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황하지 않고 웃으면서 아들 성교육 하는 법 - 성교육 전문가 엄마가 들려주는 43가지 아들 교육법
손경이 지음 / 다산에듀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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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칼은 유용한 도구가 되기도 하고 위험한 무기가 되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아이에게 칼 쓰는 법을 가르치면서 사람을 헤쳐서는 안 된다는 원칙도 함께 가르치죠. 성 지식 역시 올바르게 사용하는 법을 함께 가르쳐야 합니다. 그게 바로 자기결정권 교육입니다. 자기 몸은 소중하고 그 주인으로서 몸에 대한 결정권이 자기에게 있듯 상대방의 몸에 대해서도 존중하는 태도 말입니다.

60-61
이것도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원칙대로 생각하면 어려운 문제가 아니에요. 몸의 주인은 자신이라는 거. 따라서 다른 사람이나 자신의 몸을 만지고자 할 때는 내 허락을 받아야 하듯이, 나도 다른 사람의 몸을 만지고자 할 때는 다른 사람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거. 이렇게 하는 연습을 아이에게 계속 시켜야 해요.

62
남녀가 키스할 때 여자가 허락하지도 않았는데 대뜸 가슴에 손을 올리는 남자들이 있어요. 또 여자를 벽에 밀치고 강제로 키스하려는 남자들도 많고요. 이게 다 어릴 때부터 상대방의 의사를 확인하고 자신의 성적 욕구를 조절하는 연습을 하지 않아서 그래요. 세 살 버릇 여든 갑니다. 스킨십 예절도 마찬가지입니다.

89
제가 여러 번 강조하는데, 이 점을 꼭 명심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성교육이라는 것은 단순히 성 지식을 알려 주는 교육 이상이라는 점이에요. 어떤 태도, 어떤 주관을 가지고 살아가게 할 것인가 하는 교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18
성희롱성 질문을 한다면 그 아이는 잘못 배운 거예요. 바로잡아 주어야 해요. 그런데 사실 이런 아이들은 성적인 주제의 대화를 회피하는 집안 환경에서 자란 경우가 더 많아요. 그래서 부모에게 이런 질문을 하기보다는 집 밖에서 만만하다고 판단되는 상대에게 그런 질문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외부에서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부모님 자신도 반성해 보시고 아이와 함께 교육을 받으시면 좋겠습니다.

164
우리 사회는 어린 피해자들에게까지 "너 왜 그 상황에서 소리도 안 지르고 가만히 있었니?"하고 추궁한단 말이죠. 그러면 피해자는 ‘아, 내가 잘못해서 당한 거구나.’하고 자책하게 되고 더욱 움츠려들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전형적인 2차 피해입니다.

238
9대 1 법칙이라는 것은 상대에게 키스를 하고 싶을 때 90프로 만큼만 다가갔다가 멈추는 겁니다. 나머지 10퍼센트만큼의 거리는? 그것은 상대의 판단에 맡겨두는 것이죠. 상대가 그 거리를 다가오기를 선택하면 키스에 동의한 것이고, 다가오지 않으면 키스에 동의하지 않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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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
최승범 지음 / 생각의힘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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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일생을 통틀어 성욕이 가장 충만한 시기라더니, 아무 맥락 없이 대뜸 "섹스!"를 외치는 녀석들도 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욕망이지만 저런 방식으로 터져 나오는 건 안타깝다. 아직도 많은 교실에 ‘10분 더 공부하면 마누라 얼굴이 바뀐다.’처럼 여성을 성취의 보상으로 여기는 급훈이 걸려 있다. 이래도 괜찮은 걸까.

8
다른 남자를 폭력적으로 대하거나 다른 여자를 성적으로 대상화하거나, 둘 중 하나다. 교실에서는 어디서 배웠는지 모를 상스러운 단어, ‘따먹다’가 수시로 귀에 꽂힌다. 아이들은 남성성의 본질이 거친 행동과 저속한 말에 있는 양 ‘수컷다움’을 경쟁적으로 전시한다.

9
교육부가 2년 동안 6억을 쏟아부어 만들고 2015년 3월에 배포한 ‘국가 수준의 학교 성교육 표준안’에는 "데이트 비용을 많이 사용하게 되는 남성 입장에서는 여성에게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원하기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원치 않는 데이트 성폭력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망언이 담겨 있다. 성평등 감수성을 길러주기는커녕 성폭력과 성역할에 대한 왜곡된 통념을 조장하는 지침서다.

42-43
머리로 안다고 해서 손발이 자동으로 따라오지는 않는다. 관건은 도덕관념을 행동으로 발현하는 방법을 몸으로 익히는 것이다. 선의와 양심에만 의존하는 것은 불안하다. 그렇다고 강제력이 투입되면 왜곡된 진심과 얄팍한 가식이 번창한다. 규약의 내용은 새롭거나 특별하지 않았다. 성장 과정에서 한 번쯤 들어보았을 말들, 머릿속에 규범으로는 있으나 행동으로 옮기지 않을 만한 것들이었다. 그런 내용들이 활자가 되고 반복되자 심리적 구속력을 발휘했다.

47
(가해자들은) 여론이 자신에게 불리하다 싶으면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받아들였다면 미안하다는 식의 조건부 면피용 사과를 한다. 사법 처벌이 임박하면 돌연 태도를 바꿔 물타기를 시도한다. 옷차림, 입술 색깔, 대인관계 등 별별 트집을 다 잡는다. 소속 집단에 과한 저에성을 부여한 이들이 ‘00망신’을 들먹이며 달라붙고, 전선 고착화에 고무된 가해자는 협박을 반쯤 섞어 합의를 시도한다. 중년 남성들로 구성된 재판부는 가해자 쪽 주장을 대거 인용해 경미한 처벌을 내린다. 간혹 재판부가 압박을 느낄 정도로 여론이 분노하면 그제야 일반 시민들도 납득 가능한 판결이 내려진다.
그러나 이런 지난한 과정조차 피해자가 용기를 내야 가능한 일이다. 조사 과정에서 생각하기도 싫을 끔찍한 순간을 끝없이 소환해야 하고, 때로는 조사관에게 2차 가해를 당하기도 한다. 가해자를 직접 대면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사건이 조직 내부에서 발생했을 경우 고립되는 건 보통 피해자 쪽이다.

58
당시의 깜냥으로 남자가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걸 이해할 수 없었던 나는 여자도 아닌데 웬 페미니즘이냐는 질문을 던졌다. 후배가 답했다.
"남자니까 잘 모르잖아요. 배워야죠."
각성이 일었다. 후배의 말을 듣고 보니 나도 배워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르니까 배워야죠’ 그 말이 한동안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맞는 말이었다. 남의 일이라 무심할 수 있지만 남의 일이라 배울 수도 있었다.

160
인간애가 있는 학생은 페미니즘도 쭉쭉 빨아들인다. 레베카 솔닛은 그의 책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에서 흑인 남성이 백인 남성보다 페미니즘을 잘 이해한다고 말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차별도 받아본 사람이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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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알아서 할게요 - 내가 아이를 갖지 않은 이유
시모주 아키코 지음, 유나현 옮김 / 니들북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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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
요즘 일본 사회에서 자주 쓰이는 말로 표현하자면 ‘촌탁(사전적 의미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미루어 헤어리는 것이지만, 최근 상대방을 과하게 의식하는 데에서 오는 폐해를 뜻하는 말로 쓰이고 있음)’이다. 자신의 생각은 다른데 남을 지나치게 의식하니 눈치가 보여 견딜 수 없다. 결국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억누르고 남들의 생각을 따른다. 나중에는 자신의 생각을 끝까지 관철한 사람을 깎아내려 자기들과 똑같이 만들어야 직성이 풀린다.

20-21
난감하게도 국가는 수년간 소자화(일본에서 저출산을 표현하는 말)를 이유로 아이 갖기를 권장하고 있다. 이를 위해 3세대 동거를 제안하거나 아이가 있는 가족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무언의 압력이 아닌 유언의 압력을 가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가 개인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에게는 스스로 선택한 인생을 영위할 권리가 있다.

79
"아이는 아직 없나요?"
이 무슨 실례되는 말인가. 왜 그렇게 남 걱정을 할까. 예의에 어긋나는 말이라는 인식은커녕 오히려 아이의 유무를 묻는 질문이 일종의 인사말이 돼버렸다.

79
아이를 갖는 데 따르는 책임은 무겁다. 자신의 인생이 아니라 아이의 인생까지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 없이 아이를 낳는 사람은 아이를 자신의 분신이나 일부로 간주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이를 자신의 소유물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내 배 아파서 낳고 기른 아이라 해도 나와는 다른 하나의 개체이며 별개의 인간이다.

208-209
나는 아이 낳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부모 될 사람 하나하나가 아이를 사회로부터 맡아 기른다는 자각을 가지고 성인이 되기까지 책임지기를 바랄 뿐이다. 아이가 있든 없든, 결혼을 하든 안 하든 각자의 인생을 존중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며 살아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223
결국 사람의 마지막에는 누구나 예외 없이 혼자이다. 주위 사람들의 기억에 얼마나 남아 있는가 하는 것은 죽은 사람을 둘러싼 살아 있는 사람들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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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폭력 - 영혼을 파괴하는 폭력에 맞서는 법
퍼트리샤 에반스 지음, 이강혜 옮김 / 북바이북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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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41
언어폭력은 그 타고난 특성상 피해자의 현실 인식력을 손상시키고, 그들의 경험을 별 것 아닌 것으로 축소한다. 인터뷰에 응한 여성 중 자신이 겪고 있는 일이 언어폭력이라는 사실을 인지한 사람은 거의 없었고, 따라서 자신이 피해자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들은 그저 뭔가 잘못됐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131
언어폭력이란 심리적 폭력의 일부로서, 타인을 공격하거나 타인에게 상처주는 말, 상대에게 틀린 것을 믿게 하는 말, 또는 상대방을 사실과 다르게 묘사하는 모든 말을 아우른다.

153
농담을 가장한 언어폭력은 인터뷰에 응한 모든 여성이 빠짐없이 경험한 언어폭력의 유형이다. 모욕적인 언사를 내뱉든, 재치와 품위로 감추든 농담을 가장하여 배우자를 깎아내리는 방법을 생각해내려면 머리회전이 빨라야 한다. 이러한 종류의 학대는 농담과 달리 즐거움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파트너에게 깊은 상처를 주고, 그녀의 가장 아픈 부분을 건드리며, 가해자만이 승리에 도취된 표정을 짓는다. 농담을 가장한 언어폭력은 다른 사람의 눈에도 전혀 재미있어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199
알지 못하는 것은 나쁘다. 그러나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은 더 나쁘다.(나이지리아 속담)

210
사람은 관계 안에서 존중받고 안전하다고 느껴야 한다. 두 사람 사이에 존중과 선의가 있다면 다른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착수할 수 있다. 그러나 통제력에 대한 가해자의 숨은 욕구와 언어폭력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관계는 발전할 수 없다. 반대로 언어폭력이 사라지면 서로 간의 희망과 두려움, 바라는 것, 필요한 것, 기대하는 것 등에 대해 터놓고 의논하려는 마음이 생긴다.

229
언어폭력이 피해자의 경계선을 침해한 두 번째 경우를 보자. 상대방이 당신에게 욕을 하거나 비하하는 명칭으로 부를 경우, 당신은 경계선을 침해당한 것이다. 당신은 가해자의 입장에서 본 대로 정의된다. 스스로 만들고 정의한 경계선, 즉 당신의 개성이 존재하지 않는 양 취급된다. 이것은 명백한 폭력이다.

257
가해자가 자신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으며 당신이 모두 지어낸 것이라고 주장하는 경우, 그가 한 말 때문에 기분이 나쁘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려야 할까? 핵심은 이것이다. 이미 다 지나간 다음에 "그때..."라면서 말을 꺼내지 말고, 그가 불쾌한 말을 했을 때 즉시 "그만해"라고 딱 잘라 말한다.

258
언어폭력으로 인해 상처나 고통, 혼란을 느낀다면 가해자를 이해하려고 하거나 그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는지 생각하느라 시간을 쓰지 마라. 불쾌함을 느꼈다면, 그런 행동을 멈추기를 바라는 당신의 마음을 확실하게 알리는 방향으로 대응하라.

301
가해자의 부인은 이상적인 자기 이미지와 폭력적으로 행동하려는 충동이 충돌하면서 발생한다. 이러한 현실 부정은 이상적인 자기 이미지가 깨져 정체성이 위기에 직면하는 것을 피하기 위한 방어 기제다. 자신이 한 행동을 인정한다면 정체성이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언어폭력 가해자들은 상대방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지 않는다.
"긴정한 강자는 약점을 인정할 줄 안다.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실수를 인정한다. 자신이 약하고 열등하다고 느끼는 사람들만이 약점과 실수를 인정하지 못한다."

403
피해 당사자가 폭력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피해자를 보호해야 하는 사람들이 언어폭력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사실도 큰 문제다. 실제로 언어폭력의 은밀하고도 교묘한 특성을 알지 못하는 일부 치료사로 인해 두 번 상처받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경찰이나 사법 관계자도 예외는 아니다. 가해자의 ‘가면’ 속 모습을 알아차리지 못해 경찰이나 사법 관계자가 폭력을 단순한 ‘사랑싸움’이나 ‘집안싸움’으로 규정하고 피해자를 다시 위험 속으로 몰아넣은 경우도 있었다.(역자 후기)

413
폭력을 알아차려야 할 때는 물론 그것이 발생한 그 순간입니다. 그러나 은밀한 학대는 사람의 분별력을 극도로 흐려놓을 수 있습니다. 상대가 당신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고서 농담이었다고 주장한다면, 당신은 학대자와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상대가 당신의 감정에 귀 기울이려 하지 않거나 당신을 하찮은 사람처럼 대한다면 당신은 학대자와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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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없는 페미니즘 - 메갈리아부터 워마드까지
김익명 외 지음 / 이프북스(IFBOOKS)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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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메갈리아는 최악의 남성보다 더 최악인 여성이 됨으로써 세상의 불평등함을 보여주려는 전략으로 일관되게 행동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이런 전략을 이해하지 못했고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으로 일베와 같은 집단이라고 판단했다.

54-55
1980~90년대의 언어와 21세기 온라인의 언어는 다르다. 우리는 21세기 온라인 남성들과 싸우며 그들과 같은 수위의 언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남성들의 언어는 보지 않은 채 우리의 언어만 보며 혐오세력이라 비난한다. 나는 우리세대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68
여성 혐오 콘텐츠를 생산하는 사람을 향해 어떻게 정치적으로 올바른 말만 하겠는가! 앞뒤 내용이 어떻든 간에 혐오는 또 다른 혐오를 낳을 뿐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는 매번 나를 폭발시켰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양비론을 주장하는 건 기울어짐을 찬성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128
애초에 남성들의 여혐 단어가 20년이나 온라인 공간을 지배할 동안 혐오표현의 규제는 한 번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여성들이 혐오 발화를 미러링하기 시작한 시점에서야 혐오적 표현에 대한 규제가 논의되고 있다. 그것이 미러링 전략의 의미이고 성과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메갈리아 운동의 핵심은 바로 남성들의 언어를 빼앗아 되갚아주는 것이었다. 온건한 글을 쓰는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가 널리 퍼지고 힘을 받는 것도 이러한 운동의 영향이라는 것 역시 부정하기 힘들다. 메갈리아가 생기고 나자 각종 뉴스에서는 ‘여혐, 남혐 모두 문제’라는 식의 기사가 올라왔다. 여성 혐오 단어들이 온라인을 지배하는 동안 한 번도 된장녀나 김치녀라는 단어가 문제라는 보도가 없었는데, 여성들이 혐오 발화를 미러링하는 순간부터 혐오가 사회적 문제가 된 것이다.

160-161
보지를 달고 태어난 사람에게 억압을 가하는 것이 가부장제이다. 이 여성들의 축적된 경험을 지우면 가부장제가 가해온 억압의 실체를 밝히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여성이 여성이기에 겪어야 했던 피해경험을 발화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과연 페미니스트인가? 끝내 이 사회에서 살아 남으려는 여성들이 감수하고 있는 공포와 불안을 입막음하는 것이 페미니스트인가? 기본적으로 여성들은 여성들만의 공간에 들어온 생물학적 남성을 경계한다. 이것이 이 사회에서 살아남은 여성들의 일반화된 태도다. 특히 해당 여성들이 남성에 의한 성폭력 경험이 있다면 이들이 남성들에게 갖는 불안과 공포를 존중해야 한다.

161
여자대학 학생은 스스로 어떤 성별로 정체화하고 있는가와 무관하게 여자라서 남성으로부터 폭력을 당할 수 있다. 자신의 성별 권력을 이용해 여자대학 학생에게 폭력을 가할 외부인 남성은 상대가 보지를 달고 태어난 여자이자 여성이라는 하위 계급이기 때문에 공격한다. 그만큼 이 사회에서 여성은 여자라는 성별로 식별되는 순간 남성에게 폭력을 당할 수 있지만 그 역은 성립되지 않는다.

175
혐오의 재생산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텍스트를 이용한 미러링은 그야말로 온건한 운동방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의 미러링은 데이트폭력과 성폭력, 강간, 남편 폭력, 직장 내 성차별 등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여남의 관계를 뒤집어 남성들에게 이를 실천하는 것이 아니다. 미러링은 그저 텍스트 차원에서 실존하지 않는 현실을 그려낼 뿐이다. 미러링은 혐오를 재생산한다고 비난하지만, 그 혐오는 변화를 위한 필연적 부산물이다.

183
운동은 그저 ‘좋은 일’을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무언가이다. 공적인 목적을 위해 물건을 팔고 얼마간 기부를 한다거나, 취미로 좋은 일을 한다거나, 나도 좋고 너도 좋은 일을 한다거나, 그런 게 아니었다. 오로지 본인이 생각하는 옳음과 정의에 그 삶을 투신하는, 남들이 다 틀리다 말해도 스스로의 기준을 세워 나아가는 숭고한 힘이었다.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는 마음들을 겹겹이 쌓고 또 쌓아 만들어가는 어떤 길이었다. 그렇기에 운동은 운동으로 남아야 가장 강력하다. 잠시 타협하면 더 빨리 갈 수 있을 것 같지만, 결코 아니다. 운동에 있어 어떤 전문지식보다 중요한 것은 신념이라는 것을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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