽게 풀어 설명하자는 것이 아니라, 철학자들을 통해 우리의 삶을 바라보기 위한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는 철학자들을 빌어 노동을 이야기하고, 삶을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가장 황광우의 삶과 어우러지는 철학자가 있다면 마르크스가 될 것이요, 다음과 같은 문구는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대표하여 드러내준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의식이 자신의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인간의 사회적 존재가 자신의 의식을 결정한다." (p251-252) (마르크스 <정치 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中)

  황광우는 마르크스 이전에 애덤 스미스 편에서 이미 이와 비슷한 말을 한 바 있다. "인간의 의식이 그의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가 그의 의식을 결정한다. 인간이 어떤 사회 관계 속에서 살아 가느냐에 따라 그의 의식이 결정되는 것이다."라고. 이 부분은 애덤 스미스와 한비자를 비교하며 설명하던 중 <한비자>를 인용하며 첨언한 말이다. 마르크스와 유사한 이 발언이 애덤스미스와 한비자를 비교하는 부분에서 나왔다는 것이 재밌다.

  황광우가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우리에게 콘서트를 선사했으니 이제 독자들이 저자와의 대화를 통해 삶으로 들어가는 길만 남았다. 첫 장을 읽는 순간 당신은 이 콘서트가 끝날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설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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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21 18: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7-04-22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어떻게 황광우씨를 아시는거에요? 님은 유명인이랑 친분이 있나봐요. 담에 나도 껴줘요. :)

eachtogether 2007-05-01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 제가 알기로는 황광우 아저씬 감옥에 안 가셨다 하신 것 같은데,,

웬지 민주화 운동 한 사람이라면 감옥에 갔다 왔다는 생각을 가지신 것 같아서 몇 글자 끄적입니다. 물론 제 기억이 잘못됐을 수도 있지만요..

마늘빵 2007-05-01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감옥에 갔다는 기록은 못 본 거 같습니다.
(이치투게더님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