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교육의 파시즘 - 노예도덕을 넘어서 프런티어21 1
김상봉 지음 / 길(도서출판) / 2005년 10월
품절


"도덕교과는 사실이 아니라 당위를 가르쳐야 하는 교과인 까닭에 문제가 되는 사실에 대해서는 학문적으로 거의 아무 가르침을 주지 못하면서 무슨 말을 하든 습관적으로 반드시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식으로 말을 하게 된다."(머리말)-9쪽

"한국의 도덕교육은 착한 노예를 기르기 위한 것이었을 뿐, 한번도 긍지 높은 자유인을 기르기 위한 도덕교육이었던 적이 없었따. 노예가 아무리 착하다 하더라도, 노예적 삶이란 결코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이상일 수 없다. 우리는 그것이 우리 시대의 엄연한 시대 정신이라 믿는다. 인간을 자유인으로 만들지 않으면서 오직 착하게만 만들려는 것은 언제나 불온한 시도이다. 도덕이 아무리 숭고한 옷을 걸치고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것이 인간을 정신적으로 노예화하는 장치라면 우리는 그런 도덕을 단호히 거부하지 않으면 안된다. 인간성의 자유로운 자기실현에 앞서는 어떤 도덕도 정당성을 가질 수가 없다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첫번째 가치인 것이다."(머리말)-13쪽

"인간의 도덕적 능력이란 이처럼 실현되어야 할 과제로서의 인간성, 곧 당위로서의 인간성의 이상을 스스로 정립하고 스스로 추구하며, 스스로 실현할 수 있는 능력에 다름 아니다."-23쪽

"법은 명료하고 효율적이기는 하지만 복종하는 사람들의 자발성을 이끌어내지 못할 때에는 언제라도 시민의 저항에 직면할 위험을 안고 있다.
...중략...
그러므로 권력을 권리로 만들고 그 권력에 대한 복종을 의무로 만들기 위해서는 법의 구속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반드시 도덕적 훈육을 통하여 사람들을 세뇌하고 길들여 그들로 하여금 법을 통해 강제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권력에 복종하도록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게 사람들을 아예 도덕적 의무의 형태로 권력에 순종하도록 만드는 교육이 바로 한국의 도덕교육이다."
-28쪽

"자유인의 도덕은 주관적으로 자기에 대한 관심과 긍지 그리고 객관적으로는 자기를 위하여 좋은 것을 추구하는데서 시작되지만, 노예를 위한 도덕은 자기 아닌 타인을 위해 좋은 것, 즉 주인을 위하여 좋은 것을 강요하는 것에 존립한다. 그런데 한국의 도덕 교과서는 이 점에서 자유인의 도덕이 아니라 노예의 도덕을 가르치는 책이다."-34쪽

"첫째로 현실적으로 정착되어 있는 불평등한 사회관계에서 아래에 있는 사람이 지켜야 할 도덕뿐만 아니라 위에 있는 사람이 지켜야 할 도덕 역시 학생들이 배울 필요가 있다."
"둘째로 도덕교육은 사회적 약자에게 예절을 강요하는 만큼, 사회적 갖아의 폭력과 횡포에 대해 어떻게 자기를 지켜야 할지도 말해주어야 한다."-38-39쪽

"스스로 동의한 법에 복종하는 것은 자율성의 표현이지만 남이 제정한 자의적 법칙에 따르는 것은 노예적인 굴종일 뿐이다. 법은 오직 우리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일반의지의 표현일 때에만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것은 내가 동의할 수 없는 악법이요, 악법에 저항하는 것은 자유인의 긍지에 속하는 일이다."-59쪽

"세상 어느 나라든 자라나는 세대에게 이익의 원리가 아닌 순수한 도덕의 원리를 온전히 가르치려 애쓰는 나라가 몇이나 될까마는 한국의 경우처럼 도덕교과의 이름을 걸고 그토록 노골적으로 잘사는 것과 올바르게 사는 것을 뒤섞는 나라는 다시 없을 것이다."-87쪽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도덕을 학문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은 일차적으로는 윤리학인데, 윤리학이란 철학의 한 분야이므로 도덕의 어미학문은 당연히 철학이라 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도덕교과는 어미학문이 없다. 그 대신 학제적 접근이라는 유령이 어미학문의 자리를 대신한다. 학제적 접근이란 여러 학문들이 같이 도덕교과의 어미학문 노릇을 한다는 말과 같은데 여기에 속하는 학문들이 "한국학, 철학 특히 윤리학을 비롯한 규범과학, 정치학 사회학을 비롯한 사회과학" 그리고 "지도방법이나 평가면에서는 심리학과 교육학"이 도덕교과에 학제적으로 참여하게 된다."-88쪽

"다른 교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런 학문적 혼합이 유독 도덕교과에서는 학제 간 접근이라는 그럴듯한 이름 아래 정당화되는 까닭이 무엇인가? 그것은 학문적 이유나 교육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다른 무엇보다 한국의 도덕교육의 교육목표 자체가 참된 도덕성의 함양이 아니라 국민윤리의 주입에 있었기 때문이다."-89쪽

"현재 한국의 도덕교육의 핵심 영역은 "인성 교육과 민주 시민 교육" 그리고 "통일 대비 교육과 국가 안보 교육"이다. 도덕교과의 존재 이유는 참된 도덕적 능력의 함양이 아니라 이데올로기 교육에 있는 것이다."-91쪽

"도덕교과가 구체적인 삶의 문맥에서 윤리와 도덕의 문제를 성찰하기 위해 요구되는 것은 도덕교과가 윤리학의 테두리를 벗어나 다른 학문과 뒤섞여 학제 간 연구와 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구체적 문맥 속에서 윤리적으로 사유하는 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이다."-94쪽

"참된 도덕교육을 위해 합당한 학문은 철학밖에 없다. 왜냐하며 직,간접적으로 가치를 다루는 모든 학문들 중에 오직 철학만이 타율적 목적에 봉사하지도 않고, 외부로부터 주어진 전제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도 않으면서 도덕적 가치 일반을 그 자체로서 성찰하는, 자유로운 정신의 학문이기 때문이다."-110쪽

"법칙이 단지 법칙이라는 이유만으로 학생들을 구원으로 이끌 수 있다는 오해는 도덕적 법칙에 대한 무반성으로 나타난다. 법칙이 법칙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을 구원으로 이끌 수 있다는 생각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법칙이 법칙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자체로서 정당하다는 확신에 뿌리박고 있기 때문이다."-146쪽

"도덕교육의 과제는 학생들이 사물의 진리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만사를 스스로 생각하고 그 이치를 스스로 깨우치고 터득하도록 생각의 능력을 계발하는 것이다."-176쪽

"현실적 교육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저학년으로 가면 갈수록 모범적 신례들의 제시가 중심이 되어야 하며, 고학년으로 가면 갈수록 도덕적 판단력의 훈련이 도덕교육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해야 할 것이라는 정도는 말 할 수 있을 것이다."-219쪽

"학생들은 정답이 없는 곳에서 자기 나름의 대답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그 대답을 찾는 과정은 형식적이고 계산적인 사유의 과정이 아니라 윤리적 숙고와 도덕적 성찰의 과정이어야 한다. 도덕교육이 떠맡아야 할 일은 주어진 도덕적 문제 상황 앞에서 무엇이 좋으며 무엇이 나쁜지, 무엇이 옳으며 무엇이 그른지를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도덕적 판단력을 길러주는 것이다."-232쪽

"철학적으로 고찰해보면 한국의 도덕교육이 보여주는 독선적이고 무모한 율법주의는 잘못 받아들인 칸트주의에 기초한다. 즉 그것은 윤리학의 역사에서 칸트의 비길 데 없는 공적은 철저히 외면한 채 칸트의 오류만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한국의 도덕교육은 도덕성의 본질을 칸트가 말했던 주체의 자유롭고 자율적인 입법능력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칸트가 말했던 추상적이고 형식적인 의무감에서 찾음으로써 칸트가 말하는 도덕을 자유인의 도덕에서 노예도덕으로 뒤바꿔놓은 것이다."-278쪽

"인간은 처음에는 법칙을 그 자체로서 긍정함으로써 직접 의식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법칙에 위배되는 일을 부정함으로써 간접적으로 법칙을 예감하게 된다."-280쪽

"분노해야 할 일에 대해 분노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도덕교육의 중요한 과제이다. 이를 위해 먼저 교사는 자연스럽게 분노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그는 학생들 앞에서 올바르게 분노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281쪽

"법칙 비판은 결국 올바른 법칙 수립의 능력을 함양하기 위한 방법에 속한다. 학생들은 무엇이 올바르고 무엇이 아닌지르 반복해서 비판적으로 검사함으로써 법칙을 수립할 때 지켜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법칙 및 규범교육은 무엇을 가르치든 궁극적으로 법칙을 따르는 기질이 아니라 법칙을 수립하는 능력을 기르기 위한 교육이어야 한다. 그것만이 자유인에 합당한 규범교육인 것이다."-292쪽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말없이 선을 실천함으로써 그 선이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그들 역시 같은 길을 걷도록 모범을 보이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그리고 그런 도덕적 겸손이 가장 먼저 실천하고 모범을 보여야 할 사람들은 다름아닌 교사들인 것이다. 학생들은 그 모범을 보고 자라면서 자율적이고 주체적으로 입법하면서도 언제나 타인에게 겸손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293쪽

"정의는 올바름의 현실태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올바름은 그 자체로서는 아직 규정되지 않은 (즉자적인) 보편적 사랑이요, 규범과 법칙을 통해 비로소 구체적으로 (또는 대자적으로) 표현된다. 그 규범과 법칙이 실현된 상태가 바로 정의이다. 그러니까 정의란 올바름이 구체적으로 실현된 상태이며 보편적 사랑의 즉자대자적 진리이다. 그리고 이 단계에서 도덕적 의식은 다른 무엇보다 공정성에 주목하는 의식으로서의 의무감이다."-294쪽

"법은 완전한 균형과 공정성에 도달할 수는 없다. 설령 어느 순간에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현실의 권력관계는 언제나 변하는 까닭에 법이 지향하는 균형과 공정성이 언제나 그대로 유지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정당한 법을 마땅히 지켜야 하겠지만 법 자체를 절대시하는 어리석음에 빠져서는 안된다"-2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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