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도 11월에는
한스 에리히 노삭 지음, 김창활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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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후에야 나는 알았다. 그가 얼마나 소심하고 부끄러워 했는지를. 그때 나는 알지 못했다. 남자들은 모두 충동적이고 저돌적이며 막무가내인 줄로만 알았다. 나는 그와 같은 남자들이 있는 줄은 알지 못했다. 그는 내가 아는 어떤 남자들보다도 섬세하고 부드러웠다. 지금에서야 나는 그것을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그를 사랑하고 있었는지를. 그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었는지를..."-147쪽

"행복했던 기억은 없었다. 행복했다고 느껴지는 기억의 빈 공간이 있긴 했지만. 정작 그 공간을 채우려 들면 어느 하나 거기에 맞는 게 없었다. 그것이 정말로 내가 체험한 사실인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면서도 그 빈 공간은 여전히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2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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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달 2005-12-20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늦어도 한참 늦었삼. 1월이 다 되어가는 이 마당에 끙 -_ -

마늘빵 2005-12-20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ㅡㅡ; 왜 아침부터 시비삼. 내 마음은 11월이라오. ㅋㅋㅋ 머해? 심심하지? 나랑 놀자.

진/우맘 2006-08-31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59p 밑줄긋기를 하고 내려와보니, 역시나, 미리 밑줄이 그어져 있네요.
 
도덕교육의 파시즘 - 노예도덕을 넘어서 프런티어21 1
김상봉 지음 / 길(도서출판) / 2005년 10월
품절


"도덕교과는 사실이 아니라 당위를 가르쳐야 하는 교과인 까닭에 문제가 되는 사실에 대해서는 학문적으로 거의 아무 가르침을 주지 못하면서 무슨 말을 하든 습관적으로 반드시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식으로 말을 하게 된다."(머리말)-9쪽

"한국의 도덕교육은 착한 노예를 기르기 위한 것이었을 뿐, 한번도 긍지 높은 자유인을 기르기 위한 도덕교육이었던 적이 없었따. 노예가 아무리 착하다 하더라도, 노예적 삶이란 결코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이상일 수 없다. 우리는 그것이 우리 시대의 엄연한 시대 정신이라 믿는다. 인간을 자유인으로 만들지 않으면서 오직 착하게만 만들려는 것은 언제나 불온한 시도이다. 도덕이 아무리 숭고한 옷을 걸치고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것이 인간을 정신적으로 노예화하는 장치라면 우리는 그런 도덕을 단호히 거부하지 않으면 안된다. 인간성의 자유로운 자기실현에 앞서는 어떤 도덕도 정당성을 가질 수가 없다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첫번째 가치인 것이다."(머리말)-13쪽

"인간의 도덕적 능력이란 이처럼 실현되어야 할 과제로서의 인간성, 곧 당위로서의 인간성의 이상을 스스로 정립하고 스스로 추구하며, 스스로 실현할 수 있는 능력에 다름 아니다."-23쪽

"법은 명료하고 효율적이기는 하지만 복종하는 사람들의 자발성을 이끌어내지 못할 때에는 언제라도 시민의 저항에 직면할 위험을 안고 있다.
...중략...
그러므로 권력을 권리로 만들고 그 권력에 대한 복종을 의무로 만들기 위해서는 법의 구속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반드시 도덕적 훈육을 통하여 사람들을 세뇌하고 길들여 그들로 하여금 법을 통해 강제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권력에 복종하도록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게 사람들을 아예 도덕적 의무의 형태로 권력에 순종하도록 만드는 교육이 바로 한국의 도덕교육이다."
-28쪽

"자유인의 도덕은 주관적으로 자기에 대한 관심과 긍지 그리고 객관적으로는 자기를 위하여 좋은 것을 추구하는데서 시작되지만, 노예를 위한 도덕은 자기 아닌 타인을 위해 좋은 것, 즉 주인을 위하여 좋은 것을 강요하는 것에 존립한다. 그런데 한국의 도덕 교과서는 이 점에서 자유인의 도덕이 아니라 노예의 도덕을 가르치는 책이다."-34쪽

"첫째로 현실적으로 정착되어 있는 불평등한 사회관계에서 아래에 있는 사람이 지켜야 할 도덕뿐만 아니라 위에 있는 사람이 지켜야 할 도덕 역시 학생들이 배울 필요가 있다."
"둘째로 도덕교육은 사회적 약자에게 예절을 강요하는 만큼, 사회적 갖아의 폭력과 횡포에 대해 어떻게 자기를 지켜야 할지도 말해주어야 한다."-38-39쪽

"스스로 동의한 법에 복종하는 것은 자율성의 표현이지만 남이 제정한 자의적 법칙에 따르는 것은 노예적인 굴종일 뿐이다. 법은 오직 우리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일반의지의 표현일 때에만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것은 내가 동의할 수 없는 악법이요, 악법에 저항하는 것은 자유인의 긍지에 속하는 일이다."-59쪽

"세상 어느 나라든 자라나는 세대에게 이익의 원리가 아닌 순수한 도덕의 원리를 온전히 가르치려 애쓰는 나라가 몇이나 될까마는 한국의 경우처럼 도덕교과의 이름을 걸고 그토록 노골적으로 잘사는 것과 올바르게 사는 것을 뒤섞는 나라는 다시 없을 것이다."-87쪽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도덕을 학문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은 일차적으로는 윤리학인데, 윤리학이란 철학의 한 분야이므로 도덕의 어미학문은 당연히 철학이라 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도덕교과는 어미학문이 없다. 그 대신 학제적 접근이라는 유령이 어미학문의 자리를 대신한다. 학제적 접근이란 여러 학문들이 같이 도덕교과의 어미학문 노릇을 한다는 말과 같은데 여기에 속하는 학문들이 "한국학, 철학 특히 윤리학을 비롯한 규범과학, 정치학 사회학을 비롯한 사회과학" 그리고 "지도방법이나 평가면에서는 심리학과 교육학"이 도덕교과에 학제적으로 참여하게 된다."-88쪽

"다른 교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런 학문적 혼합이 유독 도덕교과에서는 학제 간 접근이라는 그럴듯한 이름 아래 정당화되는 까닭이 무엇인가? 그것은 학문적 이유나 교육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다른 무엇보다 한국의 도덕교육의 교육목표 자체가 참된 도덕성의 함양이 아니라 국민윤리의 주입에 있었기 때문이다."-89쪽

"현재 한국의 도덕교육의 핵심 영역은 "인성 교육과 민주 시민 교육" 그리고 "통일 대비 교육과 국가 안보 교육"이다. 도덕교과의 존재 이유는 참된 도덕적 능력의 함양이 아니라 이데올로기 교육에 있는 것이다."-91쪽

"도덕교과가 구체적인 삶의 문맥에서 윤리와 도덕의 문제를 성찰하기 위해 요구되는 것은 도덕교과가 윤리학의 테두리를 벗어나 다른 학문과 뒤섞여 학제 간 연구와 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구체적 문맥 속에서 윤리적으로 사유하는 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이다."-94쪽

"참된 도덕교육을 위해 합당한 학문은 철학밖에 없다. 왜냐하며 직,간접적으로 가치를 다루는 모든 학문들 중에 오직 철학만이 타율적 목적에 봉사하지도 않고, 외부로부터 주어진 전제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도 않으면서 도덕적 가치 일반을 그 자체로서 성찰하는, 자유로운 정신의 학문이기 때문이다."-110쪽

"법칙이 단지 법칙이라는 이유만으로 학생들을 구원으로 이끌 수 있다는 오해는 도덕적 법칙에 대한 무반성으로 나타난다. 법칙이 법칙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을 구원으로 이끌 수 있다는 생각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법칙이 법칙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자체로서 정당하다는 확신에 뿌리박고 있기 때문이다."-146쪽

"도덕교육의 과제는 학생들이 사물의 진리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만사를 스스로 생각하고 그 이치를 스스로 깨우치고 터득하도록 생각의 능력을 계발하는 것이다."-176쪽

"현실적 교육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저학년으로 가면 갈수록 모범적 신례들의 제시가 중심이 되어야 하며, 고학년으로 가면 갈수록 도덕적 판단력의 훈련이 도덕교육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해야 할 것이라는 정도는 말 할 수 있을 것이다."-219쪽

"학생들은 정답이 없는 곳에서 자기 나름의 대답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그 대답을 찾는 과정은 형식적이고 계산적인 사유의 과정이 아니라 윤리적 숙고와 도덕적 성찰의 과정이어야 한다. 도덕교육이 떠맡아야 할 일은 주어진 도덕적 문제 상황 앞에서 무엇이 좋으며 무엇이 나쁜지, 무엇이 옳으며 무엇이 그른지를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도덕적 판단력을 길러주는 것이다."-232쪽

"철학적으로 고찰해보면 한국의 도덕교육이 보여주는 독선적이고 무모한 율법주의는 잘못 받아들인 칸트주의에 기초한다. 즉 그것은 윤리학의 역사에서 칸트의 비길 데 없는 공적은 철저히 외면한 채 칸트의 오류만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한국의 도덕교육은 도덕성의 본질을 칸트가 말했던 주체의 자유롭고 자율적인 입법능력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칸트가 말했던 추상적이고 형식적인 의무감에서 찾음으로써 칸트가 말하는 도덕을 자유인의 도덕에서 노예도덕으로 뒤바꿔놓은 것이다."-278쪽

"인간은 처음에는 법칙을 그 자체로서 긍정함으로써 직접 의식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법칙에 위배되는 일을 부정함으로써 간접적으로 법칙을 예감하게 된다."-280쪽

"분노해야 할 일에 대해 분노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도덕교육의 중요한 과제이다. 이를 위해 먼저 교사는 자연스럽게 분노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그는 학생들 앞에서 올바르게 분노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281쪽

"법칙 비판은 결국 올바른 법칙 수립의 능력을 함양하기 위한 방법에 속한다. 학생들은 무엇이 올바르고 무엇이 아닌지르 반복해서 비판적으로 검사함으로써 법칙을 수립할 때 지켜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법칙 및 규범교육은 무엇을 가르치든 궁극적으로 법칙을 따르는 기질이 아니라 법칙을 수립하는 능력을 기르기 위한 교육이어야 한다. 그것만이 자유인에 합당한 규범교육인 것이다."-292쪽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말없이 선을 실천함으로써 그 선이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그들 역시 같은 길을 걷도록 모범을 보이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그리고 그런 도덕적 겸손이 가장 먼저 실천하고 모범을 보여야 할 사람들은 다름아닌 교사들인 것이다. 학생들은 그 모범을 보고 자라면서 자율적이고 주체적으로 입법하면서도 언제나 타인에게 겸손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293쪽

"정의는 올바름의 현실태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올바름은 그 자체로서는 아직 규정되지 않은 (즉자적인) 보편적 사랑이요, 규범과 법칙을 통해 비로소 구체적으로 (또는 대자적으로) 표현된다. 그 규범과 법칙이 실현된 상태가 바로 정의이다. 그러니까 정의란 올바름이 구체적으로 실현된 상태이며 보편적 사랑의 즉자대자적 진리이다. 그리고 이 단계에서 도덕적 의식은 다른 무엇보다 공정성에 주목하는 의식으로서의 의무감이다."-294쪽

"법은 완전한 균형과 공정성에 도달할 수는 없다. 설령 어느 순간에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현실의 권력관계는 언제나 변하는 까닭에 법이 지향하는 균형과 공정성이 언제나 그대로 유지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정당한 법을 마땅히 지켜야 하겠지만 법 자체를 절대시하는 어리석음에 빠져서는 안된다"-2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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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 옆 작업실 - 홍대 앞 예술벼룩시장의 즐거운 작가들
조윤석.김중혁 지음, 박우진 사진 / 월간미술 / 2005년 11월
절판


"원석이 매력적인 이유는 똑같은 모양이 하나도 없다는 거에요. 가공하지 않은 거니까 모양이 전부 제각각이죠. 전 원석을 하트 모양이나 이상한 모양으로 다듬는 건 싫어요. 그냥 원석 그대로의 모습을 어떻게 잘 보여줄 수 있을까만 생각해요."-80쪽

'예쁘다'라는, 말 그대로 아주 예쁜 말이 예술과 관련된 쪽으로 넘어오게 되면 의미가 변한다. 예쁘다라는 것은 예술적이라기보다 상업적이며, 현실적이라기보다 공상적이라는, 부정의 의미로 변질된다. 우유각소녀는 부정의 의미로 변질된 '예쁘다'라는 말의 근원지를 찾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117쪽

'책은 무언의 물체가 아니다. 책 속에선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까? 어렸을 땐 커다랗게 높은 나무를 바라보면서 저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를 상상했다. 나무 속에는 어떤 생명들이 자라고 있을까. 나란히 꽂힌 저 책들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나는 책을 숨쉬는 하나의 생명이라 생각하고 책 속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에 관해 상상했다. 나무 등걸의 형상으로 향이나 촉감을 느낄 수 있는 수제 종이 작업 후 책 속에도 나이테가 자라고 있지 않을까. 나이테가 마치 태아가 자라는 것처럼 크고 넓어지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한다.'-1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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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달 2005-11-30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놀이터 옆에서 작업하면 시끄럽겠다.. ;

마늘빵 2005-11-30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ㅡㅡ;;;

2005-12-05 22: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논술은 논술이 아니다 - 탁석산의 글쓰기 3 탁석산의 글쓰기 3
탁석산 지음 / 김영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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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문이 길게, 그것도 여러 개 주어진다는 점에 유의하자는 것이다. 장문의 제시문을 여러 개 제시하는 것은 채점의 편의를 위한 것이지만, 수험생의 입장에서 보면 논제에 대한 풍부한 내용이 제시되는 것이고, 출제자의 의도를 드러내는 실마리가 여러 개 노출된다는 것을 말한다. -42쪽

모든 글쓰기는 김밥이 아니라 비빔밥에 가깝기 때문이지. 잡다한 체험, 복잡하고 다단한 생각들, 미묘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서로 섞이고 스며들고 부딪히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글쓰기니까.-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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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일까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공경희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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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을 받아들이기란 매우 어렵다. 너무 빨리 넘어가면 헤퍼보일 수 있고, 너무 미적대면 상대가 흥미를 잃을 수도 있다. 엘리스는 자존심을 구길 위험을 무릎쓰고, 집에 가서 이야기나 하자는 제안을 받아들여야 할까? 아니면 다시는 못 만날 위험을 감수하면서 예의 바르게 작별 인사를 해야할까?
얌전빼는 태도와 모호한 태도에는 공통적으로 초조함이 배어있다. 머뭇거리면 상대의 관심을 잃을까봐 당장 잠자리로 가는데 동의하는 사람도 있고, 그 다음에 버려질까봐 두려워서 잠자리로 가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62쪽

타인과 사랑을 나누는 일은 어찌보면 과거에 같이 잔 사람들의 습관이나 기억과 충돌하는 것이다. 사랑을 나누는 방식에는 우리의 성생활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키스는 과거에 했던 키스들의 종합형이고, 침실에서 하는 행위에는 과거 거쳤던 침실의 흔적이 넘쳐난다. -65쪽

순전히 기술적인 관점에서는 성생활의 역사가 있는 편이 바람직하겠지만, 심리적으로 그것은 복잡 미묘한 영향을 미쳤다. 성생활 역사가 있다는 것은 여러 사람과 성행위를 했다는 의미일 뿐 아니라, 잠자리를 같이한 사람을 차거나 그 사람에게 채였다는 뜻이다. 좀 더우운 면에서 보자면 섹스 기교의 역사는 실망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66쪽

그녀는 실내 장식에 대해 기능보다는 감정을 중요시했기에, 물건의 가치도 얼마나 제 기능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기억이 담겨 있느냐로 판단했다. -127쪽

감정적인 벌거벗음은 남에게 자신의 약함과 모자란 부분을 드러내느 데서 시작된다. 거기에 의존하면, 우리는 존재라는 엄연한 사실 외에 다른 방법으로 어떤 인상을 심어줄 능력을 빼앗기게 된다. 더는 거짓말하거나 허세 부리지 못하고, 뽐내거나 미사여구 뒤로 숨지 못한다. -136쪽

경제의 세계에서는 빚이 나쁜 것이지만, 우정과 사랑의 세계는 괴팍하게도 잘 관리한 빚에 의지한다. 재무 정책으로는 우수한 것이 사랑의 정책으로는 나쁠 수가 있다. - 사랑이란 일부분은 빚을 지는 것이고, 누군가에게 뭔가를 빚지는 데 다른 불확실성을 견디고, 상대를 믿고 언제 어떻게 빚을 갚도록 명할 수 있는 권한을 넘겨주는 일이다.-143쪽

타인을 상대할 때, 대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상대의 반응을 예상하고 행동한다. 상대방의 특성을 머릿속으로 그리고, 이것을 이용해서 어떤 말을 할지, 어떤 행동을 할지 선택한다. '내가 X라고 말하거나 행동하면, 이 사람은 Y라는 반응을 보이겠지' 라는 전제하에 움직이는 행동의 틀이다. 이 틀이 웬만큼 복잡한 상황까지 아우를 수 있을 만큼 풍성해지면, 우리는 누군가를 안다고 다소 가설적인 주장을 할 수 있게 된다. -146쪽

사랑의 연속성이란 무엇인가? 상대가 당장 관심의 징표나 신호를 보내지 않아도 사랑이 지속되리라는 믿음, 상대가 밀라노나 빈에서 주말을 보내더라도 다른 정인과 카푸치노를 마시거나 초콜릿 케이크를 먹지 않으리라는 믿음, 침묵은 단순한 침묵일 뿐 사랑의 종말을 암시하는게 아니라는 믿음. -164쪽

"나는 나를 사랑해" 가 부족함을 벌충하므로 "당신을 사랑해"란 말이 덜 필요하다. "당신이 왜 날 사랑하지 않겠어?"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에 빠졌을 때의 기본 태도다. "내가 나한테 느끼는 감정을 당신이라고 못 느끼겠어?" -168쪽

힘이란 단어는 사전적으로 행위 능력을 의미한다. ...중략... 사랑에서는 권력이 훨씬 수동적이고 부정적인 정의에 의존하는 것 같다. 사랑에서는 권력이 무엇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능력으로 간주된다.-175쪽

사랑의 권력은 아무것도 주지 않을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다. 상대가 당신과 같이 있으면 정말 편안하다고 말해도, 대꾸도 없이 TV 프로그램으로 화제를 바꿀 수 있는 쪽에 힘이 있다. 다른 영역에서와는 달리, 사랑에서는 상대에게 아무 의도도 없고, 바라는 것도 구하는 것도 없는 사람이 강자다. 사랑의 목표는 소통과 이해이기 때문에, 화제를 바꿔서 대화를 막거나 두 시간 후에나 전화를 걸어주는 사람이, 힘없고 더 의존적이고 바라는 게 많은 사람에게 힘 들일지 않고 권력을 행사한다.-176쪽

"누군가가 나를 사랑한다면야, 내가 그 이유를 물을 까닭이 있나?"-212쪽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을 빌리면, 타인들이 우리를 이해하는 폭이 우리 세계의 폭이 된다. 우리는 상대가 인식하는 범위 안에서 존재할 수 밖에 없다 - 그들이 우리의 농담을 이해하면 우리는 재미난 사람이 되고, 그들의 지성에 의해 우리는 지성 있는 사람이 된다. 그들의 너그러움이 우리를 너그럽게 하고, 그들의 모순이 우리를 모순되게 한다. 개성이란 읽는 이와 쓰는 이 양쪽이 다 필요한 언어와 같다. 일곱 살 아이에게 셰익스피어 작품은 말도 안되는 허섭스레기이며, 만약 그의 작품이 일곱 살 아이들에게만 읽힌다면 셰익스피어는 그 아이들이 이해하는 수준에서 평가받을 수 밖에 없다 - 마찬가지로 앨리스의 가능성도 애인이 공감해주는 한도에서만 뻗어나갈 수 있다. -318쪽

행복은 배타적이지만 불행은 끌어안는다. 그러므로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행복한 표정이 아니라 불행한 표정을 짓고, 명랑함에 수반되는 독립심, 고통에 대한 무감각을 피할 일이다. 불행을 추구하는 일은, 만족한 표정에 함유된 경쟁심을 피하려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336쪽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란 공유된 의사소통 체계라고 정의되므로 사회를 벗어난 곳에서는 상상할 수 없다며, 혼자만의 언어는 있을 수 없다고 했다. -362쪽

불평을 표현하는 행동 뒤에는 상대가 잘못을 빌 거라는 낙관적인 믿음이 깔려 있을 것이다. 불평은 대화에 대한 믿음을 암시한다. 상처를 입긴 했지만, 이쪽이 화난 것을 상대가 이해해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364쪽

보는 것은 항상 다른 요소에 의해 보강된다. 심지어 이미 알고 있거나 바라는 것에 따라 보는 것이 달라지기도 한다. 우리는 눈앞에 있는 것을 곧이곧대로 보지 않고, 이미 인식하고 있는 영상으로 눈을 가리고 힐끗 쳐다볼 뿐이다. -372쪽

"사랑은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점을 과장하는 흥미로운 과정이다." (조지 버나드 쇼)-3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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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5-11-27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유, 이놈의 보통씨. 이제는 정말 얄밉다니깐요! >.<

마늘빵 2005-11-27 0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왜요?

이리스 2005-11-27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똘똘하잖아욧.. ㅜ.ㅡ

마늘빵 2005-11-28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그러게요. 흠. 분석력+감수성 예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