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우타노 쇼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사랑의 아픔을 겪은 남자 혹은 여자의 애절한 사랑이야기인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일단 제목에서부터 철저하게 배신을 때린 - 뭐 그게 나쁘다는건 아니고 - 이 소설은 책 내용에 있어서도 또 한번의 배신을 때린다. 야구방망이로 세게 뒤통수를 맞은 듯한 이 느낌(니가 야구방망이로 맞아봤어?). 작가 우타노 쇼고는 아주 계획적으로 독자를 속이려고 작정했던 것이다.

  "여자의 살갗은 촉촉히 젖어있다. 절정에 다다르면서 그녀의 몸은 열기를 띠며 끈끈한 땀을 내보냈다. 지금은 그 몸이 식으면서 내 몸의 열기를 빼앗아 간다. 고동 소리가 들린다. 귀로 듣는게 아니라 몸으로 느끼고 있다. 살갗에서 살갗으로 전해지는 그 소리에 살아 있음을 실감한다. 반복되는 단조로운 울림에 마음이 편해진다. 어머니의 태내에 있었을 때는 하루하루가 매일 이런 느낌이었으리라."

  제 1장 만남의 한 대목이지만 이 소설은 매우 진하게 시작한다. 한 남자와 여자가 섹스를 하고 남자는 여자의 살갗을 어루만지며 생각한다. 느낀다. 아주 제대로 침대위의 두 남녀를 묘사하고 남자의 머리 속에서 펼쳐지는 생각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소설은 500페이지가 넘는 이 두꺼운 소설의 이후 내용에 기대를 품게 만든다. 잔뜩 들뜨게 해놓고 실망시키기만 해봐라.

 1장을 읽고 당연히 연애소설이라 여겼던 나의 생각은 이내 곧 여지없이 무너진다. 남녀간의 이야기가 아니라 - 아니 물론 남녀간의 이야기도 있지만 - 사립탐정 수사물이다 완전. 그렇다고 나쁘다는건 아니고. 잠깐 탐정사무소에 나갔었다고 친구(?)의 사건에 깊숙히 참여해 아예 조사를 하고 다니다 목숨까지 위태로워지는 상황까지 맞이하고. 대단한 열정을 가진 친구다. 결국 그는 당연하게도 사건을 마무리짓지만 사건이 마무리되는 것이 작가의 의도는 아니었다. 사건을 뒤집어 헤치고 해결하는 그 스릴넘치는 과정은 맛배기였다. 진짜배기는 절대 아무도 의심할 수 없다. 이미 읽은 독자가 아직 읽지 않은 독자에게, 안돼 너는 절대 속지마, 명심해 끊임없이 의심하라고!, 라고 미리 경고해준다고 해도 절대로 작가의 트릭을 빠져나갈 수 없다. 정말 의외의 곳에서 함정을 파고 기다리고 있나니. 고정관념을 팍 깨버리는 소설이었다.

  적어도 추리소설이란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괴도 루팡, 셜록 홈즈, 아가스 크리스티와 같은 유명 추리소설에서는 절대로 생각할 수 없는, 예상할 수 없는 함정. 알려지지 않은 작가이기에, 또 그가 의도적으로 계획적으로 치밀한 구성을 만들어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책 마지막 장을 덮고서, 어이 없이 속아버린 나 자신에 대해 허탈한 웃음을 한방. 허허.

  <트릭에 속지 않는 법>
  1.모든 등장인물들은 괜히 설정된 것이 아니고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2.사건해결의 스릴을 즐겨라. 하지만 거기에만 빠져서는 안된다. 그럼 속는다.  
  3. 고정관념을 깨라. 당신이 가진 모든 고정관념을 없애라. 
  4. 하지만 당신은 100% 속을 것이다. 내 장담한다. 위의 세 가지 경고를 미리 줬음에도 당신은 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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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6-06-08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등장인물에 속고. 고정관념에 속고..스릴 그 속에만 빠졌다가 또 속고..

마늘빵 2006-06-08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계속 다 속았어요. 저도. -_-;;
참 치밀한 녀석이에요. 이 작가.

물만두 2006-06-08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그래서 재미있잖아요^^

마늘빵 2006-06-08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맞아요. ^^ 많이 속아서 재밌어요. 추리소설은 그 재미죠. 트릭에 속아넘어가는 재미. 아 너무 철저했어요. 의심조차할 수 없는.

moonnight 2006-06-08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히. 저도 이 책 재밌게 읽었어요. ^^

전호인 2006-06-08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넘 서정적이라서 찾아왔는 데.......님의 실망하시는 글을 보니.......저는 제목에 속은 건가여. ㅎㅎㅎ
"벚꽃지는 계절에........"

마늘빵 2006-06-08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나잇님/ 재밌죠?! ^^ 저도요.
전호인님/ 엇 실망이 아니고, 속아넘어간 것에 대한 넋놓음인데요. ^^